멈춰 서서
이우환 지음, 성혜경 옮김 / 현대문학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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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

 

 언젠가 내가 돌을 보고 있자니 눈길은 돌 저쪽으로까지 꿰뚫어나가고 동시에 돌의 눈길 또한 내 등뒤로까지 꿰뚫어나가는 것이었다

 

  이윽고 두 개의 눈길이 서로 뒤돌아보았을 때 그곳엔 나도 돌도 없고 투명한 공간만이 펼쳐져 있었다

 

나무 4

 

  어쩌다 바람에 너울거리는 나무와 흔들리는 나의 눈길이 만난 순간 나는 멈춰 선 나무가 되고 나무는 걷는 내가 된다

 

  이리하여 나와 나무는 그곳에 있으면서 어디론가 돌아다니는 옮아 탄 운명의 공간을 이루게 된다

 

산정山頂 2

 

산정에 서면

양손을 앞으로 내밀어라

 

이윽고 하늘이 쏟아지면

품에 안고 산을 내려오라

 

가지 끝

 

가지를 따라 생각을 더듬어 가면

 

기억이 끊어진 저쪽에 열린 봉오리

 

우산

 

비오는 날에

우산을 쓰고 거니는 사람은

모두 고독하다

 

그건 비에

적시고프지 않은 작은 공간을

나르는 때이기 때문이다

 

자신도 그 공간에 들어가

빗속을

여기저기 저 너머로 장소를 옮긴다

 

사람이

투명한 유리케이스처럼

자신을 가둔 채 걷고 싶어하는 것은

 

우산 아래서

차가운 고독의

비에 젖고 싶기 때문이다

 

  그의 예술세계를 이해함에는 그의 글들을 함께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일본에서 그의 이름을 알리고, 그를 중심으로 '모노하(物派) 운동'을 집결시킨 것도, 그가 1969년 6월 『산사이三彩』에 발표한 「존재와 무를 넘어서 - 세키네 노부오 론 存在と無を越えて - 關根伸夫論」을 기점으로 해서였다.

 

  그가 쓰거나, 그를 다룬 책 중 현대문학사에서 출간된 네 권은 시중에서 구할 수 있고, 네 권은 품절되었다.

 

  2009년에 나온 『시간의 여울』은 화백의 에세이집이다. 일본의 <미술수첩>, <예술신조 藝術新潮>, <현대시수첩>, <현대사상>, <통일일보>, <아사히신문>, <일본경제신문> 등에 발표한 것들과, 미발표 원고를 모은 것이다. 일본에서는 1987년 小沢書店에서 처음 출간되었다가 2004년부터는 みすず書房에서 출간하고 있다(2016년 4월에도 책을 다시 찍어냈다). 한국에서는 1994년 디자인하우스에서 서인태 씨 번역으로 처음 나왔다가 2002년 여섯 편의 단편을 추가하여 남지현 씨가 새로이 번역하였고, 2009년에 월간 <현대문학>에 실었던 다섯 편을 더하여 현대문학사에서 재발간되었다.

  2002년에 나온 『여백의 예술』은, 화백이 미술 표현에 대한 단상, 현대 예술 일반에 대한 견해, 유럽이나 한국, 일본의 문화감각 등을 주제로 1967년부터 최근까지 일본의 잡지, 신문, 카탈로그 등에 발표하였던 단문, 또 미발표 원고를 묶은 책이다. 『시간의 여울』이 주로 신변잡기라면,  『여백의 예술』은 그의 '예술론'이다. 일본 みすず書房에서 2000년 11월 출간되었던 책을 김춘미 교수가 번역하였다.

  2004년에 나온 『멈춰 서서』는 화백의 시집이다. 그의 그림과 조각이 詩적인 만큼이나, 그의 詩도 회화적이다. 詩라기보다는 차라리, '시각(視覺)에 관한 단문'에 가깝다. 2001년 4월 일본 書肆山田에서 출간되었던 책을 성혜경 교수가 번역하였다.

  가장 최근인 2014년에 나온 『양의의 예술』은 심은록 작가와 화백의 대담집이다. 전문성을 갖춘 인터뷰어의 충실한 질문 덕분에 화백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심은록 씨는 작년 4월, 서용선 화백과의 대담집 『사람에 대한 환원적 호기심』(교육과학사)을 펴낸 바 있다.

 

 

  절판된 책 중 화백 자신의 책으로는 우선 열화당에서 1977년에 처음 나온 『이조의 민화: 구조로서의 회화』가 있다. 조선시대 미술의 특징을 다각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1. 이조미술의 특징: 생활애(生活愛)의 예술, 2. 회화의 본령: 이조회화의 평가를 중심으로, 3. 화가와 제작: 방랑화가들과 폐쇄사회, 4. 용도와 종류: 회화와 생활공간, 5. 화관(畵觀)과 방법: 윤곽회화의 구조, 6. 성립과 해소: 무명성이라는 것'까지 총 6장으로 구성된 짧은 책이다. 본문은 48쪽이고 이후는 모두 도판이다. 아래 책 이미지는 열화당 홈페이지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가장 중요한 책은 2011년 학고재에서 나온 『만남을 찾아서』이다. 이는 1960년대 말경 화백이 쓴 논문 6편을 수록한 책으로, 이들은 오늘날 이우환을 있게 한 글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세키네 노부오 론'도 여기에 실려 있다. 1971년 田畑書店에서 처음 나왔지만, 2000년 美術出版社에서 간행되었다가, 2016년에 『시간의 여울』, 『여백의 예술』과 마찬가지로 みすず書房에서 재출간되었다. 번역본은 김혜신 씨가 번역하였다.

  그 밖에, 화백에 대하여 많은 글을 쓴 바 있는 김미경 교수가 낸 『모노하의 길에서 만난 이우환』(공간사, 2006), 독일 미술사가인 질케 폰 베르스보르트가 화백의 예술세계를, 현대미술의 국제적 맥락에서 철학적으로 분석한 『이우환, 타자와의 만남』(학고재, 2008)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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