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미학 동문선 문예신서 358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김웅권 옮김 / 동문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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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밤에도 불꽃은 떨리고 있었다. 가느다랗게
빛이 떨릴 때에는 모든 것이 떨린다.
불꽃 속에서 공간은 흐르고 시간은 출렁거린다.
푸른색 뿌리로부터 어떤 피안을 향해 끄집어 올려진 한 송이 장미꽃
그 수직의 메아리가 저녁의 어둠과 나지막이 상의하는 동안 존재와 비존재는 끊임없이 공존한다.
수동과 능동, 태워지는 것과 태우는 것, 과거분사와 현재분사 사이의 변증법.
불꽃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 놓인 다리이다.

밤에 켜놓은 작은 촛불과 꿈꾸는 영혼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다. 둘 모두에게 시간은 느리다. 꿈 속에서는 희미한 빛 속에서와 꼭 같은 인내가 견지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시간은 심화된다. 이미지와 추억이 뒤섞인다. 불꽃의 몽상가는 자신이 보는 것과 본 것을 결합한다. 상상력과 기억을 융합한다.
불꽃은 위를 향해 흘러가는 모래시계이다. 불꽃이 주는 꿈과 몽상은 아득한 과거에 뿌리박고 있고, 높은 곳에서 불꽃은 자신의 옷을 벗어던진다.

불꽃은 빈 독방을 밝히는 게 아니라 한 권의 책을 밝힌다.
세계라는 책을.
불꽃 앞에서 밤샘을 하는 자는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다.
그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흰 페이지의 별이 비추는 서늘한 이마는 자신의 희미한 등불로부터 하늘의 거대한 우주까지 손쉽게 이동한다.

˝꺼진다˝, 이 낱말은 얼마나 대단한 울림을 주는가. 꺼진다는 동사의 가장 큰 주어는 무엇일까? 생명인가 촛불인가?
불꽃은 살아 있다. 연약하면서도 꿋꿋한 생명이다. 바람이 한번만 불어도 방해받지만 이내 다시 일어선다. 어떤 상승력이 그것의 위신을 회복시켜준다. 불꽃은 끊임없이 자신을 재점화시켜야 하고 불순물과 싸우면서-그래서 악은 선의 양식(糧食)이다- 빛에 대한 자신의 지휘를 유지해야 한다.
불꽃은 쉽게 태어나고 쉽게 죽는다. 불꽃 안에서 삶과 죽음은 곧잘 병치된다.
하지만 불꽃은 자기자신을 넘어 뛰어오른다. 의식과 불꽃은 동일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 잘 태울수록 높이 타오르고, 잘 태울수록 높이 날아오른다. 뾰족한 끝으로 심지 전체를 빨아들이는 순수한 빛이 고독한 몽상가의 깜빡거리는 심장을 일으켜 세운다.

촛불은 홀로 탄다. 자신을 갱생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태운다.
우리의 내부에는 흔들거리는 불빛만을 받아들이는 어두운 구석들이 있다. 예민한 마음은 깨지기 쉬운 가치 있는 것들을 좋아한다. 그것은 투쟁하는 가치들, 그러니까 어둠에 대항하는 약한 불빛들과 교감한다.
촛불의 불꽃은 가치와 반가치가 서로 싸우는 폐쇄된 전투장이다. 불꽃은 자신에게 자양을 주는 조잡하고 부정한 것들을 일소하고 파괴해야 한다. 자신을 정화해야 하고, 자신을 소멸시켜야 한다.
모든 작은 고통은 세상의 고통을 나타내는 기호이다. 불꽃이 괴롭게 신음하며 자신의 외피를 찢어버리는 동안 눈물의 홈을 따라 눈물, 숨겨진 눈물이 흐른다. 불꽃은 축축한 불이다.

책과 촛불은 정신과 밤이라는 이중적 어둠을 비추는 두 개의 빛이다.
그리하여 밤 독서란,
하늘의 색깔을 띤 채 실존의 책상에 앉아 드리는 완만한 철야기도.


덧. 『촛불의 불꽃 La flamme d`une chandelle』은 바슐라르가 살아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저작으로, 푸코의 말대로 `경탄을 금할 수 없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작품입니다. 바슐라르 철학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이지훈, 『예술과 연금술 : 바슐라르에 관한 깊고 느린 몽상』(창비)이 매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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