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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 리영희 산문선
리영희 지음, 임헌영 엮음 / 한길사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추천 권유도 9
나는 이 작품 이전에 ‘리영희 평전’을 읽기도 하였고 여러 사설을 통해 리영희라는 분을 몇차례
만나기도 하였지만 그 분을 속속들이 안다고도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 분이 나와 같은 년배의 시기에 한 시대를 온 몸으로 국가의 앞날을 고민하며 고뇌에 고뇌를 거듭하셨지만 당시 나는 현실과 타협하고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한다면 현실에 눈감으며 살 수
밖에 없었던 그런 범인(凡人)이었다.
이유를 굳이 들라고 하면 우리 집은 대대로 ‘우익 성향’(?)이 강한 그런 집안이었다.
부친은 참전 용사로 직업 군인이셨고, 존경하는 형님들은 공무원이었기에 반국가적, 반사회적
주장 특히 통수권자와 집권 여당의 판단에 흠집을 내거나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폄하하려는 모든 부정적 요소에 대해 그 어떤 시도도 용인하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를 하나 더 들라고 하면 나는 선천적으로 국가나 사회를 시끄럽거나 혼란을
부추기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극히 싫어하는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인데,
역대 반정부 인사로 분류되어 모진 탄압과 고초를 겪었던 여러 인물들 특히 누구라고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한 시대를 온 몸을 던져 저항하시던 분들에 대해서는 그 분들이 행한
모든 행위의 진실성, 애국적 마인드가 높고, 이상적이었다고 했더라도 그 과정이 사회와 국가를
혼돈으로 몰아넣는 것을 극히 싫어했기 때문에 그 분들에 대한 고정 관념 역시 지금도 썩 좋게
남아 있지 않은 게 사실이다.
아마도 내가 그런 생각을 갖게 된 배경은 당시 나는 그런 분들을 ‘초록은 동색’이라고 그들도 언젠가는 권력이라는 달콤함에 취하게 되면 변할 것이라는 나의 설익은 판단에 기인해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 분들이 행한 행동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당장은 변방의 주인공이지만
세월이 흘러 권력의 중심부로 들어가면 그들도 기존 세력과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그 분들의 외침을 새 시대를 열려는 노력으로 인식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면, 나는 과거 대기업에 다니며 각종 사회단체의 여러 주의, 주장에 시달려 수
많은 시간을 그 단체들과 그 소속원들과 대척점에 서서 싸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대기업에게 저승사자 노릇을 하던 분들이 지금은 어찌되었는가를 보면,
성추행으로, 부동산 투기로, 공금 유용 등을 해 놓고서는 말도 안 되는 논리와 변명으로 일관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그들을 향한 부정적인 관념은 확신으로 변하였음을
말하고 싶다.
나는 누구라 이야기하기 어려웁지만 저승사자라 칭하시는 경제관련 저명 인사가 모 공무원
집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경제 강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이 실랄하게 대기업의
부조리 행태를 이야기하며 비슷하게 행동하는 자신의 행동은 합리화하는 듯한 발언을 듣고는
실망에 실망을 거듭한 끝에 그들이 국가를 위하고 벌이고 있는 모든 모습을 절대 인정하지
않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조금 나아졌겠지 하는 생각을 갖고 정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그들을
보면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변화를 외치기 전이나 그들이 중추적인 자리에 오른 지금이나
조금도 나아진 것이 없어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그들이 보이는 모습은 ‘전가의 보도’처럼 과거 자신들이 민주화 운동 당시 촬영된 사진 몇 장
걸어놓고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하고 이야기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자세로 인해
오늘도 심히 실망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반면에 리영희 선생은 그런 부류들의 인간들과는 달리 세상 속에서 초지일관 자신의 주장을
정의의 편에 서서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질타하고 국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신
진정한 이 시대의 은사요 선각자셨던 분이라 생각하는 바이다.
특히 내가 그간 알지 못하던 여러 사실을 또 어슴푸레 알던 시국 관련 사항과 현실 질타
이야기는 누구처럼 입으로만 떠들지 않고 몸과 행동 그리고 펜으로 보여주었던 분이다.
다시 말해 ‘선(善)’으로만 알고 있었던 모든 것의 왜곡된 속살을 마주하게 하였던 분으로 시간이
흘러 내가 그 모든 사실의 진실된 면을 보고 정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외쳐보려 노력하였지만
이미 많은 세월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임을 느끼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며 해당 작품은 이미
한 번 독파를 했고 다시 접하였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과 감정으로 내게 다가와 가슴이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
나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장 잘하는 것으로 행동’하자고 그렇다고 아무런 비판 없이 대세를
추종하는 방식이 아닌 내 판단을 가미해 세상을 다시 보자고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살아온 시간과 국가 우선주의적 삶의 시간에 대한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당시의 내 판단이 옳았음을 부정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마저 부정한다면 내가 살아온 시간 자체를 부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부정은 하지 않되 그렇다고 맹목적인 긍정 역시 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제 연륜이라면 연륜이 있고 작금의 그런 시대적 왜곡된 방식의 결과물애 대한 평가를
나름 할 수 있는 시각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작금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벌이고 있는 각종 추태를 보면 나의 그런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러다 이 작품을 마주했으며 작품에서 나의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하는 문구를 접하게 되었다.
“나의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이 될 수 없고 이웃과 나누어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는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렇고 영원히 그러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P 9)
선생께서 부연하여 설명하고 있는
- 온갖 거짓으로 꾸며진 권력과 철학, 학문과 신앙과 교육과 언론매체들이 어둑서니로 진실에
다가가려는 이성을 학살하고 있다는 것이 리영희의 현실진단이다.(P10)
또한 맹목적인 애국주의나 집권세력과 기득권자들의 논리인 ‘국가지상주의’의 허구를
드러내려는 것이 나의 수필류의 주된 의도였다.(P16)
시민의 의식을 잠재우고 최면술을 걸려는 감상주의, 복고주의, 낭만주의에 맞서 싸우려는
것이 또한 수필류의 정신이었다.(P 84)
- 우상에 가려진 진실을 밝혀내는 이성적인 작업 또는 글쓰기란 지식인 모두가 지닌 사명.
- 20세기의 세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경쟁적으로 협력 또는 적어도 공존해야만 인류의
파멸을 피할 수 있다.(P 53)
- 평화는 약자의 도덕이라는 믿음에서는 니체 숭배자였고, 권력의 의지만이 최고의 철학이라는
데서는 히틀러의 아류들이었다.(P 66)
- ‘반공’은 만사의 면죄부로서 온갖 추악한 행위가 그 면죄부를 내걸고 천하를 호령하고 있었다.
모든 이성적, 지성적 사고는 제단에 바쳐졌다. 반공주의는 종교가 되고 바이블인 되었다.(P 70)
아래 사항은 각 주제별 핵심되는 내용이라 여겨지는 문구를 정리해 보았다
[불효자의 변]
- 사람들은 부모를 모시면 그것이 효도인 줄 안다. 그것만이라면 개나 말을 기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효도의 차이는 마음에서부터 공경하는 것이다.(P109)
- 오늘 우리 사회, 국가의 각종 혼란과 무질서가 충효사상의 결핍과 문란 때문이라는 것 같다.
즉, 도덕규범의 문란 때문에 사회, 국가생활의 제도적 기강이 퇴폐해졌다는 해석이 압도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원인과 결과를 곤두박질시킨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
본래 어느 사회의 도덕률이건 그것은 그 사회의 어떤 특정 시대의 역사적 발전단계의 경제적
조직 원리에 따라 형성된 사회구조에 대응하는 인간관계의 규범이라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효의 사상도 예외일 수 없다.(P111)
- 물적 소유관계의 사회에서는 효(마찬가지로 크게는 충의 사상)와 도덕은 강제력의 행사 없이도
발생되는 것이며 사회질서의 기본원리로서 모순 없이 기능할 수 있다.
우리가 전통으로 이어온 효사상 그것이다.(P112)
- 효가 ‘제도’로서 강요되는 사회는 본질적으로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는 사회로 실제로 현재
충효사상을 운동으로 몰고 가는 움직임이 권력기관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지배하는 자, 지배하려는 자, 지배를 계속하고 싶은 자들의 도덕이다.
현대사회에 적용해 국민의 총체적 우민화에서 지배의 이득을 얻는 전제자의 철학임이
분명하다.(P117)
* 혁명으로 수립된 민주적 국가체제를 쿠테타로 뒤엎은 ‘원세개’는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그
야욕의 대중적 토대를 ‘공자의 도’를 국민화함으로써 이룩해보려 했다. 원세개와 장개석은
민주주의를 사갈시하고 대중적 요구를 거부하면서 각기 전제적 정치권력을 강화하려할 때
공교와 효(충)의 교의를 국민에게 숭상하도록 했다.(P119~120)
- 현대사회에 효의 도덕을 모순 없이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연령, 성, 재산(수입),
사회적 지위, 인종, 사상과 신념의 차이에 구애되지 않는 전체 사회 구성원 간의 수평적
‘우애’, ‘시민적 평등’, ‘인류애’의 형태 속에 그 자체를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P120)
[기능분업주의를 경계하며]
- 현대 사회란 모든 분야의, 모든 차원의, 모든 사람의 행동 결정이 정치로 귀일되고, 정치로
종합되고, 정치를 구성하는 사회다.(P133)
- 주부는 밥이나 짓고, 학생은 공부만 열심히 하라는 기능(정치)적 분업주의 사상에 현혹됐거나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사회란, 지배하는 사람 외의 모든 국민 대중에게 자기 사회의 되어
가는 꼴에 대한 무감각한 채념을 낳게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사고방식은
정치적 분업주의자들이다.(P134~135)
[하늘을 나는 새에게서 배우자]
- 진리와 진실이 극단에 있지 않고 두 극단 상의 어느 곳에 있다는 깨달음은 사람을 토론과
타협과 관용의 정신으로 이끈다.(P139)
- 자기의 사상과 이해관계와 입장만을 고집하는 태도가 바로 극단주의다.(P140)
- 모든 극단론은 반이성(反理性)이다. 극우반공주의의 극단에 서면, 모든 존재와 사상이 자신을
기준으로 ‘좌(左)’에 있게 마련이고 ‘좌’로 보이게 마련이다. 한편 비타협 정신의 극좌적 자리에
서면 세상의 모든 사상, 사물, 관계가 ‘우(右)’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사상이나 행동에서 ‘좌’와 ‘우’는 상대적인 것이다. 둘이 함께 동시에 있어야 인간화는 안전하게
진보할 수 있다. 새는 좌와 우의 두 날개로 난다.(P141)
[명예, 거짓, 죄송의 뜻]
- 목숨이 오가는 순간에 의연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의 정신, 심성, 기강 등이 바로 honour다.
‘liar’라는 호칭은 우리 사회에서의 ‘거짓말쟁이’정도가 아닌 훨씬 강도가 높은 도덕적 비난을
함축하고 있다. ‘sorry’라는 단어에는 그 ‘원인 행위의 과실을 인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겠다는 도덕적 의지’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P144~145)
- 우리말의 ‘미안합니다’와 일본말의 ‘스미마셍’은 그 몰덕성과 몰책임성에서 거의 완벽한
동의어다.(P145)
- ‘명예’는 권력의 대명사이고, ‘거짓말’은 방편으로 정당화되고, ‘미안’은 책임 회피의 면죄부로
통용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P146)
- ‘확신범적 liar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가 열렬한 ’반공주의자‘라는 사실과 미국의
비호 하에서 추악한 권력을 유지한 미국의 반식민지적 통치의 현지 총독이었다는 것이다.
(P150)
[쉬운 문학, 아쉬운 정신]
- 레 미레자블의 영장 이야기는 오늘날 정말 심각히 생각해 볼 이야기임.
---> 리 영희 선생이 이야기한 해당 내용을 여기에 싣지 않는 이유는 문학을 사랑하는 진정한
독자라면 관련 작품을 직접 구매해 잃어 보라는 의미로 적지 않았다.
[자유인이고자 한 끊임없는 노력]
- ’독서‘는 한마디로 ’자유인‘을 목표로 하는 모두의 노력이다.
‘자유인’이 되고자 하는 염원에서 출발하는 누구나에게 제한 없는 자기 창조의 노력이다.
조금 어렵게 표현하면 사람은 ‘독서’를 통해서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자기에게 필요한
상황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P157)
- 자유인인란 무지와 몽매와 미신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이다. 고대 인간이 물질적 법칙과
현상의 원리를 깨우치는 긴 과정을 통해서 오늘의 물질적 자유인이 된 과정이다. 무지로
말미암은 미신에서의 자유가 곧 독서의 기능이었다.
독서는 곧 ’과학‘이었고, ’지적 자유인‘의 식량이었다.(P158)
- 진정한 자유란 인간의 현실에 깊고, 넓은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그 행복을 위해서 늘 생각하고
행동하는 삶이다.(P160)
[키스 앤드 굿바이]
- 군대를 제외한 제복은, 비민주적 지배자가 시민 개인에게서 ’개성‘을 몰수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의 하나다. 세계의 모든 독재자나 독재체재가 반드시 청소년뿐 아니라 전 국민의 제복화를
시도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P170)
- 유행은 우상이다. 유행은 국가와 민족을 외세에 예속시킨다.(P182)
- 제복과 유행은 인간의 도덕적, 정신적 위대성에 씌워진 굴레다. 제복과 유행은 하나는 고정적
이고 하나는 변화적이다. 상반된 본성인 것 같지만 인간의 해방, 특히 여성의 진정한 남녀평등
과 여성해방을 저해하는 아름다운 독약이다.(P186)
[무한 경쟁시대와 정보화와 인간]
- 자본주의적 대량소비 문화 양식은 그 본질에서나 결과로서나 반(反) 생명적이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서 이윤 극대화를 운영 원리로 하는 자본주의적 지구 자원의 대량 소비는
인간성의 황폐화를 초래하게 마련이다.(P195)
- 자본주의적 물질문명과 문화양식의 내재적 모순들이 그 모체의 죽음으로까지 중태화하지
않도록, 예방하거나 치료제의 역할을 한 것이 다름 아닌 마르크스 철학과 사상, 그리고 사회
주의라는 ‘마이신’이었던 것이다.(P198)
- 기성 종교들의 위선, 부패, 타락, 상업주의적 기업화가 ’집단적 인간 사랑‘을 병적 형태로
실천하는 사교, 사이비 종교 창궐의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P199)
[’종교와 과학‘ 우견(愚見)]
- 종교가 과학이어서는 안 되는 만큼, 마술이나 미신이어서도 안 될 것이다.(P202)
인간의 일과 신의 일을 무절제하게 혼돈하니까 종교가 마술이 되고 미신이 되어버린다.
- 인간의 정신적 질환에 적용되는 신앙적 치료 효과를 육체적 질병에 무분별하게, 무제한으로
적용하려는 것은 ’신앙심을 타락‘시키는 일이 된다.(P203)
- 나는 현세를 경시하는 종교 일반의 사상을 이해할 수 없다. 이제는 땅(인간, 대지, 현세, 현실,
생명, 물질, 육체, 인간생존) 그 자체를 ‘천당화’하고 ‘극락화’하는 종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P204)
- 종교의 미신적 요소는 과학의 이성적, 합리적 사고로 걸러져야 한다.
반면 과학은 인간을 위한 것이며, 인간은 영원히 ‘과학’의 한계를 넘은 종교적 신앙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이해해야 한다.(P206)
[스핑크스의 코]
- 중세에 이집트를 점령한 기독교인들이 자신들보다 우월한 문명을 창조했던 이교도 우상들의
생명의 원천인 ‘숨(호흡)’을 끊어버릭 위해서 석상들의 코를 모조리 깨버리고 얼굴까지 뭉개
버렸던 것이다.(P212)
[전쟁과 종교에 대한 성찰]
- 정면에 있는 적만이 진정한 ‘적’이 아니다. 우리의 행복을 위한다면서 우리를 수단으로밖에
보지 않는 자가 바로 진짜 적이다.(P217)
[종교와 신앙 앞에서 망설이는 마음]
- 하나님 나라의 요건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느냐 하는 종교적 문제이기에 앞서서 그 사람의
마음이 착하고 도덕적으로 훌륭한가 하는 인간적 문제다.(톨스토이, P221)
- 나는 다만 천당이라는 것이 있건 없건,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예수님의 정의와 사랑의 가르침,
부처님의 행적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가까이 할 수 있을까 하고 애쓸 뿐이다.(P222)
[기술, 전쟁, 인간, 인간성]
- 베트남전 1966년 1년 동안 미국이 퍼부은 폭탄은 총량은 113만 8,000톤으로 한국전쟁 37개월
동안 투하된 미국 폭탄의 전량과 맞먹는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국 군대가 태평양
전쟁 전역에서 투하한 63.6만 톤과 맞먹는다. 또한 미군이 퍼부은 포탄은 50만 톤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과 태평양 전역에서 발사한 각종 포탄의 총량을 초과하였다.(P253)
[광기의 베트남 전쟁을 회고하면서]
- 베트남 전쟁은 한국이 뛰어들 이유가 하나도 없었던 전쟁이다.
그 당시 한국은 미국의 현대판 십자군 전쟁과 같은 광신적 반공주의의 허구 논리의 본질을
간파할 지식과 사상적 능력이 없었다.(P256)
- 결국 한국의 베트남 전 참전은 베트남의 반민족 분자들을 도운 셈이다.(P263)
[마르코스를 위한 변론]
- 문제로 규정된 대상적 존재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문제라고 주장하는 그 자신들의 사회적
도덕적 문제임을 알 수 있다.(미국의 흑인문제, 아랍인들의 폭탄테러, 일본의 조선인 문제 등)
따라서 문제의 진상을 알기 위해서는 어느 쪽에 원인이 있고 책임이 있느냐 하는 진실 규명의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P281)
- 미국의 놀음에 놀아난 인간 쓰레기들이 공유하는 장기(長技)중에서도 예외 없이 공유하는
재주가 바로 ‘반공주의’였다. 필리핀에서 마르코스와 그 일당이 ‘반공주의’라는 신묘한 부적의
힘을 빌려 요술을 부린 것이었다.(P287)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의 교훈]
- 이승만은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으로서, 상해 임시정부나 그 밖에 해외독립운동에서 분파주의
패권주의자로 지탄을 받았던 사람으로 임시정부에서도 총통을 임명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탈
하고 깽판치던 인물이었다.(P299)
* 이 승만 대통령의 색다른 업적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조선일보, 20151023, 이선임 기;자)
- 구한말 한국 조정의 고문으로 일했던 ‘스티븐슨’이 미국으로 돌아가 조선은 독립할 자격이없는
민으로 앞으로 일본의 속국이 되어 보호받아야 한다는 망발을 했다가 격분한 교포 2명으로
부터 저격받아 죽는데 이때 저격한 한인을 위해 변호를 해 달라는 요청을 이승만에게 하지만
그는 ‘나는 기독교 신자로 살인자의 변론을 할 수 없다’고 하여 ‘신흥우’라는 유학생이 하게
된다. 그런 이승만이 해방 후 미군정에 붙어 분단을 조장했던 것이다. 이승만 정권은 어떤
인물을 썼냐하면 전적으로 일제 앞잡이 노릇을 하던 자들이다.(P300)
- 이승만의 정치철학은 자신의 정치적인 기반을 유지하는 것에만 있었다. 곧 이승만 정권은
신생독립국가이니 신생독립국가에서는 과거를 묻지 말고 신생독립국가를 위해서 일하면
된다는 원칙을 내세웠던 것이다.(P301)
- 김구 선생 살해범 안두희는 ‘나는 만주에서 헌병을 했는데, 해방 후에 이 대통령 밑에서
타공(打共)을 하려 했다’고 진술했는데, 용어조차도 타공(打共)으로 ‘공산주의자를 때려잡자’
는 표현으로 그 당시 국가 권력을 장악한 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거나 거스르는 사람,
생각, 이념, 노선에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40여년 만에 밝힌 김구 선생의 암살 주모자
또는 배후 조정자들은 예외 없이 일제 식민통치하에 극악한 친일분자, 민족 반역자였다는
폭로였다.(P303~304)
- 과거에 민족반역자 노릇을 한 자를 자기 나라 대통령으로 모신 나라는 베트남과 한국뿐이다.
(P305)
[파시스트는 페어플레이의 상대가 아니다]
- 과거 남북한 단독 정부 옹호론자는 반통일주의자 또는 분단 영구화론자로 이어졌다.
반민족 행위자는 반민주주의자 또는 독재 찬미론자로 이어져 왔다.(P312)
- 매국노와 친일분자들을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하기 위해서 제정됐던 반민족행위처벌법과
그 법을 집행하기 위해 구성되었던 ‘반민족행위 특별조사위원회’는 한 사람의 친일파,
매국노도 처단하지 못한 채, 거꾸로 매국노들로 구성된 이승만 정권에 의해서 무력으로
해체당하고 말았다.(P316)
- 페어플레이는 좋다. 그러나 그것은 페어플레이 정신을 이해하고 행동할 줄 아는 상대에
대해서만 적용될 미덕이다.(P327)
[광주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
- 유럽의 백인 자본주의 기독교(신구교)사회는 그들 제도의 퇴폐성과 폭력성 그리고 허울 좋은
위선을 은폐하기 위해서 어떤 열등한 인간 집단이 필요했다. 인간적 자질이나 덕성 및 집단적
특성에서 백인과 자본주의 선봉자와 기독교인들이 멸시할 수 있고 혐오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는데 이는 사회구조 내부의 반항적 세력의 적대감을 외부 존재로 분출시키기 위해서
였다. 바로 그 대상이 유대인이었다.(P334)
- 해방 후 한국의 히틀러들은 식민지 일본 제국주의 하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를 일삼았던 가장
비열한 분자들의 직계 후예들이다.(P335)
- 적대관계라는 것은, 증오라는 가장 낮은 동물적 본능으로 갚아지면 더욱 적대관계로 확인되고
고정되고 완결되는 것이다.(P336)
[기타 논제들]
- 일본인에게 배운 기술과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 기술과 지식은 몽매한 대중을
새 나라의 일꾼으로 지도하고 훈련하는 데 필수불가결합니다. 이런 논리는 그들이 새 나라의
상층 권력을 각 분야에서 장악하는 면죄부가 되었다.(P384)
- 과거를 묻지 마세요가 아니라 반드시 과거를 물어야 한다.(P389) 과거의 역사는 현재에 숨
쉬고 있고, 내일의 우리를 규정할 것이다. 내일을 위해 과거를 물어야 한다. 다만 상대방에게만
묻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더 준엄하게 물어야 한다.(P405)
- 친일 행각의 출발점은 자기 민족(집단이나 개인으로서)에 대한 병적인 매도와 모멸이다.
친일문학가들 그들은 예외없이 마조히즘(피학대 음란증) 환자이면서 동시에 사디즘
(가학음란증)환자였다.(P418)
- 한일 관계의 불평등화 과정과 목표는 일본이라는 국가의 의지이기 보다 미국의 의지였다.
케네디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승인과 지지의 중요한 조건으로 조속한 한일회담의 타결을
강요했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P439)
- 노신이 의사의 길을 버리고 문학의 길을 택한 것은 통치자들의 ‘대중몽매정책’에 대항해서
중국 대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것이 자기의 할 일이라고 깨달은 것이다.(P528)
- 중국 사회와 중국인의 문제는 물질적 쇠약함이나 신체적 질병이라기보다는 통치세력과 그
제도에 의해서 길들여진 ‘정신적 무기력’과 ‘지적몽매’라고 진단한 것 같다.(P529)
- 무슨 무슨 주의를 절대화하는 사람들일수록 그 행동은 의심스러운 사람들이다.(P538)
[일본의 의지와 목표]
- 일본인 중에 자기 국가의 과거 범죄 사실을 그대로 시인하는 사람은 좌익과 소수의 진보적
지식인 밖에는 없었다.(P446)
- 일본국의 의지와 목표를 집약적으로 판별하는 가장 좋은 재료는 일본 정부의 ‘국정교과서’
검정기준 사상이다. 이 기저에 깔린 사상은 그들이 과거를 향한 것이 아니라 ‘내일’ 즉, ‘장래’에
대한 기도를 담고 있다는 사실로 첫째 이유는 천황통치제로의 복귀, 둘째 평화헌법의 폐기,
셋째 일본군대의 독자성 부여와 외국에 대한 군사력 행사를 가능하게 하려는 3가지 목적에
있다.(P443~444)
*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실현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내 개인적인 정보) 첫 번째 사항도 노령층,
舊 제국 복고주의자들이 천황통치체제를 재확립함으로써 군사력의 무제한적 행사를 합법화
하는 개헌을 기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 일본인 그들은 종교적으로 우상 숭배심이 강하고 민족 정서적으로는 배타적이어서 그리스도교
의 유일신 신앙이 대중화할 토양이 매우 매마르다. 그들의 의식을 군국주의적 방향으로 개조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럽고 확실한 방법이 ‘세뇌교육’이다.(P449)
- 일본 교과서 분쟁의 주역인 일본사의 필자겸 발행인은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로 이들은
각계의 천황주의, 반공주의의 최선봉에 있는 자들로서 그들은 예외 없이 ’친한파‘이고 우리
정부와 가계의 민간기구 및 개인과 밀접한 친교를 맺고 있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국시와 이념인 반공주의를 지원하기 위해서 역사 왜곡이 정당화된다고
한다.(P450~451)
- 나카소네 수상은 1985년을 ’전후 총결산(속죄는 끝나고 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을 굽어봐서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다는 사상)의 해라고 선언했다.
즉, 과거의 모든 것은 완전히 ‘역사’속에 묻혔거나 영원의 ‘시간’속에 흘러가 버렸다는 것이다.
범죄에 대해 완전히 면책(免責)되었다는 것이다.(P458)
* 독일의 바이츠재커 대통령은 독일국민이 정의와 사랑의 정신으로 앞날을 건설하기 위해서
조상들의 죄과에 대한 책임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역사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에 영원히 사는 것이라고 타이르고, 죄로 가득 찬 과거 위에 사랑과
정의를 꽃피우는 것은 다만 투철한 역사의식과 끊임없는 자기 비판만으로 가능하다고
했다.(P457)
[다시 일본의 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
- 1982년 1월 패전 후에 출생한 사람이 일본 인구의 55%가 되면서 일본인의 과반수는
자신들의 부모들이 저지른 전쟁을 혐오하면서 ‘역사에 대한 무죄’임을 주장하고 있다.(P484)
- 한 사회의 교과서는 그 사회(국가)의 이데올로기의 집약이다.(P464)
- 종전 후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자기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주요 원인은 전후 미국의
일본 점령 정책 탓으로 이 시기 소련과의 냉전, 중국에서의 장개석 정부가 망하고 모택동
공산당 정부가 수립되면서 미국 정부는 일본의 전쟁배상 전면 취소를 선언하게 되었다.
(P468~470)
* 일본이 중국과 한국에 대해 사죄한 방식과 내용의 차이점을 설명한 내용은 읽어두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P486~487)
- 일본의 과거 침략사를 미화하려는 ‘교과서 개악’을 추진하는 개인이나 세력의 성격에 관해서도
우리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들은 패전 전의 군국주의, 제국주의, 국가지상주의의 책임자들
로서 지금은 극우 또는 우파 천황 숭배자들이다.(P490)
[작품에서 얻은 문구들]
- 족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 ‘우상’이란 평안북도 말로 ‘어둑서니’에 해당된다. 일종의 어둑귀신으로서 어두운 밤에
아무것도 없는데 있는 것처럼 잘못 보이는 물체나 헛것
- ‘아장 프로보카퇴르’(불어)란 노동자들이 과격한 행동 또는 불법적 행동을 해서 경찰의 개입과
탄압의 구실을 만들어내게끔 반대파 속에 투입하는 선동 공작원이다.
- 일본의 황당무계한 신 아마데라스 오미카미
- 평안도에서는 동생이나 수하의 친척을 ‘저그니(적은이)’로 부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