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이어령 지음 / 문학사상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추천권유도 8

 

작품을 다 읽은 순간 일천한 지식을 소유한 나라도 저자에 대한 한마디 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 수년 전에 이런 작품을 읽었다면 아마도 우리 민족의 피 속에 흐르고 있는 특질들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아무런 비판없이 숙명처럼 내가 받아 들였을지도 모르겠으나, 어느

정도의 세월, 쉽게 이야기해서 연륜이 많다면 많고 어느 정도 쌓였다면 쌓였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나이가 되다 보니 작품에서 주장하고 있는 저자의 전체적인 내용이 내가 살면서

겪고, 느끼고, 배운 경험치와 사뭇 다른 점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저자의 주장 내지는

이론이 꼭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에 나름의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내가 이렇게 주장하는 대표적인 이유가 바로 우리 고유의 놀이인 '윷놀이 문화'를 갖고

'당파 싸움의 전형'에 빗대어 논리를 전개시키고 있는데 어떤 이유로 그런 의견을 내세우는

지 저자의 그런 관점에 나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었다.

어떤 게임이든 게임을 하다 보면 게임의 흥미를 배가시키기 위해 게임 중간에 게임 룰을

좀 더 자극적으로 변경하던지 별도의 조건을 달아 재미를 배가시키는 여러 변칙적인 부속

룰이 생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파생된 룰 조차도 마치 당파 싸움의 변형된

모습으로 해석하는 판단에 분노에 가까운 슬픔이 크게 들었다.

- 과거 12.12 사태 이후 우리 사회에 급속히 퍼진 '전두환 고도리' 등은 그런 사회를 비아냥

  거리기 위해, 그런 사건을 만든 권력자를 조롱하기 위해 아무 대항할 무기를 갖지 못한

  민초들이 만들어 낸 룰인데 우리의 전통놀이인 '윷놀이'까지 그런 범주에서 해석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다 -

 

더욱 짜증나는 것은 우리 산하에 피어난 자연물(꽃 이름)과 우리 선조들의 일상 생활 속에

힐링을 주었던 인위적(전설과 민요)인 요소에까지 저급한 분석의 논리 - 내가 볼 때는

그렇다 - 로 조명하는 저자의 관점에 나는 저으기 당혹스러움을 느끼다 못해 짜증까지

났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 꽃 이름에 관한 사항이다.

저자께서는 '우리의 슬픔과 그 울음은 대부분이 가난과 굶주림에서 온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형이상학적인 '슬픔'이 아닌 형이하학적 '울음'에서 파생된 것으로 해석하고

있는 점과

 

둘째, 우리에게 있는 '전설''민요'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은 우리 민족이 그만큼 상상력의

억눌림 속에서 살아 왔다는 일방적인 논리이며

셋째, 빨갛고 투명한 포도주에는 프랑스의 명석한 지성이 있다는 논리는 무엇을 근거로

주장하는 것이고, 베르사이유 궁의 분수와 같은 맑은 사치가 있다는 논리는 무슨 궤변인지

모르겠다.

더욱 웃긴 것은 독일의 맥주에는 독일인의 낭만과 거품처럼 일다 꺼져 버리는 관념이

있다는 소리는 또 무슨 소리인가

 

넷째, 한국의 담뱃대(長竹)가 그렇게 길었다는 것은 곧 우리가 게으름과 무기력 그리고

비활동과 비사회적인 환경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어떤 근거로 이야기

하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한국 예술에서 색채가 부재하는 것은 곧 생활의 즐거움이 부재한 증거라는

주장은 또 무엇을 근거로 그리 주장하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해괴한 논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어느 것 하나 동의할 수 없는 궤변에 가까운 잔재주의 말 장난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나라는 산이 평지 보다 많은 그런 나라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또 아주 그 옛날 모든 의식주를 자연채집에 전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던 시절에 먹을 것을

얻으러 심산유곡을 돌아다니다 마주치는 이름 모를 꽃들이, 나물들이 엄청 많았을 것이다.

그렇게 깊은 산 골과 넓은 들판에서 심신이 피로할 때에 또 산천 초목을 휩쓸며 먹을 것을

구하려 이 산 저 산을 헤매던 그 옛날 이름 모를 선조 한 분이 아주 우연히 이름모를 꽃과

마주하였을 것이다.

어떤 꽃 옆에는 꼭 먹을 것이 많았고 또 어떤 꽃들은 험한 지역에서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부주의로 사고가 나서 다치기도 하였을 것이고, 어떤 꽃 옆에만 가면 참지 못하면 어떤

징크스적 현상도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저런 경험치를 대입해 혹은 어려울 때 혹은 즐거운 때에 마주하는 꽃에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해 이름을 붙였을 것이고 그렇게 유래된 이름이 우리에게 전해져 내려 왔을

것이라고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작가께서는 오히려 그 모든 것을 우리 선조들의 행위가 '형이하학적' 이었고 '상상력의

부족'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저자는 우리 선조들이 지어서 대대손손 내려오는 우리 꽃 이름처럼 아름다운 우리말 꽃

이름을 지어 본 적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둑놈의 갈고리', '여우 오줌' 등과 같이 얼마나 사실적인 단어의 선택인가...

나는 이런 단어가 치졸하고 상상력이 부족하다고 몰아 부치는 작가의 생각이 오히려 더

치졸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또한 프랑스의 빨간 포도주가 명성을 상징한다는 논리와 베르사이유의 궁전 분수가

사치스러우면 사치스러운 것이지 '맑은 사치'는 또 무슨 이야기인가 나는 도대체 작가님의

그런 주장이 더욱 웃길 뿐이다.

더욱 가관인 해석은 담뱃대가 긴 것 갖고 이야기하는 작가님의 시선이다.

한국의 담뱃대(長竹)가 긴 이유를 게으름과 무기력 그리고 비활동과 비사회적인 환경

속에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주장에 아연 실소케 하였다.

우리의 사극을 보면 왕 앞의 신하들이 쓰고 있는 사대관모는 청렴과 고결의 상징인 '매미

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것쯤은 누구나 알 것이다.

아마도 저자께서는 그런 모습도 동일한 시각으로 해석을 한다면 '매미는 여름 내내 울기만

하고 일은 하지 않는 그런 곤충으로 우리의 양반을 그대로 형상화 한 것이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역으로 풍류와 멋을 즐겼다고 보면 안 되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미국의 갱스터 영화를 가끔 보면 갱단들이 굵직한 시가를 입에 물고 때로는 질겅

질겅 담배를 씹으며 기관단총을 상대에게 쏘아대서 상대를 순식간에 처치해 버리는 모습은

그들이 담배대가 없어서 성질이 급해서. 경제적인 활동이 넘쳐서 그렇다는 이야기인지

묻고 싶다.

하여간 이런 몇몇 가지 사항은 너무 작가 주관적인 사항으로 우리 민족의 고유 특질을

완전히 깍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자칫 하다간 요새처럼 후손들에게 역사 공부도

학교에서 제대로 시키지 않는 상태에서 이런 작품을 읽게 하였다가 우리 선조들 전부를

무능력하고, 상상력이 부재하며 서로 물어뜯고 난리 치다 섬나라 우수한 민족에게 나라를

빼앗긴 멍청한 조상들이 판을 쳤던 나라라고 자학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그럴땐 어쩔 것인가?

 

우리의 선조들은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창의성이 부족한 사람들이었으니 유럽의 어느

나라와 같이 '천지창조''모나리자', '비너스' 등을 만든 그런 나라 조상을 우리의 진정한

선조로 만들고 그들을 떠받들자고 외치고 나오면 또 어떨 것인지 참으로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비록 본 작품이 꽤 오래 전에 출간이 된 작품집으로 지금 읽어 보면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치부될 수 있는 여러 주장을 담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바이나,

전체적으로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스쳐 지나가듯 놓치고 있는 우리의 민족적 특질에 대한

분석을 예리하게 하고 있는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민족애나 자기 주관이 어설픈 사람들이나 외부 평가에 민감한 사람들이 작품을 접하고

섣부른 이해를 한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민족'이라는 자포자기적 평가를 내릴 수도

있고, 얼마 전 제주도에 가기 위해 일본에서 입국하려다 입국 자체를 거절당한 일본으로

귀화하고 연일 혐한론을 씨부렁 거리는 오 모시깽이 같은 여인에게 이런 작품을 들려주면

우리를 씹어데는 데 아주 좋은 소재를 제공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 작품에서 언급되고 있는 '흰 옷의 유래'에 대하여

조선 민족은 옛날에 태양을 하느님으로 알고 자기네들은 하나님의 자손이라고 말했는데,

태양의 광명을 표시하는 의미로 흰 빛을 신성하게 알아서 흰 옷을 자랑삼아 입다가 나중엔

민족의 풍속을 이루고 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조선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고 태양을 숭배하는 민족은 전부 흰 빛을 신성하게

알고 또 흰 옷 입기를 좋아하는 이를테면 애급과 바빌론의 풍속이 그것이다.

                                                                                     (조선상식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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