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
월터 부르그만 지음, 주승중.소을순 옮김 / 겨자씨 / 2007년 8월
품절


월터 부르그만 Walter Brueggemann
누군가는 월터 부르지만이라고 번역했다. 어쨋든 그는 구약신학에서 정평이 난 신학자이자 설교자이자 목회자이다. 책상에서만 주장하는 탁상공론도 아니며 목회에 빠져 학문의 깊이가 없는 어설픈 목사도 아니다. 그는 신학자이면서 교회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실존적 삶을 살아가는 목회자이다.

시인이 되는 것이 무슨 뜻일까? 그것은 실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부르고 등따순 삶이 아니라 이천년전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세상의 짐을 지고 고독한 십자가의 자기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다. 권력화되고 가식화 된 엉터리 종교를 버리고 참된 자기죽음의 길을 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시인이 되는 것이다.
설교는 형식화되고 체계화된 산문이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미 죽은 언어이다.
설교는 시가 되야 한다. 인간의 한계와 상상을 초월하는 계시의 세계를 체험하는 것은 산문이 아닌 시어이다. 자기안주와 포만감에 찌든 현대교회를 넘어 위험한 생명과 처절한 희망이 약동하는 광야의 언어로 노래해야 만 한다.

목사들이여 다시 외친다.
시인이 되어라
목마른 광야의 시인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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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 이어령 바이블시학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11년 12월
구판절판


이어령, 빵만으로 살 수 없다? 정말이다.

이어령씨가 기독교인이 되면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한국 지성인의 대변가로 알려진 이어령씨의 회심은 많은 이들로 하여금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정리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기독교 안에서도 이어령씨의 회심을 통해 성장에 대한 어설픈 조바심에서 벗이나 좀더 깊이있고 묵상적인 삶으로 선회하도록 도전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완성된 문장이 아니다. '그럼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요구한다. 미완성의 글인 것이다. 그런데 왜 한글성경처럼 '떡'이라고 하지 않고 '빵'이라고 했을까? 자뭇 궁금해진다. 저자는 바로 이것이 이책을 쓰게 된 이유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떡이나 밥이 아닌 빵이어야 하는 이유는 빵이야 말로 우리 삶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즉 2천년의 기나긴 장벽을 넘어 지금 우리의 이야기로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옛날 사람들이야 떡이나 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현대의 젊은이들은 밥보다는 빵이 더욱 친근하다.

이 책은 모두 21한개의 주제로 나눠져있다. 한 장 한 장마다 시적유희가 가득하고 언어의 매력을 품어내고 있다. 신학에서 ㄴ을 빼고나면 시학이 되는 것처럼 한끗의 차이는 작으면서도 크다. 신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신학자를 능가하는 그의 통찰력과 지적 능력은 읽는 이들로 하여금 기독교의 지적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실제로 구약의 2/3가 시로 되어 있다는 것을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시로된 설교는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이것 또한 아이러니다. 그러니 시적 의미를 알지 못하는 성경이해는 앙코없는 찐방처럼 답답하기까지 하다. 이어령씨의 능력을 바로 이곳에서 출발한다.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기록된 분별력있는 시어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풍경화로 그려준다.

포도밭에서 일할 때

포도는 잡초도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에서
자란다고 하더라
그 목마음이 얼마나 타올랐기에
물을 찾는 뿌리가 수십 척 땅속
암반수에 이른다고 하더라
...
그분이 목말라할 때 신 포도주가 되지 않도록
사람들은 새벽에 일언 포도를 딴다 하더라
알알이 소망의 빛이 배인 포도송이를 따다 술을 빚고
말한다고 하더라
...

시인은 자신을 죽이지 않고는 글을 쓸 수 없다.
목사도 자신을 죽이지 않고는 살릴 수 없다.
한국교회가 왜 욕을 먹는가? 자신을 죽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요구하기 때문은 아니겠는가, 자신의 배는 채우면서 남의 배를 채워주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이제 한국교회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 목사도, 교인들도 고통과 광야의 목마름 속에서 실존적 의미들을 찾아야 한다. 자신을 죽이지 않고 어떻게 남을 살린다는 말인가! 예수의 십자가는 자기를 죽이고 남을 살리는 모범이 아니던가, 그 덕에 살아난 죄인들이 남을 죽이고 자기만을 살리니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닌가!
아! 목사들이여 시인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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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20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을 죽여 타인을 살린다'는 말은
성스러운 의미를 담고있다고 느껴집니다.
진정, 인간이 행하는 성스러움으로, 신적 영역의 경지에 도달 할 수있는,
오로지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일 수 있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인간 예수께서 행하셨듯이 말입니다...
 
한글자로 신학하기
구미정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07년 3월
절판


구미정, 저자이다. 이화여대 철학과와 동 대학원을 기독교학과를 졸업했다. 그녀의 별명이 있다면 생태여성주의자라고 해야할까?
그녀는 여성과 자연, 생명과 평화를 화두로 삼고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를 한다. 서론부분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그녀의 신학과 글쓰기는 그녀의 삶에서 찾은 실존적 이유와 목적에서이다. 병으로 말미암아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살아야 했고 버림아닌 버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의심해야 했다. 그것을 잊으려 공부에만 매달렸지만 떨치지는 못했다. 현실의 벽에 두딪혀가며 정통 신앙에 의문을 던졌고, 낡은 신념을 버리고 실존적인 의미들을 찾아 나갔다.

모두 12개의 주제로 이루어진 이 글은 우리 나라가 가지는 독특한 실존적 의미와 주제들을 몸으로 풀어내었다. 정, 통, 줄, 달, 물, 몸, 길, 실, 살, 색, 문, 신, 공.... 이것들은 우리의 삶에 한부분이며 오랜동안 우리가 지켜오고 살아온 부분이자 전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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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낭독도서

 

낭독의 힘을 믿는다. 문제아의 부모가 어쩔 수 없이 택한 적도 있었고 읽지 못하니 읽혀주어야 했던 적도 있었다. 어쨋든 하루 15분 잠들기 전 책 읽어주기 운동을? 시작했다. 읽는 것보다 읽어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아래의 책을 읽어 보아야 한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할머니에게서 옛날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기억이 난다. 상상력을 깨어나게 한 멋진 이야기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뻥도 많이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 때가 좋았다.

 

 

 

 

 

 

 

 

 

 

 

 

큰 아들은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과잉행동가 집중력이 결여된 모습이 역력하다. 어떻게 하면 정상적인 아이로 키울수 있을까 작은 고민들이 잠들기 전 책 읽어주기를 시작하게된 계기다. 그럼 어떤 책을 읽어줄까? 어른들은 대개 자신의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교훈이 될만한 재미없은 책을 읽어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위험하다. 아이들이 싫어하고 그 시간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눈 높이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해야 한다. 필자는 아래와 같은 책을 추천한다.

사과가 쿵은 저학년용이고, 마틸다와 제임스와 슈퍼복숭아는 고학년 용이다. 2학년과 4학년에 다니는 두 아들에게 이 책을 같이 읽어 주고 있다. 마틸다와 수퍼복숭아는 둘다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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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1-14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낭독은 여러가지로 좋은 것입니다~
 
마틸다 (반양장)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34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마틸다의 역습, 어린아이의 눈으로 어른들의 세상을 바라보고 역습?하는 멋진 초딩의 이야기이다. 읽어주는 내내 아이들이 신이났다. 다음장도요! 한장더요! 잠을 잘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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