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마지막주 관심도서


20세기는 우유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유라는 매개물을 통해 현대의 식단과 과학 문명을 생각해 본다. 













열린 종교를 찾아가보는 모험.














나를 찾아가는 여행, 그것이 무엇인지 오늘도 고민한다.

"살아오면서 내가 계획한대로 실현된 적은 별로 없었다. 다만 무수한 선택의 순간이 주어졌고 그 순간마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역사가 기억하는 시리즈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담아두고 싶을까? 기억에 남은 것들만을 골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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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 

사서(필독서)를 통달하고 다른 책을 읽거라.



조선시대의 대학자요 문인이었던 유성룡은 아들에게 세상이 어지럽고 위태로워도 절대 공부(독서)하기를 그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공부에는 순서가 있어서 중요한 책 부터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다음 다른 책으로 넘어가도록 했다고 한다. 유성룡의 표현을 빌어보자.


“사서는 지식의 창고다. 사서를 근본으로 삼지 않으면 다른 책을 비록 읽더라도 도움이 되는 게 없을 것이다. 반드시 사서의 내용을 깊게 생각하고 많이 읽도록 하여라. 다음으로 시와 서를 익히고 문장에 통달해야 한다. 문장을 완전히 내 것으로 하면 글을 짓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과거 공부는 노력에 달려 있다. 힘쓰고 힘쓰거라.”


선비들이 알아야 할 필독서이자 기초서인 사서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을 말한다. 

대학은 임금의 바른 정치를 설명하고, 중용은 하늘의 이치, 충성과 용서, 덕, 인간성 등을 다루고 있다. 

유성룡은 자녀들에게 진정한 공부는 기초를 잘 다지는 공부에 있다고 말하고, 사서를 끊임없이 공부하도록 촉구했다고 한다. 이러한 공부는 유성룡 이후 9대까지 이어지는 동안 계속하여 벼슬에 나가도록 만들었다.


참고 : 조선의 명문가 독서교육법 / 이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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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방법 - 히라노 게이치로의 슬로 리딩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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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 리딩이 책 읽기의 기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독을 원한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수천 페이지를 몇 분 안에 읽을 수 있는 괴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이 아닌가. 눈 운동, 집중 등등 많은 기술을 익히면 일분에 몇 십 페이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속독에 대하여 제동을 거는 사람이 있다. 히라노 게이치로가 그 주인공이다. 히라노 게이치로는 속독을 ‘단순한 기름기’일뿐이라고 말한다. 뇌과학에서도 한꺼번에 많은 정보가 유입이 되면 단기기억에 잠깐 저장되었다가 모두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즉 장기기억으로 넘어가지 않는다. 저자는 이 부분에 대하여 수박 겉핥기식의 속도는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는 슬로 리딩(천천히 읽기)의 예찬가이다. 그는 책은 반드시 슬로 리딩 기법으로 읽어야 된다고 말한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몽테스키외와 포도주 비유를 들어보면 저자의 뜻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약간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본다.

“여기, 좋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 좋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질, 기후, 수목의 질, 시기에 맞는 수확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는 어느 정도의 완만한 압력으로 과즙이 포도송이에 축적되는지, 어느 정도의 인내와 어떠한 행운이 이와 같은 성숙을 촉진시키는지 잘 알고 있다. 작가인 그 역시 마찬가지로 좋은 책을 성숙시키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를 알 고 있을 것이다.(장 스타로뱅스키,[몽테스키외])” 44-45쪽

저자는 슬로 리딩이 필요한 이유는 한 권을 책을 쓰기 위해서 작가들은 수년에서 수십 년의 생각과 고민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런 책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이다. ‘물론 쓰는 데 이십 년이 걸렸다고 해서 꼭 이십 년에 걸쳐 읽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 만에 다 읽어도 상관없다. 그러나 우리는 저자의 이십 년에 대해 겸허한 마음을 갖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45-46쪽)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을 쓰는 데 20년이 걸린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슬로 리딩을 통해 독서를 해야만 진정한 독서를 할 수 있다.

눈 길가는 주장이 있다. 저자는 그것을 ‘창조적 오독’이라고 말한다. 의도적으로 잘못 읽는다는 뜻이 아니라, 독자가 저자의 의도를 넘어 자기만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응용하는 것을 두고 말한다. 단순히 말뜻을 잘못 이해하거나 논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빈곤한 오독’이고, 천천히 읽으면서 저자의 의도 이상의 흥미 있는 내용을 찾아내면 ‘풍요로운 오독’이다.(63쪽) 속독은 빈곤한 오독의 전형이다. 오직 정보를 얻고 책의 주제와 지식만을 찾아내려는 다급함이 빈곤한 오독을 만들어 내고 만다. 그러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것을 넘어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는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슬로 리더의 재미라는 것이다.

슬로 리딩에 있어서 저자는 몇 가지를 주의한다. 소리 내어 읽지 말 것, 조사나 조동사를 주의하여 읽을 것, 사전 찾기를 게을리 하지 말 것 등을 당부한다. 깊게 읽기 위해서이다. 천천히는 곧 깊게 읽는 것을 말하고, 결국 자기의 것으로 완전히 만드는 것을 말한다. 특히 소설을 읽을 때는 속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설은 스토리가 전부가 아니라 대화체나 서술문장 등에 저자의 의도와 의미들이 긴밀하게 연결 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3부에서는 슬로 리딩의 실천편으로 어떻게 슬로 리딩하는가를 보여준다. 실천편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것은 지금까지의 자신의 주장을 책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질문을 던지고, 감정의 단어들에 주의해 보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물음표도 달고, 밑줄과 메모도 과감하게 시도한다. 때로는 색연필로 과감하게 표시도 한다. 책은 절대 깨끗하게 보면 안 된다. 철저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의 흔적들이 충분히 책 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과연 옳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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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법, 종이 책 읽기를 권함


고서점에 갔다가 책이 너무 탐이 난 나머지 통장에 있던 돈을 다 찾아들고 나간 사람, 돈이 없던 유학시절 옥스퍼드 영어사전 한 질이 너무 갖고 싶어 책 한 트럭을 내다판 사람, 인사동 고서점에서 혼자 책과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 한때는 책을 읽기 위해 기차를 탔던 사람, 책 읽는 일보다 더 즐거운 일을 아직 찾아내지 못한 사람. 그는 바로 책 속에서 행복을 구현하는 우리시대 간서치, 김무곤 교수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 마치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을 읽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한 대목이다. 가만있자 한 사람 더 있다. "모든 곳에서 안식을 구했지만 찾지 못했다. 다만 작은 책 한 권 들고 구석자리 앉아 있을 때는 예외였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쓴 중세의 신비주의자인 토마스아 켐피스의 말이다. 책에서 안식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제목이 참 맘에 든다. '종이책 읽기를 권함' 저자는 지독한 독서광이다. 특히 종이책에... 그건 필자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독서에 관련된 자신의 체험담을 거침없이 들려 준다. 그는 강연에서 책 이야기를 하면 청중들이 못알아 먹다가, 텔리비전에서 나온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주는 것에 대해 못내 아쉬워 한다. '책따위'로 치부하는 풍토도 서운해 한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다. 세계의 리더(Reader)들은 리더(Leader)들이라는 것을... 빌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마우쩌뚱 등등 수도 없이 많은 리더들이 리더들이다. 그러니 '책따위'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야말로 오만이 아니건다. 


개인적인 체험이다. 속도법을 배워 진짜 빨리 되었지만 진작 공허함과 아쉬움은 배로 커져 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천천히 읽는 버블 배우러 다녔다. 책도 지식을 쌓이 귀한 수단을 넘어 자시 수양을 위한 것으로 되돌아아 가야할 것을 말한다. 


"저 위 하늘나라에 있다는 천국은 엄청나게 큰 도서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가스통 바슐라르, <몽학의 시학>에서


정말 아름다운 문구다. 나도 그런 천국을 꿈꾸어야 겠다. 


혼자 책 읽는 시간

무엇으로도 위로 받지 못할 때 <혼자 책 읽는 시간>이야 말로 가장 아름답고 좋은 시간다. 책은 도끼이기도 하지만, 양약이기도 하다. 나를 안아주고, 부듬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친구이다. 

"나는 독서를 하나의 규율로 정해두려고 한다. ... 그렇게 몰두하지 않으면 삶의 다른 부분들이 슬금슬금 침범해 들어와 시간을 훔쳐 가버릴 수 있다."(43쪽) 쓰라린 고독과 아픔을 독서를 통해 치유하고 이겨 내었다. 


"말은 살아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시릴 코널리 <조용하지 않은 무덤>에서.. 


언니의 죽음 앞에서.. 상실의 아픔을 부둥켜 안고 이는 여인에게 찾은 그렇게 찾아왔고, 그녀의 도피처가 되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혼자 책 읽는 시간>을 만들어 숨어 들어갔다. 


이 내용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것으로, 소리를 내어 공부하는 것은 새로운 내용을 효율적인 방법으로 배우고 익히게 해 준다네. <중략> 몸을 움직이면 좀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흡수하게 되지. 이것이 토라 공부와 다른 분야 공부의 다른 점일세. 일반 학교의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거나 도서실에서 책에 파묻혀 조용히 공부를 하지. 토라를 공부하는 곳은 큰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온몸과 온힘을 다해 공부하느라고 항상 시끄럽고 격렬한 분위기라네. <중략>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읽기를 통해 내용을 기억하기 때문에 시각에 만족하곤 한다네. 소리를 내어 공부하는 것은 또 다른 감각, 청각이지. 이것은 텔레비전을 볼 때 소리를 들으면서 보는 것과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보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쉽다네. 소리를 내어 공부하는 것은 영혼에 기록을 남기는 것과 같은 일이지




책으로 크는 아이들, 제목이 참 맘에 든다. 부모가 키우는 것이 아니라 책이 아이들을 키운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여행을 떠난다. 책의 이야기가 서린 곳으로 말이다. 예절도 배우고, 저자도 만나고, 주인공도 만난다. 책이 아이들을 키운다. 정말이다.  온 가족이 독서에 흠뻑 빠져 산다. 우리집은 텍도 없는 소리다. 그래도 잠 자기전 들려주는 동화책은 그야말로 꿀맛이란다. 그나마 다행이다. 




상큼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책에는 말이다.  나의 독서 이야기도 잔뜩 써 놓아야 겠다. 결론은 종이책이다. 디지털이 아닌 손으로 느끼고, 코로 맡고, 귀로 듣는 종이책이다. 그래서 종이책이 참 좋다. 이사갈 때의 괴로움만 뺀다면 종이책은 나의 영원한 쾌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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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이야기 - 진귀한 그림, 사진과 함께 보는 상징의 재발견
잭 트레시더 지음, 김병화 옮김 / 도솔 / 2007년 7월
품절


역사와 문화를 관통하는 상징 이야기

상징이나 원형은 인류의 심리에 깊이 빠져있다. 칼융

사람에게 누구나 물러설 수 없는 선이 존재한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그 선이 있어야 한다. 그 선을 넘어가 버리는 사람을 일탈, 반역, 죽음 등으로 정의했다. 얼마 전 신문에서 일본인들이 태극기에 바퀴벌레를 그려 놓은 것을 놓고 한국을 무시했다는 격앙된 소리를 높였다. 태극기는 분명 한국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을 상징한다. 상징인 태극기를 무시하는 것은 곧 한국 무시하는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는 일본에서 시작된 다국적 기업들을 테러하고 있다. 세븐일레븐과 같은 일본 다국적 기업등이 중국인들에의해 무차별적으로 테러 당하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일본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을 상징하는 기업들이다. 세븐일레븐을 공격하여 일본을 배척하겠다는 결의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이 책은 이처럼 역사와 문화 속에 숨겨진 은유와 상징들을 풀어 낸다. 사진과 함께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과연 그럴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해설은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돌은 생명이 없는 물질 속에 존재하는 강력한 물활론적 힘의 상징이다. 고대 문화에서 바위가 가진 일반적인 성징-영속성, 힘, 굳건함-은 외따로 서 있는 입석이나 신성한 돌도끼, 돌칼, 부적 따위의 형태일 때 더 고조되며 신성한 의미를 갖게 된다."(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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