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구판절판


다시 꺼내 들었다. 메모를 보니2010.10.11에 남포문고서 산것으로 나와 있다. 2년 하고도 2개월이 넘은 책이다. 문학고전을 읽고 싶은 욕심에 가이드가 될까 싶어 샀던 책이다. 읽으면서 참 잘 샀다는 생각이 들었던 몇 안되는 책 중의 하나다. 난 그 후로도 이 책을 종종 꺼내들고 읽었다. 오늘도 그런 날중의 한날이다.

2001년 8월에 조선일보에 연재된 것을 다시 모은 것이다. 원고지 10매에 맞추어 한 권의 문학고전을 소개하는 글을 써달라는 주문으로 시작된 것이 3년 동안 지속되다 저자의 개인적 사정으로 중단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글을 보고 독자들이 아, 이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하고 도서관이나 책방으로 뛰어가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불가능한 도전을 받아들이고 '욕심을 버리고 단지 아주 솔직하게 그 책들 하나하나가 내게 소중한 만큼, 독자들에게도 그 소중함을 전하려 노력했다.'고 고백한다.

문학은 브라우닝이 노래한 시처럼 인간의 영혼이 닿을 수 있는 최고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다. 논리로도 철학으로도 정치로도 돈으로도 도덕으로도 그 어떤 무엇으로도 인간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 다만 문학으로만 가능하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인간의 심중은 헤아리기 힘든 곳이다. 그러나 문학은 그 측량하기 힘든 인간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들추어내는가 하면, 닿을 수 없는 이상까지 보여주고 있으니 이 어찌 문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문학의 힘은 다른 어떤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인간의 이야기, 인간의 삶, 인간의 아픔, 인간의 속내를 다루는 인간의 것이다. 사랑를 철학으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 눈물을 과학적인 방법을 서술한다면 고작 염화나트륨이 첨가된 수분정도로 밖에 정의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문학은 각 개인의 경험만큼 실존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또한 서로 다름에도 공감할 수 있는 것이 문학의 힘이다. 사랑의 표현들을 들어보자.

-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완벽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는다.(성경)
- 삶의 무게와 고통에서 자유롭게 해 주는 한마디의 말, 그것은 사랑이다.(소포클레스)
- 사랑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을 본다.(세익스피어)
- 사람 없는 삶,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은 그림자 쇼에 불과하다.(괴테)
-사랑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생텍쥐페리)
더할까?.... 아직도 사랑에 대한 문학적 정의는 끝나지 않았다. 나의 정의 너의 정의 우리의 정의, 한국의 정의 일본의 정의, 백인의 정의 등등 사랑을 정의할 실존적 삶을 살아가는 개체들은 많다. 문학은 다르고 다른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경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한결같이 공감이 가능한 개체들이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냐구요?
방법을 꼽아 볼께요.
내 영혼이 닳을 수 있는
깊이 만큼,
넓이 만큼,
그 높이 만큼
사랑합니다.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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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이렇게 하라!

-사실적인 글쓰기를 하라.-


이번참에 작문 훈련을 위해서 몇 권의 책을 구입할 작정입니다. 


1. 송준호의 <좋은 문장 나쁜 문장>

2. 오병곤, 홍승환의 <내 인생의 첫 책쓰기>

3. 이오덕의 

  1)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2)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


순전히 글쓰기를 위해 구입할 책들이다. 내가 이오덕 선생님께 빠진 이유는 솔직하고 담백한 교육 이론 때문이다. 즉 문학적이고 현학적인 글쓰기가 아닌 사실 그 자체에 무게 중심을 두고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에 나오는 이오덕 선생님의 주장을 들어보자.

 

우리나라 아이들의 글을 신문, 잡지에서 보면 하나같이 개성이 없고 생활이 없다. 아이들이 글이 어른들의 글이 어른들의 천박한 문장관에 의해 모조리 난도질당하고 뜯어고쳐져서 죽은 글이 되어 있다. 우선 쓸거리부터 무엇을 쓰라고 강요받고 있다. 글쓰기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각자가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일인데 그것이 안 되고 있다.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이오덕 선생님은 유난히 사실적인 글쓰기를 강조한다. 이유는 글은 글쓴이를 나태내기 때문이란다. 성인 글쓰기처럼 가상과 꾸며낸 허구의 글쓰기를 하면 거짓된 생각이 아이들을 망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아들의 건강을 진단하는데 글쓰기 작품에서 아동의 생활과 성격과 건강을 진단하는 것은 더욱 잘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 어린이들의 삶의 세계에서는 어른들의 머리로 생각할 수 없는 진실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 ... 어린들은 자기의 경험을 정직하게 쓰는데서 자라나고 또 그것이 그대로 놀라운 글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어른들이 따르지 못하는 자랑이다. ... 


이오덕 선생님이 계속해서 주장하는 사실적인 글쓰기의 이유는 그곳에 아이들의 진실과 진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오덕 선생님은 아이들의 글쓰기 지도를 하면서 글쓰기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지적한다. 

















이오덕 선생님이 계속해서 주장하는 사실적인 글쓰기의 이유는 그곳에 아이들의 진실과 진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오덕 선생님은 아이들의 글쓰기 지도를 하면서 글쓰기 이전의 삶에 대해서는 지적한다. 곧 ‘삶이 그대로 글이 되고 글이 곧 삶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그것을 ‘참된 글을 쓸 수 있는 바탕을 닦아 나가는 생활 가꾸기와 글을 쓸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생활을 가꾸어야 좋은 글이 그에 걸맞게 나온다는 지론이다. “맨 처음 몸으로 보여주고, 다음에 말로써 들려주고, 그다음에 글을 쓰게 하고 다시 몸으로 행하는-이것이 글쓰기 교육의 차례인 것이다.”(96)


공자도 논어에서 공부와 삶이 일치 되어야 하고, 심지어 삶을 가꾸고 나서 시간이 나면 공부를 하라고 조언한다. 성공지향적인 현대의 피상적인 공부에 일침을 가하는 말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하지 않았던가! 내 자신을 먼저 가꾸지 않는 공부는 사상누각에 불과한 것이다. 동일한 음식을 먹어도 뱀이 먹으면 독을 만들어내지만, 소는 젖을 만들어 낸다. 글쓰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진심과 소박함이 결여된 글쓰기는 결국 누군가를 해하고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추구하는 수단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글쓰기에도 철학이 필요하고, 삶이 뒷바침 되어야 한다는 점! 이것이 고인이된 이오덕 선생님의 진심어린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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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꼭 사고 싶은 책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의 책은 무조건 사야 한다. 읽든 안 읽든 집에 사 두어야 한다. 두고 두고 읽어야 할 책이니 말이다. 












하이덱거

실존주의 철학자, 그리고 언어철학으로 넘어가는 기이한 철학자

그의 이름은 하이덱거이다. 

칭찬과 비판을 한 몸에 받았던 그의 책 <존재와 시간> <사유의 경험으로부터>











김훈.... 작년 가을부터 읽기 시작한 분이다. 먼저 흑산을 읽었고, 그 다음 남한 산성을 읽었다. 아직 몇 권의 책을 읽지 못했다. 그의 놀라운 필체와 흡입력에 빨려 들었다. 그리고 그의 책은 한 권 두 권씩 읽기 시작했다. 올 해는 이 분의 책을 모두 읽을 참이다. 
















박지원!

작년에는 다산 정약용을 배웠다. 아직 멀고먼 길이지만, 정약용은 잠깐 뒤로하고 연암 박지원에 손을 대볼 생각이다. 조선말 어지러운 혼란의 시기에 백성을 사랑하고 실리를 추구하려 했던 북학파 박지원, 그를 배우고 싶다.


















2013년이 시작된지 벌써 5일 지났는데도 아직 한 권도 떼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 이런일이...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밀고 나가자. 반드시 열매는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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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의 변질 - 초대교회의 회심을 돌아보다
알렌 크라이더 지음, 박삼종 외 옮김 / 대장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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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랬다. 진심이다.
난 그저 기존의 기독교를 비판하는 책쯤으로 오해하고 있어서 선뜻 책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선물로 받은 책을 읽지 않고 있을수도 없어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랬다.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이렇게 좋은 책을 몰라본 것이...

회심의 변질! 그렇다. 변질이다. 저자인 알렌 크라이더는 초대교회의 회심과 그 이후의 회심의 변화를 추적한다. 특히 기독교가 공인된 콘스탄틴 이후 기독교는 회심의 변질, 더 직설적으로 부패가 일어난다. 삶이 뒤따르지 않는 심리적 회심이 진정한 회심처럼 왜곡된다. 삶이 뒤따르지 않으면서 눈물 한 방울 흘리면 그것을 회심의 표징으로 받아 들이고 교회는 그를 공동체 안으로 수용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여전히 변화 없고 끊임없는 죄의 반복이었다.
교회는 교회로서의 명예와 자존심을 성장과 권력에 팔아 버렸다. 세상과 타협하기 시작한 교회는 진정한 회심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회심의 진정성을 까다롭게 물었던 초대교회는 큰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영향력을 위해 회심을 까다로움을 포기한 중세 이후의 교회는 오히려 세상속에서 영향력을 상실하고 만다. 아이러니다.

저자는 진정한 회심은 삶이 수반되고 현실적 나눔이 열매로 드러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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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Jesus 2013-01-08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평 감사합니다.

seungjong 2013-11-23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살짝 퍼 갑니다.
 

베르나르의 상상력 사전


베르나르... 참 특이한 분이다. 내가 처음 이분을 접한 때는 약6년 전쯤인가 <상상력 사전>의 이전판이었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란 책이었다. 기억나는 부분은 개미가 어떤 벌레의 의해 감염되어 말라죽는 내용이었다. 깜짝 놀랐다. 이런 것도 있나 싶은 생각에 당장 읽기 시작했던 책이다. 가끔은 내가아는 사실과 다른 약간은 당혹스럽기는 했지만 많은 부분에서 참신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풍부하게 제공하고 있었다. 그래서 좋았다. 재미있고 신기하고 해서...


012에 나오는 '사랑의 네 가지 방식'

첫 단계: 나는 사랑받고 싶다.

둘째 단계: 나는 사랑할 수 있다.

셋째 단계: 나는 나를 사랑한다.

넷째 단계: 보편적인 사랑


정말 맞는 말이다. 처음에는 사랑 받고, 그 다음에는 나를 사랑하고, 그 다음은 타인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의 역학이다. 사랑받지 못하면 절대 사랑할 수 없다. 보울비의 애착이론에서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열역학 제1법칙이 아니라 사랑의 제1법칙이다. 사랑받지 못하면 사랑할 수 없다. 이거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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