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순간, 그리고 예수 만남 3부작
김형국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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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발견이다. 제목만 볼 때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했다. 한 장 한 장 읽어가며 책의 능력을 체득하게 시작한다. 


모두 여섯 명의 성경 속 인물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고통과 슬픔의 심연 가운데 있는 당신 나인성 과부,

영원한 생수를 찾아 헤매는 당신 사마리아 여인,

허망한 성공의 사닥다리 앞에 있는 당신 삭개오,

진리 앞에 텅 빈 내면을 비춰보는 당신 니고데모,

지칠 대로 지친 일상 속의 당신 베드로,

그리고 지금 바로 당신.

 

 

여섯이지만 한 명이고, 한 명이지만 수억의 사람들의 이야기다. 만남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지만 그 만남은 현실을 살아가는 '삶의 현장'(10)이다. 이 책 속의 화자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김형국 목사와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김형국 목사는 이지적이고 논리적인 확신의 얼굴이었다면, 이 책은 서사적이고 상처 입은 치유자의 고뇌와 아픔의 얼굴이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에서 칙칙한 이야기는 하지 말고 희망차고 즐거운 이야기만 하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자지기가 보고 싶은 대로 그저 긍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오히려 세상을 직시하고 직면하는 데서 출발합니다."(22)

 

 

현대 기독교는 긍정주의에 점령당했다. 설교 가운데 노동자나 고통, 슬픔과 눈물 이야기는 그림 속의 이야기지 진짜 삶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예화 속에 화두일 뿐이다. 그러나 저자의 말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직시'하고 '직면'하는 것이다. 예수는 울고 있는 나성의 과부에게 다가가신다. 고통 속으로, 아픔과 상실의 고통 속으로 주님은 들어가신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예수는 또 다른 여인에게 들어가신다. 아무도 오지 않는 정오의 샘물에서 홀로 물을 긷는 사마리아의 여인이다. 그 여인은 남편이 많다. 아니 없다. 성에 차지 않으면 다른 남자로 바꾼다. 그러나 여전히 외롭다. 사랑은 참으로 기이해서 사랑하면 할수록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사랑이 다가온다. 굳이 여기서 '최소 관심의 법칙'이란 어려운 단어나 '애착 이론'을 끌고 와 설명할 이유도 없다. 사람은 늘 외롭다. 그래서 사랑해줄 사람을 찾는다. 사랑해줄 사람을 찾으면 그는 사랑하지 못한다. 여인은 목마르다.

 

 

저자는 예수의 색다른 다가옴에 주목한다. 그것은 '편견을 넘어 섬세하게 다가'(66) 오시는 예수다. 편견, 그것은 참 무섭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으로 무장한 독이 편견이다. 그러나 늘 블랙스완은 있는 법이다. 주님은 편견 없이 역사와 경험을 초월하여 여인에게 다가가셨다. 삭개오에게 예수는 '위험을 무릅쓰고'(111) 찾아갑니다. 이렇게 보면 예수는 그 사람에 맞게 찾아가시고, 말씀하시고, 대안을 주신다. 이 문장이 심쿵하다.

 

 

"예수는 생사가 갈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놀랍게도 여리고에서 한 사람을 찾아갑니다."(112)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김형국 목사의 얼굴을 보았다. 아니 그의 음성을 들었다. 아름답고 울림이 큰 묵상이다. 만남, 이것은 기적이고 생명이다. 찾아가시는 하나님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중요한 신학적 주제다. 범죄 한 인간들을 징벌하시는 하나님,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지만 가슴 치며 아파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범죄 한 인류와 함께 추방 당하신다. 같이 방황하시고, 배회하시며, 굶주리고 아파하신다. 인간은 에덴동산 밖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곳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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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위독하다 - 삶이 슬프다 사람이 아프다
김겸섭 지음 / 토기장이(토기장이주니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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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는 자신을 직면할 때 시작된다여행을 떠나서 여행지만 보는 사람은 진정한 여행을 하지 못한 사람이다자신을 내밀하게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 참 여행자다치유는 자신을 들여다볼 때 가능하다김겸섭 목사의 <사랑이 위독하다>는 가짜와 탐욕에 함몰되어 자신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의 치유서다. 2014년 <천사는 오후 3시에 커피를 마신다>를 접했을 때 상당히 난감했다산문도 아니고시도 아니었다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심령을 후벼 파는 문장들이 읽는 내내 감동과 여운을 남긴다이번 책은 이전보다 더욱 예리하고 날카로워졌다문장들도 시에 가까워졌다덜어내고 추려내고 적출하여 문장을 날카롭게 벼리고 벼리었다.


크게 두 장으로 구분했다. PART1에서는 사랑은 그 사람의 곁이 되어 주는 것이란 제목으로 인격과 인간관계를 다룬다. PART2에서는 어떤 눈물은 때로 빛보다 눈부시다.‘라는 제목으로 삶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를 풀어낸다저자는 이번 책에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집요하게 파고 들어간다그는 첫 장 인격은 할인되지 않는다에서 가격에 종속되어 인간을 상품으로 판단하는 왜곡된 가치관을 고발한다상품화된 인간은 철저하게 가격으로 가늠된다작금에 일어나는 대부분의 경제구조와 공부심지어 사랑과 우정까지 가격이 책정되어 있다저자는 고대와 현대를 막론하고 인간의 흔적을 찾아 떠난다그곳에서 가격으로 인해 무너져 내린 이야기를 꿰매고 기워 한 벌의 완성된 옷으로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인간은 낙심이 발주(發注하고 실패(失敗)의 소인이 찍한 삶을 살아간다인간 안에는 분노와 좌절우울과 절망이 깊이 스며있다. 3장에서 트롤의 거울은 인간이 누구인가를 보여준다트롤의 거울은 안데르센 동화 <눈의 여왕>에 나오는 거울이다이 거울은 인간의 단점만을 보여준다인간의 악함과 추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후 이 세상,

선을 악으로 보는 왜곡,

귀한 것을 하찮게 여기는 혐오,

진실을 거짓으로 음해하는 이간질,

이런 추한 것들로

가득 찬 판도라의 상자가 되어 버렸다.”


인문학적 통찰로 가득한 저자의 사색의 길은 인간이란 기나긴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다왜곡되고뒤틀리고우울하고분노하고 있는 현재의 인간들의 근원지를 찾아 떠난다흡사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프로도와 같다저자는 끈덕지게 묻고 따진다도대체 인간들은 왜 이렇게 변질되고 왜곡되었는가세상은 왜 이리 악한가트롤의 거울은 카뮈의 작품 <전락속의 끌라망스에게서 발췌한다그는 멈추지 않는다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인 하인츠 헤거의 <핑크 트라이앵글>에서 다시 트롤의 거울을 발견한다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서도 트롤의 거울을 발견한다그곳에서 발견한 트롤의 거울은 편견이다.


편견은 그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그대를 사랑하지 못하게 한다.”


트롤의 거울은 불안’(83) ‘생각이 병든 사람’(91), ‘우월감’(93)이다사랑이 위독하다삶이 아프다저자는 계속해서 문제의 기저(基底)를 파헤친다. 1부가 인간의 문제에 천착(穿鑿했다면, 2부는 그 대안을 찾아 나선다사람마다 삶의 정의가 다를 것이다자신의 정의에 따라 치유 대책을 세울 것이다그러나 대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그것은 진정한 치유는 사랑 밖에 없다는 것이다김연수 작가의 말대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사랑은 사람의 일이다.’(180)


여행이 자기를 버림으로 자기를 되찾는 것이라며사랑은 치열한 노동을 통한 삶의 경작이다고대 이집트인들은 청혼할 때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그대와 함께 오래집을 짓고 싶습니다.”(175)


관계의 회복은 먼저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한다그러나 그 이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하나님은 자신의 목숨을 다해 사랑하라 하셨고이웃은 내 몸처럼 사랑하라 하셨다사랑의 주체는 여행이 나를 찾는 것이듯사랑은 찾은 나를 발산하는 작업이다자신 안에 발견한 완고함의 돌들을 치우고왜곡과 편견의 쓴 뿌리들을 제거해야 한다평생을 말이다사랑은 일상일 수밖에 없고일상이어야 한다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사랑 그것은,

피와 눈물이 있는 노동이어야 한다.

그래야 균열이 없는 견고를 산다.”(176)


저자의 언어는 단아(端雅하다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문장으로 마음을 장악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스토리가 있고논리가 있고성찰이 있다또한 사유의 여백을 둠으로 강요하지 않는다어쩌면 저자의 주장들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들이다인문학의 장점이 바로 그곳에 있다어느 광고처럼 '십 년을 입어도 새 옷인 듯새 옷을 입어도 십 년을 입은 듯'하다무리해서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욕심내어 읽고 다음 날 또 읽어도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다다만 사색할 시간과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는 있어야 한다읽다가 울컥하는 마음에 한동안 하늘을 바라볼 수도 있다문학의 지층 속에서 치유의 보석들을 캐내어 세공해 두었다그저 읽는 것만으로 충분한 위로가 된다삶에 지치고사랑에 아픈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아직 아픈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은 그 어떤 치료제보다 강한 쉼가 묘약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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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 동네에 살던 한 집이 여수로 이사를 갔다. 당시만 해도 여수는 머나먼 곳이다. 다시 여수로 어떤 동네 아짐을 만난 건 그로부터 약 8년 정도가 흐른 뒤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분은 나를 별로 반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은 내가 아직 어려 큰 마음이 없었던 같다. 그렇게 난 처음 여수란 단어를 알게 되었고, 처음 여수란 곳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러다 다시 20년이 흐른뒤,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여수의 쓰리고 아픈 이야기들을 알게 된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여수의 아픔은 '여수 밤바다'로 묻히기엔 너무나 아프고 슬픈 역사다. 한강의 <여수의 사랑>이 특별판으로 제작되어 출간 되고 있다고 한다. 사야할지 말아야할지 고민이다. 아파서 읽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여수는 두 얼굴이다. 하나는 아픈 얼굴. 다른 얼굴은 낭만의 공간. 나에게 여수는 낭만이 아닌 아픈 얼굴로 다가온다. 여수에 아는 지인에 있어 옛 여수 이야기를 꺼내 말문을 닫는다. 그들에게 여수는 현재로만 기억되고 싶은 것 같다. 과거의 아픈 얼굴을 꺼내는 것은 싫은 가보다. 하지만, 아픔이 사라진 여수, 낭만이 전부인 여수는 과연 여수일까? 그냥 관광지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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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이렇게 쓸 수 있다는 놀라움


기실, 서평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평 외 다른 단어는 사용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냥 서평이라고 쓴다. 서평이란 단어는 비평이란 의미가 강한 탓에 감상문이나 독후감은 왠지 남루한 느낌으로 만들어 버린다. 비평적 서평은 좋은 글쓰기는 아니다. 다만 책 자체를 다루기 때문에 그런 글도 필요할 뿐이다. 좀 더 좋은 글쓰기는 독후'감'이다. 아니면 자신만의 시각으로 다시 풀어낸 새로운 서'평'이든지. 


다락방님의 책 두 권이 도착해 열심히 읽고 있다. 첫 책의 제목은 <독서공감, 사람을 읽다>고, 이번 책은 <잘 지내나요>인데 표지에 '나, 너, 우리를 향한 이해와 공감의 책읽기'라고 소개한다. 두 권 모무 '공감'을 키워드 잡은 듯 하다. 읽어가는 동안 내내 드는 생각이 '이 글이 알라딘 서재'에서 읽었던그글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화면으로 보는 글과 종이의 글을 읽는 것은 다른 글이다. 그러니까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결국 책은 종이로  읽어야 함이 마땅하다. 


2011년에 김무곤이란 분이 <종이책 읽기를 권함>이란 책을 썼다. 당시 이 책을 읽을 땐 고리타분함과 시대를 분별못한 노인의 아집쯤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6년이 흘러 2017년이 되었다. 난 이 책을 보며, 그분의 의도를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제 내가 그 나이가 된듯하여 약간 서글픈 느낌도 있지만, 종이 책이 좋은 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다. 오늘 종이책과 디지털 화면의 이질성을 체득한다. 이제 그 가치가 뭔지를 조금 알 것 같다.







그러니까... 이유경(다락방)의 서평은 서평이 아닌 것이다. 한 참을 영화 이야기하다 마지막 부분에서 책 이야기를 간략하게 꺼내고 다시 닫아 버린다. 이 분의 강점은 책과 전혀 상관 없는 영화 이야기 속에서 책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글에서는 남자로서는 이해할 수 여성의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난 여자의 마음에 둔하다. 그래서 잔소리를 많이 듣는 편이다. 변명처럼 들리지만 과학적으로 남성의 뇌는 공감능력이 여성에 비해 떨어진다고 한다.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무엇이 있는데(기억이 안남) 그것이 여자는 굵고 튼튼한데 남자는 작고 약하다. 그러다보니 남자는 좌뇌 우뇌가 따로 놀고, 여자의 뇌는 같이 가는 경우가 많다. 남자의 용기와 독립성은 공감 능력의 결여 때문이라는 연구 논문도 있다. 여자가 걱정이 많고 생각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고. 결국 균형이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여성의 눈으로 책을 읽어가는 다락방님의 글은 전혀 다른 세상을 접하는 느낌이다. 전에 읽었던 남미경의 <사랑의 역사>와 조금 닮은 듯 안 닮은 듯하다. 

















어제 장흥 문화당에 가서 이색적인 서평 모음집을 샀다. 고민적 외 다수가 적은 <다시 동화를 읽는다면>이다. 이 책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비평적 서평이 아니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를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일종의 회상적 감상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굳이 서평의 범주에 넣으려는 이유는 '다시 읽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은 기존의 서평보다 한 수 위가 분명하다. 이전의 동화 책과 어른이 된 후의 축소가 왜곡되지 않은 원본의 동화를 비교하게 '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는 독자들은 읽는 내내 긴장이 아닌 추억 속에 빠져들어간다. 어릴 적 추억과 현재의 삶이 버무려져 맛깔스럽기 때문이다. 핵심은 비평인데, 포장은 추억이다. <플란더스의 개>를 소개한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인 이정모의 이야기를 잠깐 들어보자.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를 제외한 온 식구가 서울에 올라와서 잠실의 아파트에서 '문화생활'을 시작했다. 우리 엄마가 생막하기에 '신문 구독'과 '우유 배달'은 문화 생활의 정수였다."(41쪽)


문득, 우유하면 플란더스의 개도 생각 나겠지만 나에게도 우유에 대한 추억이 있다. 초딩, 그리니까 국민학교 6학년 때였다. 갑자기 우유 배급이 되면서 한 달에 얼마를 내면 우유를 매일 준다는 것이었다. 내 기억에 2000원 정도 였던 것 같다. 일년 용돈이 200원이었던 우리 집에 한달 2000원은 거금이었다. 결국 62명의 학생 중 4명 정도의 아이들은 먹지 못했는데 나도 네 명 중의 한 명이었다. 어쨌든 우유와 함께 '플란더스의 개'가 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전의 해태우유와 성인이 되어 읽은 동화 책은 다른 책이었다. 비루남고 남루한 네루-넬루는 결국 굶어 죽는다. <플란더스의 개>는 사회 구조에 대한 독설이 가득한 책이다. 다만 슬픈 소년의 죽음이란 테마로 아름답게 그려낸 것이다. 


"그런데 소년의 가난이 장난이 아니다. 만화에서 보던 네로 가족은 아침마다 우유만 배달하면 포근한 집에서 살 수 있었지만, 동화책에 나오는 넬로 가족은 하름하기 그지없는 손바닥만 한 흙집에 살았으며, 끼닛거리가 없는 날이 허다했다. 양배추 몇 잎에도 기뻐할 정도였다."(47쪽)


프란츠 카프카의 말처럼, 진정한 읽기는 '도끼'다. 몽상과 환각 상태의 정신을 가차 없이 깨 버린다. 또한 전혀 다른 관점에서의 책읽기는 독서의 풍성함을 제공한다. 더워지고 있다. 여름이 오기 전에 더 많이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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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


흰나비를 보았다. 급하게 카메라를 그쪽으로 향했지만 조리개를 과하게 좁힌 상태라 원하는 사진은 얻지 못했다. 한 장의 사진은 시간을 멈추게 한다. 영원이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사진은 충분히 변하지 않는 풍경을 통해 위로를 준다. 며칠만에 나비들이 많이 보인다. 봄이 가고 있는 것이다. 나비가 보이려면 번데기가 변태하여 나비가 되는 시간이 필요한데, 따뜻한 날이 아니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비를 봄으로 여름이 멀지 않았음을 눈치챈다. 나는 봄을 읽고 있다.



다락방님이 과한 서문을 끝내고 본론 같은 결론을 언급한다. 그것은 자신의 새 책이 나왔다는 것. 글로만 읽다 책을 쓴 저자인줄 몰랐다. 글이 하도 간질거려 종종 읽고 댓글을 단다. 책으로 나았다니 당장 주문했다. 그것도 첫번 책까지 두 권 셋트로 말이다. 이제 낱권 말고 셋트로 파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난 또 누군가를 읽게 될 것이다.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이고, 한 사람은 한 권의 책이다. 그러니 책이 사람이고, 사람이 책인 것이다. 사뭇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표지의 저 여성분은 대체 누굴까? 저자 자신이 아니라고 우기는데... 거 참! 난 엉뚱한 곳에 관심이 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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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04-14 0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호~ 다락방님의 두번째 책이 나왔다니 보러 가야겠네요.
빛고을에도 나비가 부쩍 눈에 띄어요~^^

낭만인생 2017-04-20 10: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봄이 좋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