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피나와 조각난 심장 세라피나 시리즈 3
로버트 비티 지음, 김지연 옮김 / 아르볼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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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판타지 소설 세라피나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 세라피나와 조각난 심장. -이라고 쓰고 싶었는데 책이 끝나고 쓰여있는 작가의 글에서 세라피나 시리즈 4권을 준비하고 있다는 글을 읽었다. 마지막이 맞기는 한데 마지막이 아닌 마지막 완결 편.

한국에는 2018년 10월, 세라피나와 검은 망토가 출간되고 2018년 12월에 2권 세라피나와 뒤틀린 지팡이 출간, 2019년 2월에 3권 세라피나와 조각난 심장이 출간되었으니 아마 1권을 냈을 때는 작가인 로버트 비티도 4권 계획은 없었던 듯하다.

세라피나와 조각난 심장 책 표지와 띠지에는 전 세계의 찬사를 받은 최고의 미스터리 판타지라고 쓰여 있고, 표지에는 세라피나로 추정되는 여성의 그림자와 3권의 내용을 암시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책을 읽기 전에 그림을 보면 '아, 이게 뭔가?' 싶다가 책을 다 읽고 그림을 보면 '아, 이게 그거구나.' 싶을 거다.

여기서부터는 스포 있다. 2권을 읽지 않은 사람은 보지 말 것!

※ 주의 세라피나와 조각난 심장을 읽기 전, 꼭 세라피나와 뒤틀린 지팡이를 읽고 오시오

처음부터 세라피나는 세라피나가 아니고 매우 궁지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2권에 나오는 적. 로웨나가 살아있다. 웨이사가 로웨나를 살려준다.

사실, 서로가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소통은 힘들고 믿지도 못하겠고.

이런 상황에서 로웨나가 웨이사에게 질문을 한다. "날 왜 구해 준 거야?"

웨이사의 대답인 "길을 잃고 싶지 않았어."라는 상당히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살면서 어떤 목적이 뚜렷할 때가 있다. 하지만 목적만 보고 가다가 길을 잃을 때도 있다. 웨이사는 자신이 가는 목적지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지만,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길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같았다. 살면서 '길을 잃지 않고 가는 법'이 상실된 시대이니까.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 변하지 않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하나가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일 것이다. 우리 영혼은 어릴 때나 어른이 되어서나, 집에 있으나 세상 밖으로 나갈 때나 항상 우리 안에 머물러 있다. 세월이 지나 우리 몸이 변하고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변하더라고 말이다. - p432

조각난 심장에서 죽음에 가까워졌다가 다시 깨어났을 때, 본질적인 내면에 더 가까워진다고 하였다. 내면 깊은 곳을 안다는 이야기일까?

중요한 점은 모든 것이 변하더라도 태어났을 때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부분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천성은.

세라피나의 마지막 이야기지만 마지막이 아닌 이야기. 세라피나와 조각난 심장.

나의 길을 잃지 말고 본연의 모습을 찾는 마지막은 참 좋았다. 우리 모두 길을 잃지 말고 본연으로 돌아가자.

작가의 말을 읽다가 빌트모어 대저택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라고 적혀있어 깜짝 놀라 찾아보니 진짜 있는 곳이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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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나와 뒤틀린 지팡이 세라피나 시리즈 2
로버트 비티 지음, 김지연 옮김 / 아르볼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세라피나와 검은 망토에 이은 2탄 세라피나와 뒤틀린 지팡이이다.

2탄을 읽어야 3탄에 있는 반전을 알 수 있데서 2탄을 읽었다.

1탄의 적, 검은 망토에 이어 2탄의 적은 뒤틀린 지팡이다.

세라피나는 1탄에서 엄마를 찾고 2탄에서는 능력을 찾았다. 3탄에서는 키워준 아빠가 아닌 친아빠를 찾으면 되는건가?

1탄과 2탄의 적이었던 검은 망토와 뒤틀린 지팡이를 조종했던 진짜 적이 3탄에서 나올 모양이다.

1탄의 적은 그냥 나쁜 놈이었지만 2탄의 적은 나쁘지만 불쌍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자세한 리뷰는 3탄까지 다 보고 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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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으로 떠나기 전,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보는 한국 영화이다.

윤동주를 그린 영화 동주는 2016년에 박열의 삶을 그린 영화는 2017년에 개봉한 것으로 따지면 유관순의 삶은 너무나도 늦게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스페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기 전, 영화가 개봉해서 다행이다.

영화를 보면서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주 울고 싶었다.

유관순의 이야기였지만 유관순과 같은 방을 쓰던 사람의 이야기가 더 사무쳤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던 사람이었을 뿐인데, 자식이 죽어 일본군에게 자식을 살려내라고 했다고 아니면 아는 언니의 발이 일본군이 휘두른 칼에 잘려나가는 것을 보고 화가 나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잡혀들어왔다는 숨소리가 더욱 슬펐다.

영화를 보면서 문득문득 머릿속에 전장연이 생각났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는 매일 그렇게 만세운동을 하는 것처럼 한강다리 위를 기어다니고 도로를 막고 시청사를 점거했다. 그저 살겠다고, 살아보겠다고 만세를 외쳤던 1919년의 3.1운동처럼 전장연에 있는 많은 사람이 그저 살아보겠다고 아직도 거리에서 몸을 던져 기어다닌다.

유관순은 같은 방을 함께 쓰는 사람 앞에서 울며 이야기했다. 자신에게는 이 운동이 그저 관념일 뿐이고 의무였을 뿐이라고.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생각은 모두 달랐다. 어떤 사람에게는 독립이라는 것이 그저 관념일 뿐이었지만, 어떤 사람은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만세운동을 한 것이었다.

사실. 이런 글을 쓰면 욕을 먹을 수도 있는데 조선인이지만 일본이름으로 자신을 바꾸고 유관순 고문에 동참했던 니시다의 슬픔어린 모습을 동정한다. 그가 출근길에 같이 일을 하는 일본인을 만났을 때, 인사를 건넸다. '오하이오'.

니시다에게 돌아온 것은 인사가 아니라 냉소였다. '저게 뭐야. 어린 애도 아니고.'

니시다가 어떤 사람을 고문한 것은 잘못된 일이나, 그가 어떤 사람에게 차별받으며 살았는지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김환향과 같이 일본사람에게 인간 취급도 못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저 김환향과 니시다의 선택이 달랐을 뿐일거다. 김환향은 죽더라도 인간으로 죽는 것을 택한 것 뿐이고, 니시다는 조금이라도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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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나와 검은 망토 세라피나 시리즈 1
로버트 비티 지음, 김지연 옮김 / 아르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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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피나 트릴로지(3부작)의 첫번째 소설, 세라피나와 검은 망토.

외국(혹은 유럽&미주지역)에서는 트릴로지를 무척 좋아하나보다. 메이즈러너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트릴로지(3부작)으로 나오는 시리즈가 많다. 반지의 제왕이랑 호빗도 3부작 이었어.(5부작도 많기는 하다.)

세라피나 시리즈는 최근 3편이 나오기는 했는데 후기에 1편은 안 봐도 되지만, 2편은 읽고 3편을 읽어야 한다고 나왔었다. 2편, 3편만 읽기 좀 그래서 1편 읽었음.

세라피나가 볼트모어 대저택에 숨어사는 이유, 세라피나의 정체 약간,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 그 과정 속에서 피어난 우정 등 3부작 중 첫번째 이야기에 겉맞는 내용이 있었다.

청소년이 읽기에 좋은 듯 하다. 암튼 1편 재미있게 읽었음. 2편 빨리 읽으러 가야지.

전체적인 내용이나 리뷰는 3편까지 다 읽고 3편 리뷰를 쓸 때, 다 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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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골목 - 진해 걸어본다 11
김탁환 지음 / 난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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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본다 11. 진해. 엄마의 골목.

- 스페인으로 출구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걸어본다를 읽을 수 있을까?

걸어본다 시리즈는 책마다 형식이 바뀐다. 그리스는 단편소설이었는데, 이란의 테헤란은 여행에세이였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땅고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한국의 진해는 엄마의 이야기였다.

진해에서는 엄마와 나, 동생의 이름이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다. 가까운 지인의 이름이 나오거나 지명이 나오기도 했지만 끝의 끝까지 엄마, 나, 동생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그냥 엄마는 엄마였고, 나는 나였으며, 동생은 동생이었다.

내가 아빠나 친오빠의 이름보다는 호칭으로 더 많이 부르듯이.

엄마 기억의 이야기인지 내 기억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엄마와 나의 이야기인지 불분명했다. 엄마의 기억이 주를 이루다가도 내가 기억하는 지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고, 엄마와 나의 대화도 자주 나왔다. 어떨 때는 나와 나의 아는 사람이 나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짧은 기억의 이야기에서 가끔은 이 기억이 누구의 기억인지, 아니 기억이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알 수 없어 몇 번을 다시 읽기도 했다.

기억 속을 들여다보다가 이유를 알 수 없이 쓰라릴 때도 있었다. 쓰린 구석이 머릿 속인지 아니면 심장 안 쪽인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어떤 기억을 남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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