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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은 오래도록 내 옆에 있었다. 30여년 쯤 되었고, 책도 그리 늙어 빛이 바래 누렇다. 그 냄새나는 책을 지금도 가끔 읽는다.
다 외울 정도이기도 하지만, 외운다고 뜻이 몸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한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이나 과거나 비슷한데,
실천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채근담의 한 문장을 실천에 목적을 두고 읽는다면, 현대의 복잡한 관계에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예전에는 주석이 상세하지 않아 그 뜻을 음미하는 데 몇 일은 물론 몇 달이 걸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요즘에는 주석이
워낙 좋아 쉽게 더 쉽게 그 뜻으로 이끌어준다. 허나 문자에 얽매이지 않아야 함은 동양고전을 읽는 진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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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과학사상사'와 같은 종류의 책은 무수히 나오는 듯 하다. 같은 종류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살펴보고 엮고자 해서인데, 과학의
사상이라는 접근은 친근하다. 서양사상과 과학사가 합쳐진 것이라고 추측을 할 수 있는데, 사상이 어떻게 과학과 연결이 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을 듯 싶다. 인문학이 문학과 사회와 철학을 아우르는 용어가 되었듯, 과학은 인문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궁금해진다. 플라톤이 철학자라고 알려졌는데, 책에서는 플라톤부터 시작하는 듯 싶다. 플라톤의 주석서라고 할 정도로 서양철학은 그의
그늘을 벗어나지 않는 데, 과학이 추구하는 본질도 거기에 있어서겠다. 사상과 과학의 문제를 먼저 접근하는 것이, 기술의 범람으로
중독으로 신음하는 시대에는 올바른 선택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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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에 대하여'. 제목이 끌린다. 수잔손탁의 '사진에 관하여'와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왜 이런 책이 감동을 주는가. 소설도 좋고
시도 좋겠지만, 작가가 직접 그 세계관을 보여주는 까닭에 좌충우돌하지 않을 수 있다. 물론 자의적 해석이 더 쉽기에, 굳이 이런
책을 돈을 주고 살 필요가 없다고 하는 이들도 적지 않으리라. 허나 읽어두는 게 좋다. 지식이 어떻게 실천이 되고, 지혜가
되는지 이런 책에서 적어도 하나 정도는 발견할 수 있어서다.
현대는 창작의 시대이지만, 왜 창작에 몰입하려는지 스스로 물어보지 않고 언어를 다루는 터라 예술로 승화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책은 그런 길잡이고 회초리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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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 적지 않다. 예술이 대중화가 행복의 질을 높여야 하는 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미디어는 사건과 사고가 새로운 소식으로 지면을 꽉꽉 채우는 동안, '행복'은 더 이상 행복해지지 않는다고 봐야 하겠다.
그래서 예술의 이론을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하는 게 정석이다.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직업을 갖기 위해 공부를
하더라도, 예술에 끌리게 되는 게 인간의 정서 중 하나가 아니던가.
다른 분야에서 밥벌이를 하다가 나이가 든 이들이 달랠 수 있는 것은 놀이이지 중독이 아니다. 사회가 중독을 만들더라도 개인은 이겨내야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선시禪詩를 하나 옮겨둔다.
야부(冶父)의 송(頌)
천 길 낚싯줄 곧바로 드리우니
잔잔한 한 물결에 만파도 뒤따르네
밤은 깊고 물은 찬데 고기하나 물지 않아
빈 배 가득 공을 싣고 달빛과 더불어 돌아오네
千尺絲綸直下垂 一波纔動萬波隨 夜靜水寒魚不食 滿船空載月明歸
천척사륜직하수 일파재동만파수 야정수한어불식 만선공재월명귀
예술이론을 배우지 않고서는 공空이 공恐이 될 수도 있다. 이론이란 언어이고, 언어는 곧 규칙이다. 허나 이를 배우지 않고서는 틀에
얽매이는데, 대개는 그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그런 이유는 이론은 실제보다 더디 습득이 되는
까닭이라서겠다. 그래도 흐름을 읽어두어야 생각이 선택에서 필수로 변할 수 있다. 소극적에서 적극적인 관찰로 바라보게 되고,
행동하게 되는 데 중도中道도 그 즈음에 나타난다.
위 책은 필독서 중에 하나다. 예술이 대중성을 갖게 되었으며, 대중성은 예술성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풀어줄 수 있을 명제가 수두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