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단련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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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저널리스트로서의 경력을 밑바탕 삼아 지식을 습득하고 글로 써내는 과정을 다치바나식 노하우로 풀어낸 글이다.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비법을 논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런 비법의 수상쩍음과 기본에 충실한 경험담이 비법이라면 비법이랄까. 많이 읽고,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고, 정직할 것. 나는 그렇게 읽었다.
워드프로세서가 막 보급된 시점이 아닐까 싶은 84년도에 출간된 글이기 때문에 시기적 넌센스도 있다. 그렇지만 나의 경우는 막상 글을 시작조차 못 하고 막혔을 때 이 책을 읽는 도중 첫 문장을 끊었으니, 기본은 언제든 어디 안 간다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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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17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군인이었을 때, 이 책을 주문했습니다. 그때는 이 책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오랜만에 이 책에 대한 글을 보게 되니 반갑게 느껴졌습니다. ^^

2016-07-17 15:51   좋아요 0 | URL
그 심정 알 것 같습니다. ^^
 
픽션들 보르헤스 전집 2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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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장이 단지 수사에 그칠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카프카 이전에 카프카를 상상할 수 있었느냐고 물을 수 있다면, 보르헤스 이전에 보르헤스를 상상할 수 있었느냐고도 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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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 선생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남진희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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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년만에 이 소설을 다시 읽었다. 계획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고 책 뒤의 독서기록을 보니 그렇다. 그때도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이 좀 멋쩍었다. 나는 볼라뇨의 소설보다 그 명예를 먼저 접했기 때문에 이 보다는 더 빛나는 무언가를 기대했을 것이다.

무대는 1938년의 프랑스. 최면술사이면서 1차 대전 참전병사로 연금생활을 하고 있는 팽 선생이 바예호라는 환자의 치료를 친구로부터 의뢰 받는다. 여기에서 바예호는 세사르 바예호라는 실존 인물로 `20세기 중남미 시의 가장 중요한 선구자`로 꼽히는 참여 시인이자 저항 시인이다. 의료진들도 더는 손 쓰지 못 하는 바예호의 목숨이 최면술사인 팽 선생에게 맡겨진다는 것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지옥으로부터 두 번씩이나 세계대전을 소환한 인간 이성의 붕괴랄까. 어쨌거나 팽 선생은 그때부터 스페인 사람들의 감시를 받기 시작한다. 그 파시스트들. 또 평범한 이들의 무관심.

꿈과 미로로 점철되어 가는 이 소설은 단박에 카프카를 연상시킨다. 카프카가 살아 있었다면 볼라뇨의 소설을 대신 썼을지도 모르겠다.
연보를 보면 볼라뇨는 틀라텔롤코 광장의 대학살과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에 강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로 말하면 5.16과 5.18의 동시경험에 상응하지 않을까. 그로부터 볼라뇨는 멕시코의 엘리트 기성 문단에 반해 민중의 삶과 언어를 중시하는 시인으로 자처했다. 밑바닥 생활 중에도 꾸준히 시를 써 온 볼라뇨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20대 후반. 결혼을 했고 가정이 생겼고 가장이 된 것. 이 와중에 쓴 소설이 `팽 선생`이고 보면 억압과 자유라는 극단 사이에서 현실 앞에 무너지지도, 타협하지도 못하는 팽 선생의 모습에서 볼라뇨의 그림자를 볼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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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을 꿰뚫는 세계사 독해 - 복잡한 현대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사
사토 마사루 지음, 신정원 옮김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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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절반쯤 읽어나가다 복잡한 세계사를 명확하고 간결한 관점으로 휘저어나가는 만만찮은 필력에 `이 사람 뭐지?` 싶어 저자 소개를 다시 읽었다.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한 뒤 일본 외무성 관료로 근무하다가 배임 및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로 기소, 유죄 판정으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는 이에 반발해 《국가의 덫》이라는 책으로 자신을 변호 및 반격. 이후 집필에 전념 중이라는 사토 마사루라는 이의 경력이 아주 낯설지는 않아서 출간 저서를 검색해 보니 그제야 다치바나 다카시와 《지의 정원》을 공저한 경력에 `그랬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국내에도 (지식의)괴물로 꽤 알려진 다치바나 다카시와 주거니 받거니 책과 지에 관한 대담을 나누는 사토 마사루라는 (상대적으로)젊은 괴물의 현학적 대담을 읽고 있자니 고래 살롱에 새우 어쩌라는 감상을 오래 전 받았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책의 장점은 아주 명확한데 세계사를 자본, 민족, 종교 세 가지 틀로 해석한다는 것, 과거사를 통해 현재의 국제 문제를 진단하는 아날로지적 관점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 만만찮은 주제를 만만히 읽히게끔 만들 정도로 필자의 내공이 수준 높다는 것. 물론 그만큼 눈밝은 독자의 눈에는 새로운 내용이란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지나치게 비약된 내용이 눈에 거슬릴 수도 있다(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갈등 원인을 하마스 이슬람원리주의 조직의 문제로 교묘하게 돌리는 듯한 대목을 에드워드 사이드가 읽었다면 뭐라고 비웃었을까?)

저자는 현재를 신제국주의 시대로 정의하고 있다. 미국이라는 패권국가의 힘이 감소한 지금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지나 중국과 러시아, 유럽연합에 더해 이슬람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힘싸움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이라는 해석이다. 구제국주의 시대의 결말은 두 차례의 세계 전쟁이었고 아날로지적 관점에서 우리 역시 세계 전쟁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주장. 세계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섬뜩한 예언처럼 들리는 것은 개인적인 소견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서사적으로 세계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주장한다. 그리고 그 서사는 관점에 따라 다른 것이 당연하다고, 우리는 추체험적으로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지나치게 당연한 주장이라 심상하다고 할까. 진리는 단순한 곳에 있다는 격언이 이럴 때 필요한 것이라고나 할까. 불현듯 상식을 나누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시대라는 실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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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labor/750103.html

저는 자음과 모음과 그 계열사들에서 출판되는 책은 책임자들의 정당한 처벌과 윤정기 편집자의 권리 회복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불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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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01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블로그에 공유하겠습니다.

2016-07-01 14:48   좋아요 0 | URL
예. 적극적으로 공유해 주세요.

yureka01 2016-07-01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저런 출판사 독자를 아주 우습게 보네요. 모름지기 책 읽는 사람이 뭐가 잘 못 된건지 모르는 바보들이 아니란거... 책 만드는 직원이 불행해서야 어찌 좋은 책이 나올 수 있을까요... .ㄷㄷㄷ

2016-07-01 14:52   좋아요 0 | URL
혹여나 좋은 책이 나와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독자를 우습게 보는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오거서 2016-07-01 20: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꼭 기억해 두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