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 선생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남진희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거의 1년만에 이 소설을 다시 읽었다. 계획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고 책 뒤의 독서기록을 보니 그렇다. 그때도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의 감상이 좀 멋쩍었다. 나는 볼라뇨의 소설보다 그 명예를 먼저 접했기 때문에 이 보다는 더 빛나는 무언가를 기대했을 것이다.

무대는 1938년의 프랑스. 최면술사이면서 1차 대전 참전병사로 연금생활을 하고 있는 팽 선생이 바예호라는 환자의 치료를 친구로부터 의뢰 받는다. 여기에서 바예호는 세사르 바예호라는 실존 인물로 `20세기 중남미 시의 가장 중요한 선구자`로 꼽히는 참여 시인이자 저항 시인이다. 의료진들도 더는 손 쓰지 못 하는 바예호의 목숨이 최면술사인 팽 선생에게 맡겨진다는 것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지옥으로부터 두 번씩이나 세계대전을 소환한 인간 이성의 붕괴랄까. 어쨌거나 팽 선생은 그때부터 스페인 사람들의 감시를 받기 시작한다. 그 파시스트들. 또 평범한 이들의 무관심.

꿈과 미로로 점철되어 가는 이 소설은 단박에 카프카를 연상시킨다. 카프카가 살아 있었다면 볼라뇨의 소설을 대신 썼을지도 모르겠다.
연보를 보면 볼라뇨는 틀라텔롤코 광장의 대학살과 칠레의 피노체트 쿠데타에 강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로 말하면 5.16과 5.18의 동시경험에 상응하지 않을까. 그로부터 볼라뇨는 멕시코의 엘리트 기성 문단에 반해 민중의 삶과 언어를 중시하는 시인으로 자처했다. 밑바닥 생활 중에도 꾸준히 시를 써 온 볼라뇨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 20대 후반. 결혼을 했고 가정이 생겼고 가장이 된 것. 이 와중에 쓴 소설이 `팽 선생`이고 보면 억압과 자유라는 극단 사이에서 현실 앞에 무너지지도, 타협하지도 못하는 팽 선생의 모습에서 볼라뇨의 그림자를 볼 수도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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