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절반쯤 읽어나가다 복잡한 세계사를 명확하고 간결한 관점으로 휘저어나가는 만만찮은 필력에 `이 사람 뭐지?` 싶어 저자 소개를 다시 읽었다. 대학원에서 신학을 전공한 뒤 일본 외무성 관료로 근무하다가 배임 및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로 기소, 유죄 판정으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는 이에 반발해 《국가의 덫》이라는 책으로 자신을 변호 및 반격. 이후 집필에 전념 중이라는 사토 마사루라는 이의 경력이 아주 낯설지는 않아서 출간 저서를 검색해 보니 그제야 다치바나 다카시와 《지의 정원》을 공저한 경력에 `그랬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국내에도 (지식의)괴물로 꽤 알려진 다치바나 다카시와 주거니 받거니 책과 지에 관한 대담을 나누는 사토 마사루라는 (상대적으로)젊은 괴물의 현학적 대담을 읽고 있자니 고래 살롱에 새우 어쩌라는 감상을 오래 전 받았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책의 장점은 아주 명확한데 세계사를 자본, 민족, 종교 세 가지 틀로 해석한다는 것, 과거사를 통해 현재의 국제 문제를 진단하는 아날로지적 관점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 만만찮은 주제를 만만히 읽히게끔 만들 정도로 필자의 내공이 수준 높다는 것. 물론 그만큼 눈밝은 독자의 눈에는 새로운 내용이란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지나치게 비약된 내용이 눈에 거슬릴 수도 있다(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갈등 원인을 하마스 이슬람원리주의 조직의 문제로 교묘하게 돌리는 듯한 대목을 에드워드 사이드가 읽었다면 뭐라고 비웃었을까?)저자는 현재를 신제국주의 시대로 정의하고 있다. 미국이라는 패권국가의 힘이 감소한 지금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지나 중국과 러시아, 유럽연합에 더해 이슬람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힘싸움이 이루어지고 있는 장이라는 해석이다. 구제국주의 시대의 결말은 두 차례의 세계 전쟁이었고 아날로지적 관점에서 우리 역시 세계 전쟁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주장. 세계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 섬뜩한 예언처럼 들리는 것은 개인적인 소견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서사적으로 세계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주장한다. 그리고 그 서사는 관점에 따라 다른 것이 당연하다고, 우리는 추체험적으로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히려 지나치게 당연한 주장이라 심상하다고 할까. 진리는 단순한 곳에 있다는 격언이 이럴 때 필요한 것이라고나 할까. 불현듯 상식을 나누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시대라는 실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