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는 아니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출판사에 대한 이야기이니 사실상 책에 대한 이야기겠다. 요점은 읽고 싶은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출판사에서 출판되는 괴로움에 대한 한탄이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게 된다. 일방적 규탄 이전에 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도흠 교수의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 사사키 아타루의 《야전과 영원》이라는 책을 읽어 보고 싶다. 직접 읽지는 못했지만 고견을 갖춘 분들이 나서서 추천하는 책들이니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바가 없지 않다. 눈치를 채신 분들은 벌써 알아차리셨겠지만 출판사가 `자음과 모음`인 것이다.
출판사 자음과 모음의 이런저런 비행에 대해서는 뉴스를 통해 제법 보도가 되었다. 굳이 내가 더 들추어 낼 것도 없다. 그 중에도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좌천된 편집자 윤정기 씨 사건은 아직도 문제의 근본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미봉적 해결로 그치고 있다. 한 개인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히 끝낼 수가 없는 것이다.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47&aid=0002106032
나는 출판계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모른다. 혹여 자음과 모음의 운영진 입장에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경색되어 가는 출판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라고 설명할지도 모른다. 사소한 문제로 회사 전체를 매도하는 건 비합리적이라고 여길지도 모른다. 이미 익숙한 주장들이다. 익숙한 만큼 거기에는 어떤 현실적 근거가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여러 기업들이 노동자들에게 자행하는 부당함까지 언급하며 논점을 확장시킨다면 이 글은 무모할 것이다. 다만, 《원효와 마르크스의 대화》와 같은,《야전과 영원》과 같은 책을 만들고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결과물이 지향하는 바와 상충하는 일을 하고 마는지. 또 그런 결과에 대해 왜 자성하지 않고, 자성한다면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인지. 무척 안타까운 마음으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애정이 없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한낱 독자로서 할 수 있는 말을 한 것뿐이다. 독자의 바람은 좋은 책을 읽는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독자는 독자 이전에 인간이다. 책과 인간이 상호보완적이라면, 좋은 책은 좋은 인간과 동떨어질 수 없다. 내가 카뮈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말과 행동이 일치했던 부류의 작가였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돌아본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