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는 말 그대로 새로운 '자유'를 주장한다. 즉 개인의 선택의 자유, 정부로부터 간섭 받지 않을 자유, 어떤 조건에도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추구할 자유를 강조함으로써 역사의 어느 시기보다도 '개인'의 자유를 역설했다. 그러나 그 개인은 보편적인 휴머니즘에 기반을 둔 '인격'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적극적인 행위자인 '재산'을 가진 개인이다.-8쪽
하지만 노동자를 일약 소유자로 전환시킨 이 같은 자본의 연금술은 실상 새로운 부의 창출과 분배 과정이기보다는 각자가 향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의 가치를 앞당겨 소비하도록 만드는 과정에 불과하다. 이는 개인이 현재 벌 수 있는 돈보다 더 많은 것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신용카드 원리와 같은 것이다. 금융 심화로 인해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개인들은 미래의 가치가 증대될 거라는 불확실한 전제를 기반으로 자신의 현재적 조건에서는 불가능한 소비를 손쉽게 향유한다. 그러다 보니 주 5일 근무나 여가 시간이 확장되더라도 이 시간은 노동의 인간화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이용되지 못한다. 그 시간은 또 다른 소비로 채워지거나 자신의 과잉 소비를 벌충하기 위한 추가 노동이나 자기 계발 시간이 되기 쉽다. 과잉 소비, 과잉 노동, 시간 부족,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이를 벗어나기 위한 또 다른 소비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노동자가 사라진 소유자 사회에서 소외는 노동의 영역이 아닌 비노동과 무노동, 여가의 영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Lefebvre,1991:38).-63쪽
누구나 투자자며 자본가인 사회에서 개인의 노동자 정체성은 부정되고 거부된다. 고도로 금융화된 자본주의에서 자본은 노동자의 요구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또한 사람들이 생산물을 구매해 주어야 이윤이 나는 상황에 갇혀 있을 필요도 없다. 그저 거대한 세계자본시장을 순환하며 차액을 수확하면 그뿐이다. 그러다보니 노동운동이나 대안적 꼬뮌주의, 소비자 운동도 무력해지기 쉽다. 대항할 상대도 사라졌고, 싸울 주체도 보이지 않는다. 바리케이트를 치고 화염병을 든 노동자는 이미 소유자가 된 이웃들 사이에서 낯선 존재로만 보일 뿐이다.-69쪽
결국 엄격한 이주 통제 정책은 이주를 통해 거대한 폭리를 취하는 중개인을 양산하고 잇는 셈이다. 중개인들은 점차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기 시작했으며 갱스터 연합체를 구성하면서 국가권력에 도전하고 있다. (중략) 이주 업자들은 초국적 네트워크와 변호사, 자문단 등 전문가 그룹을 동원해 가면서'어두운 산업'에서 벗어나 영향력 있는 '정상적 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이주를 통제하는 정책을 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값싼 이주 노동을 통해 신자유주의적 구조 개혁을 이뤄 내는 서구와 유럽, 아시아 국가들의 이주 통제 체제 덕분에 이주 산업은 글로벌 영리 산업으로 그 규모를 키워 가고 있는 것이다.-91쪽
그러나 개인에게 필요한 것은 상품의 소비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상징을 소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오늘날 명품은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상징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단순한 명품 소비를 넘어 명품에 어울리는 신체적/정신적 자아를 구축하는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 개인들은 명품 소비의 범람 속에서 특별한 자아를 통해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별 짓는다. 이러한 구별 짓기는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자아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자기 관리를 해야 한다. 이제는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기 위해 그 가방에 어울리는 명품 코트나 명품 구두를 갖추는 일이 중요한 게 아니다. 돈만 내면 한순간에 소유할 수 있는 기성품들을 넘어 명품 몸매, 명품 피부 등 철저하게 관리된 몸을 갖추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147쪽
상품 페미니즘은 독립적인 자아, 사회적 성공 등 페미니즘의 목표가 상품으로 구현되면서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곧 그 성취로 간주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개인적인 생활양식으로 바꿔 버림으로써 페미니즘의 탈정치화를 초래하며 신자유주의 시대의 가치와도 일맥상통한다. 개인주의 또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사회적/경제적/정치적 문제들에 대한 비판을 망각하고 상품 형태에 포섭되어 버리는 것이다(골드만, 2006:185~188). 특히 이러한 정치성의 탈각은 여성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적자생존의 논리 및 페미니스트는 피해 의식에 젖어 있거나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여성들이라는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과 맞물려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 개인의 정치성의 소멸과 페미니즘에 부착된 부정적인 이미지는 직장과 가정에서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 등 페미니즘에 의해서 획득된 가치를 당연시하지만 페미니스트라는 명칭과 거리를 두고 싶어하는 여성을 대거 양산했다(위의 책:185).-150-151쪽
긍정적인 인성을 지닌 이들이 사회적으로도 성공한다는 식의 자기 계발 문화는 능력주의 신화를 퍼트렸다. 성공하면 행복해진다는 인식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회적 실패와 좌절이 개인의 능력이 부족하거나 선택이 적절치 못했거나 자기 계발을 위한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실패와 좌절이 개별화되고 개인화된 것이다.-166쪽
이와 같이 감정 노동 영역에서 노동자의 감정 관리는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표준화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기업 만족도 향상을 위한 인사 관리에서도 중요한 경영 대상이 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업의 이러한 ‘소통’과 ‘배려’가 작업장의 민주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향상하고 이윤을 확대하기 위한 ‘인사 관리’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자에 대한 감정 관리를 통해 기업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기인한 문제를 ‘감정적’으로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175-176쪽
치유서나 자기 계발 담론에서 개인들의 정신과 감정, 인성과 삶을 마치 경영의 대상처럼 사유하여 자본처럼 축적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거나,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는 기술로 생각하는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성은 ‘신자유주의적 주체성’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 신자유주의 주체성은 ‘자신을 돌보고 향상시키려는 개인의 의지, 즉 자기 계발의 의지를 통해 작동하는 권력’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서동진, 2009).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내는 이 새로운 사회성은 니콜라스 로즈가 ‘기업가적인 자아entrepreneur self'라고 부른 자아 관념, 즉 개인들이 자신의 삶과 자아 자체를 마치 기업과 같이 경영하고 관리할 수 있는 객체로 바라보는 관념을 만들어 낸다(Rose, 1992). 이러한 문화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경험과 경력, 정서 상태, 외모, 육체, 교우 관계 전반을 기업의 재무제표와 같이 개량화하여 시장 가치로 환산해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182쪽
생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지당한 명제는 그렇기 때문에 돈으로 환산했을 때 높은 가격invaluable이 매겨지는 모순을 낳는다. 인체의 한 부분을 사람에서 분리해 가격을 매기는 행위는 생명을 상품화하는 행위이며 그 결과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것은 자명하다. 대표적인 예로 장기 매매는 전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불법이지만, 장기 이식을 통해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인체로부터의 장기 분리가 비윤리적이라고 선언할 수는 없는 문제다. 더욱이 기증된 장기만으로는 엄청난 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 법칙에 의해 장기에 따라 어느 정도의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을 정도로 장기 매매는 활성화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인체의 분리와 생명의 상품화는 비단 장기 매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불치병 치료와 생명 연장이라는 인간의 꿈을 실현시켜 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생명공학은 인체의 분리와 생명의 상품화를 통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203쪽
슘페터의 관점을 빌어 볼 때 한국 사회의 저출산은 현재와 같은 경제적 체제의 필연적 결과로 해석된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돈이 드는' 문제로 인식되고, 결국 출산의 결정은 자녀 양육과 교육을 감당할 경제 능력이 있는가 여부에 달린 문제가 되었다. 저출산이라는 우리 사회의 난제는 불평등과 무한 경쟁의 심화가 인간의 행복과 복지에 미친 폐해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일터에서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는 삶을 메마르게 해 자연히 '재생산'과 '돌봄'에 대한 욕망보다는 책임에 대한 두려움을 낳는다. 이런 상황에서 치솟는 집값과 교육비를 감당해야 할 부부의 유일한 생존 전략은 출산을 통제하는 길일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출산과 고령화가 한국 사회 전 영역에서의 근본적인 변화를 불가피하게 요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령 인구가 많은 사회에서는 느리게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고 그 사람들은 서로 의존하고 상부상조하는 호혜적 생활양식을 욕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슘페터가 말한 '새로운 경제인'과 더불어 인구학적 요소 때문에 위기와 새로운 기회를 동시에 맞이하고 있다.-224-225쪽
사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선택한다. 그리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진다. 돈이나 경제적 성취에 매달려 인간의 다른 가치들을 희생하지 않으려면 덜 일하고 다른 것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쓸 수도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의 삶 속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한다면 삶을 단순화할 수 있다. 공적인 가치를 변화시켜 나가려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개인적인 변화의 노력 역시 중요하다. 사회는 개인들에게 어떤 삶을 살고 어떠한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하지만 반대로 개인의 선택이 모여 사회적 변화의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는 데 힘을 미칠 수 있다. 우리 자신과 사회를 위해서 어떠한 변화가 가능한지 사유하고 상상하고 실험하는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맞서 우리는 이제 인간이 가진 '삶'의 능력을 회복하도록 서로 고무하고 격려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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