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워 - D-Wa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참, 어제 영화 디워를 봤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웬 큰 뱀이 나오길래 호기심이 생겨서 보고 있었다.
제목은 디 워. 많이 들어봤는데, 뭐였더라. 이 정도만 생각하고 그냥 계속 보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영화가 이상해진다. 아, 디-워! 심형래의 영화였다.
나-참. 내 기억력에 박수를 보냈다. 이런 것도 건망증에 포함시켜야 하나. 흠.
 
여튼, 영화는 말 그대로 쓰레기였다.
'쓰레기 책'만 있는 게 아니라 영화에도 쓰레기라는 장르가 존재한다.
말이 거칠어서 심형래 감독에게 인간적으로는 조금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솔직한 감상평이니까.
영화가 나왔을 당시에 평론가들은 악평을 해댔고, 네티즌도 호평과 악평이 분분했다.

저 정도면 열악한 상황에서 엄청난 노력을 한 것이고, 한국영화에서도 엄청난 발전을 한 것이라며, 특히 한국적 요소를 많이 가미했다는 것에 대해 심형래 감독을 인간적으로 지지하는 목소리들.
호평은 이 정도였던 것 같다.

악평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대부분 스토리 빈약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직접 영화를 본 결과, 스토리 빈약? 맞는 말이었다. 처음부터 보진 않았지만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은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더구나 어떤 감정적 교류상황이 충분히 주어지지도 않았는데 급속도로 깊은 사랑에 빠진다. 주인공이니까 당연히 사랑에 빠져야한다는 그런 논리인 것인지.

"장면 보여주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스토리"가 긴밀히 연결되지도 않고 충분하지도 않다.
다 찍어놓고선 편집을 심하게 한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이런 내용 생략하기는 다른 영화들에서도 많이 보여지는데, 주로 문학작품을 영화화한 경우나 기존 TV드라마를 영화화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경우엔 스토리가 독자(관객)들에게 충분히 알려진 경우이기 때문에 단독적인 작품성은 떨어질 수 있지만 관객들이 소화하는 데엔 크게 무리가 가진 않는다.

반면 디워는 그것이 의존하는 전설에 대한 상식말고는 관객이 도움을 얻을 수 없다.
이야기 대신 넘쳐나는 장면들을 보면서 '스토리와 인과성의 부재'을 관객 스스로 추리해내고 상상해내서 메꾸어야 한다.

그리고 과유불급.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고 했다. 욕심이 지나쳤는지 너무 많은 것을 영화에 집어넣은 탓에 영화는 잡탕이 되었다.
사실 도심 한복판에 출현한 "큰 뱀"의 설정까진 괜찮았다. 그래, 여의주까지도 봐줄만은 하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군단이 나온다. 현대에도 과거에도 맞지 않는. (조선시대같은 옛적의 모습에 그 군단이 출현해 해를 가하는 장면에서 난 정말 실소했다.) 영화는 순식간에 울트라맨이 생각나는 심형래표 어린이영화가 된다.《영구와 공룡 쭈쭈》,《드래곤 투카》뭐 이런.  또한 큰 뱀(이무기)은 엄청 빠르고 주인공들을 쉽게 찾아내면서도 막상 주인공 앞에만 가면 느려터지고, 집어삼키는 걸 망설인다. 빌딩이 나와서 "분명히 저 빌딩 감싸며 올라갈거야", 라고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올라간다. 영화 《킹콩》이 생각나는 장면이다.

그리고 이즈음 해서, 영화는 아, 끔찍했다.
이상한 괴생명체들이 줄지어, 떼를 지어 출현하고 인간 대 괴물간의 한바탕 전쟁이 벌어진다.
불을 뿜는 익룡이 나타나고 정체불명의 뒤뚱거리는 괴물들과 군단들. 영화는 순식간에 《쥐라기공원》《반지의 제왕》축소판이 된다.
그리고 한참동안 그런장면들로만 흘러간다. 저 모두를 과감하게 빼버리고, 대신에 인물중심으로 스토리를 탄탄하게 받쳐주면 좋았을 것을. 
 
마지막 역시 영화는 꿋꿋했다. 갑자기 이유불문 '선한 이무기'가 나타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 여자는 선녀의 모습으로 나타나더니 다음 생에 만나자고 하고 사라진다. 그 와중에 아리랑 음악이 흐른다.

심형래 감독은 순수하게 한국을 알리고자 한 의도로 한국적 요소를  영화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의도는 내가 볼 땐 나쁘게 작용한 것 같다. 한국 특유의 들끓는 애국심이 영화감싸기로 흘러간 것, 영화에 포함시킨 '한국적 요소'- 옛시대의 모습(초가집,한복입은 사람들)과 선녀, 이무기, 여의주의 전설- 가 영화에 제대로 융합되지 못한 탓에 영화에서 '들뜬'채 겉돌아야 했다.

한국의 관객으로선 슬픈 일이다. 내가 가진 '한국'이란 정체성이 영화 속 세상에서 '이슈'는 되지만 섞어들지 못하고 매우 다른 것으로 느껴지는 건 말이다. 외국인들에게도 어쩌면 이 영화는 한국의 이질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으로 역할할지도 모른다. 영화를 들여다보라. 전설을 믿는 사람들과 그 목격자의 말을 무시하고 거부하는 것, 그 사람들과 이무기를 편리하게 처리해버리려는 세력들. 지나친 해석일 수도 있지만 나는 여기에서 타국에 살고 있지만 제대로 섞여들지 못하는 각국의 한인들의 처지를 떠올리게 된다. 한국적이나 한국적이지 못하고, 이국에 살고 있으나 그곳에 한 요소로 제대로 섞여들어가지는 못하는 그들을 말이다.

오히려 마지막에 잔잔하게 흐른 아리랑 음악은 생각보단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든다. 한국의 관객에겐 애국적요소로 작용할 것이기에 이 또한 국수주의, 민족주의를 권하는 것 같아 곱게 봐지진 않지만. 그래도 타국의 관객에겐 그나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적 요소를 포함시키고자 했다면 감독은 그래야했다. 시청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짧은 초로 중간중간 화면에 삽입하는 광고처럼, 은연 중에 한국이 영화 속에서 녹아나오도록 해야 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한국이 받아들여지도록. 아, 나의 지나친 욕심이란 말인가.

 
결론은, 심형래 감독의 도전 자체는 아름다웠을지 모르지만
영화 자체는 아름답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는 영화제작상 어려웠다는 기술의 문제나 금전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나리오 자체가 탄탄하지 못했고, 소재 선정과 편집이 적절치 못했다.

CG의 발전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다른 많은 문제점들을 결코 상쇄시킬 수는 없다.

그리고 이젠 제발 어떤 작품을(사람에 있어서도) 우리의 그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애국심'운운하며 보지 말고, 그 작품 자체로 평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디워》가 애국 덕을 봤다면, 《청연》은 애국에 의해 깎여내려간 작품. 네이버 영화평점이 디워가 청연보다 더 높다는 것, 말 다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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