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한 힘 - 파블로 네루다 시집
파블로 네루다 지음, 정현종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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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위에는 물돌stones of water이 있을까?

거기엔 금물waters of gold이 있을까

가을은 무슨 빛깔일까?

날들은 서로 부딪칠까

그들이 난발처럼

온통 풀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게

-종이, 와인, 손, 시체들-

지구에서 저 먼 곳으로 떨어졌을까?

 
거기서는 익사한 사람도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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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문학동네 시집 80
이병률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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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음식을 한가득 먹는다
유명하지 않은 영화를 보고
꽤 오랫동안 질리도록 듣고 있는
그러나 질리지 않는 노래를 반복해 듣는다
오래 전 누군가 그린 그림 속에도 들어갔다가 나온다
귀여운 웃음과 남자다움을 함께 가진,
최근 반해버린 한 남자의 사진을 보며 한 번 웃어도 본다

그래도 마음에 허기가 지고
쓸쓸한 바람이 불면 그것을 편다,
詩,
내 허기짐의 마지막 보루.

시는 내게 그런다
오늘 너는 울고 싶은 거라고.
그러니 실컷 울다 가라고.

_괜히 울적했던 날,
한밤중에 시집을 들췄습니다.
시인의 슬픔이 나의 슬픔을 닮았기에 위로가 됩니다
어쩌면 못된 일이지만. 그렇지만.
닮은 두 슬픔이 서로를 껴안고
울 수 있다는 건 한편 따뜻한 일이기도 했지요.

수록된 시 한편 소개할게요.

<벼랑을 달리네>

문상 다녀오는 체감온도 영화 십육 도의 추운 밤
경사진 도로에서 차로 뛰어드는 여자를 보고 놀라 급히 차를 세우는데
뒷자리에 타자마자 '가양동 2단지'를 외치는
택시가 아니라 해도 슬프도록 코를 골며 잠을 청하는
화장품 냄새 술냄새 반에 전 난취의 여자
그래도 내리라 하지 않고 조심스레 몰 수 있었던 건
당신처럼 갈기갈기 사지가 찢긴 채
누군가 나를 데려다 눕혔으면 했던 의식을 부탁해왔기 때문이다

가양동 2단지 앞에 차를 세운 영하의 밤
잠든 여자를 깨운다 눈인사도 한마디 말도 없이
아무렇게나 벗어놓았던 목도리를 반듯하게 개어놓고
휘청휘청 아파트 단지 안으로 발걸음을 떼어놓는 여자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한 건
나도 벼랑 끝에 살며 당신처럼 핏발의 냄새 풍긴 적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춥지 않다 싶게 집으로 되돌아오는 밤
무언가 하얗게 시야를 덮쳐 급히 차를 세웠더니
도로에 떨어져 휘날리고 있는 두루마리 휴지
인사 대신 남겨둔 여자의 목도리처럼
매운 바람 속에서 하얗게 몸을 풀며 구르다
놀라 멈춰 선 차를 감싸며 흐느끼고 있다
가지런히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차 안에서 눈 감을 수 있었던 건
나도 당신처럼 머리를 풀고 누군가의 품에 안겨
마지막인 양 파닥이고 싶었던 적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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