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필호 달라이 라마를 만나다
황필호 지음 / 운주사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말에 함양에 있는 실상사에 다녀왔다. 기분좋게 시꺼먼 쇠 부처님의  나무 손을 잡고 비벼대고 나오니 기념품 전시장이 보여 이 책을 샀다. 원로 종교철학자가  달라이 라마를 만나다니, 도대체 어떤 질문을 던질것인가 ? 얼마전 읽은 도올선생님의 책은 패기가 있었다. 불교란게 무언지 달라이 라마 당신이 누군지 마구 질문의 칼을 휘둘렀었다. 수필가이자 해박한 종교철학자인 선생님은 도대체 무슨 이야길 할 것인가?적어도 도올 선생님의 달라이라마와의  만남과 비교해서 보면 달라이 라마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사소한 이야길 먼저 하면, 이 책은 운주사에서 나온 것인데, 내겐 호감이 있는 출판사이다. 운주사 덕분에 고비고비마다 실마리가 되는 책을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뭔가 찜찜하다. 이 책에는 달라이 라마의 손을 잡고 황 선생님이 펑펑 울고있는 사진이 표시에 실려있다. 그 모습은 이산가족 상봉같은 리얼한 느낌을 주는데, 달라이 라마의 큰 사진 밑에 조그마하게 붙어 있어 불교의 포교를 위한 사진 같아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달라이 라마의 도력 앞에 평생 학문을 한 원로 철학자가 굴복하고 있다!- 이런 의도인가?  

 물론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이 사진을 좀 더 좋은 느낌으로 볼 수가 있다. 왜냐하면 70이 넘으신 분들이 이렇게 웃고 이렇게 울고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 때문이다. 그래도 차라리 이 사진을 2면 정도에 넣던지 표지 전면에 넣던지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달라이 라마는 동등한 인간으로 같은 높이의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했는데 책은 왜 압도적인 인간인양 편집을 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이 책을 펼치고 나서 놀란 점은 황필호선생님의 수척한 사진이었다. 전립선암 3기의 투병생활 속에서 달라이 라마를 꼭 만나야 하는지를 자문하는 모습이 애처로왔다. 사실 선생님은 이 만남을 피하고 싶어했다. 그 육성을 한번 들어보자.  

"나는 이제 더 이상 선지식을 찾아 이곳저곳을 방황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진리를 모르고 있지 않다. 단지 실천하고 있지 않을 뿐이다.... 더구나 나는 조만간 죽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미국이나 아프리카나 티베트를 향해 또 방황의 길을 떠나야 하는가."(16쪽)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허약한 육체를 이끌고 13시간에 걸친 침대칸 열차를 타면서, 그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3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달람살라까지 가는 고생을 해야 하는가. 더구나 나는 이른바 평생 종교철학을 전공한 학자가 아닌가. 그런 내가 이 나이에 달라이 라마를 만난다고 무슨 굉장한 일이 생기겠는가."(19쪽)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70이 넘고 죽음에 가까워진 한 노학자가 피를 토하듯 쓴 책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겉멋도 오만도 없다. 지식을 자랑하려는 욕망도 없다. 선생님은 얼마남지 않은 인생을 쥐어짜 달라이 라마를 만나고 그 만남을 절실한 질문으로 채우고 자신의 사색으로 거듭 서술한다.

비폭력주의자로 평생을 살았던 선생님이 달라이 라마에게 처음한 질문은 영성과 웃음사이의 관계였다. 진실된 웃음은 천진난만하게 터져나오는 웃음이다. 또한 수행자의 입가에 번지는 웃음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웃음은 개인적이면서도 영적이다. 왜 선생님은 달라이 라마를 만나 맨처음에 웃음에 대해 질문했을까? 종교에 의한 수많은 살상과 투쟁을 생각하신 것일까?

대학교때 읽었던 [종교학 서설]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 그러나 그대들은 정말 조심조심 길을 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대들의 발밑에는 비록 초라할지라도 비록 그대들과 다를지라도 같은 인간으로 살았던 그리고 같은 인간으로 사는 사람들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들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종교가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하여 서로를 설득하기 위해 싸우고 거짓된 믿음을 타파한답시고 서로를 해치는 것이 참된 종교일까? 차라리 종교의 끝은 지혜롭고 솔직한 웃음이 아닐까?

이 밖에 불교는 무신론인가 라는 질문이 애초부터 잘못된 질문이라는 점, 다른 종교로의 개종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며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폭력적 개념이므로 가종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점 등은 매우 감명깊은 대화였다. 또한 달라이 라마는 살아있는 보살 즉, 보살의 환생인가 라는 질문이랄지, 수행의 정상에 다다랐는가 하는 질문 역시 감명깊었다. 잠시 변죽만 울리면 달라이 라마는 "차나 한잔 마시고 가게"라고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평범한 수행자로서 자신만의 삶을 살 뿐이라고 이야기 했다. 

2시간 20분의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 시간이 되어, 달라이 라마의 손을 잡고 선생님은 폭포수와 같은 눈물을 흘리며 통곡을 한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선생님은 그걸 '영혼의 떨림'즉, 인간의 영혼과 영혼이 만나 예상치 않게 벌어진 감동으로 적고 있다.

나는 몇년 전 읽은 정신과 책의 콤플렉스 항목이 떠올랐다. 무의식에서 빚어지는 정서적인 과잉현상이었던가? 그러면 그 무의식의 구조는 무엇일까? 갑자기 아득해 지는 느낌이다.다시 본문에 나오는 흑백 사진을 바라보니 선생님은 마치 부모가 돌아가시기나 한 듯 울고 있다. 적어도 선생님은 외롭게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던 것이다. 그 눈물은 아마도 인생의 회한을 담은 눈물이었으리라.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는 깨달음을 향한 방황을 할 수 없다는, 이것이 현생의 마지막 도정임을 절감한,  유한한 생명의 절규였으리라.

"폭포수 눈물, 그것은 내 평생에 처음 경험한 눈물이며 아마 앞으로도 그런 일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아직도 이렇게 펑펑 울 수 있다는 사실은, 내가 달라이 라마 성하를 직접 대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분 앞에서 흘렸던 폭포수 눈물은 앞으로도 나의 삶을 인도해 줄 것이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영력과 같이."(170쪽)

나는 여기서 문득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사쿠라 꽃이 날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죽음은, 여정의 끝은 어쩌면 처절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선생님의 눈물은 벚꽃처럼 흩날렸다. 그리고 영화 속의 장군처럼 선생님도 마지막을 받아들이고 평온을 얻었을 것이다.

사족을 붙이자면, 눈물과 웃음이 없는 게 무슨 종교고 무슨 인생이랴? 달라이 라마의 웃음과 더불어 선생님의 눈물 역시 삶의 등대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아는가? 선생님의 눈물은 달라이 라마의 말보다도 달라이 라마의 맑은 눈, 웃음, 마주잡은 손으로 부터 비롯되었음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늘연못 2006-11-06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얼마남지 않은 여생을 쥐어짠 글에 내가 무슨 비평의 글을 더하겠는가?

하늘연못 2006-11-07 0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라이 라마는 보살의 화신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사족을 달면, 나는 김수환 추기경님을 아주 가까이서 두번 뵈었다. 한번은 인터뷰를 겸한 세미나 때 였고, 한번은 추기경께서 운영하는 공부방 교사로서 였다. 어느날 한 학생이 "추기경님은 하느님을 만나보았나요?"라는 당돌한 질문을 했다. 그때 한참동안 망설이시다가 하셨던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저는 하느님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삶의 고비 때마다 혼신을 다해 기도하고나면 어느새 밤이 지나 동이 트듯 결정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하느님이 같이 계시다고 여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