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행 1 -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현각 지음, 김홍희 사진 / 열림원 / 1999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좋은 책이 절판되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마도 현각스님의 사부 숭산 스님이 돌아가시면서 번잡한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그런 뜻인듯 싶다.  

우선 이 책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있다. 나는 이 책의 부제인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때문에 이 책을 보지 않았다.  하버드나 예일이 갖는 브랜드명 때문에 오히려 명문대생 선체험기같은 진부함이 연상되어 읽지 못한 것이다. 그러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싼값에 사서 싸게 읽으려다가 현각스님의 사연에 점차 압도되는 자신을 느꼈다. 그야말로 하버드는 껍질에 지나지 않았다. 참답게 살기위한 진지한 영혼의 끊임없는 길이 솔직하게 그려져 있었다. 현각 아니 폴 뮌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참된 인간의 길을 탐구한 사람들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옷깃을 여미고 한편으로는 나자신의 초라한 생각을 탓했던 것이 2년전이었다.

책자체도 깔끔한 글씨체와 여백, 그리고 군데군데 끼워진 사진까지 조화가 잘 이루어진 명작이었다.그러나  무엇보다 현각스님의 진지하고도 섬세한 글솜씨와 화엄경의 선재동자를 연상시키는 구비구비의 사연이 정말 감동스러운 책이었다. 여기서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싯달타 부처님이다. 그 분도 왕자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그리나 견딜수 없는 영혼의 갈급함으로 29세에 출가했다. 예일대학과 하버드 대학원이라함은 현존하는 인류문명 속의 왕자의 자리이다. 폴 뮌젠은 타오르는 열망과 끝없는 절망 속에서 출가했다. 두 분모두 서양 문명의 논리의 끝에서 새로운 열림을 찾았다는 면에서 동일하다. 그래서 나는 현각스님이 21세기의 또 한명의 붓다라고 생각한다.  

친한 친구가  화계사에 종종가서 현각스님의 법문을 들었던 모양이다. "형, 현각스님도 다 됐어. 이 책 표지에 나오는 날씬한 스님이 아니야. 설경구가 나오는 역도산 같이 돼셔가지구, 법문 중에도 콜라 페트 병을 입에 달고 계시드라구."난 폴 뮌젠과 콜라병이 매칭이 잘 안되었지만, 그런게 인생이고 그런게 구도의 길이라는 걸 조금은 안다. 꽃은 한번 피고 마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새롭게 다시 피는 것이다. 스님의 건승을 빈다.

최근에 존경하는 오강남 선생님의 [예수는 없다]를 읽다가 선생님이 쓴 [만행] 독후감이 맨끝에 달려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 책의 절판을 슬퍼하며, 오강남 선생님의 리뷰를 적어본다. (이하는 오강남 선생님의 글입니다.)

이 책은 미국 뉴저지 주의 중산충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화학박사 어머니와 사업가 아버지의 일곱 번째 아들로 태어난 젊은이 폴 뮌젠(1964년생)이 진리를 찾아 피눈물을 흘리며 걸어온 길을 자전적으로 엮은 구도기로, 출판이래 지금껏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다.

폴은 어렸을 때부터 천재란 소리를 들어가며 장차 신부가 될 꿈을 키웠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을 읽고...미국에서 돈이 많이 들기로 이름난 사립고등학교를 거쳐 예일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하버드 대학 신학대학원에서 비교 종교학 석사 학위를 끝냈다.

하버드와 예일은 미국 최고 사립대학의 쌍벽을 이루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미국 교육의 최고 이상이란 학부 과정은 학부중심교육을 실시하는 예일 대학교에서 마치고, 대학원 과정은 대학원에 역점을 두는 하버드에서 밟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폴은 바로 이런 과정을 끝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예수님의 말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것이었다. 오로지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한 문제의 답을 구하기 위해 그 많은 시간과 정력을 바치고,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그 많은 교수의 강의와 인류의 정신사에 빛나는 철학자의 저술에 몰입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그의 목마름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버드 대학원에서 우연히 유명한 한국 선승 숭산스님의 강연을 듣고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오랜 동안의 번민과 고뇌 끝에 출가하기로 마음먹고 한국에 와서 '현각' 스님이 되었다.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의 가르치심인 "진리를 알지니"를 바로 실행하는 길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는 외친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는 예수님의 가르침 때문에 출가한 것이다."( 2 권 58쪽)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별로 울 일이 없는 책인데 왜 그렇게 눈물을 흘렸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두 가지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첫째, 그 예민한 젊은이가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진지하고 치열하게 고뇌하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가슴아프게 보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출세가도, 성공의 문이 훤히 열렸는데도, 그 명석하고 아름다운 애인과 가정을 꾸며 '행복하게'살 수 있는데도, 오로지 진리의 길을 택한 그 숭고한 구도의 정열에 숙연한 마음, 흐르는 눈물을 어쩔 수가 없었다.

스님으로 일단 출가를 하고 그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리는 그의 편지를 읽는 동안은 특히, 나도 그 나이 또래 자식을 둔 처지에서, 감정을 걷잡을 수 없었다.

"제가 가는 이 길이 두 분이 원하시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열심히 살아서 저의 본성과 진리를 찾으면 저는 모든 중생를 도울 수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던져서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돕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입니까? 저는 지금 울고 있습니다. 흐르는 눈물 때문에 앞이 안 보여 벌써 몇 시간째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지 모릅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두분 가슴을 예리한 칼로 도려내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습니다."(2권 61쪽)

나는 지금 이 글을 옮기느라 자판을 두드리며 몇 번이나 오타를 쳤는지 모른다. 안일한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둘째, 학문적으로 최고 경지에 오른 벽안의 젊은이가 아시아적 가치, 한국의 얼, 한국의 문화를 발견한 후 그렇게도 고마워하고 있는데, 우리 한국인 대부분은 그 보물을 코앞에 두고도 무시하며 대체 무엇을 찾아 멀리 헤매고 있다는 말인가 하는 안타까움에 눈시울을 적시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우리는 종교적으로 문화적으로 "미국화"를 위해 그리 광분해야 하는가?

현각스님의 글을 읽을수록 한국 사람 상당수, 특히 한국 기독교인 대부분이 불교라면 거짓 종교, 사탄의 종교, 각목 들고 싸움이나 하는 종교, 가까이 하면 재수에 옴이라도 붙을 종교로 여기고, 불교와 기독교는 영원히 적대적일 수 밖에 없으므로 절에 불을 지르고 불상의 목도 자르고 해야 예수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불리리라고 여기는 참담한 현실이 더욱 크게 내 눈앞에 부각되어 나를 한없이 슬프게 했다. 전통적으로 종교심이 깊고 왕성한 한국에서 종교라면 그저 성경절이나 암송하며 길거리에서 큰 소리 치거나 전도지나 돌리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그 많은 기독교인은 언제 이 현각 스님이 도달한 경지의 근방이라도 갈 수 있을까 생각하니 답답함과 좌절감이 가슴을 눌렀다.

한국인이면 누구라도 그렇듯이 나 역시 한국이 겪은 36년의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통치를 통탄해 한다. 그러나 지금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서양의 종교적 식민지 통치를 볼때 더욱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무슨 못된 짓을 해서 남의 종교를 아무런 여과없이 그대로 짊어지고 우리 것은 모두 없애야 한다는 식민지적 발상에 얽매어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일제시대 우리 말, 우리 글, 우리 이름을 모두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던 것과 뭐가 크게 다른가?

현각 스님은 제국주의적 세계관에 기초한 기독교, 쉬운 말로 '꼭막힌 기독교'에서 해방된 사람이다. 현재 '꼭막힌 기독교'는 유럽이나 미국 동부에서는 보기 드물고, 오로지 미국에서도 교육수준이나 경제상태가 지극히 저급한 남부 일부지역, 그리고 이 지역 출신의 꼭막힌 선교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한국,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 일부 피선교지에서나 서식하는 기형적 현상이다.

현각스님은 스님의 길을 걷고 있는 자기가 결코 예수님을 떠나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참선수행이라는 길을 통해 예수의 가르침에 더욱 충실할 수 있음을 고마워 하고 있다. "부처님과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과 자비가 결국 하나"( 2권 177쪽)라는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다. 현각 스님의 이야기에서 기독교와 불교가 어떻게 한 사람의 삶에 이처럼 조화롭게 녹아날 수 있는가 하는 하나의 실증을 보는 것 같아 감격을 금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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