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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천상병 / 답게 / 1995년 11월
평점 :
책 머 리 에 (1987년)
나의 시는 비교적 수월케 씌어진다. 그것은 평소에 머리 속에 시 생각이 가득차 있어서, 펜을 들면 수월케 시가 되는 것이다. 평소가 문제다. 나는 사시사철 시를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런 것이다. 시는 언제나 생각해야 되는 것이다.여기에 모은 시들은 내가 사랑하는 시들이다. 독자들은 그것을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나의 처녀시 '강물'이 1950년대 때, 유일한 문학지였던 [문예]에 추천되었을 때 나는 요새 말로 하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비교적 일찍이 시를 쓴 셈이다. 그당시 나의 국어 선생님인 시인 김춘수 선생님을 나는 많이 따랗고, 독서광인 나는 자연히 시인이 되고 싶어졌던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무렵에 추천이 되고 해서 비교적 일찍 문학에 눈뜬 나는 대학교 2학년때 추천을 마쳤다. 1952년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문단에 등단하여 신문이나 잡지에 나의 글이 실린 것이다. 시가 본도고 평론은 부업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대학을 4학년 1학기에 마치고 각처에 취직을 하여 돈을 벌고 생계하였다. 그러다가 발표한 시집이 [새]가 되었다.
내 시 작품은 간단하다. 그리하여 여기 모은 시들은 새로 쓴 것외에 그동안 발간된 시집에서 대표적인 시를 모은 것이다. 대체로 좋은 시를 골랐다고 생각 되어진다. 독자들이여, 내 37년의 공덕이니 제발 따스하게 읽어 주기 바란다. 나는 시밖에 모르는 시인이다. 여러분들의 도움을 빈다. 시는 마음이다. 마음을 잘 쓰면 안 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나의 첫시집 [새]와 둘째 시집 [주막에서] 셌째 시집 [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등의 시에서 뽑고 최근에 쓴 시들도 포함되어 있다. 나의 제 4시집인 이 책이 많은 지지를 받을 것을 나는 바란다.
1987년 5월
천상병 씀
천상병 시인을 바보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대단한 영재로 그당시 서울대 상대를 나왔다. 1930년도 생이니 전쟁통에 대학을 다닌 셈이다.그때 서울대 정원은 몇 안되는 걸로 알고 있다.네이버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은 정보가 실려있다. 특히 1967년 군부정권에게 체포된후 모진고초를 겪었던 가슴아픈 경험이 눈을 끈다. 그 충격으로 이 천진난만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시인은 정신질환을 겪기도 한 모양이다. [만화 박정희]에도 천상병 시인이 고문받다가 미치는 장면이 슬쩍 비친다..
1967년 7월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가난·무직·방탕·주벽 등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그는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간결하게 압축한 시를 썼다. 1971년 가을 문우들이 주선해서 내준 제1시집 《새》는 그가 소식도 없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었을 때, 그의 생사를 몰라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문단의 마지막 순수시인’ 또는 ‘문단의 마지막 기인(奇人)’으로 불리던 그는 지병인 간경변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주막에서》, 《귀천(歸天)》, 《요놈 요놈 요 이쁜 놈》 등의 시집과 산문집 《괜찮다 다 괜찮다》, 그림 동화집 《나는 할아버지다 요놈들아》 등이 있다. 미망인 목순옥(睦順玉)이 1993년 8월 《날개 없는 새 짝이 되어》라는 글모음집을 펴내면서 유고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를 함께 펴냈다. (이상은 네이버 백과사전)
끝으로 천상병 시인의 시 중 좋아하는 시 '아이들'을 적어본다.
나는 55세가 되도록/ 나는 아이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을 좋아한다./ 동네 아이들이 귀여워서/ 나는 그들 아이들의 친구가 된다.
아이들은 순진하고 정직하다/ 예수님도 아이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못 간다고 하셨다/ 나는 아이같이 순진무구하게/ 지금같이 살았다.
아이들아 아이들아/ 크면 어른이 되는데/ 커도 순진하게 살아/ 내일을 살아다오/ 그러면 하느님이 돌보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