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띄우는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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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신영복 선생님의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을 읽고 책 한켠에 절절한 마음으로 '갇힌 사람은 오히려 접니다.' 라고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군대에 갔을 때 친구가 보내준 선물도 [..사색]의 원본을 사진으로 찍어만든 [ 엽서 ] 였습니다. 척박한 연탄재 무더기에서 채송화가 밝게 피어나듯 선생님의 글은 더욱 깊게 갇힐수록 더욱 맑고 깊어졌습니다.

사람은 가끔은 소유욕에서 안타까운 몸부림을 합니다. 저도 선생님의 새책이 나와도 좀체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 사색] 의 감동을 흩어버릴 듯한 불안이 저를 감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좋은 만남을 늦추는 것 밖에 안되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출소한 선생님이 전국을 돌며 쓴 편지와 그림은 [..사색]을 능가하는 깊이와 맑음이 깃든 글이었습니다. 두 번 세 번 재차 읽고 언젠가 부록으로 나왔다는 강연 테이프도 구해 듣었습니다. 책 속의 지명이 나올 때마다 지도책을 찾아 책의 여백에 그려보며 저 또한 선생님의 뒤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선생님이 감옥을 나온 후 7년동안 칩거하다가 처음 나들이를 한 곳이 고향산천인 '얼음골'이었습니다. 소설[ 동의보감 ]에서 허준이 스승의 몸을 해부했다는 그 곳! 선생님은 가고 싶은 곳에 혼자 갈 수 있다는 것에 가슴 설레이는 해방감을 느끼다가도 이미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다는 사실에 새삼 외로움을 느낌니다. 그러나 허준의 [ 동의보감 ]을 생각하고 스승 유의태를 떠올리고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의 애정과 헌신이 있었음을 자각하게 됩니다. 아마도 자신이 이제는 젊은 세대에게 무언가 전해주어야 하는데 하는 바램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지식을 전해주는 것을 교육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알튀세르의 연극이란 새로운 관객-배우의 생산이란 말을 떠올리며 '결국은 우리의 앞뒤좌우에 우리와 함께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으로써 깨닫고, 삶으로써 가르칠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이 책은 어떤 가르침을 편다기 보다 선생님이 걸어간 길, 생각하는 모습을 담담히 편지처럼 보여줄 뿐인 것입니다. 마치 '진실하게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이 가장 큰 교육이고 가르침이다'라는 걸 보여주는 듯 합니다.

명문으로 꽉 채워져 있어서 그리고 아주 깊은 사색을 통해 탄탄하게 간추려져 있어서 이 책을 요약하기란 불가능 합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천수관음보살의 손'만 펼쳐보겠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이웃의 안타까운 모습을  이야기 해줍니다. '등에는 아기를 업고, 양손에는 물건을 들고, 머리에는 임을 이고, 그리고 치맛자락에 아이를 달고 걸어가는 시골 아주머니를 뒤따른'이야기를 해줍니다. 꼬마 신영복은 머리에 인 임이 쿵 떨어지는게 아닐까 불안했다고 합니다.그래서 '저 아주머니에게 손이 하나 더 있었으면..'하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 불안이 아직도 남으셨던지 이 책속에 선생님은 아주머니에게 손을 하나 더 그려서 족자속에 담아두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동국대 박물관에 있다는 '천수관음보살' 사진 바로 뒤에 그 그림이 있습니다. '아! 저 힘든 생활 속에서도 아이를 놓지 않는 저 어머니의 마음이 보살의 마음이로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사색은 더 나아갑니다. '천수관음보살'의 그림을 보던 선생님은 손에도 눈이 있다는 걸 보고 맹목이 아닌 마음이 담긴 손만이 구원의 손이라고 말합니다.그러나 선생님은 다시 한번 더 나아가십니다. 남을 돕는 천개의 손을 도와주는 각각의 손에 또다른 천개의 손이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그러고 보면 그렇습니다. 어릴적 아주머니의 고통에 그림이라도 손을 그려준 것은 선생님이시지만 이렇게 선생님을 성숙시킨 것은 헐벗은 아주머니의 모습이었을테니까요. 따라서 진정 중요한 것은 손들이 살아있는 인간의 손임을 자각하는 것이고 그 손들의 평등과 소통이라고 말하십니다.그러면 여기서 선생님의 육성를 짧게 인용하고 글을 맺겠습니다. 아! 이보다더 지식인의 길을 명쾌히 밝힌 글은 없을 겁니다.

나는 당신의 질책을 무릅쓰고 천수보살 이외의 보살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그리고 지금은 어릴 때의 간절했던 그 '또 하나의 손'이 짐을 들어주는 손이 아니라 손을 잡아주는 손이기를 바랍니다. 천수보살의 손길이 아니라 다정한 '악수'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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