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박영훈 감독, 이미연 외 출연 / 씨넥서스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1. 비오는 새벽에 이 영화를 본다. 빗소리가 잘 어울리는 영화다. 군대에 있을 때 나는 부대에 있는 웅적사라는 절에서 주말마다 목탁을 치며 법회를 진행하는 주말 군종병이었다. 우스운 것은 나는 군대가기 전엔 절에 간 적도 없고 당연히 염불을 할 줄도 몰랐다는 거다. 그렇지만 군대란 시키면 해야 하는 곳이 아닌가?

어느 날 잘 아는 상병이 휴가에서 좀 일찍 복귀했다. 그는 수송부 정비병으로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행정반에서 묘한 전보가 도착했다. -"여동생 사망. 귀가조치 바람"- 전보의 당사자는 방금 즐겁게 돌아온 그 상병이었다. 행정반에서 나오니 그는 말없이 땅바닥만 보고있었다. 옷을 갈아입던 그는 아마도 전화 같은 걸로 이미 연락을 받은 듯 했다. 그가 중얼거리던 말이 아직도 선하다. "아침에 같이 라면을 먹었었는데..."

그가 돌아가고 묘하게 그 친구의 그림자가 따뜻한 햇살 속에 춥게 느껴졌다. 답답해서 주중에는 들르지도 않던 법당에 들어갔다. 나는 모른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은주'라는 이름을 주인없는 연등에 붙이고 나만의 49제를 시작했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목탁을 치다가 갑자기 바보같이 느껴져 뒤로 벌렁 누워버렸다. '내가 미친 놈이지. 이런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그런데 그 순간에 연등에 달린 종이가 나풀거리며 떨어지더니 내 가슴 위에 앉았다. 나는 아주 짧은 사이에 환상처럼 한 사람을 보았는데 그녀는 웃으며 "오빠 고마워."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후로 그런 시간은 곧 잊혀졌다. 그럴 수도 있고 나 같이 심약한 놈은 헛 것도 본다고 난 생각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니 잊혀졌던 그 짧은 시간이 떠오른다.

2. 영화를 쭉 이어 보지 못하게 된 것이 꽤 된다. 그러니 운 좋으면 한 두번에 보지만 대부분은 대 여섯 번에 본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처럼 아니면 영화를 조각조각 옴니버스처럼 보게 된다. 그래선지 나에겐 순간 순간 몰입할 수 있는 영화가 편하다. 차분하게 꼼꼼한 장면을 내놓는 영화가 좋아진다. 이 영화가 그런 영화이다.

이 영화는 어찌보면 반전이 있는 영화이기도 한데 나 같은 나눠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두편짜리 영화로 느껴진다. 논리적인 역전에서 오는 충격이 온다기보다는 '누구나 저마다의 사연을 지니고 산다' 또는 '우리는 모두 각자의 외국어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다가온다.

나 역시 공부방 자원봉사를 하다가 좋아하게된 여선생님께 편지를 썼는데 한달 후에 친한 선생님과 결혼한다는 청첩장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말이 없었던 그 선생님은 평소 형처럼 알고 지내던 선생님과 미래를 약속했었던 것이다. 이런 일을 겪고보면 지금까지의 모든 만남이 되짚어 다시 읽히기 마련이다. '아! 그 이야기가 그런 말이었구나!'이런 느낌을 얼마나 많이 겪게 되던가!

그런 면에서 반전 영화는 삶의 중층성이라는 진실을 보여준다. 이전에는 이런 영화는 퍼즐처럼 분해하고 재결합하는 무엇이었는데 이제는 삶의 애환으로 느껴진다. 전에는 배신감을 느꼈다면 이제는 품고 같이 아픔을 공감하고 싶다.  

3.  이 영화는 '빙의'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 누군가의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온다는 이 요상한 현상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를 전제로 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나눠질 수 있는 것일까? 불교의 윤회도 기독교의 영혼론도 이런 분리를 전제로 하고 전설의 고향에서도 육신을 벗어난 귀신을 이야기하지만 과연 이 영혼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갑자기 동양적인 것인지 서양적인 것인지 조차 헷갈리는 '빙의'가 궁금해진다. (아마도 '빙의'란, 우리가 지닌 개념 속의 빙의란 무척 서양적인 심신 이원론적인 무엇일 것 같다.)    

여하튼 빙의라는 것이 일어난다면-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정신 분석가인 에리히 프롬의 [희망의 혁명]을 보면, 정신 분석가들은 빙의라는 현상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구절이 있다.- 우리에게 육체와 영혼 중 어느 것이 우리의 정체성에 핵심적인 것일까? 영혼이라는 것이 육체의 반복적인 습관과 기억에서 유발된 모종의 현상이라면 또한 어떨 것인가?

4. 대진(이병헌)에게서  호진(이얼)을 발견하게된 인수(이미연)가 이병헌에게 마음을 여는 계기는 결국 이병헌의 말에 있었다. "집안에 있는 모든 사물들에 새겨있는 기억들... 우리가 사랑하면서 살았던 증거라구. 내가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이 대사는 내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는데, 모든 사물들에 기억할 만한 것이 없다면 우리는 사랑하는 것도 사는 것도 아니라는 나 자신을 향한 비난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달콤한 인생]에서도 이병헌은 아주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이병헌은 빛난다. 맵시좋은 이미연은 이병헌과 아주 좋은 호흡을 보여주어서 영화 내내 나는 무척 즐거웠다. 이쯤해서 리뷰를 마쳐야 겠는데, 나는 일부러 핵심적인 이야기는 적지 않았다. '백문이 불여일견' 마지막에 나오는 이병헌의 명대사를 보시길 바란다. 이런 모습을 보고 어찌 이병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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