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한 할리우드 - 악동 감독 케빈 스미스의 미국 문화 뒤집기
케빈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간혹 영화 리뷰를 쓰기는 하지만 영화팬이라 할 수는 없다. 영화팬이라면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나는 원시인이나 다름없다.  영화를 보다가 이해가 안되면 반복해서 보고 캐릭터의 상황을 한번 더 생각해보기도 하고, 내가 모르는 문화 차이나 사회적인 배경을 찾아내기도 하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소설을 보듯이 영화를 보는 사람이다.

연초에 잘 본 영화가 [프리다]와 [매그놀리아]였다. 물론 완숙한 장인의 냄새가 풍기는 [프리다]와 세련되었지만 설익은 영화인 [매그놀리아]를 같이 놓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사건을 병립시키면서도 긴박하게 결말을 향해 돌진하는 [매그놀리아]를 보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 영화는 톰 크루즈에게 아카데미상을 안겨준 영화로 유명하다.  따라서 이 영화를 만든 젊은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의 [부기나이트]에 관심이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부기나이트]를 구입하려하니 15000원 내외로 비싼 편이었다.  빌려보려는데 8000원짜리 이 책을 사면 보너스로 끼워준다고 하여 산 것이 이 책의 구매 동기이다. 

사실 그런 우연으로 생각지도 않은 이 책의 리뷰까지 쓰고 있다. 내가 평소라면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책을 두 번이나 읽고 있는 것은 종교학과의 한 교수님이 생각나서이다. 종교학과 대학원에 낙방한 후 졸업에 즈음해서 찾아뵈었는데 교수님의 방에서 랩이 흘러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미 환갑이 다된 교수님은 엘리아데의 친제자이시고 진지한 사색으로 종교학계에서는 유명하신 분이셨다. 그러니 90년대 중반 랩이 도입되는 초창기로 젊은 나조차도 서먹서먹한 음악을 노교수님이 듣고 계시는게 얼마나 이상해 보였겠는가?

 "이건 지금까지 듣던 노래와는 다르다네. 솔직하게 자기 감정을 마구 토해놓지. 그리고 논리 상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네. 그런데도 계속 듣고 있으면 그런 혼돈 속에서 무얼 얘기하는지가 전달되는 걸세.이건 젊은 음악이야." 어쩌면 이 혼돈 속의 전달이란 것이 이 책의 방식이자 그리고 젊은 감독들의 영화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동년배의 감독의 음담패설과 재담을 듣고 있으니 똑같은 나이의 친구들 [여고괴담2]의 민규동이나 [범죄의 재구성] [타짜]의 최동훈같은 친구들이 떠오른다. 이런 친구들의 행보를 볼 때, 사실 케빈 스미스가 대단한 친구는 아니다. 서른이 넘어서도 이런 식의 구라를 계속 치는 것은 그가 만화가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천성이 유머스럽고 재기가 있기 때문에 주변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일뿐 이다.

이런 식의 평은 그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비속한 일상사와 천박한 유모어를 주체적인 사고와 섞어적절하게 변주하는 것은 아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코웃음을 칠 때쯤 토핑처럼 쌈빡한 감동을 뿌려대는 그의 수다는 무척 만화적이면서도 지적이다. 그러나 같은 나이의 우리나라 감독들을 생각할 때 케빈 스미스가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좋은 물에서 뛰어노는 행운이 있었던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케빈 스미스처럼 아무 것도 아닌 걸로 우려먹는 리뷰가 되기 전에 눈에 띄는 세 가지만 적어보려 한다.

(1)  이 책은 30대초반의 음담패설이 섞인 수다스런 책으로 모양이 갇춰진 영화평이나 감독의 세계관을 보려는 사람이 살 것은 못 된다. 그렇지만 그냥 수다를 즐기기 위해, 또 젊은 감독의 눈에 비춰진 할리우드의 모습이 어떤지를 살피는 것은 유쾌한 일이다.

특별히 케빈 스미스를 모르는 내 입장에도 새 영화를 만들기 위해 배우들을 섭외하고 인터뷰하는 1장은 즐거웠다. 특히 찰리 신이나 X파일의 멀도로 유명한 데이비드 듀코브니와의 인터뷰 장면은 흥미진진하다. 또 다른 장에도 호기심을 일으키는 몇 장면이 있다.  너무도 유명한 톰 크루즈와의 인터뷰랄지 케빈과 절친한 사이인 벤 애플렉과의 인터뷰(벤 애플렉은  [진주만] [굳 윌 헌팅] 등으로 유명한 배우이다.)는 당연히 관심이 가는 일이다. 톰 크루즈와의 인터뷰는 상당히 긴 편인데 꽤 읽을만하다. 또 [스파이더맨][스타워즈 에피소드 :클론의 습격]에 대한 자기 나름의 영화평도 있는데 톡톡튀는 글이어서 즐겁다. 아마 이런 재능이 오늘의 그를 만들었지 않나 싶다. 

(2) 케빈 스미스는 왕 팬과 안티가 극명하게 갈리는 감독이다. 따라서 어떻게 이렇게 형편없는 영화를 계속 찍어낼 수 있느냐고 따지는 안티 글에 답변하는 케빈의 글이 눈길을 끈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안티 글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영화를 계속 찍을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영화가 영상미나 내용이나 전혀 발전하지 않는 것 같은데도 어떻게 똑같은 영화를 계속 찍어댈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답을 공개하겠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돈을 까먹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는 남의 돈를 까먹은 적이 없다. [몰래츠]에서 그럴 뻔 했지만, 그것도 비디오로, 또 최근엔 DVD로 한몫 잡았다.우리는 흥행 기록을 경신하는 초메가 히트작을 만들지는 않았지만, 영화를 만드는 데 돈을 많이 쓴 적은 없다. 그래서 투자 비용과 수익을 비교해 생각하면 영화사에서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배우들이 설 무대를 만들어주고 돈을 까먹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찍고 또 찍고 또 찍을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계속 더 많은 제작비를 들여 결국 1억 달러 넘게 돈을 쓰는 감독도 있다. 이익을 내기 힘든 지점에 이르는 것이다. 나는 1달러 99센트짜리 뷔페식당에서 게걸스럽게 먹는 사람이지만, 남의 돈을 쓰는 일에는 책임감이 아주 강하다. 많은 예산도 필요 없다. 한 시간 반 동안 사람들이 떠들기만 하는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대화 장면은 싸게 먹힌다. '폭발' 장면은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나는 그런 영화에서는 겸손하게 뒤로 물러선다. 오럴섹스를 놓고 이야기하는 중에 폭발같은 게 일어날 턱이 없으니까."(32쪽)

(3) 케빈 스미스의 인물평을 유심히 보면 자신을  잘 평가해주고 절친한 사람은 높게 평가하고 자신을 깔보는 사람은 깔아뭉갠다. 예를 들어 찰리 신이나 톰 크루즈 같은 거물급은 적당히 눙치고 아부하면서 만만한 리즈 위더스푼만 갈구는 걸 보면 참 비겁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한 걸음 떨어져 놓고 생각해보면 온통 음담패설과 자기과장적인 허풍으로 가득 찬 이 글을 보면서 리즈에 대한 인물평만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이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다. 또 그런 글을 쓰고 있는 케빈도 자존심에 상처받는 범부로서 짜증을 내는 자신을 부각시키는 만화가적인 재치를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케빈은 만약 리즈 위더스푼이 자기 영화에 뛰어들기라고 하게 되면 섀넌 엘리자베스에게 보내는 찬사를 온통 늘어놓을 것이 분명해보인다. 하여튼 비겁한 작자야. 너, 케빈 스미스. 이 소리를 들으면 아마도 케빈은 씩 웃으면서 뻑큐 싸인을 날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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