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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마지막 날 ㅣ 분도소책 59
게르하르트 로핑크 지음, 이경우 옮김 / 분도출판사 / 1994년 3월
평점 :
품절
어제 완주의 송광사에 가니 아이들이 절마당에 있는 연못에 돌을 던지고 있었다. 2미터정도나 될까 작은 연못에는 개구리들이 있었는데 짝짓기하는 놈도 보였다. 아이들은 개구리를 맞춘다고 연신 돌을 던지는데 말려도 잠시뿐 또 다른 녀석이 돌을 던져 속상해하며 돌아서고 말았다.
밤에는 친척집에 들렀다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예수를 채찍질하고 뺨을 때리고 손과 발에 못을 박는 장면에서 나는 예전의 나를 떠올렸다. 어렸을적에 가장 많은 놀았던 것이 개구리, 메뚜기 잡기 였다. 때로는 잡은 개구리를 못에 꿰어놓거나 배에 바람을 넣기도 했는데 로마 병정이 예수에게 하는 짓이 바로 그런 행동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을 사람이라 여긴다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겠는가?
책장을 정리하다가 예전에 사놓은 이 조그만 70쪽이 채 안되는 작은 책을 읽게 된 것은 이런 연유에서이다. 저자인 게르하르트 로핑크는 유명한 교과서 [평신도를 위한 양식비평학 : 당신은 성서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의 저자이기도 하다. 아마도 양식비평학이란 것이 무엇인지 느껴보기위해서 이 책을 샀던 것 같은데 팜플렛 같이 얇은 책이 볼품없어서 지금까지 버려진채 있었던 것이다.
책에서 관심을 끄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1) 예수의 수난을 몰고온 유대인과 예수의 갈등은 결국 복음주의와 율법주의의 갈등이다.
(2) 유다의 배반의 동기와 과정은 명쾌하지 않다.
(3) 예수가 체포된 후 예수가 참석치 않은 상태에서 산헤드린, 즉 유대의 최고회의에서 심야회의가 열렸으나 증인들의 의견이 일치되지 않아 곤혹스러웠다.
(4) 결국 산헤드린에서 예수를 사형죄에 해당한다고 보게되는 것은 예수가 메시아임을 인정한 바로 그 사실때문이다.
(5) 산헤드린은 사형집행권이 없었으므로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인도되었으며 유대인들은 예수가 정치적인 메시아를 자처한다고 무고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유대인의 농간에 걸려들기 싫어서 갈릴리의 분봉왕인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다시 예수를 인도한다.
(6) 헤로데 역시 예수가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님을 알고 다시 빌라도에게 인도한다. 빌라도는 빠스까 축제에 죄인 한명을 석방할 수 있는 관습을 이용해서 예수를 풀어주려고 하나 유대인들은 빌라도를 협박하여 바라빠를 석방하게 한다. 결국 예수는 십자가형을 언도받는다.
(7) 로마의 풍습대로 십자가형의 부가형으로 태형이 먼저 시행되었는데, 태형 역시 혹독한 처형으로 태형의 받는 자들의 뼈와 내장이 드러날 정도여서 생명을 부지하기가 힘들었다.
(8) 십자가형은 가장 가혹하고 고통스러운 처형으로 로마인들에게는 행해지지 않았으며 가장 수치스럽게 여겼다. 예수는 가로목만 짊어지고 갔는데 십자가의 세로목은 처형장소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다.
(*** 이 책의 십자가 처형에 대한 서술과 [예수는 역사다]의 십자가 처형 장면을 결합하면 어느정도 디테일을 포착?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외형적으로 보아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두가지에서 오류가 있는데 예수가 온전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간다는 것과 손바닥에 못을 박는다는 것이다.이 책들은 예수는 가로목만 짊어지고 가며 손목에 박혔을 것이라고 말한다.)
(9)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을 달고 강도 둘 사이에서 십자가에 매달리게 된 것은 조롱의 상징적 표현에 해당한다. 왕이 항상 경호원을 대동하듯이 유대인의 왕인 예수는 날강도 둘을 대동하고 죽는다는 경멸어린 조롱인 것이다.
(10) 예수의 마지막 말인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는 해석하기 난해한 부분이지만 시편의 22장의 말씀으로 "당신은 나의 하느님이시옵니다-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로 보는 것이 좋다. '이는 분명 그분의 일생이 실망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무한한 고통중에서도 무진장 깊은 하느님 신뢰 속에서 마무리되었음을 굳혀준다.'(58쪽)
(11) 가장 감명 깊은 부분 : '수난사를 봉독하는 사람은 늘 이야기의 어떤 배역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는지를 거듭 물어야 한다. 만일 그가 예수와 자기만을 동일시한다면 그는 예수의 적대자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존재가 될 것이며 거기서 이야기되는 갈등의 심오함을 전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그가 당시에 최고의회나 빌라도가 하던 것과 똑같은 배역을 늘 새삼스럽게 하고 있음을 인식할 때 비로소 그는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67쪽)
배암발 : 내가 괴롭히던 그 개구리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난 왜 아이들을 끝까지 말리지 못하는가? 예수는 이런 걸로 괴로워 했던 사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