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 역사의 가장 위대한 수수께끼를 추적한 BBC 다큐멘터리
톰 라이트 지음, 이혜진 옮김 / 살림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도올 선생님의 [요한복음 강해]를 읽고 과연 예수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궁금증을 가지게 되어 읽게 된 책이다. 특히 톰 라이트는 성공회 주교이자 뛰어난 성서학자로 관심이 갔다. 그러나 이 책은 BBC 다큐멘터리를 저자가 진행한 후 덧붙여 쓴 책으로 구체적인 사실이 많지도 않고 신학적인 면을 상세히 묘사해 주지도 않는다. 다만 상식적인 언어로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줄 뿐인 것이다. 결국, '1부,예수-과거와 현재'는 역사적 예수를 추적한 것으로 아주 간략하게 스케치만 해주는 셈이 되어 갈증만 더 일으킨 셈이 되었다.

다만 , 40쪽부터 비롯되는 탕자의 비유에 대한 설명은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에 대한 깊은 성찰과 예수의 가르침이 그 당시에는 얼마나 혁명적이고 강렬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좋은 설명이다. 이 부분은 내가 이 책에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부분이었고, 평소 궁금하던 부분이 풀린 셈으로 중요하게 생각되어 꽤 길지만 인용한다.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우리는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 대통령이 조깅하는 모습을 심심치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가 살던 시대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는 조금만 빠르게 걸어도 품위를 잃는 행동으로 간주되었다.

예수가 전해주는 이야기 중에 존경받던 한 원로가 거리로 내달리는 이야기가 있다. 당시의 문화적인 배경을 생각한다면, 이 사건은 마치 총리가 수영복을 입고 기자회견을 하는 일에 맞먹는 충격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이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제대로 이해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처음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이 이야기는 '달려 나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라 불렸어도 좋았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탕자의 비유'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두 아들을 가진 한 남자가 있었다.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몫에 해당되는 재산을 요구한다. 그는 상속분을 그 즉시 가져가려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었던 당시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미리 돈을 요구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당시 사회에서 이러한 요구는 마치 '나는 당신이 죽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이는 즉 아들이 아버지를 저주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요구를 수용한다. 그가 한 말은 사실상 "알았다. 날더러 이제는 좀 빠져 달라는 말이구나. 기꺼이 그렇게 하마. 여기 네 상속분이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어린 아들은 자신의 몫인 재산을 팔아(이러한 행동 역시 분명 아버지의 마음을 몹시 쓸쓸하게 했을 것이다.)외국으로 떠난다. 그 후에 펼쳐질 일은 뻔했다. 아들은 돈을 탕진하고 운도 다하여 결국 돼지를 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유대인 청년이 추락할 수 있는 최저점이었다. 그러다가 그의 마음 한 편에서 집으로 다시 돌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움튼다.

이것이 두 번째 충격이다. 당시 문화에서는 불명예를 입은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를 저주했고, 가문에 먹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집으로 돌아갔고, 놀랍게도 기적이 일어난다.이제는 노인이 된 청년의 아버지가 그를 맞이하기 위해 거리로 달려 나왔던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며 온 마을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푼다.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하던 당시 사람들이 아버지의 행동에 놀란 것은 당연했다. 특히 그의 형은 격분했다.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그는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불만을 표시함으로써 아버지에게 망신을 준다. 현대 문화에서 조차 공적인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버릇없이 구는 아들을 받아주기는 힘들다. 그러나 아버지는 큰아들을꾸짖는 대신 부드럽게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리고 명예롭지 못한 자신의 행동을 이해해 주기를 원했다. 다시 한 번 아버지는 자신의 권위를 포기했던 것이다.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찾았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하지 않겠느냐?"

이 이야기가 주는 마지막 충격은, 이야기가 조금 일찍 끝나 버린다는 데 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증을 남기고 끝나버린 영화처럼 예수는 이야기를 중간에 멈춰 버린다. 특별히 당시의 문화에서라면 사람들은 더욱 궁금해 했을 것이다. 큰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왔을까? 이후에 이들의 삶은 어떻게 펼쳐졌을까? 그러나 이 이야기의 결말은 오늘날의 우리와 마찬가지로 당시의 청중들에게도 스스로 해결해야 할 몫으로 남겨졌다. ....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이런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멍한 느낌이 있다. 아름다운 이야기인 것이다.이 이야기에 감동을 먹은 내가 크게 느낀 것은 두 가지다.

 우선, 이 이야기 속의 아버지는 '아버지는 엄하고 어머니는 자애롭다'는 식의 유교적인 아버지가 아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과거와 죄를 모두 포용하는 지장보살과 같은 아버지인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라고 기도를 할 때 이렇게 따스한 봄햇살같은 아버지로 우리는 부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러고보면 기독교는 부성적인 전쟁신을 섬기는 종교라는 식의 판단은 정말 안타까운 편견이다.

또, 진부한 질문이지만 믿음과 지식과의 관계는 과연 무엇인가 라는 의문이 든다. 분명한 것은, 유대인들의 문화나 당시의 상황을 알지 않는한 이런 드라마를 결코 읽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믿음은 상식과 교양을 토대로 더욱 풍요롭게 자라날 수가 있다.

감동적이긴 하지만 이 책이 아쉬운 점은 있다. 병마개를 딸뿐 음료수를 마실 수있게 하지는 않는 점이 안타깝긴 하다. 책을 읽고나면 저자가 무척 학식이 있으며 그 학식을 독단적이지 않으면서도 감동적인 필치로 우리앞에 펼쳐줄 수 있는 능력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면 무엇을 할 것이냐? .저자는 저자의 주된 저서 2권을 읽기를 권하고 있다.

다행히 두책은 크리스챤다이제스트에서 번역하였다. 1권[신약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2권[예수와 하나님의 승리]-1권은 신약시대의 유대를 쓴 것이고 2권은 역사적 예수를 탐색한 것이다. 합쳐서 5만원정도 되는 걸 보면 방대한 서적인듯 싶다. 이 두 책은 나에겐 좋은 정보인 셈인데 최근의 도올 선생님의 책 2권 [요한복음 강해]와 [기독교 성서의 이해]에 짝을 이루는 뛰어난 신학자의 책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두 책을 도올 선생님의 책과 교차해서 읽음으로써 좀더 생각을 하며 읽을 수 있지 않나 싶다.(이 책들은 알라딘엔 없고 YES24엔 있다. 문제는 돈이지만!)

끝으로 톰 라이트는 자신의 책과 더불어 꼭 읽어보길 원한다면서 읽을만한 책을 적어놓았는데 다행히 그중 절반은 번역되었다. [사복음서의 영성](CLC) : [역사적 예수의 진실](대한 기독교서회) : [예수 새로보기](한국 신학 연구소) : [네 편의 복음서, 한 분의 예수](UCN) ; [역사적 예수](한국 기독교 연구소) : [예수 : 사회적 혁명가의 전기](한국기독교 연구소) : [누가 예수를 부인하는가?](CLC) : [예수와 유대교] (크리스챤다이제스트) : [복음서와 예수](대한 기독교서회) : [유대인 예수의 종교](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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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코멘트 2008-08-0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쎄요.. N.T.라이트 교수를 도올과 '짝을 이루는' 신학자라고 생각한다면.... 라이트는 펄쩍 뛰고 남을걸요.. 그리고 라이트는 3권도 이미 출간했습니다("하나님의 아들의 부활").

하늘연못 2008-08-05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지요. 저도 도올 선생님의 책을 읽고 미심쩍어서 잣대가 될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이 책을 읽은 것입니다. 짝을 이룬다는 의미는- 지금 생각해보니 잘못된 단어선택이었습니다.- 입장이 달라 논리적으로 대척점에 있거나, 중립적이어서 척도가 될수 있는 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독보적인 성서학자인 라이트는 놀라울 정도로 방대하고 세밀합니다. 또 도올 선생님과 입장차도 큽니다. 다만 통찰력이란 면에서는 어떤 경우엔 통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라이트의 저서는 읽는 기쁨을 줍니다. 4권이 어서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