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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 영혼의 허기를 채워줄 하룻밤의 만찬 ㅣ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
데이비드 그레고리 지음, 서소울 옮김 / 김영사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이 책을 보게 된 것은 두가지 인연이 있다.
우선 교회다니는 사촌 동생이 선물을 해왔다는 것
둘째 이책이 리스트로 벨의 [case]3부작과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와
더불어 복음주의 단체에서 좋은 책으로 꼽힌다는 말 때문이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 두번째 이야기는 과장된 것이다.
적어도 [case]와 비교해볼때 기독교에 대해 다루는 부분도 협소하고
'예수를 영접하세요'라는 기본 멘트에 충실한 가벼운 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무난하고 읽을 만한 좋은 책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니 바라건대, 지적 호기심이 많으신 분이라면 이 책을 읽고
[case]의 번역본인 [예수는 역사다]를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책을 펴기 전에 우선 저자 데이비드 그레고리를 보자.
우선 저자 이름에서 우리는 기독교 냄새를 물씬 맛볼 수 있다. 데이비드는 성서 이름으로는 다윗이고 그레고리는 교황이름 아닌가? 참으로 강렬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이력은? 다양하다. 처음엔 경영학을 전공하고 해당분야에서 10년동안 일했다.
그러다가 종교학과 커뮤니케이션학을 전공했고 최종적으로 다시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이러고 보면 이 책은 종교학 + 신학의 내용을 커뮤니케이션에 염두에 두고 가공해서
경영학적으로 판매한 셈이된다.
나는 우선 이 책이 무신론자인 주인공 닉이 예수의 초대를 받아
밀라노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예수를 사기꾼이라 의심하는 걸로
시작하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예수의 제자인 도마나 형제인 야고보도 부활을 의심했었지 않은가?
적어도 성만찬을 기독교의 핵심으로 보는 나에게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예수를 만나기 적절한 장소란 생각이 들었다. 예수는 삶이란 지상의 잔치 또는 식사에 참석하신 것이며 우리의 삶과도 같은 맹맹한 물을 뜨거운 피와 같은 포도주로 바꾸고 척박한 지상의 빵을 이웃과 나누는 사랑을 가르치신 삶이 아니었던가? 그런 아름다운 사람 예수와 만나 저녁 식사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충만한 체험임에 분명하다.
또 마음에 드는 것은 닉과 예수의 관계를 보듯 우리와 예수와의 관계를 불신과 연민의 관계로 설정한 점이다.
닉의 속마음은 이런 거다. '니가 예수라니 무슨 개소리냐? 그리고 그렇다고 해도 뭔 상관이냐?'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여기서 한마디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적어도 최근에 미국 복음주의 단체에서 가장 좋은 책으로 꼽힌 책들은
기독교인이 아닌 나조차도 현기증이 날만큼 살벌하다.
'도대체 미국인들은 도대체 어디까지 뒤흔드는거야' 라고 생각되는 질문까지도 한다.
예를 들어 필립얀시의 [우리가 미처 몰랐던 예수]에서는 예수의 탄생은 말할 것도 없고
산상수훈조차도 요즘 세상에 맞지 않는다며 뒤흔들고
리 스트로벨의 [예수는 역사다]에서는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하는 걸 보면
미친 사람이 아닌가?' 라고 심리학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처절한 질문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찾아가는 것이다.
미국은 기독교가 저변문화로 깔려있으나 동부를 제외하고는 점차
개인주의적인 무신앙으로 넘어가고 요가, 선불교, 명상 등의 세계 종교와
과학주의, UFO신앙 등의 신흥 종교로 다변화되는 상태가 아닌가 한다.
예를 들어 1990년대에 무려 6번이나 우승한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는 감독과 조던을 중심으로 선불교의 명상을 통해 경기력을 극대화 시켰다고 한다. 또한 웰빙 열풍이나 뉴 에이지 종교운동은 힌두교나 요가 수행을 기반으로 한 경우가 많다. 사상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미국의 기독교는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 신학 안에서도 예수 세미나를 중심으로한 진보적인 학자진영은 새로운 연구방법론을 통해 기존의 신학을 대체하는 대중적인 기독교 신학을 표방하고 대대적인 이론적인 공략을 해왔다.
따라서 보수적 기독교진영은 윤리적인 그리고 전통적인 신앙인을 중심으로 기독교를
이성적으로 실증적으로 방어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생각할 때, 이 책의 처음이 불교나 힌두교, 이슬람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힌두교는 범신론이니 문제고, 불교는 무신론이니 문제이며,
이슬람은 가짜 선지자니 문제라는 식의 공격은 격이 많이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기독교를 결론으로 놓고 시작하는 순환논쟁인데 저자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단지 저자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기만 하면 된다.
즉, 거꾸로 예수는 최후의 선지자가 아니다고 이슬람은 마호멧을 치켜올릴 것이고,
예수의 사랑은 자민족 중심, 인간중심의 사랑으로 중생의 사랑을 무르짖는 붓다에 비해
생명 존중이 부족하다고 불교는 웃음지을 것이며,
현대 우주론 중의 순환우주니 다원우주를 떠받칠 수 있는 것은 우리 밖에 없다고 힌두교는 부르짖을 것이다.
그러니 저자가 책의 서두를 그런 식의 견강부회로 소진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는 귀담아 들을 몇가지 핵심을
아주 매력적으로 말하고 있고 이것이야 말로 이 책을 좋은 책으로 만든다.
(1)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
(2) 현세의 모든 악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은 데서 비롯하였다.
(3) 따라서 무엇보다도 속죄를 통한 관계 회복이 중요하다.
(4) 그런데 인간들이 알아서 속죄할 인간들인가? 어디로 갈 줄도 모르고 헤매고 있다.
(5) 따라서 대신 속죄하려고 독생자 예수를 보냈다.
(여기서 참고로 독생자의 의미는 하나님의 모든 권세를 가졌다, 즉 하나님이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의미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유일무이한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라는 뜻이다.
즉, 예수는 단 하나의 결정적 증거이다.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적어도 보수적인 기독교 신학에서는!)
그런데 당연히 우리의 무신론자 닉은 '뭐할려고 예수가 죽어요?'라고 묻는다.
내 생각에는 이 부분이 재미도 있고 감동적인 장면인데 예수가 간곡하게 말한다.
'당신이 사랑하는 딸이 마약을 하고 누군가를 죽여서 살인죄를 저질러서 사형언도를 받았다.
그런데 그 죄를 대신 당신이 질 수 있다면 대신 죽겠느냐?"고 되묻는다. 닉은 우리같은 한국인에게는 퍽 익숙한 대답을 한다. 자신은 그래도 오래 살았고 딸은 남은 인생이 창창하니까 대신 죽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예수가 하신 이야기가 조금 찡한 얘기다. 당신이 사랑하는 딸을 위해 죽었듯 하나님도 사랑하는 인간들을 위해 예수로 나타나시고 죽으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예수는 유대교의 희생제의와 구약의 예언을 이루기위해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피상적이고 도식적인 정치사회적인 이야기보다는 훨씬 절박한 심정과 애틋한 사랑이 담긴 해석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책을 이렇게 끝까지 세밀하게 리뷰를 쓴다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이다.
좋은 책이니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고 불신자인 나는 여기서 아듀를 고할까 한다.
참고로 이 책 외에도 신이나 예수와 직접 만났다는 책들이 있는데
유명한 뉴에이지 서적인 [신과 나눈 이야기]시리즈도 있고
최근 명상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문화영 선생의 [예수인터뷰]가 있다. 참고 하시길!
(*** 배암발 1 :사실 예수를 직접 만났다는 이런 책들이 난 당최 적응이 안된다. 그게 진짜 예수인지 자신의 무의식의 반영인지 난 판정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해결은 인문학 적일 수 밖에 없는데 예수가 말했던 하나님의 나라랄지 사랑 등의 핵심개념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그것에 맞게 즉 성서의 문맥에 맞게 이야기를 한다면 예수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참뜻이란게 어디 정답이 이거다라고 적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의 미혹됨은 크다! 그 미혹과 혼돈 속에서 섣부른 자기 확신만이 판을 치는게 아닐까?
그러고 보면, 헷갈리는 상황이 더 있는데, 예를 들어 얼마전에 불우하게 죽은 정다빈 양이 마지막 글에서 주님의 은혜를 받았어요라고 고백했는데 성서에 나오는 그 은혜인가? 그냥 기분좋은 상태를 은혜라고 개인적인 단어선택을 했지 않나? 다빈 양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다빈 양이 남긴 말은 헷갈린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다. 적어도 지성적으로는 해결되어야할 문제인 것이다.이런 인문학적 성찰이 없고서는 거짓 선지자들과 종교가로 끊임없이 후달려야 하는 것이 21세기 한국인이 겪는 실제 상황이다. 미혹과 혼돈이 또다른 미혹과 혼돈을 만날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도처에 널려있는 현실일때 나는 어디에 서있어야 하는 걸까?
그러면 이쯤해서, 까놓고 말하자. 그럼 [예수와 함께한 저녁식사]가 [예수인터뷰]보다 나은 책인가? 지금 내 수준에서는 알 수 없다가 그 답이다. 외국에서 유명한 책이라고 좋은 책은 아니다. [다빈치 코드]가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사실은 아니듯이!)
***배암발 2 : 책 끝에 나오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힐때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에 못박혔다는 사실을
[예수는 역사다]의 10장 '의학적 증거'에서 논증하고 있다. 이런 걸 보면 이 책은 그냥 막 지어낸 것은 아니고어느 정도 기본적인 학문적 성과를 염두에 두고 구성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여하튼 예수가 십자가에서 어떤 고통을 받았는지는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니만큼 [예수는 역사다]를 서점에서라도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예수는 역사다]는 [예수는 신화다]와 완전히 다른 책으로 복음주의 입장에서 기독교를 변호하는 책이다. 생각에 따라서는 세속화로 보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