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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연의 1
나관중 지음, 김구용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7월
평점 :
청나라때(1679년)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군더더기를 빼고 간결하게 다듬은 것이 모종강 본이라고 한다. 1974년 봄, 모종강본을 한학자인 김구용 선생이 20여년의 기간을 거쳐 번역했다. 가장 원문에 충실한 번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개정판이 1981년 나왔다가 다시 2000년에 다시 개정판이 나왔다. 따라서 이 책에는 40년의 세월이 묻어있다. 처음에는 고졸한 문투였으나 지금은 퍽 단아한 문체로 바뀌었다. 또 책을 펼치면 옛 그림과 지도가 눈을 끌고, 뒤쪽에는 인물 사전이 붙어있어 읽기도 좋은 편이다.
한국인에게 아니 동아시아인에게 [삼국지연의]라는 것은 삶이다. 따라서 평생 적어도 한번쯤은 읽게 되는 책이고 설혹 읽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관우, 장비, 유비, 조조, 제갈공명이라는 주인공 이름은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니 [삼국지연의] 시장이 거대한 것이 당연하다. 서점에 가보면 만화부터 다양한 번역자의 삼국지가 있다.
여기서 난감하면서도 행복한 질문은 누구 것을 읽어야 하는가 이다. 나는 여기서 질문을 약간 틀어보고 싶다. 과연 [삼국지연의]는 어떤 특성을 가진 책인가? [삼국지연의]의 특성을 안다면 누구의 삼국지를 읽어야 하는가도 알 수 있다고 생각된다. [삼국지연의](이하 편의상 삼국지)는 크게 두 가지 성격이 있다고 본다.
첫째, 대중들의 입을 통해 빼고 더해지는 과정 속에서 생명력을 얻은 작품이다. 따라서 많은 판본 중에서 무엇이 정본이다 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당연히 한국 사람의 눈으로, 한국 사람의 가슴으로 빼고 더해진 삼국지가 나와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래야만 삼국지는 또 하나의 자식을 통해 생명을 더해가고 가치를 이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장정일, 이문열의 삼국지가 덜 보수적인, 또는 보수적인 한국인의 시각에서 더하고 빼진 한국 사람의 눈으로 그려진 삼국지에 속한다면, 황석영의 삼국지는 재미를 더하고 가락을 다듬은 한국 사람의 가슴으로 그려진 삼국지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나는 빼고 더해지는 과정에서 생명력을 찾아야 한다면 장정일과 황석영의 삼국지의 손을 들고 싶다. 황석영을 읽고 장정일을 읽어야 하겠지만!
참고로 민음사에서는 서울대 수석이 권하는 삼국지로 이문열 삼국지를 추켜올리고 있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수석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총체적 시각이 형성되지 않은 코흘리개일 뿐이니 개의치 말자. 서울대라는 간판으로 보수적인 작품의 주구가 되어야 하는 신세가 안타까울 뿐이다.
두번째, 삼국지의 다양한 혈통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하더라도, 다양한 변용 속의 원형을 담아낸 판본은 있을 것이다. 정본 또는 원본 개념에 100% 합당한 책은 없다고 하더라도, 가장 많이 선택한 판본이랄지 가장 많은 변용이 일어난 분기점을 잘 포착했다던지 하는 판본은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굳이 결정적 판본이라고 한다면, 역시 나관중과 모종강을 생각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결국 김구용 삼국지로 귀결되는 것이다.
김구용 삼국지가 황석영이나 이문열 삼국지에 비해 문투가 딱딱하다는 평을 듣지만 이 역시 결정적 판본의 미덕으로 볼 수도 있으며, 모종강 본의 분위기를 잘 전달해주니 오히려 좋다고 볼 수도 있다. 삼국지는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읽은 책이요(물론 요즘 우리 어머니도 읽고 계시긴 하다) 고졸한 문투로 그들과 같은 책을 읽는 것도 참 좋은 경험이라 생각된다.
이런 이유로 삼국지를 여러 차례 읽는 매니아에게 김구용 삼국지는 무척 매력적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어찌보면 봉건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삼국지를 새천년에도 이렇게 읽는 것이 합당한가 랄지, 출판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너도나도 삼국지를 찍어내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향수와 열정에 불지르는 삼국지의 힘을 지나칠 수도 없을 것이다. 그 힘을 틀어 어디로 향해 가느냐가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된다. 복잡하게 이야기했지만 [삼국지 해제]니 [삼국지 바로 읽기], [삼국지 대연구] 등 주변 서적도 읽어가며 비판적 독서를 해보자는 의미이다. 비판이란게 뭐 알아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끝으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이고, 대부분 아시리라고 생각되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김구용 삼국지는 하도 안팔려서 솔출판사에서 e-book을 무료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공개했다. 솔출판사로 들어가시거나, 인터넷에서 '김구용 삼국지 무료 다운로드'라고 치고 들어가면 이곳 저곳에서 다운 받을 수 있다. 그 동안 황석영 또는 이문열 삼국지는 읽었는데 김구용 삼국지를 또 사기는 뭐해서 망설이고 계신 많은 분들과 삼국지의 거대한 바다에 들어오려 신발을 벗고 계신 분들께 권하는 바이다.
*** 배암발 : 2시간 분량의 DVD 27장으로 [삼국지연의] 전질을 영화화한 것이 현재 5-6만원 정도의 파격적인 가격으로 팔리고 있고 그 분량으로 볼 때 아마도 원본에 충실한 작품인듯 싶다. 너무 분량이 많아서 처음 한 장 밖에 보진 못했고 액션이 화려하지 못하다는 안타까움은 있지만 대규모 전투장면이나 인물묘사, 중간 중간 등장하는 시 등은 중국인에게 삼국지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충격을 준다.
또 일본 만화가의 손으로 탄탄하게 그려진 매우 두꺼운 [만화 삼국지]가 있는데 이 역시 권할만 하다. 일본사람 특유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것이 김구용 삼국지에 해당한다면, [고우영 삼국지]는 장정일, 황석영, 이문열 삼국지에 해당한다. 국보급 만화가 고우영 선생이 탁월하게 삼국지를 재해석한 [고우영 삼국지]는 시대착오적인 이문열 삼국지를 뛰어넘는 삼국지에 대한 애정과 탁월한 안목이 숨어있는 걸작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삼국지의 원형이 구술이고, 눈에 보이듯 이야기를 그려내는 판소리이기 때문에, 시대와 문화가 달라 노래를 할 수도 없고, 그림을 머리에 선하게 그릴 수도 없는 우리입장에는, 영화나 만화가 [삼국지]를 즐기는 데 더 알맞은 매체로 보여진다. 삼국지는 그 오랜 세월동안 만인의 것이었지, 책 읽는 사람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