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오히라 미쓰요 지음, 양윤옥 옮김 / 북하우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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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상처받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 상처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상처 받지 않고 살기란 어렵다. 내게 온 것이든 내 주변에 온 것이든지.
그러나 그 상처를 이겨내고 치유하는 힘은 저마다 다르다. 그리고 누군가의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 역시 다를 수밖에...

이런 류의 책을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그렇고 그런 고통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던 때가 있었다.  사춘기 때였나? 베갯잇을 적시며 읽긴 했어도 공감은 없이 읽었다. 그저 감성만 아릿하게 자극 받았던 것 같다.  현실에 발 딛지 않아도 살아지던 때였다.  

나이를 먹고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고, 또 상처 입은 사람들과 섞여 살다보니 상처를 딛고 한 발 더 나아가는 것의 의미가 새삼스럽다. 이성은 시키지만 현실에서는 발이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 부지기 수다.  어쩌면 그 상처를 공감하는 것에서 벽에 부딪히는지도 모르겠다. 늘 경험의 눈으로 보지 말기를 다짐하면서도, 내 눈으로 내 감각을 따라 다른 사람들의 상처를 읽기 때문이 아닐런지...

오히라 미쓰요의 책은 두 가지 시선을 차분하게 돌아보게 한다. 상처 입은 사람과 상처를 돌보는 사람의 시선. 현실에서 역할이 바꾸어 나타나기도 하지만, 결국은 연결되어 있는 두 시선을 오히라 미쓰요는 그 자신의 삶을 통해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 솔직함이 상처의 표면만을 보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일인지 일깨운다. 
 

by  키큰나무숲 http://blog.naver.com/win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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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박스 세트 - 전2권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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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자신의 존재 이유 삼아 살아가는 예술가는 그 성품이 어떻든지 존경할 수밖에 없다. 

바람의 화원을 보면서 주목하는 몇 가지 것은 김홍도와 신윤복이 그림에 대해 갖는 그 절절한 마음이다. 한 작품 한 작품으로 세상에 던지는 이야기의 절박함과 그를 드러내기 위한 거침없는 실천이다. 예인의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예인의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예인의 방식으로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내는 이들을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쿠르베는 사실주의 선언문에서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풍속과 관념, 사회상을 오직 나 자신의 평가와 판단에 의해 표현하는 것,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려고 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을 상상으로 왜곡하지도 않는다“ 라고 밝혔다. 쿠르베는 또 '지금 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그리기 위해 현실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열린 눈이다. 그러러면 머리가 아닌 눈으로 세상을 응시해야 한다. 자신의 눈으로 삶을 바라보는 예술가만이 살아 있는 진짜 예술을 창조할 수 있다.' 고 선언했다.

쿠르베처럼 세계의 이목이 모두 몰려든 만국박람회장 앞에서 개인전을 열고, 선언문을 돌리지는 않았지만, 같은 19세기 조선의 화단에 이런 예술가들이 살았다는 것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물론 <바람의 화원>은 소설이며, 작가의 상상력이 불러낸 화인들의 모습이지만, 소설 속에서 재해석된 신윤복과 김홍도의 작품을 보는 것으로도 그들의 예인으로서의 존재감은 충분하다. 

신윤복이 두려움 없이 세상사의 장면을 보고 그리는 것, 눈으로 본 것은 사소한 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아내려 하는 것, 그러면서도 그 사람의 내면과 전부를 보기 위해 정향을 찾아가 밤새 그를 만나고서야 화폭 안에 그를 살게 하는 것 이 모든 예술 실천이 <바람의 화원> 안에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신윤복의 그림을 알아보는 김홍도의 눈이다. 신윤복의 그림을 도화서의 경직된 눈으로 비판하는 화인들 앞에서 "여기 있는 화인들 가운데 누가 그림 한 장으로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가?"하며 호령하는 장면은 예인의 단단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화원시험에 논란의 소지 분명한 그림을 그려내는 신윤복의 마지막 붓 끝까지 지켜주고 지지해 주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저밀만큼 감동이 인다.

by 키큰나무숲 http://blog.naver.com/win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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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공선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양희진 옮김 / 문파랑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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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책이라니 눈길이 갔다. 
1920년대 말 일본. 아시아 태평양지역을 휘젖고 다니던 탐욕은 자기 나라 노동자들을 짐짝처럼 실어내 오츠크로 몰아간 게잡이 배 안에서도 야만스런 본성을 드러낸다. 좀 더 나은 삶을 기대하면서 고향을 등지고 꽁꽁 얼어버린 남의 나라 바다에 들어선 노동자들은 수시로 코 앞에서 죽음을 만나면서 그동안 생각하지 않고 지내온 '나라', '노동자'.. 들을 재인식한다. 

고바야시 다키지가 의식적으로 당시 일본 사회를 고발하면서 쓴 책이라지만, 80년 전 '게공선' 속에서 오늘의 우리 모습을 본다. 가족을 먹여살리거나 자기 밥벌이를 하기 위해서 인간의 존엄을 기꺼이 포기하고, 자연스런 인간의 욕구조차도 금기가 되고 죄악이 되는 현장이 겹쳐진다. 100일을 굶고 싸우며 노동조합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눈길 거슬리는 물건 하나 치우듯 하는 오늘, 일하면서 얻은 백혈병으로 수십 명이 죽어 나가는데도 모르쇠로 발뺌으로 버티는 기업이 있는 오늘.... 
그래도 그 오늘을 극복하려는 의지의 날 세운 80년 전 노동자들을 만나는 일은 답답함 가운데 만나는 작은 희망이다.

게공선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나오지만 그 안에 후쿠다나 이치로들은 없다. 등장인물들에 이름이 없다. 철저히 집단의 집단을 위한 이야기를 쓰려든 작가의 의지 때문이다. 그 어떤 개인도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기 때문에 그가 후쿠다나 이치로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작가의 의도가 어떻든 이 부분은 <게공선>을 읽고 남은 아쉬움이다.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요소니 말이다. 

그렇지만 80년 전에 서서 오늘을 보여주는 특별한 경험을 주는 책이다. 
 

위 글은 http://blog.naver.com/winwinter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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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의 사전 - 브리태니커와 구글에도 안 나오는 인류 지식의 최신 보고서
카트린 파지크.알렉스 숄츠 지음, 태경섭 옮김 / 살림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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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있는 것은 한방울의 물이며,
모르는 것은 대양이다
 
   


객관적으로는 인정하지만, 일상에서 인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늘 이야기가 조금만 길어져도 자기 주장이나, 자기 인식을 굽히지 않는다.
오죽하면 뻔히 보이는 답을 갖고도 내기를 걸겠는가?
(이를테면, ’오! 당신이 잠든 사이’냐 ’당신이 잠든 사이에’ 같은 서로 다른 장르를 각자 본 것을 근거로 우기다가 결국 내기를 하곤한다.)

여러 사람 앞에서는 ’(내가 알고 경험한 건)빙산의 일각이지 뭐." 자못 호방한 척 얘기를 하지만, 내가 알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사는 방식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지의 사전>을 읽다 보면 포장하지 않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무조건 배우겠다는 마음. 내가 아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성찰을 하게 한다. 

시간, 임상, 경험, 정치, 역사 무엇을 들이밀어도 해석할 수 없는 질문을 책을 읽는 내내 되새기기 때문이다. 신석기 혁명에서 테일러 포드 시스템을 거쳐 신자유주의에 이르도록 "난 내내 내가 보고싶은 것만 내 식의 편견을 쌓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싫어하면서도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편견.
내 안에 들어찬 그 불편한 편견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르친다. 


새롭게 알게된 사실 하나 - 하품

하품은 졸리거나 지루할 때만 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명확한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하품은 대체로 사람이 이전 행동과 사뭇 다른 행동으로 옮겨갈 때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데 경기를 막 시작하러 경기장에 나서는 테니스 선수가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기도 하며, 아침에 일어나 하품을 하면서 일어나기도 하며(출근 시간에 쫓기는 바쁜 아침에도), 그냥 무의식적으로 얘기를 듣고 있다가 정신차려 집중하려 할 때에도 사람들은 하품을 한다. 생각해보니 경험해 본 일이다. 
한마디로 하품의 원인은 모른다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이 밝혀낸 것은 고작, "하품을 할 때는 뇌에서 정체모를 신호는 것이 분명하다." 정도이다.

무지로 남겨지는 어떤 이유  

놀랍다. 사람이 거의 매일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인 하품에 대한 과학적 해명이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100년에 한번 올까말까 한 혜성의 원인과 성분을 밝혀낼 줄 아는 과학은 왜 매일매일 수십억 사람들에게 반복되는 일을 분석하지 못할까?

책에서 진단하기론 돈이 되지 않아서란다. 실용성이 없는 연구는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비근한 예가 성정체성에 관한 과학적 연구이다.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에도 그 이유를 설명하는 과학은 없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성을 기준으로 제도를 만들고, 생물학적 성과 성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소외시키거나 억압하거나 심지어는 히틀러처럼 없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학살을 서슴치 않는 폭압이 반복되어 왔음에도, 과학자들을 동원에 그 원인을 규명하고 현상을 밝힐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억압 속에 있는 소수는 ’성정체성’을 연구하는 과학에 ’돈’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지의 사전>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도 하고, 인식의 담장 한 두곳을 어물어뜨리는 경험도 했다. 잘 읽었으나 씁쓸하게 남는 생각은 사람들은 무지를 사회적으로 선택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며, 그 선택권을 가진 사람들은 ’무지’가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일 거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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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범의 파워 클래식 1 -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고 아무도 시도하지 못했던 신 클래식 강의
조윤범 지음 / 살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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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시도하는 클래식과의 만남 

음악이 암기 과목이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랬다. 음악의 아버지는 바하, 헨델. 생상은 동물의 사육제고 결혼행진곡은 멘델스존이었다. 심지어는 듣기 시험도 암기여서 주요 테마의 선율만 따로 편집해서 녹음한 테잎을 듣고 작곡가와 작품번호를 외웠다.

참, 음악을 좋아하고 이해하기 만드는 게 아니라 거리를 두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마련한 프로그램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식으로 음악을 만나게 했을까 싶다.

다행히도 운이 좋아 그 와중에 클래식에 맛을 보았던 나는.
보충수업을 땡땡이 치고 공연을 보러다니고, 라디오는 클래식 방송만 들었드랬다.

그 때,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다면 우리는 무척 행복했으리라.

클래식에 조금 거리를 둔 사람이라면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을 보는 것이 좋겠다. 예전 좋지않았던 기억을 지우고 클래식을 즐겁게 만나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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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바다 2009-09-07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작곡가와 음악에 얽힌 뒷 얘기가 있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