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사전 - 브리태니커와 구글에도 안 나오는 인류 지식의 최신 보고서
카트린 파지크.알렉스 숄츠 지음, 태경섭 옮김 / 살림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알고 있는 것은 한방울의 물이며,
모르는 것은 대양이다
 
   


객관적으로는 인정하지만, 일상에서 인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늘 이야기가 조금만 길어져도 자기 주장이나, 자기 인식을 굽히지 않는다.
오죽하면 뻔히 보이는 답을 갖고도 내기를 걸겠는가?
(이를테면, ’오! 당신이 잠든 사이’냐 ’당신이 잠든 사이에’ 같은 서로 다른 장르를 각자 본 것을 근거로 우기다가 결국 내기를 하곤한다.)

여러 사람 앞에서는 ’(내가 알고 경험한 건)빙산의 일각이지 뭐." 자못 호방한 척 얘기를 하지만, 내가 알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사는 방식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무지의 사전>을 읽다 보면 포장하지 않던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무조건 배우겠다는 마음. 내가 아는 게 전부는 아니라는 성찰을 하게 한다. 

시간, 임상, 경험, 정치, 역사 무엇을 들이밀어도 해석할 수 없는 질문을 책을 읽는 내내 되새기기 때문이다. 신석기 혁명에서 테일러 포드 시스템을 거쳐 신자유주의에 이르도록 "난 내내 내가 보고싶은 것만 내 식의 편견을 쌓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싫어하면서도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편견.
내 안에 들어찬 그 불편한 편견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르친다. 


새롭게 알게된 사실 하나 - 하품

하품은 졸리거나 지루할 때만 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명확한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하품은 대체로 사람이 이전 행동과 사뭇 다른 행동으로 옮겨갈 때 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데 경기를 막 시작하러 경기장에 나서는 테니스 선수가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기도 하며, 아침에 일어나 하품을 하면서 일어나기도 하며(출근 시간에 쫓기는 바쁜 아침에도), 그냥 무의식적으로 얘기를 듣고 있다가 정신차려 집중하려 할 때에도 사람들은 하품을 한다. 생각해보니 경험해 본 일이다. 
한마디로 하품의 원인은 모른다는 것이다. 현재의 과학이 밝혀낸 것은 고작, "하품을 할 때는 뇌에서 정체모를 신호는 것이 분명하다." 정도이다.

무지로 남겨지는 어떤 이유  

놀랍다. 사람이 거의 매일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인 하품에 대한 과학적 해명이 없다는 것이다. 하물며 100년에 한번 올까말까 한 혜성의 원인과 성분을 밝혀낼 줄 아는 과학은 왜 매일매일 수십억 사람들에게 반복되는 일을 분석하지 못할까?

책에서 진단하기론 돈이 되지 않아서란다. 실용성이 없는 연구는 발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비근한 예가 성정체성에 관한 과학적 연구이다.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에도 그 이유를 설명하는 과학은 없다는 것이다. 생물학적 성을 기준으로 제도를 만들고, 생물학적 성과 성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소외시키거나 억압하거나 심지어는 히틀러처럼 없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학살을 서슴치 않는 폭압이 반복되어 왔음에도, 과학자들을 동원에 그 원인을 규명하고 현상을 밝힐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억압 속에 있는 소수는 ’성정체성’을 연구하는 과학에 ’돈’을 지불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지의 사전>을 읽으면서, 이런 저런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도 하고, 인식의 담장 한 두곳을 어물어뜨리는 경험도 했다. 잘 읽었으나 씁쓸하게 남는 생각은 사람들은 무지를 사회적으로 선택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며, 그 선택권을 가진 사람들은 ’무지’가 불편하지 않은 사람들일 거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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