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황석영 , 낯익은 세상 : 이 얼마 만에 보는 황석영 작가님의 신작이란 말입니까. 실은 저, 작년(2010)에 출간 되었던 「강남몽」은 읽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강남의 꿈,이라는 해석때문이었는데, 아마 그 속에는 그것말고 다른 뜻이 숨겨있을거라 믿어 의심치는 않습니다. 물론, 책 내용을 찾아보았었고, 그 시대를 아우르는 것을 강남몽,이라는 것으로 단정짓는 것이 어쩌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바리데기」는 수험생 시절, 언어영역에서 단골 문제라 굳이 찾아 읽어보진 않았지만,  전에 읽었던 (혹은, 가장 처음 읽었었던)  「개밥바라기별」을 읽으며 마음이 동하는 것을 느꼈더랬습니다. 몇 일 전, 공선옥 작가의 「꽃 피는 시절」을 읽었었습니다. 먼지로 뒤덮인 그곳에서 꽃을 피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였지요. 낯익은 세상의 이야기를 얼핏 보니, 그 역시 버려진 문명의 이면 위에서 성장을 하는 이 혹은 무엇,인 것 같습니다.

 

 

현길언 , 유리 벽 : 오월의 마지막 책으로, 하나의 단편을 읽었습니다. 단편이라 했을 때,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어 그 단편을 어우르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는, 그 책을 읽을 때에는 재미있게 읽었으나, 생각할 무언가,가 없다,라는 까닭으로 별 점수를 최대한 (저로서는) 낮추었습니다. 책 소개를 보고 있노라니, 저 또한 어느 공간에 갇혀있는 기분이 듭니다. 이것은 저뿐만이 아닌, 각자 개개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닐까요. 작가는 혹은, 작가의 내면들은 유리 벽 혹은 또 다른 공간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혹은 그곳에서 머물까요. 이 책 역시, 단편이라지만,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최인호 ,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 안타깝게도 최인호 작가의 작품은 에세이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덮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다시는 작가의 에세이만큼은 읽지 않겠노라,고. 그것은 작가에 대한 실망이라거나 좌절이 아닌, 또 하나의 희망이었음이 명백합니다. 작가의 에세이는 그의 「인연」, 그것으로는 됐다고 생각했던 오만함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의 책을 찾아보았으나, 당시 제가 읽기 꺼려했던 역사 소설이라던가, 종교 소설과 같은 책이었음에 내려두었었지요. 그러고서 작가의 신간이 나왔었습니다. 「산중 일기」 - 역시 에세이였기에 덮어두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야 말로, 읽어야겠다, 생각한 소설이 나왔습니다. 제목에 마음이 이끌립니다. 나 그리고 타인들이 만들어가는 도시입니다. 그 속에서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저에겐 언제나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관게의 고리, 그것의 부조리함.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집니다.

 

 

야쿠마루 가쿠 , 어둠 아래 : 추리 소설이라 했을 때, 히가시노 게이고, 윌리엄 베이어(이 작가는 도대체 언제 책을 낼까요. 흑) 외에는 다른 작가의 책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작가 역시, 그대로 묻혀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 범죄요. 하루에도 몇 건씩 발생하는 그것이요. 소녀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과거 같은 죄를 저지른 전과자들이 목 없는 사체로 발견된다. 이 문장을 읽으며 정말 어떤 사람이든, 그런 짓을 저지른 사람이든 그랬으면 좋겠다, 생각해봅니다. 오랜만에 추리소설에 시선이 갑니다.

 

 

박진규 , 보광동 안개소년 : 도서관에서 「수상한 식모들」을 무려 세 번씩이나 대출한 기억이 있습니다. 쥐가 무언가를 갉아 먹는다 하였었나요.. 사실 제대로 생각나지도 않네요. 몇 번 씩이나 읽으려고 했지만, 결국 포기해버린 책 중 하나입니다. 이야기를 읽고 있는데 갑자기 급커브를 틀며 다른 길로 가버립니다. 그래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렇기에 작가의 신간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쳐다보지 않았던 것이. 학교 다닐 때에 그 책을 대출했었으니, 벌써 몇 년이란 세월이 흘렀음에도 사실 아직도 겁이 납니다. 작가는 아무래도 허구가 가득한 물방울같은 이야기를 그려내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그 속에서 현실이란 물방울을 찾아 색을 그려넣고 싶은 걸까요. 그 이야기들이 색색깔로 빛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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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페아 공주 - 現 SBS <두시탈출 컬투쇼> 이재익 PD가 선사하는 새콤달콤한 이야기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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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 작가의 「압구정 소년들」을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다시 그의 책을 들었다. 가뜩이나 읽히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멀찌감치 떨어뜨린 책들에 대한 미안함,같은 것이 있어서 일지도 몰랐다. 그저, 이동하는 시간에 틈틈이 읽고자 고른 책이었는데, 전에 읽었던 「압구정 소년들」의 흡입력을 기억해내지 못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하지만 그 실수가 다행으로 여겨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잖아도 요즘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고 있던 나였는데, 때마침 그 책을 찾은 거지, 싶은 것이다. 그것은 그가 이야기꾼,이라는 것보다는 (그는 내게 그런 호칭으로 불리지 않는다.) 애써 신경을 집중시키지 않아도, 좋아하는 이의 시선에 내 시선을 맞추는 것과 같은 유사한 느낌으로 그의 글을 읽어나갈 수 있는 까닭이리라. 그래서겠지.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몇 분 후 도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버스 기사님이 서 있지 않고 앉아 있던 나였기에 태우지 않고 떠나버렸음에도 억울한 느낌 없이 줄곧 책을 붙잡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이.

 

 

 

책은 다섯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카시오페아 공주」 , 「섬집 아기」 , 「레몬」 , 「좋은 사람」 , 「중독자의 키스」 - 

‘판타지+미스터리+공포+추리+로맨스’.. 쉿. -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이에요. -) 첫 번째 단편,에서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여자,를 보며 김영하 작가의 단편 「로봇」이 물방울처럼 톡톡 튀어올랐다. 혹시 그녀(카시오페아 공주)가 그(로봇)는 아닐까 하는, 그런 억지를 부리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다섯 개의 단편들 중 가장 괜찮았던 것은, 단연 중독자의 키스 - 이별의 순간과 맞닥뜨린 순간 비로소 사랑을 느끼게 되지만, 추억을 떠올릴 만한 사진 한 장조차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장면에서 콧등이 시큰해진다. 지만 일 년 동안 그녀를 따라다니던 그림자(스토커)가 찍은 사진에서 그녀와 그의 소중한 추억들을 만나게 된다. 그냥 예쁘다, 이야기 자체가. 투명하게 반짝반짝 빛나는, 그래서 눈이 부시다 못해 시린, 그럼에도 금방이라도 깨어질 것처럼 위태로워 손 안에 꼬옥 쥐고 있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이야기.

 

 

 

하지만, 장르가 바뀌는 단편들을 만나며 작가가 조금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싸하게 만드는 공포에서 상냥한 목소리를 내는 로맨스로 넘어가는 단편을 읽어내려 갈 때에는 약간의 텀이 필요했음이 그 까닭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또한, 다섯 편의 이야기를 만나며 문장의 가벼움,을 재었고, 그만큼 생각할 만한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실로 민망스럽기까지 하다. 물론, 「압구정 소년들」 을 읽으며 느꼈었던 회상들을 하나 둘 꺼내어 어루만지기 위해 읽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할 거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나 뒷맛을 떫게 만드는 감과도 같다. 떫은 감 - 문장의 가벼움, 하지만 이것을 달리 생각한다면, 군더더기를 쫙 뺀 하나의 요염한 몸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문장 자체는 까탈스럽기 그지없는 내 입맛에 맞진 않았을지언정 버릴 것 하나 없는 것들 뿐이었으니까. - 노곤한 주말에 똑똑, 노크를 하며 찾아온 손님. 이재익 작가가 먹기 좋게 차려놓은 다섯가지 반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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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네 집
김옥곤 지음 / 책만드는집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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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후두둑 .. 호젓한 새벽을 깨우는 소리로, (개인적으로) 잠자리에 들기 전 가장 좋아하는 소리. 그냥 자기가 못내 아쉬워, 읽고 있던 책을 집으려다 이미 다 읽은 것을 확인하고 다음 책을 고르려는데, ‘얼른, 얼른’ 하며 재촉하는 마음에 책을 고르는 손이 덩달아 바빠진다. 아직 읽지 못한 책들 몇 권이 뒤집어져 있지만, 눈에 띈 건 옥곤 작가의  「미라네 집」 - 장르에 있어서 작가를 따지는 편은 아니나,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틈, 그곳에서조차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는 까닭에 ‘사랑’에 관한 한 남성작가보다는 여성작가를 선호하게 된다. 사실, 남성작가라 하여 그런 면이 없는 것도 아닐테지만, 사랑에 있어 남성작가들의 남성인 척, 하려는 이유 때문에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이 알레르기처럼 거부반응을 일으킬 때도 있다는 점이 그들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다. 이 역시 그럴 것 같았고, 인터넷에 떠도는 소개글 역시 ‘첫사랑’을 담담하게 그려낸 책,이라 적혀 있기에 약간은 부정적인 시선을 거둘 수 없었음이 사실이다. 예순,이라는 작가의 나이를 미루어 볼 때, 담담하게 그리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생각하지만 도대체 누가 사랑 앞에서 담담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것도 흘러간 세월때문,이라는 초라한 까닭으로. 그럼에도, 흘러간 노래 중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는 유행 가사라던가,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묻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가슴에 묻는다’라던가 하는 구절들이 있듯이, (물론,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남성작가가 그려내는 첫사랑은 그간 여성작가가 드러내 보여주었던 예쁘고 알싸함을 넘어 어떤 세계일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출사간 경주에서 아버지와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했었던 ‘그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찍는다. 오래 전, 아버지가 그녀를 찍었듯이. 그리고 그 날, 역광이 비추는 회화나무 아래서 파나마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두눈박이 사진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나’ - <역광 속으로> , ‘운예 - 성자 - 금동’ 그들의 운명과 행적이, ‘나’를 통해 관찰되어 이야기되는 - <비천, 그 노을 속의 날갯짓> 그 외에 <신경초> , <미라네 집>, <해술이> , <목사와 고양이> , <슬픈 이중주> , <아버지의 선물> - 한 편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자면, 단연 <미라네 집>이다. 사실 난 이 이야기가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모르겠고, 그로 인한 메스꺼움이 거북스럽기까지 하다. 화자는 오미라,라는 여자가 자신의 첫사랑이라 말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가 알 수 있는 것은 여자가 고향이 부안이고, 향수병으로 젊은 날에 죽었다는 것 말고도 화자는 우연치 않게 첫사랑의 이름을 딴 ‘미라네 집’이라는 카페에 가게 된 것, 그 뿐이다. 하다못해 첫사랑에 대한 어떤 감정도 글에서는 느낄 수 없다. 이것은 추리소설을 쓰겠다는 사람이 앞 뒤 설명하지 않고 범인은 -였다,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말이다. 저자가 옆에 있었다면, 왜 하필 이 단편이 이 여덟 편을 아우르는 제목이 되었는지, 이것을 읽고 독자가 어떤 생각을 하길 바랬느냐,고 끈질기게 물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한다.

 

 

 

난 결국 총 여덟 개의 단편 중, 가지런하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작품은 단 한 작품도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다기 보다는 단편이고, 단편이라서, 단편이기에 그들이 쳐둔 프레임의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졌기 때문이리라. 여덟 개의 단편 속 화자는 모두 중년의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가의 고집스러울 정도로 비슷한 문체들때문인지 그들의 상황과 그들이 추억하는 것만 다르다 뿐, 그들에게서 개성을 찾아볼 수는 없었는데, 그로 인해 인물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주체가 되는 기분이었달까. 그것이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으나, 풍경 앞에 인물이 있는 것이 아닌, 인물 뒤에 풍경이 있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는 나로서는 작가에 대한 괴리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 한 가지 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작품은 첫사랑,이 아니라 ‘추억’이었다. 작품 마다 마다에 발담금 되어 있는 추억들이 저마다의 깊이에서 물장구를 쳐댔다. 그것으로 튀어오르는 물방울들이 각기 다른 빛깔을 뽐내지만, 그것이 내 눈에 비치지 않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따라서 그의 다음 작품이 단편이 아닌 장편이라면,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소망을 안은 채, 여운도 남기지 못하고 덮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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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에 관한 간단한 고찰 2
박동선 글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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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은 남녀노소 막론하고 인간이라면 (아, 동물들도) 가지고 있는 것이기에 화두에 자주 오른다. 그게 적당하면 즐거움이 되겠지만, 지나치면 불쾌함으로 변질될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한 사건을 두고 ‘걔는 _형이라서 그런가, 왜 이렇게 _해?’라는 식이다. (그것때문에 옆에 앉아있던 같은 혈액형의 타인이 욱!했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한 사람을 판단할 때 혈액형을 두고 판단하는 사람은 없다. 우연치않게 혈액형과 그 사람이 일치하는 것을 두고 혈액형에 따라 사람이 변한다,라고 말해버리면 얼마나 우습겠는가. 세상엔 네 분류의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 혈액형을 모르는 이들은 나를 두고 A형 혹은 B형을 자주 말하곤 하는데, A형은 소심한 성격 탓에 들을 수 있는 혈액형이라고 한다지만, B형은 왜인지 알 수 없어 물어보면 ‘그냥 이유없이 넌 딱 B형같이 생겼어.’ - 풉, 내 얼굴이 B형같이 생긴 사람인가. 큭큭. 요즘은 혈액형을 물어보면, 미인형이요, 미남형이요, 계란형이요, 하는 말장난을 뒤늦게 알게 되어 대학교 복한한 후에 무척이나 많이 써먹었던 기억이 난다. 액형이라 하니, 어렸을 적 애피소드가 떠오른다. 우리집에는 A, B, AB, O형이 한 곳에 모여 살고 있다. 어째서? 엄마 A, 아빠 B, 동생 AB, 나 O - A형과 B형 사이에서 O형이 나올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AO + BO = O’와 같은 방식이 성립되는 것을 알고 있으나, 그걸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내 가족 구성원의 혈액형을 들은 친구가 “너 진짜 주워온 거 아니야?”라는 말에 난 정말 그런가 싶어 몇 시간의 가출아닌 가출을 감행했었던 것. 엄마는 그런 나를 안고, 태어난 직후 사진들을 보여주며 “넌 내 자식이다.”라는 말에 안심했었던 기억,말이다. 이제와 생각하니 웃음이 피식 새어나온다.

 

 

위와 같이 내 가족들은 아이러니하게 네 가지 혈액형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서, 잡지나 인터넷에서 혈액형에 대한 웹툰을 보게 되면 나는, 혈액형마다 가족들을 끼워넣기에 여념이 없었다. 물론, 이 책 속에도 아빠, 엄마 나, 동생 - 네 식구를 나타내는 캐릭터들이 가득 들어 앉아 오밀조밀하게 자신들의 성격을 여실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앞서 말했듯 모든 인구가 A, B, AB, O에 따라 네 분류로 나뉘는 것은 아닐진대, 혈액형에 대한 글이라던가 웹툰을 보고 있노라면 네 분류만이 이 세상 속에 존재하는 것도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동생과 함께 실생활 속에서의 혈액형 유형을 보며 ‘맞아, 맞아. 난 이랬고, 넌 저랬어. 너랑 똑같아! 아, 이건 좀 아닌데. 이게 왜 나랑 똑같아!’ 라며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갸웃거리기도 하며 즐겁게 보다가, 마지막에 동화에 혈액형 유형을 접목시켜 각색한 것들을 보며 미친 듯이 웃어버렸다. ‘잠 자는 숲 속의 공주’ , ‘잭과 콩나무’ , ‘인어공주’ , ‘아기돼지 삼형제’ - 아무 것도 하기 싫고 나른거리는 오후에, 깔깔 거리며 가볍게 읽기엔 적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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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3-08-03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훌쩍 ,떠난 여행지의 카페에서
다음 행선지를 정하고자..눈개비도 피할겸..
새해에..
찻 집에 앉아 주인은 어딜가고..풉..
저 혼자..앉은 채 재미있어서 그냥 다 읽어버린 기억..^^
저도..아는형,,우리형..동네형..하고...놀았던..생각나요!!
 
아이리더십 iLeadership - 애플을 움직이는 혁명적인 운영체제
제이 엘리엇 & 윌리엄 사이먼 지음, 권오열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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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즈음 출간되는 책의 적지 않은 비중이 스마트폰을 다루고 있음은 왠지 반감을 사게 만든다. 첫 번째로, 내가 스마트폰 유저가 아니라는 까닭이 가장 클 것인데, 그것을 쓰지 않으면 외계인인가. 나의 핸드폰(쿠키)을 보며 말하는 친구의 “넌 아직도 과자야?”라는 말에 살짝(아니, 무척!) 배알이 꼴리는 건 사실이나, (내 필요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니라면) 고작 그것으로 인해 홧김에 사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음이다. (사실 난 이번주에 그것을 살 계획에 있지만) - 여담으로, 며칠 전, 스마트폰을 샀는데, 마땅히 할 게 없어 핸드폰으로 일기쓴다,는 친구의 말은 폭소에 가까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었는데, 그것으로 미루어 본다면야, 젊은이들이 스마트폰, 스마트폰 하는 까닭 중 하나가 단순히 ‘데이터 무제한’이라는 옵션때문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해 보기도 한다. (물론, 수많은 기능 중 하나,겠지만) 두 번째로, 농락이다. 유저가 아니기에 별 관심도 없는 나도 알고 있는 카톡의 유료화’와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폐지’는 끊임없이 타오르다 사그라지는 형상을 반복하고 있는데, 그것에 의해 애꿎은 스마트폰 유저들이 농락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세 번째로는, 스마트폰의 대중화이다. 몇달 전, 적금이 만기되어 다른 적금을 물색하던 중에 <특별판>이라 하여 스마트폰 유저들은 몇 퍼센트의 금리를 더 얹어준다는 혜택은 이미 그만큼 대중화가 됐다는 말이겠지만,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그것만큼 높은 금리가 없었던 까닭. 며칠 전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이제 마트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야,라는 말에 왜? 어째서? 라고 대답하는 내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실감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나는 스마트폰에 대한 상당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 책을 읽는 데 그것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 -

 

 

 

‘제이 앨리엇’ , 최고위급(전 애플 수석 부사장이자 잡스의 멘토) 내부자의 경험을 토대로 써진 「아이리더십」 - 신생 기업 이글 컴퓨터의 비극적 몰락을 전하고 있는 신문의 경제면을 읽고 있던 ‘나(제이 앨리엇)’는 옆의 ‘젊은이(스티브 잡스)’도 그것을 읽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것이 그들의 우연같은 만남이다. 그 만남으로 인연이 된 이들은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고, 책은 그 시점의 애플부터 지금의 애플이 있기까지의 과정이 이 책 속에 담겨져 있다. 제이 앨리엇이 그린 스티브 잡스는 오너로서의 자질이 충만한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제품에 대한 열정, 디테일의 힘, 팀워크, 인재 채용, 인센티브, 기능 중심에서 제품 기반으로, 위기 관리, 회복과 재기 과정, 통합적 관점, 혁신 전도사, 광고 전략, 유통, 애플의 로드맵” 그 어떤 곳에서도 한치 흐트러짐을 볼 수 없는 까닭. 개인적으로 가장 집중해서 읽었던 부분은 존 스컬리를 영입하는 과정을 그린 후 부터였는데, 컴퓨터에 대해서는 일자무식이었지만, 마케팅에 대한 존 스컬리(펩시콜라의 사장)의 식견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남은 인생을 설탕물이나 팔면서 보낼 건가요, 아니면 세상을 바꿀 기회를 잡아보겠습니까?” 와 같이 말하며 그를 애플로 끌어들이기에 성공한다. 하지만 곧 그들의 충돌로 인해 스티브는 애플을 떠나버리기에 이른다. 그렇게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그곳에도 위기가 찾아왔고, 10년 만에 돌아온 스티브는 ‘(따로) 회사를 차리겠다’고 선언한 후 애플을 떠났지만, 직원들은 이와 같이 말했다. “애플이 여전히 그의 회사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가 있을 때와 똑같이 자부심, 에너지, 열정이 퍼져 있었죠.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는 그의 리드를 받았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었습니다.” 그가 떠난 자리에도 강력한 아우라가 남아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후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을 다시 한 번 자기 손아귀에 틀어쥘 회생 전략을 가지고 돌아왔다.

 

 

 

만약 누군가 내게 그들은 우리 제품이 뭔지도 모른다고 말해준다 해도 나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그들이 우리 제품을 써보았을 리도 없다. 이것이야 말로 그들이 회사의 비전과 방향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 할 수 있다.

 

책이 ‘내부자의 목소리’라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책을 읽을 당시, 누군가를 무대 위에 올려놓는 책은 싫다,고 이야기했었다. 까닭은 그가 무대 위로 올라간 즉시, 그는 ‘사람’이라는 한 주체가 아닌, 객이 들여다 보는 ‘물건’이 된다. 그렇기에 그것의 ‘값’을 올려야 하고, 결국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예찬론’이 되는 것이다. 역시나, 제이 앨리엇은 끊임없이 스티브 잡스를 예찬하고, 또 예찬한다. 자신이 그렇게 예찬하는 그의 왼팔.이 바로 나다,라며 우쭐해하고, 자신의 행적 또한 간간히 끼워넣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자신이 속했던 회사인 ‘애플’과 오너인 스티브 잡스에 대한 신뢰로 똘똘 뭉친 것은 백번 이해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과하면 자칫 오만으로 비춰질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인데, 책의 몇 부분에서도 간혹 그런 점이 보여 그 또한 불편했음을 고백한다. 그런데 이 책, 경영론이라 했는가. 제이 앨리엇, 그 역시도 ‘이 책에서 내가 의도한 것은 진정한 스티브 잡스를 포착하는 것’이라고 했었다. 이것은 ‘경영론이라고 보기 좋게 포장된 자기계발’이라고, 적어도 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물어보자. 아이폰 4도 처음 나왔을 때 안테나에 문제가 있었다’,며 그 원인 중 하나를 ‘스티브는 건강상의 이유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디테일에 대한 철저하고 꼼꼼한 점검 책임을 그가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일임했다.’와 같은 대목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난, 이해할 수 없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말이다. 정말 애플은 스티브 잡스가 볼 수 있는 곳까지 볼 인재가 없으니, 그가 없으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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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3-08-03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저는..
아직도 스마트하게..
투지(응?!)스런 세상에 사는데..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