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네 집
김옥곤 지음 / 책만드는집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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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두둑, 후두둑 .. 호젓한 새벽을 깨우는 소리로, (개인적으로) 잠자리에 들기 전 가장 좋아하는 소리. 그냥 자기가 못내 아쉬워, 읽고 있던 책을 집으려다 이미 다 읽은 것을 확인하고 다음 책을 고르려는데, ‘얼른, 얼른’ 하며 재촉하는 마음에 책을 고르는 손이 덩달아 바빠진다. 아직 읽지 못한 책들 몇 권이 뒤집어져 있지만, 눈에 띈 건 옥곤 작가의  「미라네 집」 - 장르에 있어서 작가를 따지는 편은 아니나,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틈, 그곳에서조차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는 까닭에 ‘사랑’에 관한 한 남성작가보다는 여성작가를 선호하게 된다. 사실, 남성작가라 하여 그런 면이 없는 것도 아닐테지만, 사랑에 있어 남성작가들의 남성인 척, 하려는 이유 때문에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이 알레르기처럼 거부반응을 일으킬 때도 있다는 점이 그들을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다. 이 역시 그럴 것 같았고, 인터넷에 떠도는 소개글 역시 ‘첫사랑’을 담담하게 그려낸 책,이라 적혀 있기에 약간은 부정적인 시선을 거둘 수 없었음이 사실이다. 예순,이라는 작가의 나이를 미루어 볼 때, 담담하게 그리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생각하지만 도대체 누가 사랑 앞에서 담담할 수 있는가, 말이다. 그것도 흘러간 세월때문,이라는 초라한 까닭으로. 그럼에도, 흘러간 노래 중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는 유행 가사라던가,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묻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가슴에 묻는다’라던가 하는 구절들이 있듯이, (물론,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남성작가가 그려내는 첫사랑은 그간 여성작가가 드러내 보여주었던 예쁘고 알싸함을 넘어 어떤 세계일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출사간 경주에서 아버지와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했었던 ‘그녀’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찍는다. 오래 전, 아버지가 그녀를 찍었듯이. 그리고 그 날, 역광이 비추는 회화나무 아래서 파나마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두눈박이 사진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나’ - <역광 속으로> , ‘운예 - 성자 - 금동’ 그들의 운명과 행적이, ‘나’를 통해 관찰되어 이야기되는 - <비천, 그 노을 속의 날갯짓> 그 외에 <신경초> , <미라네 집>, <해술이> , <목사와 고양이> , <슬픈 이중주> , <아버지의 선물> - 한 편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자면, 단연 <미라네 집>이다. 사실 난 이 이야기가 어떤 것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모르겠고, 그로 인한 메스꺼움이 거북스럽기까지 하다. 화자는 오미라,라는 여자가 자신의 첫사랑이라 말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가 알 수 있는 것은 여자가 고향이 부안이고, 향수병으로 젊은 날에 죽었다는 것 말고도 화자는 우연치 않게 첫사랑의 이름을 딴 ‘미라네 집’이라는 카페에 가게 된 것, 그 뿐이다. 하다못해 첫사랑에 대한 어떤 감정도 글에서는 느낄 수 없다. 이것은 추리소설을 쓰겠다는 사람이 앞 뒤 설명하지 않고 범인은 -였다,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말이다. 저자가 옆에 있었다면, 왜 하필 이 단편이 이 여덟 편을 아우르는 제목이 되었는지, 이것을 읽고 독자가 어떤 생각을 하길 바랬느냐,고 끈질기게 물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한다.

 

 

 

난 결국 총 여덟 개의 단편 중, 가지런하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작품은 단 한 작품도 없었음을 고백한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다기 보다는 단편이고, 단편이라서, 단편이기에 그들이 쳐둔 프레임의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졌기 때문이리라. 여덟 개의 단편 속 화자는 모두 중년의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가의 고집스러울 정도로 비슷한 문체들때문인지 그들의 상황과 그들이 추억하는 것만 다르다 뿐, 그들에게서 개성을 찾아볼 수는 없었는데, 그로 인해 인물이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주체가 되는 기분이었달까. 그것이 작가의 의도인지 아닌지는 분명치 않으나, 풍경 앞에 인물이 있는 것이 아닌, 인물 뒤에 풍경이 있다고 생각하며 책을 읽는 나로서는 작가에 대한 괴리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 한 가지 더,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 작품은 첫사랑,이 아니라 ‘추억’이었다. 작품 마다 마다에 발담금 되어 있는 추억들이 저마다의 깊이에서 물장구를 쳐댔다. 그것으로 튀어오르는 물방울들이 각기 다른 빛깔을 뽐내지만, 그것이 내 눈에 비치지 않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따라서 그의 다음 작품이 단편이 아닌 장편이라면,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소망을 안은 채, 여운도 남기지 못하고 덮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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