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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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을 것 같은 11월이었다. 연속되는 최악인 책들에 대해 켜켜이 쌓여가는 책에 대한 거부감은 좀체 풀릴 기색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영란을 집기까지에는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지나야만 했음을_ 이 책을 집는 그 순간에도 내려놓아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수십번도 고민했음을 고백한다. 더 이상은 책에 실망하고 싶지 않았고,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활자들에 배신감을 느껴 그것들을 발로 쿵쿵 밟아 땅에 파묻고 싶지 않았다. 11월 내내 내가 가진 표정들 중 가장 추악한 인상을 쓰는 얼굴과 좋지 못한 기분으로 책을 읽어왔다. 안되겠다 싶었다. 내 마음을 동요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책을 읽고 싶었다. 내가 가진 책 중 나의 마음을 동요하게 만드는 책이 없을리가 없었다. 책장에서 할레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를 한 손으로 움켜 쥐었다가 놓기를 반복했다. 책이 읽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눈물이 가득찬 마음으로 하산의 아픔을 위로해줄 자신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책을 읽고는 싶은데 어떠한 판가름이 서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다음 책이 나에게 어떤 기분을 안겨줄지 이제 덜컥 겁부터 나는 마음때문에 「영란」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책을 집으면서도 안절부절하여 첫 장을 쉽사리 펼치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강구책이라는 것이 책에 대해 살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이 아무리 공들여 쓴 서평이라 할지라도 책을 읽지 않은 나에게 오롯이 와닿을리 없었다. 분명한 것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는 것 말고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이니 어떤 평도 믿을 수 없고, 믿고 싶지 않아 그저 겉만 걸신 들린 듯 핥아댔다. 혹, 그 속까지 제대로 맛보았다 하였더라도 그것들은 이미 내 미각에서 지워졌으리라.

 

 

 

 

정섭은 자신이 그 여자를 생각하는 마음의 종류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눈물이라는 수맥이었다. 서로 다른 곳에서 생성된 눈물길이 통하고 있어서였다. 그것은 그러니까, 예기치 않은 순간에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파인 가슴이 만들어낸 셈이었다. 그 사람들은 살아 있는 동안, 그 눈물샘에서 솟아나는 눈물을 먹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 시작된 셈이다. (p69)

 

영란은 아니, 후에 목포에서 영란으로 불리는 그녀는 아이와 남편을 가슴에 묻고 빵과 막걸리로 끼니를 떼우며 억지로 사는 듯한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남편의 출판사에서 책을 낸 정섭에게 인세를 주기 위해 연락을 하게 되지만, 정작 정섭이 그런 그녀를 딱하게 여겨 “막걸리 말고 빵 말고 밥을, 따뜻한 밥을 먹읍시다.”라며 그녀를 회유한다. 둘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온기를 공유한다. 여기서 ‘온기’라는 것이 ‘사랑’이라고 오인하면 곤란하다. 내내 가족의 빈자리를 메꾸지 못하고 혼자였던 그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전해주었다고, 나는 그렇게 표현하고 싶다. 정섭은 친구의 부음에 목포에 가야하는 상황에서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어쩌실래요? 라고 물어오고 그렇게 그녀와 함께 동행하게 된다. 그녀와 그가 목포로 향하는 기차의 뒷자석에서 나도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는 것. ‘아니, 도대체 뭘 믿고?’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둔 채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옹색스러울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고 헤어리지 못했고 헤아릴 필요가 없다고까지 여겼다. 그리고자신이 그런 처지에 놓인 것이 분명한 지금,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또 다른 자신에게 가만히 말을 걸어본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있기를. 내가 나를 부디 저주하지는 않기를. (p105)

 

나의 ‘영란’이라는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야겠다,고 혼자 생각하며 큭큭, 웃어본다. 책의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는 대체 무얼까. 그곳 지방이 아닌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는 사투리? 잔잔함을 가장한 지루함? 그녀와 그의 시점 처리에서의 혼란스러움? 답답한 전개? 그 중 이유로 댈만한 것은 그 무엇도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혹자들의 서평을 살펴보면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불평·불만은 단연 사투리였다. 허나, 단지 그 이유만으로 이 책의 매력을 단박에 떨어뜨리기에는 안타깝다_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하긴, 개개인이 느끼는 것에는 차이가 있는데, 내 주관적인 감정을 앞세워 설명하는 것 또한 부질없다고 생각된다. 작가는 슬픔에 등지고 앉지 말고 슬픔과 마주하라고, 그 슬픔을 꺼내서 달래주라고 이르며 그것을 영란이라는 인물을 통해 눈 앞에 놓아주고 있는 셈이다. 그 '영란'의 모습에서 나는 신경숙 작가의 「기차는 7시에 떠나네」에서의 '하진'과 「외딴 방」에서의 '나'를 만났다.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서 그려내는 슬픔을 마주하는 이들이 애잔하지만 결국은 슬픔을 딛고 섰다는 것이 기특하여 - 정작 나는 그러지못하는 주제에 - 벌어진 입술 사이로 미소가 촘촘하게 배어나온다. 이 책은 그간 나의 비루한 독서의 간극을 채워주기에 적역이었다고 생각하며, 그녀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를 읽고 그녀의 글이 좋다_라고 생각했던 적 없었고,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도 그런 마음이 든 적 있노라고 당당히 말할 순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엔가 그녀의 매력에 파고들었다는 것 만큼은 자명하다. 고마워요, 공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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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마디 - 조안의 아주 특별한 이야기
조안 지음 / 세종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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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본래 유명세를 벗하여 출간되는 책들은 구태여 손을 뻗어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여 손길 한번, 눈길 한번 주지 않을 뿐더러, 도리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다들 잘 알고 있는 이외수, 타블로, 최강희, 배두나, 차인표, 소지섭…, 의 책들 또한 내게 있어서는 그저 책이 아닌 그들의 위상을 높여줄 만한 ‘하나의 도구’라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한 사람이다. 솔직히 말해서 ‘배두나의 사진집’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책으로 분류가 되는 것이고, 정혜영, 션의‘오늘 더 사랑해’라던가, 가장 최근 발매된 소지섭의 ‘소지섭의 길’이라는 것이 누구나 다 아는 정혜영과 소지섭이라는 브랜드를 떼고 - 특히 사진이 곁들여져 있는 책들을 말한다면- 서점에 내놓는다면 지금같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느냐,가 나로서는 그들의 책을 손에 한번 잡아보지 못하고 내치는 것에 있어서 굉장히 큰 이유가 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조안이 낸 장르를 알 수 없는 ‘단 한마디’라는 책을 보는 순간,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다_라는 느낌에 사로잡혔지,싶다. 아마 4차원이라는 별명을 지닌 그녀가 그린 일러스트와 써낸 동화같은 글이, 아니 판타지 소설이라 불리우는 이 책이 나에겐 어떤 느낌으로 와닿을까, 싶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연예인이 쓴 글,이라는 색안경을 끼지 않고 잘 읽을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을 안고서 책을 읽기에는 여전히 무리가 있었다.

 

 

 

그녀의 글을 정의하고 분석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 괜히, 일부러, 구태여 머리 아픈 짓을 할 필요는 없었다. 어리석은 행동이니까. 나는 그녀의 환상적이고 기발한 세계에 초대받은 ‘손님’이었다. 그녀가 베푸는 잔치를 내 나름대로 즐기면 될 일이었다. 독자 여러분들도 그녀가 벌이는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다. 그녀가 요리해서 내놓은. 열여섯 가지 독특한 이야기를 신나게 맛보고 즐겼으면 한다. - 정수현 작가

 

그렇다. 그녀는 전직 작가가 아닐뿐더러, 자신의 상상력만을 의지하여 써낸 글이기에 그것을 정의하고 분석하는 것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나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감을 표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작 작가가 아닌 책을 읽을 때, 직업이 본디 ~이기에,라는 부제를 먼저 떼고 시작하는게 맞지 않나 싶다. 전작 작가가 아니기에 그 책을 좀 더 낮춰서 봐야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전작 작가의 작품과 같은 값을 주고 책을 사기에는 아깝지 않나,라는 생각과 그런 것까지 감안하며 이 책을 읽을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연예인이 썼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라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 그곳에 있다. 나는 이 책을 처음에 조안이라는 사람이 썼다,라는 것 때문에 호기를 가졌지만, 읽을 때 만큼은 그녀가 연예인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하나의 작가의 글로 보았기에 이런 말을 할 자격 정도는 독자라는 이름으로 충분히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의 머릿 속에서 상상하는 것들 중 나는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이야기들이 참 많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심장이 점점 커져서 질질 끌고 다니는 소년, 심장이 사라져 가슴이 뻥 뚫린 소년, 열쇠로 가득 찬 심장을 가지고 있는 소년, 진실의 혀·마법의 혀·독설의 혀를 가지고 있는 소년, 생명을 연장시키는 알약을 손에 쥐려는 남자, 로또 당첨번호를 미리보는 소녀, 태어나서 단 한 마디밖에 할 수 없는 아이, 손바닥에 날개가 생긴 소년, 손에 눈물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소년, 소년에게 심장을 주기 위해 눈물을 모으는 소녀,젖처럼 뿌옇고 하얀 눈물을 흘리는 소녀, 개똥벌레가 된 소년, 바다에서 태어났다고 믿는 소년, 화상을 입은 엄마와 소년을 일컫는 빨간 모자, 그림자가 된 소년, 그림자를 사랑한 소년’이라는 열여섯 편의 이야기 중 가슴에 와닿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허무맹랑하여 ‘이게 뭐야?’라며 짜증섞인 말투로 하나의 이야기를 덮은 적도 더러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존중하지 못해서도 있었지만, 문제는 마무리였다. 혹자는 여운이 남는다,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은 여운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도 이야기를 끝내지 못했던, 덜 다듬어진 글은 그녀의 한계였다,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을 내비쳐본다. 여운이라는 말이 이렇게도 쓰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에 풉,하고 웃음이 터져나온다. 그녀가 벌이는 잔치에 초대된 손님인 나는 아직도 제대로 된 음식은 맛보지 못하고 밑반찬만 먹은 기분에 여전히 허기가 져 입맛만 다실 뿐이다. 단 한 편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된 이야기를 맛보고 싶은 나같은 독자에게는 조금 짜증섞인 투정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가지 더 짚자면, 열여섯 편의 이야기는 어두운 내용 뿐이었다. 그 열여섯편을 하나로 이을 끈은 애초에 부재된 상태였지만, 혹시나 싶어_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다 보니, 그것 또한 부질없는 짓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이야기라는 것은 자신의 프레임에 갇혀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암호를 쓰는 것이 아니라, 책으로 낸 이상 그것을 읽는 독자들을 간과하면서까지 자신의 세계를 고집해서는 발치에 있는 독자까지 끌어당겨 안기엔 무리가 있을 성 싶다. 내내 어두운 터널 속을 느릿느릿 지나가다가 마지막 책장을 덮은 순간에야 비로소 터널을 빠져나온 듯 생각되던 이 책을 나는 추천까지 하고 싶을 정도의 책은 아니었다,라는 정도의 말로 이 책에 대한 평은 이제 그만 끝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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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마지막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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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보낸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민망하게 짧았던 가을을 보내고 이제 겨우 겨울이란 녀석을 두 팔로 끌어안아 맞이하였는데, ‘여름’이라는 제목을 떡하니 써놓은 이 책을 집어들다니, 풉. 나도 모르게 낮은 실소를 터뜨린다. 그간 읽히지 않던 책들을 손아귀에 거머쥐고 있자니 얼마나 짜증이 솟구쳐올랐는지 아무도 모를게다. 하지만 여기에 덤을 얹어주다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온다 리쿠라는 작가는 익히 들어 알고 있고, 「도미노」라는 작품을 통해 이미 한번 접한 바 있으나,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이내 매몰차게 돌아서 다음 작품을 기약하겠다,했었고 그것이 이 작품이었다. 읽기 전부터 호불호가 갈리는 이 작품을 손에 들고 읽으려니 땀이 베어나오는 것을 슥슥 닦고서야 심호흡을 한다. 첫 장은 그렇게 힘겹게 열렸다.

 

 

 

 

이번 작품의 제목인 ‘여름의 마지막 장미(The last rose of summer)’는 19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 하인리히 빌헬름 에른스트가 만든 곡인데, 한 가지 테마가 다양하게 변주되는 곡이에요. 그래서 소설도 그 곡의 이미지를 따라 제1변주에서 제6변주까지 이어집니다. 역시 장이 바뀔 때마다 같은 테마가 반복되면서 점점 변화해 가는 이야기죠. _ 온다 리쿠 인터뷰 中

 

제목 속의 여름,이라는 단어에 걸맞지 않게 소설 속의 계절은 눈이 오고 코트를 입고 있으니 겨울을 뜻함을 오래지 않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 자매의 초대를 받아 간 호텔.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이라는 문장이 이 작품을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제 1 변주_미나토 도키미쓰, 제 2 변주_다도코로 사키, 제 3 변주_사와타리 류스케, 제 4 변주_아마치 시게유키,제 5 변주_사와타리 사쿠라코,제 6 변주_다쓰요시 아키라’라는 순으로 뒤죽박죽 변주가 시작되었다. 아니, 뒤죽박죽이 아니다. 한 변주가 끝나면 그 다음 변주가 이어서 시작하는 그런 변주인게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그 다음 변주에서 등장한다니, 이 혼동을 어찌 부여잡고 읽을 수 있겠는가,싶다. 골치가 아프다. 맞춰보라는 식인가, 우선 무작정 읽는다. 그러나 책 속의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라는 영화의 인용문들은 쓰잘떼기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기에 읽는 내내 불편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미칠 노릇이다. 그래도, 이것은 미스테리니까, 그렇기 때문에, 혹여나 복선이 있을까 싶어 읽지만, 아…허무하다. 그것은 오랜만에 외출하는 날에 차려입은 옷에 묻은 김치국물이었던 셈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다른 리뷰를 찾아보기에 발동이 걸렸다. 그것이 이 책을 이끌어나간다고? 도대체 어떤 부분이? 게다가 무엇보다 이 책에 난색을 표하고 싶은 점은 내가 ‘바보’가 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인데, 토론 대회에서 한창 열 올리고 있는데 맥없이 끝난 것과 동시에 아무런 결과를 통보해주지 않아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그런 좋지 못한 기분을 느껴야 했다는 점이다. 맥없이 끝나버리는 이야기에 내가 잘못 읽은 거겠지,를 연발하며 열페이지 가량을 되돌려 읽었으나 헛물킨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진실은 거짓에 섞어야 한다. 그래야 더욱 진실다워 보인다. 또 진실은 농담에 섞어야 한다. 그래야 얘기가 더욱 탄탄해진다. (p244) , 정말로, 정말로 이치코씨는 그 얘기를 할 작정이다. 진실은 허구 속에, 진실은 거짓말 속에. 진실은 농담 속에. 지금 그녀는 진실을 허구 속에 담아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p261)

 

제 4변주부터 재미조차 찾을 수 없던 나는, 결국은 범인잡기에 포기하고, 이 책에서 족히 스무 번은 넘게 나왔던 ‘진실’이라는 단어가 주는 힌트를 얻고 싶었던 것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속 시원히 말을 해달라고, 옆에 있었더라면 귀가 떨어져나가라 소리를 질렀을런지도 모르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도대체 그 호텔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겐지. 하지만 이미 진실은 휘발된 상태, 그러니까 애초에 진실따위는 없었던 게다. 그렇다면 작가는 독자를 농락한겐가. 아니, 아니다. 내가 놓친 거겠지,라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온다 리쿠 마니아들이 그렇게도 좋다 했던 분위기고 뭐고를 파악할 타이밍도 놓친 채,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한 영화의 인용문으로 인해 몰입성마저도 떨어진 나는 더욱 더 미칠 듯한 슬럼프가 나를 감싸고 있음을 이겨낼 자신이 없다. 욕지거리가 나오는 것을 간신히 꾹꾹 눌러 참고는 다 읽은 책을 책상에 휙, 집어 던진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하는지 아무 것도, 정말이지 아무 것도 모르겠다. 이는 모두 그간의 황폐해진 독서의 결말인 것이다. 안되겠다. 조금은 마음을 다스려야겠다,고 생각하고 머지않아 한국 작가의 책을 읽어야지,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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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이야기>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육식 이야기
베르나르 키리니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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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같은 프랑스 소설인 다른 작품을 읽고는 허탈감에 못이겨 슬럼프를 맞이했지만 그럼에도 또 다시 프랑스 소설을 집어든 이유는 그 편견을 깨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프랑스 소설이라면 질색팔색하는 내가 꼴보기 싫어 미리 방어막을 쳐두는 꼴이지 싶다. 수중에 내게 있던 책이라고는 「육식 이야기」뿐이었고, 만약 이조차도 없었다면 나에게 처음으로 책을 읽는 재미는 이런 것이다 라며, 독서라는 것에 발판을 마련해준 프랑스 소설, 서너번은 읽었음직하여 이미 내 손을 떠난 기욤 뮈소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를 구입해 다시 한번 엘리엇과 일리나를 마주하게 하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책은 프랑스 작가가 쓴 것이 아니라 벨기에 작가가 젊은 프랑스어권 작가에게 주는 보카시오 상을 수상하였다 해서 프랑스 소설로 붙여진 것 뿐, 오롯한 프랑스 소설이 아니었으니 이거 왠지 속임수에 넘어간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 나의 시선은 허공을 가로지르다가 어느 순간 우뚝 멈춰서 버린다. 그렇다면 나는 올해를 통틀어 읽은 것 중 감히 최악이라 평을 내리고픈 바로 전의 책을 마무리하고 이 책을 고른 것이 정녕 잘한 것일까,싶다. 실은 「육식 이야기」라는 이 작품의 - 주관적으로 - 유치하기 짝이 없는 표지는 서점에 가도 눈길이 갔다가도 거둘 만한, 그래서 손길 한번 가지 않을 그런 이 책의 표지는 나를 노려보고 있다. - 실은 책을 다 읽은 지금도 표지만큼은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 첫 단편부터 공포도 아닌 것이 사람을 경악하게 만든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을 뛰어넘은게다.

 

 

 

사람이란 모름지기 어떤 단어를 나열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말하라, 라고 한다면 거의 마지막에 말한 단어를 꼽기 십상이고, 전에 그것을 TV의 한 프로그램에서도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했던 것을 시청한 적이 있다. 그것은 비단 어린 아이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리라. 하지만 나는 아이러니하게 책을 덮고서 첫 단편이었던 ‘밀감’만이 생생하게 나의 머릿 속을 지배했다. 그것 외에 ‘베르나르 키리니’'의 어떤 단편도 그와 같은 영향력을 내게 선사할 순 없었다,고 단언한다. 여인의 피부를 감히 오돌토돌한 오렌지에 비유한 그의 상상력은 내 상상을 가뿐히 뛰어넘어 정확하고 안전하게 착지하여 내가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던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말할 수 있음이 내가 이 책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다. 책 속으로 시선을 던지니 일요일마다 오렌지 주스에 약간의 피를 타마시는 한 남자의 사연이 나의 상상을 농락한다. 새하얀 피부를 지닌 금발의 여인,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있는 오렌지 껍질들을 하나하나 벗겨낼 때 맺히는 물방울들을 걸신들린 듯 핥아대며 끝내 그녀를 마셔버린다. 이 정도에서 끝내버리면 이야기는 마무리되지 않은 바느질이고, 작가는 결코 그리 되게 두지 않는다. 그렇다 한들, 그것을 마셔버리고, 끝까지 그 맛을 갈구하는 것에서 끝나게 둔다면 그것 또한 독자에 대한 배려성이 자못 궁금하기까지 하겠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한 사내가 그 성적판타지를 자신에게 적용시킨다는 것. 순간 씁쓰레지는 것이 결국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를 받아들이는 것에 수긍하게 만든다.

 

 

 

‘밀감’ 외에도 ‘아르헨티나 주교’,‘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지금은 모두 죽어버린 몇 작가에 대하여’,‘착각의 나라 (야푸족은 어떻게 말하는가)’,‘기름 바다’,‘뒤섞인 사랑’,‘유럽과 기타 지역의 음악 비평 몇 편’,‘살인청부업자의 추억’,‘수첩’,‘기상천외한 피에르 굴드’,‘희귀조’,‘영원한 술판’,‘육식 이야기’의 총 열네 편이라는 베르나르 키리니,라는 브랜드 아래 상상이라는 지극히도 추상적인 단어로 삶에 대한 권태를 무르게 만들어주는 이야기들의 향연들로 가득채워 빡빡한 일상 속에서 한숨 돌릴 수 있는 계기를 직접 마련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내게 ‘이 책 어때요?’라고 물어온다면 나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답하려고 한다. 아니, 설령 좋음, 보통, 나쁨이라는 세개의 선택란이 있어도 나는 가장 만만한 보통에도 체크하지 못하고 아마 주저주저하며 선택하지 않은 백지를 낼지도 모르겠다. 그는 휘몰아치는 그의 활자들을, 그 수많은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마주하기에 나의 사고 회로가 허용할 수 있는 범위마저도 차단시켜 더 이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지경까지 내몰아 결국은 독자를 비웃는 듯함이 조금은 부담스럽게 다가왔던 것이 그 까닭이라 말할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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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도 색깔이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검정도 색깔이다
그리젤리디스 레알 지음, 김효나 옮김 / 새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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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435p의 책장을 덮는 것과 한숨이 내쉬어진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것은 비로소 이 책을 다 끝냈다는, 그리고 더 이상은 그녀의 삶과 내 삶을 같은 눈높이에서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의 한숨인 셈이었다. 내가 이 책을 얼마나 붙잡고 있었을까, 손가락을 하나, 둘 세어 따져보니 족히 열흘은 붙잡고 있었지않나 싶다. 그것은 나의 구미를 잡아당기지 않는 이 책의 한계,라고 이야기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다. 10월 끝무렵부터 한 장, 두 장 읽어가 11월, 열흘동안 50p도 못나가리 만큼 지루하여 하품을 자아내는, 그러다 끝내 잠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그녀의 삶을 이제는 끝내야했다. 물이 없는 우물 속의 두레박이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내는 딱딱,거리는 소리는 두레박이 내는 것이 아닌 내 마음 속의 자명종과 같은 것이었음을 알아챈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갈증이 전혀 나지 않는 상태에서 물을 들이키는 것은 차오르는 배를 바라보며 신물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는데, 내게 있어 그것이 그녀의 인생이었다. 치졸함과 추악함이 맛깔나는 잼으로 변모하여 빵 속에 들어가 그녀의 생을 눅눅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리젤리디스 레알의 자전적 소설, ‘검정도 색깔이다’ 그녀는 검둥이 애인 빌을 정신병원에서 탈출시키고 그를 48시간 내에 이 땅에서 내보내야 한다는 엄명을 받게 되어 그와 두 아이와 함께 독일로 이주하여 자신의 몸을 타인에게 노출시키는 일, 매춘으로서 돈을 얻게 된다. 책 전체가 그리젤리디스 레알의 서른 두 살 이후의 삶에 조명을 비추고 있기에 줄거리에 대해 나의 어쭙잖은 말은 삼가는 게 좋겠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 대한 평점을 이렇게밖에 줄 수 없는 이유가 프랑스 소설이어서, - 실은 그 까닭에 마음이 무거워진 탓도 있었으나, 비단 그것만으로 이 책을 거부하였더라면, 난 이 책 자체를 읽지 않았으리라. 게다가 그 까닭으로 읽는 것에 부담을 느꼈더라면 전에 읽었던 기욤 뮈소의 작품도 하나의 작품만 읽고 안녕,해버렸을 것이 분명한데, 나는 그의 책을 꼬박꼬박 읽어왔었다. 프랑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 라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도 아니었고, 소위 말하는 매춘부에 대한 거부감 역시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 책은 가파른 언덕을 주위를 바라볼 틈도 없이 숨차게 올라가는 나에게서 일말의 미소라도 원했던 것이라면 너무 많은 것을 바란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나에게 있어서는 무척이나 거부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한 책으로 다가왔는데, 그 까닭을 구태여 찾자면 문장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내게 있어 위장을 헤집는 것과 같은 불쾌함을 동반한 졸렬함이었고, 그것은 음식물을 섭취한 후에 이 책을 손에 집는다는 것은 내게는 무척이나 고역과 다름없는 역겨움을 선사하기에 충분했다. 사랑의 결정체라고 불리우는 섹스라는 것이 그녀에게는 사고 파는 것으로 간주된 그 순간부터 경계했었어야 했다. 아니, 애초에 시대상황이 그녀를 그리 만들었다고 줄곧 생각하게 만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몇 번의 노동기회가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내침으로써 매춘부라는 것은 오롯이 자유의지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것말고는 다른 것에 대한 열정은 보이지 않았고, 뭔가를 하고 싶다는 열정조차도 내 검은 눈동자에 만큼은 비치지 못했으니까. 세상이 그녀를 병들게 만든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이 병들게 했다.

 

 

 

게다가 “진실로 사랑해보지 않은 자는 이 책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길. 책은 그런 사람의 손 안에서보다 더러운 쓰레기 더미 속에서 좀 더 따스하게 머물 테니까.”이런 오만한 그녀의 글을 고개를 주억거리며 읽어 내리기에 내 심장은 그렇게 말랑말랑한 상태가 아니었음이 애석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사랑이란, 그래. 그녀에게 있어 사랑이 무엇인지 나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녀가 끄트머리에 진정으로 사랑했다던 로드웰, 그를 기억하고 찬양하기 위해 쓰여졌다던 그 역시 내 눈엔 다른 자들과 같은 사람들처럼 보였음에 왜? 라는 말을 반문해야했는데, 남이 보기에 자질구레한 사랑도 자신에게는 영속할 줄 알았던 그녀의 사랑이 가엾기까지 하다. 부록에 ‘매춘은 혁명적인 행위이다.’라고 쓰여져 있고, 그곳엔 그녀가 제네바의 길거리를 걸으며 써내렸던 글이 있다. 오만함의 극치는 어디까지인가, 나의 한숨은 얼마나 더 깊어갈 것인가. 그녀의 글은 오만하고, 그런 그녀의 글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뿐이다. 장하다. 이 책을 끝까지 정독하여서. 나는 남의 인생을 내것인 양 가타부타하기는 싫지만, 내 한참 모자란 서평이 그녀의 생에 어디까지 참견하려 손을 뻗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한마디는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한 벌로 몸은 강력하게 저항할 것이고 그것을 시작으로 입 주변에 꽃봉오리들을 피울것이다. 얼룩덜룩한 그 꽃봉오리 속에는 독을 품을테지. 그것의 이름은 ‘매독’······. 아, 도저히 안되겠다. 마음 속을 정화하고자 나는 다른 프랑스 소설을 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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