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온도 - 조진국 산문집
조진국 지음 / 해냄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라는 여자, 참 외로움을 많이 탄다. 혼자라는 사실을 퍽이나 못 견뎌한다. 그래서 누가 무인도에 간다면 뭘 가져갈 것이냐, 라고 묻는 질문에 꼭 나 혼자 가야해? 라고 묻곤 했었다. 그래서 무인도를 가게 된다면, 사네 못사네 하며 지지고 볶고 튀겨도, 사람과 함께 가야한다고 생각했었다. 외로움을 잘 참지 못해서 생긴 병 하나. 사물에 이름을 붙여주고 그것이 마치 살아있는 듯 말을 걸며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는 것. 까닭이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짚어서 이야기하기엔 너무 복합적이라서 ‘무엇’ 때문이다, 라고 말하기엔 어려움이 있지만, 외로움이 40도의 고열로 시달리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 와중에 며칠 전 키우던 다육식물 ‘사월’이가 죽어서 그것을 오랫동안 쳐다보며 참 많이도 멍했더랬다. 옆에서 사수가 ‘야심차게 키우더니 죽었네요.’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 녀석이 죽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냥, 햇빛이 나지 않아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었던 것. 그렇게 외로움이 찾아들었다. 하지만 이런 감정, 얼마 동안은 마음에 얹혀 있어서 참 많이 힘들겠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니까, 괜찮아 질 거야. 생각했고, 뭐, 그런대로 역시 그랬다.

 

 

 

 

 

 

저자 조진국, 읽기도 전에 떠도는 문구로 인해 꼭 한 번쯤은 읽어보고 싶은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를 노트에 슬몃 위시라고 써놓고는 「외로움의 온도」를 먼저 접하게 되었다. 처음 접하는 작가지만 낯설지 않은 느낌, 꽤 괜찮다,며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읽었다. 이야기 하나에 노래 가사가 하나씩 꼭 나오는데, 낯익은 노래들도 여럿 나왔지만, 나중에 한 번 들어봐야지 - 해놓고 들어보지 않은 노래들도 부지기수. 무더운 여름을 나기 위해 깔아두었던 시원한 돗자리에 벌러덩 누워서 이야기 하나를 읽고 그 노래를 들으며, 좋다고. 미래를 막막해하며 소주 한 잔 기울이고 있을 그의 선배 혹은 우리에게 <뜨거운 감자 _ 청춘>을 들려주며 위로를 해주기도 하고, <윤상 _ 결국... 흔해 빠진 사랑 얘기>의 경쾌한 멜로디에 섞인 웃지 못할 가사를 들으며 옛 애인이 느꼈을 감정을 공유했을 저자를 안쓰러워 하기도 하며, <조동진 _ 행복한 사람>을 들으며 모르는 슬퍼보이는 어떤 여자의 까만 눈동자를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 키친을 치킨이라고 하고, KTX를 KFC, KTF라고 하면서도 늙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능청스럽게 <장기하 _ 별일 없이 산다>를 듣고 있는 저자를 떠올리며 웃음을 짓기도 하고, 육 천 원의 묵주로 행복을 얻은 그가 들려주는 멜로디 <옥상달빛 _ 가장 쉬운 이야기> 참고로 지금 나는, 여름이 지나려는 문턱에서, 조진국 작가는 올해의 크리스마스 캐럴로 정해놓고 질릴 때까지 들었다던 김동률의 ‘크리스마스잖아요’를 듣고 있다. 참, 좋다.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나는 지금도 사랑을 믿는다. 여전히 사랑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젠 사랑이 변한다는 것도 안다. 아침에는 봄이었다가 저녁에는 겨울이 되고, 어제는 겨울이었다가 오늘은 봄이 되는 2월의 날씨처럼 사랑도 계절처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죽을 것 같던 실연의 고통도 어느덧 사라지듯이, 사랑하는 마음도 사라질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나서 조금은 편안해졌다. 지금에 와서 어쩌면 사랑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미칠듯한 격정과 불안, 행복과 편안함도 받아들이고, 언젠가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사랑이 변하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것도 받아들이는 거라고. 사랑이 변한다는 걸 알면서도 왜 사랑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잠깐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돈은 사람을 멋지게 만들어주고, 명예는 사람을 우아하게 만들어주지만,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건 사랑이라는 걸 믿으니까. 내가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길 바라듯 나 또한 그런 사람에게 여전히 끌리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p54-55)

 

 

 

몸서리치는 그리움의 한가운데서 냄새 하나로 버티고 있는 그녀를 보며 그제야 나는 향기와 냄새의 차이를 알 것 같았다. 같은 향기를 가진 사람은 여럿 있지만, 세상에 똑같은 냄새를 가진 사람은 없다. 냄새는 결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 오로지 그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것, 먼지처럼 때처럼 아무것도 씻어내지 않고 덜어내지 않고 켜켜이 쌓여서 그 사람만의 지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문은 그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는 다른 한 사람의 가슴에 오랫동안 새겨지는 것이다. (p64)

 

 

 

향기는 마지막까지 남는다. 안에 담겨 있던 것들을 다 덜어내고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스라이 사라져도, 보이지 않는 향기만이 남아서 추억을 마지막까지 챙긴다. 그 향기마저 사라질 때, 진정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p120)

 

 

 

울고 있다고 모진 시간이 빨리 가지는 않는다. 세상에 대고 욕한다고 울분이 풀리는 것도 아니다. 젊음은 한바탕의 서커스다. 곡예를 하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조마조마하지만, 통과한 다음에는 즐거운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서커스다. 그러니 차라리 웃자. 웃다가 다시 울게 되더라도 웃고 있는 동안에는 신나게 웃자. (p21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더기 점프하다
권소정.권희돈 지음 / 작가와비평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스무 살하고도 서너 살을 더 먹었을 때였던 것 같다. “난 이제 어른이야”라고 말하는 철부지 딸의 말 한 마디를 들으며 얼마나 웃음이 나셨을까, 생각하곤 한다. 어른이라니. 올해로 스물 다섯 살이나 먹은 딸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물가에 내 놓은 아이같다,며 나에 대한 근심·걱정이 끊이지 않는 부모님인데 말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가끔 직장에서 부모님을 생각할 때면 괜시리 눈물을 훔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동성 친구들은 아빠보다 엄마에게 더 의지를 많이 한다지만, 나는 그 반대로 아빠에게 더 많이 의지를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요근래, 아빠와의 대화가 많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내가 애교라도 많은 딸이라면, 살갑게 먼저 다가가기라도 할텐데, 장녀로 커온 나는 무뚝뚝하게 자라 애교는 저멀리 내팽개쳐버리고 같은 말이라도 정말 정(情)없게 툭툭 내뱉는 딸인 까닭이다. 그러던 중 아빠와 딸이 쓴 아날로그 감성에세이라는「구더기 점프하다」에 마음이 뺏겨버렸다.

 

 

 

오십 페이지를 채 넘기기도 전에 “아, 젠장. 낚였다.” 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아빠와 소통을 하기 위해, 다른 부녀지간의 소통하는 모습을 살짝 엿보고 싶었던 것 뿐인데, 소통은커녕, 서로 다른 주제로 글을 써내려가는 부녀의 글을 보며, 이러려면 뭣하러 한 권에 두 사람의 글을 써서 냈을까? 어떤 공통된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닌데 - 하는 부정적인 생각들만 가득 들어차올랐던 게 사실이다. 그들 부녀는 공동으로 책을 냄으로써 딸은 아버지의 어린 소년의 모습[유년시절]에서부터 현재는 은퇴를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고, 아버지는 자신과 공통점만을 가지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딸을 자신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게 됨으로써 딸을 다시 얻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나에게는 등을 돌리고 각자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고자 하는 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달까. 그 까닭에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기 한 점 없는 표정으로 읽어내려갔을 뿐. 책의 소개란에서, 그리고 타자들의 서평에서 보이던 말랑말랑한 감성에세이라는 단어를 나는, 어디에서 찾아야할지를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백영옥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 그에게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플랫폼에 서서 미니북으로 되어있는 백영옥 작가의 「아주 보통의 연애」를 접한 적이 있었다. 몇 장 되지 않는 미니북이라서 읽을 생각도 안 하고 읽던 책이나 읽자, 했는데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아 잠깐 맛보기로 읽었던 것. 술술 읽던 중간 즈음에 ‘결국 나가 아닌 어떤 사람도 남일 수밖에 없다. 친밀한 타인과 그렇지 않은 타인이 있을 뿐인 것이다.’라는 문장에 시선이 한참 동안이나 머물러있었다. 그리고 잊고 있었는데,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의 작가가 백영옥 작가라는 것. 어! 이 작가? 역시나 그 작가가 맞았다. 그것만으로도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한 번 읽어볼까? 생각하고 책을 들었다. 겨우 지나가던 한 줄의 문구에 마음이 온통 빼앗겨서,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고집을 부린 게다.

 

 

 

 

아버지가 프랑수아즈 사강을 좋아하는 까닭에 윤사강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그녀는, 최근 유부남인 기장 한정수와 연애를 하던 어느 날, 그가 이혼하겠다고 얘기한 순간 이별을 결심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끝으로 이혼을 강행했던 그녀의 부모를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 십 여 년동안 연애 중인 이지훈과 정현정. 이미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까닭일까. “난 가끔 우리가 사귄 지 십 년 가까이 됐다는 게 믿기지 않아. 내 청춘이 너란 사람으로 채워진 거잖아. 테트리스로 치면 난 정사각형만 잔뜩 들어가 있는 블록 같아. 어떤 사람들은 세로가 긴 직사각형, 가로가 긴 직사각형, 기역, 니은 모양의 도형처럼 다양한 블록들로 가득 차 있을 텐데.” 결국 그들은 이별을 받아들이게 된다.

 

 

 

 

실연당했습니다. 스위치를 꺼버린 것처럼 너무 조용해요. 혼자 있으면 손목을 그을 것 같은 칼날 같은 햇빛.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영화제를 주최합니다. 실연 때문에 혼자 있기 싫은 분들은 저랑 아침 먹어주실래요? -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으로 바로가기 실은 이것의 실질적인 목적은 실연당한 사람들이 새로운 짝을 찾길 원한다는 결혼정보회사 정미도의 계략이 숨어들어간 모임이었다. 실연을 빙자해 새벽까지 친구들을 붙잡아놓고 술을 퍼마시며 하소연하듯 우는 것이 아니었다. 화장실 변기에 머리를 처박고 밤새 먹은 음식을 토해내며 스스로의 배설물을 확인하는 자학적인 방법도 아니었다. 그것은 상대를 증오하고 미워하며 저주를 퍼붓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형편없는 스토커로 전락해 경찰 신세를 지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 그저 묵묵히 실연 때문에 여기저기 곪아 터진 상처가 전시된 갤러리에서 적당한 값을 치르고 가장 마음에 드는 상처를 쇼핑하는 것이었다. 실연당한 사람들이 오전 일곱 시에 모여 함께 아침을 먹고, 치유를 해준다고 믿는 영화 네 편[500일의 섬머, 러브레터, 화양연화, 봄날은 간다]을 보고, 기념품 가게에 사랑했던 이와 나누었던 물건을 교환하는 것. 그곳에서 사강은 지훈이 내놓은 오래된 카메라를 집었고, 지훈은 사강이 내놓은 책, <슬픔이여 안녕>을 집었다. 사강은 자신이 집은 카메라에 필름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필름을 현상한다. 그곳에서 행복했던 그들의 시간을 보게 된다. 그리고, 필름을 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ㅡ 사강과 지훈,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공유하며 그것을 치유한다.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오롯하게 말이다. [사강의 사랑에 대한 이별로 시작된 것이, 가족의 이별로 옮겨가는 것은 좀 쌩뚱맞지만.] 개인적으로 타인의 상처를 듣는 것은 호기가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몇 번이고 반복되는 지겨운 이야기를 들어야하는, 그럼에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하는데, 어떤 위로도 가 닿지 못한다는 것을 아니까.

 

 

 

 

“대학을 졸업하던 해, 집에 장미 꽃다발 하나가 왔어요. 별생각 없이 그 꽃을 거꾸로 매달아서 거실 벽에 붙여놨었는데, 꽃이 떠어지는 대신 꽃대까지 바싹 마르더군요. 향기없이, 미라처럼요. 형태는 유지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점점 먼지가 쌓이면서 더러워 보였어요. 과거엔 아름다웠지만 향기 없이 말라버린 꽃을 바라보는 일이나, 이미 끝난 사랑을 바라보는 일이 뭐가 다르죠?” 나는 언젠가 이별을 하는 날이 온다면, 고마워,로 끝낼 수 있는 사랑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든, 적어도 나의 한 시절을 함께 해준 그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었으니까. 나는 사랑을 할 때마다 나보다 타인을 더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몇 번의 이별을 경험하고는 훗날 내가 받을 상처때문에라도 타인보다 나를 생각하게 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항상 그 끝에는 어쩔 수 없이, 미련의 여지가 남았다. 좀 더 - 할걸, -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등의 미련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미 끝난 사랑에 그것은 가닿지 못하고 허무하게 스러져 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모든 것들을 나 아닌 타인에게 내 상처를 얘기하며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다 한들, 타인이 내 상처를 오롯이 이해할 수도 없거니와 - 그것을 놓고 타인이 가타부타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혹여, 내 한 시절이 더럽혀질까, 쉬 말하지 못하고 끙끙대는 사람이라서, 상처는 곪아 터질 때까지 두고 보는, 그래서 차라리 시든 꽃을 망연하게 바라보는 쪽이다. [어떤 감정에서든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몇 번의 이별을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못하고, 여전히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을 것 같다.

 

 

 

 

 

아침이 밤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자정은 어떤 모습일까 - 에밀리 디킨슨

 

 

 

서로의 진심을 농담으로 흘려버릴 정도로 그들의 시간은 함께 마모됐다. 지훈은 시간이 오래된 가죽처럼 부드럽게 낡아가는 것이라고 상상하는 걸 좋아했다. 그렇게 늙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연애가 터질 듯한 열정과 섹스로 가득 찬다면 인류의 절반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자살했거나, 미쳤을 것이다. 열정이나 욕망이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 같은 감정이라는 걸 지훈은 알고 있었다.

 

 

 

이별은 앞으로 오는 것이다. 그러나 실연은 언제나 뒤로 온다. 실연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각을 일시에 집어 삼키는 블랙홀이고, 끊임없이 자신 쪽으로 뜨거운 모래를 끌어들여 폐허로 만드는 사막의 사구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나
서하진 지음 / 현대문학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2011] 즈음에 김이설 작가의 「환영」을 읽은 직후 ‘여성의 삶’에 대해 관심이 갔다. 뿌리에서부터 우울해서, 어느 부분에서라도 웃음 한 모금 제대로 퍼올리지 못하는 윤영의 삶에서 머리가 아플 정도로 혼동과 지진을 전해받았던 때가 여성들의 또 다른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무렵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눈길이 가 닿았던 서하진의 「나나」였다. 표지의 묘연의 여인은 매혹적이라기보다는 무척이나 음울해 보인다. 침대의 귀퉁이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긴 하지만, 나는 그녀의 옆에서 바라보고 있기에 정확히 어떤 표정으로 어떤 물체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지는 못하지만, 그녀의 목덜미에 가 있는 오른 손이, 그녀의 허벅지에 얹어진 왼 손이, 그녀의 곧은 두 다리가, 바닥에 닿지 못하고 떠 있는 두 발이 처연해보이는 건 사실이다.

 

 

 

 

 

기억은 스쳐 가고 잊히지만 때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p135] 인영은 정섭과 술 한 잔 하는 자리에서 그 애의 이름을 듣는다. 정섭이 꺼낸 “나나말이야…….” 나나, 그녀는 누구일까. 나나라는 이름이 입가에 맴돈다. 눈이 수북히 쌓인 밤에 국도. 쿵, 범퍼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며 그의 몸에 묵직한 충격이 전해왔다. 앞차의 여자가 내려 도로 위의 검은 물체에게 다가간다. 죽은 노루. 그게 그녀와 첫 만남이었다. 그녀, 애란. 인영과 그녀의 거리가 가까워질 무렵, 인영의 집에서 마주친다. 인영, 애란, 나나 ㅡ 이마를 가린 머리카락을 슬쩍 넘기는 인영의 마른 손가락을 애란이 가만히 바라보았다. 가르마 부분, 하얀 세치가 두어 올 솟아 있었다. 그를 무릎에 누이고 찬찬히 세치를 뽑아주고 싶었다. 오래 함께 산 사람들처럼, 가만히 좀 있으라 나무라면서. [p143] 인영이 나나에게서 벗어날 수 있기를, 나나에게 무참하게 휘청이는 그를, 애란이 구출해낼 수 있었음,하고 간절히도 바랐다. 하지만…….

 

 

 

 

 

실은 나, 책을 다 읽은 후에 어떤 것을 느껴야 좋을지 몰랐다. 팜므파탈의 전형인 나나의 영리함의 과부하로 오류의 결과인 영악함과 결코 좋은 일에 쓰일 수 없는 매혹적임을 느껴야 했던 걸까, 평생 이복누이에게서 벗어날 수 없는 그를 안쓰럽게 느껴야 했던 걸까. 그도 아니라면, 뭘까. 싶었다. 작품해설을 도중에 읽다가 말았지만 세속적인 욕심때문에, 외로움때문에 몇 겹씩이나 옷을 껴입는 나나를 이해해야 했던 걸까. - 어쩌면, 결국, 또, 삶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해한거라곤, 그들을 불행하게 할 걸 알면서도 그 삶 속으로 다시 회귀했다는 것, 그 뿐이었으니까. 나나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인영, 거짓으로나마 부를 누리고 싶어했던 나나, 새롭게 찾아온 사랑을 잡고 싶어했던 애란, 번듯한 소설가로 등극하고 싶었던 정섭. 그 누구도 자신의 삶에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또, 삶. [ps.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은 사람과 소통을 하고 싶기도 하다. 이 책에 타자는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서평이 별로 없음에 아쉬움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3-08-03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은 걸레...
삶은 계란...

인터넷 독서록,
익숙치않아서...이제 겨우 더듬더듬 ..그러고 있죠.^^;
아직 종이에 끄적끄적 독서록을 일기처럼 쓰는지라....
저역시 읽은,
하아~~소통. 집에가서 지난 독서록을 좀 보고..
저도 조금 뵈드릴게요..엿보기만하면 염치없으니...
잘읽고 가요.^^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산문집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와, 벌써 칠 월이구나. 그렇잖아도 장마 기운이 있는 요즘은 아침에도 습하고 더운 날씨인데, 북적거리는 아침 출근 버스에 에어컨도 틀어주지 않는 박한 기사양반,이라며 입 밖에 내지 않을 욕을 하고 빡빡해서 잘 열리지 않는 창문을 있는 힘껏 열어제낀다. 버스가 달리는 속도만큼 바람이 얼굴을,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버스에서 3-40분 동안 바람을 느끼다가 내가 내릴 버스정류장에서 5분이 걸리는 사무실에 도착해 에어컨을 켜고, 선풍기를 켜고, 모닝커피를 한 잔 타고, 내 자리에 앉아 고작 몇 분, 그 사이는 이병률 작가의 글을 음미하기엔 더없이 좋은 시간이다. 간혹, 점심시간에 점심을 먹고 시간이 약간 남아서 책을 펼칠 때도 있긴 했지만, 얼른 업무 준비를 해야한다,는 것때문인지 마음에 여유가 없는 채로 읽는 것이 전부였던 까닭에, 책을 찾았던 것은 오로지 아침 출근 후 여유있는 그 시간 뿐이었다. 그렇게 근 2주, 이병률 작가가 발간한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는, 아침마다 기분좋은 설레임을 안겨주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넓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는 곳은 단지 세상의 조각에 불과했어. 나하고 정말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난 겨우 그 사실을 알았고 그건 충격이었지. 다른 기후 속에서 생각을 하고,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꿈을 살고 있었지. 나의 정반대 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 시간에 깨어나서 치열하게 뭔가를 붙들고 있었거든. 난 가능한한 세상의 모든 경우들을 만나볼 거야.” [#1. 심장이 시켰다.] ㅡ 나라는 사람, 여행이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줄곧 생각해왔는데, 올해 들어서 나름대로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더랬다. 내가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닌 것도 아니고, 아주 멀리까지 다녀온 것도 아니라서 여행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해서 마실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기도 하다. 난 지금, 마실에 목이 마른 상태다. 다음 달에 있을 일주일 간의 휴가 동안 어디를 갈지 아직 생각하진 않았지만,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휴가를 보내겠다, 생각하며 책의 도입부를 살랑거리며 넘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위로 받기엔 바람부는 날이 좋다. (…) 세상 그 어떤 시간보다도 지금 우리 앞에 있는 시간이 좋다. (…) 사랑하기에는 조금 가난한 것이 낫고 사랑하기에는 오늘이 다 가기 전이 좋다. [#10.] 이번 책에는 여행,만이 담겨있는 것이 아니었다. 여행에세이로 묶여져 있긴 했지만, 작품은 이병률의 사랑타령으로 가득했다. 사실 제목부터가 그랬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라니. 진부하기 그지없지만, 이보다 마음이 살랑거리게 만드는 솔직한 말이 또 어디있으랴. 서평을 쓰려니,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싶다. 어떤 말을 쓴다 해도, 마음을 서평에 다 담아내진 못할 것을 알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아마 이병률 작가의 다음 작품을 라면봉지에 콩을 틔우던 불가촉천민처럼 기다리고 있으리. 그리고 여담으로, 이틀 전 그에게 서운함을 토로했던 것이 여전히 마음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었는데 서평을 쓰려고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인 곳을 손으로 어루어만지다가 [#10]을 눈으로 보고 읽고 손으로 타이핑했을 무렵, 점점 빛바래짐을 느꼈다. 사랑하기에는 오늘이 다 가기 전이 좋다던 이병률 작가의 말처럼, 오늘 그에게 냉담한 말 대신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야겠다, 생각한다.

 

 

 


주황은 배고픔의 색깔이다. 사랑을 하고 싶은 사람, 사랑에 굶주린 사람, 사랑에 병든 사람이나 병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그래서 주황이다. 주황은 마지막 소원의 색이기도 하다. 소원을 불에 태운다면 그 색이 주황이다. 사실 한번 옮겨붙으면 끄기 어려운 불과도 같다. 한 대상에게, 한 인간에게 물입하면 몰입할수록 주황은 더 짙어지고 뿌리를 내린다. [#28.네가 골라놓은 당근을 먹었다.]

 


당신이 좋다,라는 말은 당신의 색깔이 좋다는 말이며, 당신의 색깔로 옮아가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 색깔이 맘에 들지 않는다,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했을 경우, 당신과 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지켜야 하는 사이라는 사실과 내 전부를 보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동시에 통보하는 것이다. [#29. 조금만 더 내 옆에 있어 달라고.]


 

살면서 모든 것을 털어놓아도 좋을 한 사람쯤 있어야 한다. 그 한 사람을 정하고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은 살면서 만나지기도 한다. 믿을 수 없지만 그렇게 된다. 삶은 일방통행이어선 안 된다. 루벤 곤잘레스처럼 우리는 세상을 떠날 때만 일방통행이어야 한다. 살아온 분량이 어느 정도 차오르면 그걸 탈탈 털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야 한다. 듣건 듣지 못하건 무슨 말인지 알아듣건 알아듣지 못하건 그것도 중요하지 않다. 무조건 다 털어놓을 한 사람. [#36. 무조건]

 


당신한테 내가 어떤 사람이었으면 하는가요? 사람을 좋아하는 일은 그러네요. 내가 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의 ‘상태’를 자꾸자꾸 신경쓰게 되는 것. 문득 갑자기 찾아오는 거드라구요. 가슴에 쿵 하고 돌 하나를 얹은 기분. 절대로 나는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한 적 없는데 그렇게 되는 거에요.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와 있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날씨처럼, 문득 기분이 달라지는 것. 갑자기 눈가가 뿌예지는 것.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는 것. [#39. 당신한테 나는.]


 

사는 데 있어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것이지만 그것을 알기에 사랑은 얼마나 보이지 않으며 얼마나 만질 수 없으며 또 얼마나 지나치는가.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고 지나치는 한 사랑은 없다. 당장 오지 않는 것은 영원히 오지 않는 이치다. 당장 없는 것은 영원히 없을 수도 있으므로. 그렇ㄷ라도 사랑이 없다고 말하지는 말라. 사랑은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불안해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믿으려는 것이다. 사랑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해지는 걸 못 견뎌하는 것이다. 사랑이 변했다,고 믿는건 익숙함조차 오래 유지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뿐이다. 사랑으 있다. 사랑이 없다면 세상도 없는 것이며 나도 이 세상에 오지 않은 것이며 결국 살고 있는 것도 아니질 않은가. 그렇다고 사랑만이 제일이라고 생각하지도 말라. 사랑은 한다고 해서 다가 아니라 사랑할 때의 행복을 밖으로 제대로 드러낼 수 있는 상태가 사람을 키운다. 애써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넘치는 상태만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47. 사랑도 여행이다.]

 


누구를 강렬하게 좋아하는 마음이 빨강이라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도 빨강입니다. 문득 치받쳐오르는 것도, 그게 그렇게 오래 달라붙어 있는 것도 빨강입니다. 적어도 사랑은 붉게 오리란 걸 알고 있습니다. 예감은 그런 것 아닌가요. 난데 없는 것. 금방이라도 붉게 물들어버릴 것 같은 것. 사로잡히는 것. 문득 어느 날 첫눈이 내려도 흰색의 눈발이 아니라 붉은 눈발이 흩뿌릴 것 같은 것. 그렇게 심장의 통증이 시작되는 것. [#55. 당신이 행복할 것이니 난 미안하지 않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