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온도 - 조진국 산문집
조진국 지음 / 해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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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여자, 참 외로움을 많이 탄다. 혼자라는 사실을 퍽이나 못 견뎌한다. 그래서 누가 무인도에 간다면 뭘 가져갈 것이냐, 라고 묻는 질문에 꼭 나 혼자 가야해? 라고 묻곤 했었다. 그래서 무인도를 가게 된다면, 사네 못사네 하며 지지고 볶고 튀겨도, 사람과 함께 가야한다고 생각했었다. 외로움을 잘 참지 못해서 생긴 병 하나. 사물에 이름을 붙여주고 그것이 마치 살아있는 듯 말을 걸며 생명력을 불어 넣어 주는 것. 까닭이 ‘무엇’이라고 명확하게 짚어서 이야기하기엔 너무 복합적이라서 ‘무엇’ 때문이다, 라고 말하기엔 어려움이 있지만, 외로움이 40도의 고열로 시달리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 와중에 며칠 전 키우던 다육식물 ‘사월’이가 죽어서 그것을 오랫동안 쳐다보며 참 많이도 멍했더랬다. 옆에서 사수가 ‘야심차게 키우더니 죽었네요.’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 녀석이 죽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냥, 햇빛이 나지 않아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었던 것. 그렇게 외로움이 찾아들었다. 하지만 이런 감정, 얼마 동안은 마음에 얹혀 있어서 참 많이 힘들겠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니까, 괜찮아 질 거야. 생각했고, 뭐, 그런대로 역시 그랬다.

 

 

 

 

 

 

저자 조진국, 읽기도 전에 떠도는 문구로 인해 꼭 한 번쯤은 읽어보고 싶은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를 노트에 슬몃 위시라고 써놓고는 「외로움의 온도」를 먼저 접하게 되었다. 처음 접하는 작가지만 낯설지 않은 느낌, 꽤 괜찮다,며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읽었다. 이야기 하나에 노래 가사가 하나씩 꼭 나오는데, 낯익은 노래들도 여럿 나왔지만, 나중에 한 번 들어봐야지 - 해놓고 들어보지 않은 노래들도 부지기수. 무더운 여름을 나기 위해 깔아두었던 시원한 돗자리에 벌러덩 누워서 이야기 하나를 읽고 그 노래를 들으며, 좋다고. 미래를 막막해하며 소주 한 잔 기울이고 있을 그의 선배 혹은 우리에게 <뜨거운 감자 _ 청춘>을 들려주며 위로를 해주기도 하고, <윤상 _ 결국... 흔해 빠진 사랑 얘기>의 경쾌한 멜로디에 섞인 웃지 못할 가사를 들으며 옛 애인이 느꼈을 감정을 공유했을 저자를 안쓰러워 하기도 하며, <조동진 _ 행복한 사람>을 들으며 모르는 슬퍼보이는 어떤 여자의 까만 눈동자를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 키친을 치킨이라고 하고, KTX를 KFC, KTF라고 하면서도 늙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능청스럽게 <장기하 _ 별일 없이 산다>를 듣고 있는 저자를 떠올리며 웃음을 짓기도 하고, 육 천 원의 묵주로 행복을 얻은 그가 들려주는 멜로디 <옥상달빛 _ 가장 쉬운 이야기> 참고로 지금 나는, 여름이 지나려는 문턱에서, 조진국 작가는 올해의 크리스마스 캐럴로 정해놓고 질릴 때까지 들었다던 김동률의 ‘크리스마스잖아요’를 듣고 있다. 참, 좋다.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나는 지금도 사랑을 믿는다. 여전히 사랑이 영원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젠 사랑이 변한다는 것도 안다. 아침에는 봄이었다가 저녁에는 겨울이 되고, 어제는 겨울이었다가 오늘은 봄이 되는 2월의 날씨처럼 사랑도 계절처럼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죽을 것 같던 실연의 고통도 어느덧 사라지듯이, 사랑하는 마음도 사라질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나서 조금은 편안해졌다. 지금에 와서 어쩌면 사랑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미칠듯한 격정과 불안, 행복과 편안함도 받아들이고, 언젠가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사랑이 변하고 사라질 수 있다는 것도 받아들이는 거라고. 사랑이 변한다는 걸 알면서도 왜 사랑을 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잠깐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돈은 사람을 멋지게 만들어주고, 명예는 사람을 우아하게 만들어주지만,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건 사랑이라는 걸 믿으니까. 내가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길 바라듯 나 또한 그런 사람에게 여전히 끌리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p54-55)

 

 

 

몸서리치는 그리움의 한가운데서 냄새 하나로 버티고 있는 그녀를 보며 그제야 나는 향기와 냄새의 차이를 알 것 같았다. 같은 향기를 가진 사람은 여럿 있지만, 세상에 똑같은 냄새를 가진 사람은 없다. 냄새는 결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것, 오로지 그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것, 먼지처럼 때처럼 아무것도 씻어내지 않고 덜어내지 않고 켜켜이 쌓여서 그 사람만의 지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문은 그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는 다른 한 사람의 가슴에 오랫동안 새겨지는 것이다. (p64)

 

 

 

향기는 마지막까지 남는다. 안에 담겨 있던 것들을 다 덜어내고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스라이 사라져도, 보이지 않는 향기만이 남아서 추억을 마지막까지 챙긴다. 그 향기마저 사라질 때, 진정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p120)

 

 

 

울고 있다고 모진 시간이 빨리 가지는 않는다. 세상에 대고 욕한다고 울분이 풀리는 것도 아니다. 젊음은 한바탕의 서커스다. 곡예를 하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조마조마하지만, 통과한 다음에는 즐거운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서커스다. 그러니 차라리 웃자. 웃다가 다시 울게 되더라도 웃고 있는 동안에는 신나게 웃자.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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