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소녀들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서유리 옮김 / 뿔(웅진)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공포를 느끼는 것에 있어서에도 강도가 있다고 가정할 때, 극도의 공포감까지 밀어넣을 수 있는 상황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는가. 물론 이것은, 개개인의 차이라서 섣불리 ‘사람은 ~에서 가장 공포를 느낀다’라고 명확하게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닐까. 가령, ‘너를 해치려는 자, 혹은 것을 볼 수 없다.’ 같은 것은 어떨까. 이것은 현재 폭풍적으로 상영되고 있는 「블라인드」 를 연상시킬 수 있는데, 극중 싸이코패스 명진(양영조 분)의 “너 나 보여? 난 너 보이는데”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온 몸에 돋는 소름을 주체할 수 없더랬다. 보이지 않는다, 혹은 볼 수 없다,는 것은 어둠 속에 나동그라지게 만들어버리는 까닭에 그것을 빌미로 무기력해지기 충분하다. 세상에 노출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당신의 이야기일런지도 모른다. _ 당신이 이 작품에 빠져든다고 가정할 때,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방어 혹은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내 시선을 피할 수는 없어. 난 너의 얼굴을 알고 있으니까!’ - 따뜻한 바람이 귀를, 빨간 머리카락을, 흰색 여름 원피스를 살랑거리게 나풀거리게, 펄럭이게 만들 만큼 그네 타는 것에 도취된 소녀가 있다. 아이는, 어지러움에 그네가 저절로 멈출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고요함이 찾아드는 동시에, 누군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하지만, 아이는 볼 수 없다. 아이는, 깊고 아득한 까만 바탕만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까닭이다. 그렇게 아이는 사라진다, 감쪽같이. 그로부터 10년 후, 10살의 빨간머리의 주근깨를가진 역시 깊고 아득한 까만 바탕만을 보는 눈을가진 아이, ‘사라’가 사라진다....!

 

 

 

작품은, 여러 시선을 교차시킨다. 사라진 소녀, 사라 - 여형사 프란치스카 - 10년 전 사라진 소녀, 지나의 오빠인 막스 웅게마흐 - 그리고, 범인. 바로 전, 「인어의 노래」에서도 여형사, 프로파일러, 범인의 시선이 각기 교차되는 것이, 인물의 심리를 더욱 더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엄지 손가락을 흔쾌히 추켜들었던 서평을 쓴 적이 있다. 역시 「사라진 소녀들」에서도, 앞서 말했듯, 시선의 동선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지만, 그것을 숫자 1,2,3,4…로 써넣음으로 시선 교차가 이루어지는 것에 불만이 생겼던 것. (하지만 그 방법이 시선의 동선이 명확하다는 점을 모르진 않다.) 특히, 책을 처음 시작하는 1부에서는 인물 소개가 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바로바로 끊길 수 밖에 없었는데, 그 부분은 무척이나 조잡하다는 느낌마저 들었음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의 당사자(인물)을 알게 되니, 2부로 넘어갔을 땐 한결 나아졌다. 물론, 이야기 자체가 인물 소개에서 사건으로 넘어감과도 연관성이 있지만 말이다.

 

 

 

범인은, 유년기에 부모에게서 받은 학대, 무관심으로 방치된 현대인, 혹은 우리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 때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며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되는 어둠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어린 아이들을 자신이 키우고 있는 곤충 (뱀, 거미)의 우리 속에 집어 넣고 아이의 행동 양상(부드러운 굴곡, 떨림과 흔들림)을 낱낱이 살피고 즐기며 자신의 성욕을 분출해낸다. - 하지만, 이 작품, 여타의 작품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열린 범행’... 범인은 아이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작가는 친절하게 일러주지 않는다. 그것은 작가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범행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그것이 공포가 아니라,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아이가 느끼는 두려움이 나의 몸 두려음의 신경계를 건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난, 작품을 접하는 도중 마다마다에 내 몸에 거미가 지나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몸을 부르르 떨며 몸을 털어내게 되는 것. 그런데, 당신도 예외는 아닐텐데...._ 혹시 두려움이 사람에 의한 것이라고,만, 생각하는가.어쩌면 두려움은 또 다른 생김새를 가진 어떤 보이지 않는 추상적일 수가 있다는 것. 당신도, 작품을 읽으며 그것과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 말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3-08-0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읽었네요.
인어의 노래는..아직..
창백한죽음은..읽었고요..!!
 
<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바다와 섬의 작가'로 대표되는 한창훈의 장편소설. 전작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이후 팔 년 만에 상재한 장편소설이다. 바다와 섬을 뒤로 하고, 고등학생 시절 직접 겪은 국가폭력(광주항쟁)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과 함께 폭력 앞에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 실존의 모습을 꿈 많고 우정 짙은 고교생 소년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 편의 우수 어린 성장소설처럼 그려내고 있다.
 

 

 

 

 

 

 

 

 

  

'20세기 미국문학의 아버지' 존 업다이크의 장편소설. 업다이크는 전미 도서상, 퓰리처상을 여러 차례 받은 영미권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다. <달려라, 토끼>는 업다이크를 동시대 최고 작가의 자리에 올려놓은 출세작이자 대표작으로, 고등학교 시절 유명한 농구선수였지만 졸업 후 평범한 세일즈맨이 된 해리 앵스트롬(래빗)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탈하는 과정을 그린다.
 

 

 

-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국내 작가들을 선호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네요. 그래서 항상, 국내 작가들을 위주로만 추천목록에 올려놨었는데, 영미 문학이 이번에 포함된 것은, 퓰리처상,이라는 까닭이에요. 상을 받은  모든 문학을 극찬하거나 혹은 폄하할 수는 없지만,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문학 중 「바보들의 결탁」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어서, 그와 비슷한 류가 아닐까, 사실 그런 기대때문에 더욱 읽고 싶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인생에서 두근거린 순간이 언제인지 떠올려보다, 문득 그랬던 적이 많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오 마이 갓. 스물 네살을 사는 동안에 두근거린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니, 이거 문제다. 그러다가 그 기회는 지인에게서 책을 받은 그 후에 찾아오는 듯 했다. 일년 육 개월 동안 다녔던 회사를 퇴사하고, 새로운 곳에 이직이 확정되던 때. 그곳에 첫 출근을 하는 날에 이 책을 읽어주리라, 했었지만_ 그것은, 그 기회는 금세 사그라졌다. 그래서 예기치 않게 보름쯤 되는 기간을 쉬게 되면서, 첫 번째로 읽은 책이 두근두근 내 인생,이었고 읽기 전,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게도 내 인생 역시, 두근거림이 함께 하는 삶이었으면 참 좋겠다, 했던 그 때에 이 책은 그 여느 책보다 소중했음을. 그러다 앞서 내가, 두근거리는 순간은 많지 않았다고 했던 것은, 매우 사소해서 그렇지 않았다고, 잊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작품이 질책한다. 차게, 혹은 뜨겁게.

 

 

 

작품을 온라인 상에서 처음 맞닥뜨렸을 때, 알 수 없는 확신에 에세이로 치부해버렸고, 그렇기에 지인들의 이어지는 호평의 행렬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이미 작품을 접한 지인의 서평을 통해 어린 부모와 늙은 아들,이라 하는 부제와 만나게 된다. 그것은 설핏, 「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막스 티볼리의 고백」을 연상시켰고, 얼른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로 차오름을 느낀다. 그리고, 드디어 만났고, 함께 했다. 열 일곱의 부모가 열 일곱의 아들을 가진 서른 넷의 부모로 자리메김하고 있던 그 순간을. 그리고 그들의 슬픔이 눈물 끝에 아롱지며 피어나는 그 순간들을, 말이다. ㅡ 어떠한 일에 실패를 했을 때, 울음을 터뜨리며 부모 품에 안기던 아이들이 가장 부러웠다고 말하는 노인이, 아니 아이가 있다. 한 아름. 한번도 어른이 되본 적도 없고, 되지도 못하고, 될 수도 없는 가여운 아이. 130센티미터의 키에, 눈썹이 없고, 하얗게 세버린 속눈썹, 그리고 노화 퇴적물로 인해 시세포가 파괴될 수밖에 없는 망막은, 아이에게 ‘넌, 다른 아이들과 달라.’라며 말하고 있고, 아이도 그 사실을 가엾게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마음보다 몸이 빨리 자라서, 그 속도를 따라가려면 마음도 빨리빨리 키워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 그 아이가 한 아름이다.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까, 어찌 품고 싶지 않을까. 어쩌면 말이지, 그가 욕심을 부렸더라도, 나는 그를 포근하게 안아줄 수도 있었을 터다.

 

 

 

작품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눈에 그렁그렁한 물방울을 머금은 채, 연방 방글방글거리며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대수가 그러했고, 미라가 그러했으며, 그들의 아이_ 아름이 그러하게 만들었다. 가족은, 속에서는 곪아 피고름이 있는 자리에서 진물이 뚝뚝 떨어질지라도 슬픔을 마주하고 웃을 수 있는, 또 그런, 웃을 거리를 계속해서 넓혀 나갔다. 그래서,였다. 바로 그것이 그들의 삶을 가냘픈 어린아이를 품에 안듯 감싸주고 싶게끔 만드는, 비단 단 하나의 까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들 가족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어린 부모는, 자신들이 아는 한 가장 멋진 노인, 한 아름_이라 불렸던 별이 그들의 항해에 있어 등대가 되어줄런지도, 모르지. ps. 어쩌면, 작품을 읽고 바로 서평을 썼다면, 아마 조금 더 다른 서평이 될 수도 있었을 듯 하다. 두어 달이라는 시간은 그 때에 느낀 감정들을 적어 내려가기에는, 애잔함이 끓은 뒤 약간 식은 미지근함이 남아있을 뿐이라는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어의 노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어의 노래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8-1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 1
발 맥더미드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인어의 노래, 이는 나의 네이버 블로그의 menu name으로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인어의 노래..., 파스텔 색의 부드럽고, 따뜻한 -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음도 잠시,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압도적인 표지의 분위기에 질겁했다. 너, 추리소설이었구나! ㅡ 포기했다. 겨우 30페이지가 넘어가는 그곳에서. 등장 인물 이름을 써내려 가는 것울.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 못되어서, 아니 굳이 ‘좋다, 나쁘다’와 같은 둘 만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쁘다,에 8,90%는 속하는 매우 저질스러운 기억력의 소유자임을 여지껏 책을 읽으며 알아차렸기 때문에 나는, 특히 추리 소설을 읽을 때에는 등장 인물의 이름, 성격, 두드러지는 특징 등을 나열하며 써놓아 가며 책을 읽는다. 그것이 내가 추리라 하는 장르를 읽는 방법이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렇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약간은 귀찮은 일이기도 하지만, 책의 내용을, 또 등장 인물에 대한 애정에 조금 더 가까이 가는 방법이라는 것은, 나의 저질스러운 기억력을 감추려는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을, 포기했다는 거다. 책의 흐름에 나를 맡기기로 했다. 등장 인물의 이름을 쓰는 시간조차도 아까울 정도로 흥미진진했기 때문에,라는 이유만으로 모험을 감행한 게다.

 

 

 

영국의 브래드필드의 게이 커뮤니티의 술집 뒷마당 쓰레기더미에 잔혹한 고문의 흔적이 역력한 시체가 발견된다. 경찰은 연쇄 살인일 가능성을 부인하지만, 네번 째 피해자가 발견되면서 연쇄 살인일 가능성을 인정하고 (처음부터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만은_), 내무부 소속의 국가 범죄 프로파일링 태스크포스 가능성 연구를 맡고 있는 토니 힐 박사의 도움을 요청한다. 네번 째 시체를 본 토니 힐은, 이렇게 망가진 시체는 블러디 메리 잔 안에 뜬 얼음덩어리처럼 피의 호수 속에 뜬 섬을 연상시키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시체 주변에 피가 없다? _ 대신, 줄이 끊어지고 팔 다리가 느슨하게 꺾여 널브러져 있는 꼭두각시 인형 같다,는 것 토니 힐이 작성한 ‘피해자에 대한 분석’에서 자연스레 눈길이 가는 부분. 사인(목의 자상), 묶인 자국(손목, 발목. 접착제로 제갈), 이빨자국 위치(목, 가슴, 복부, 사타구니), 특이사항(사후 성기 절단) - 범인은 변태싸이코 기질을 가진 게이인가? 아니라면, 당신은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는가.

 

 

 

실은 나, 책의 중반도 읽기 전에 범인을 확신했다. 남들보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서 내공이 쌓인 것도 아닐텐데, 괜히 민망함에 머쓱해진다. ‘피해자에 대한 분석’이 가장 큰 역할을 해주었는데, 유심히 살펴보면 확신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난 왜 이 사람일까, 무엇때문에? 와 같은 생각을 간직한 채로 읽어야 했는데, 중반 부분에 경찰의 추측이 얽혀지며 ‘아, 아닌가봐’라는 탄식이 나오기도 할 만큼 책은 그 자가 범인이 아닌 척,을 너무 잘했다. 그래서 확신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로 그들(토니 힐 박사, 캐롤 조던 경감)의 뒤를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졸졸 쫓아다녔다. ㅡ 작품은 범인을 잡으려는 사람들과 범인의 일기로 시점이 두 갈래로 분할된다. 그것은 윌리엄 베비어의 「새의 살인」을 연상시켰는데, 나는 그 작품을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었고, 여타 추리소설들과 좀 더 다른 스릴감을 맛보았었다. (물론, 범인의 심리가 잘 표현되서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추리 소설에서 말하는 공포를 동반한 잔혹함은, 추리하는 자의 시선이 아닌 범인의 시선이었음을, 범인의 시선이 배재된 책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인어의 노래작품 역시도 그러하다. 때마침 그간 읽어온 독점적인(경찰,탐정)의 시각이 지겨워졌달까. 두 시선은 이미 다른 시점에서 알게 된 내용을 반복함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할 수도 있는데, 작품은 경찰이 밝혀낸 사실 (혹은 가설)을 범인이 확대해 놓은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토니 힐의 ‘피해자에 대한 분석’에서 손과 발을 결박하고 제갈을 물렸다,는 점이 범인의 일기에서는 사건의 전후 과정이 적나라하게 밝힌 점,등을 들 수 있겠다. 다만, 전개가 내가 생각한 그대로 가서 약간 (개인적으로) 식상함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과 (그 점은 박진감으로 인해 읽을 당시에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지만) 「인어의 노래」_ 라 하는 제목의 뜻을 유추해 낼 수가 없었다는 것. 차라리 표지에 나온 나비 ㅡ 라면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품을 기대 이상으로 읽었기 때문에 토니 힐 시리즈의 첫 번째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추후 저자의 토니 힐 시리즈 출간에 귀가 쫑긋해지는 것도 당연하지, 싶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3-08-0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하겠습니다.^^
 
[스틸라이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스틸 라이프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덥다,는 말로 형용되지 않을 만큼 푹푹 찌는 한 여름의 늦은 저녁부터 새벽까지의 시간을 이른바 ‘추리소설’을 읽는 시간으로 정해놓으며 그 시간에만 추리소설을 읽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멀티로 책을 읽었던 때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르나,) 아마, 으스스한 시간에 읽는 것으로, 책의 묘미를 더 느껴보고자,는 것이 더 컸던 까닭이었음은 아니었을까. 나에게 있어 추리,라 불리는 장르는, 그 어떤 장르와는 확연하게 다른, 블랙홀과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책을 편 그 자리에서 읽는 게 대부분이어서 읽고 난 후면 어질함이 남아있기도 했었다. 그것이 바로 (적어도 나에게는) 추리라는 것이었다. 그 생각에 변함이 없는 지금와서, 그동안 추리소설에 관해 ‘고정관념’이라 불릴 만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내가 읽어오던 추리소설과는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는 작품, 스틸 라이프.

 

 

 

캐나다 퀘백주의 작은 마을 스리 파인스,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평화로운 그곳에서 ‘제인 닐’이라 불리는 노부인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평소 온화하고 선량하기로 소문난 그녀의 죽음에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누구랄 것 없이 모두 꽂힌다. 그녀의 죽음은 때마침 사슴 사냥이 빈번한 시기였기에 사슴 사냥꾼의 오발로 인한 실수라고 판단되어지는 듯 하지만,  “(…)무기는 화살로 보입니다. (…) 제가 그렇게 ‘보인다’고 말씀드린 것은 어떤 무기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입니다. 과실이었다는 추정에 반하는 사실이니까요. 자수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우리는 살인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하는 가마슈 경감 에 의해 사건은 어느새 마을 사람들과 함께 풀어나가는 방식의 추리가 된다. 과녁 쏘는 화살로 무얼 죽이려면 엄청나게 운이 좋아야 할 겁니다. 아니면, 운이 나쁘든지. (…) 과녁 쏘는 화살은 실촉이 아주 작아요. 총알 끝과는 다르죠. 하지만 사냥용 화살은 전혀 다릅니다. 라고 말하는 활쏘기 클럽의 사람들. 이는 의도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포커스를 맞추고 쏘았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인 닐이 죽음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자는 누구인가.

 

 

 

사람들과 함께 추리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가마슈 경감은 잔잔한 강의 밑바닥을 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의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자녀와의 갈등이라던지, 부부의 불화라던지, 경제적 어려움_ 그것과 사람들은 무리 속에 얽혀 있었다. 이에 따라 저자는 냉철하고 합리적이며 이성적 사고를 가진 인물 대신, 마음이 따뜻하고 세심하여 감성적 사고가 먼저 작용할 것만 같은 가마슈 경감을 내세움으로서 독자로 하여금 인간 본연의 모습과 마주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게 된다. 추리 소설이라 하는 장르에서 그들의 상처를 보고 또 위로해준다,라는 거. 언뜻 전에 읽었던 미나토 가나에의 「야행관람차」도 떠올리게끔 만든다.

 

 

 

여느 추리 소설이 그렇듯, 사건이 있은 뒤에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이도 마찬가지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와는 약간 다르다는 점도 명시해둬야겠다. 이는 사건보다 사람을 중심에 놓았고, 그로 인해 사건이 풀리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은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서두름이 없다. 따라서 나로 하여금 관찰자로서 범인을 좇는 가마슈 경감의 자취를 따라 발걸음을 내딛던 내 두 발이 민망함을 느끼며 멈칫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것만,이라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깎아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적어도 내게는 에러였다. 너무도 세밀한 묘사들에 따분함마저 드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으니까. 그것은,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 아름다운 경치 구경 좀 하고 가세요,라며 친절한 관광버스 아저씨의 호의가 결국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그 아름다운 경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였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서) 작품에는 클라이막스라고 불릴 만한 것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범인이 밝혀졌을 때의 희열과 같은 것도 느낄 수 없었음이, 그렇게 아쉬울 수 없었다. 되려 허탈한 기분이었달까. 그 친절함이 싫지는 않았지만, 추리라 하는 장르에서는 불편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것. 고전 추리는 나랑은 조금 맞지 않는가, 싶은 생각과 함께 가마슈 경감의 시리즈가 나온다면 다시 손을 뻗을 것인가,하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글쎄…라며 약간의 주저하는 듯한 거부 반응을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오탈자 :) p 329 ː 앙드레는 어깨 들썩했다 → 어깨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