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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ㅣ 어른이 읽는 동화
정호승 지음 / 열림원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수선화에게」라는 시로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라는 문장으로 거침없이 몰아치는 마음 속의 파도를 잔잔하게 어를 수 있을 만큼 막연한 외로움에 허덕이는 나를 잡아끌어준 시인, 정호승, 그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타이틀로 쓰는 네번째 동화 『의자』로 우리의 심금을 흔들어놓으려 하고 있음에 책의 표지에 있는 소년을 호기 잔뜩 부풀린 눈빛으로 어루어만져본다. 소년의 초상화는 손사레 칠 정도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자칫 거부감이 들 수 있을 만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섬뜩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하고 그보다 동화라는 타이틀에 맞지 않는다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다 읽은 지금 다시 바라보니 사랑이 결여된 현대인들을 바라보는 짙은 안타까움을 표현해내는 것이 아닐런지 슬몃 생각해보지만, 표지뿐만이 아닌 책의 중간중간에 가미된 일러스트까지도 하나같이 신비로움을 내포하고 있는 까닭에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비목어, 난초, 풀꽃, 소나무, 바람, 제비꽃, 해어화, 해어견, 명태, 망아지, 주춧돌, 옥구슬, 실, 암탉, 종이배, 우제어, 기파조 ······, 사물을 의인화하여 사랑이 결여된 우리네 삶의 퍽퍽함을 26편의 동화를 통해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흔히 ‘너는 너, 나는 나’라고 생각하는 현대인에게 하나의 눈만 가져 헤엄을 치지 못하고 둥둥 떠다니기만 하는, 짝을 만나야 비로소 헤엄칠 수 있는 「비목어」, 바람이 불어야만 청명한 소리를 낼 수 있는 「풍경소리」, 하나로서는 불필요한 옥구슬과 실이 주인공인 「슬픈 목걸이」, 한 몸뚱아리에 머리가 둘 달린 「기파조」, 왼손과 오른손이 협력하여야만 일을 해낼 수 있음을 강조하는 「왼손과 오른손」등을 통하여 ‘네가 있으니, 내가 있는 것이다’라는 것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규정짓고는 그 가르침을 정호승 시인의 맑은 영혼에서 나오는 노랫가락처럼 동화로 표현하여 현대인들이 다가가기에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간극을 허용하여 그것을 빌미삼아 조심스레 파고든다.
나는 작품해설을 읽을 때마다 자신의 책이 아니기때문에 이곳저곳에서 끌어모아 짜집기를 하여 간혹 어색한 문장들을 마주할 때도 있고, 비평가 중에서는 독자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어려운 말들을 써가는 동시에 장황하기까지 하여 독자들의 시선을 흩뜨리게 만드는 경향도 더러 있음에 되도록이면 작품해설은 읽지 않는 편이다. 또한 그 뿐만이 아니고서라도 책은 오롯이 읽는 독자의 생각대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이끌어온 내 상상들을 한번에 깨뜨리기 싫은 것, 그것은 내가 읽는 것은 몇 년 전처럼 수능의 언어과목을 잘 보기 위해 그 책의 의도를 파악해야하는 공부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도 작품해설을 읽지 않는 것에 일조하는데 한몫 거든다.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작품해석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26편의 이야기를 다 접하고 나서 왠지 모를 허전함때문이었다. 게다가 「담쟁이」라는 시를 스케줄러의 맨 앞장에 적어놓아 고3시절의 일년을 위로해주던 이, 도종환 시인이라는 이유였다. 도종환 시인을 작품해설에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고, 정호승 시인의 작품에 한발 더 다가가게 만들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그는 ‘정호승 시인의 동화나라’에 온 것이 행복하다고 그리 쓰고 있었는데, 그의 동화나라라, 참 감칠맛나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작품해설은 꼭 거기까지일 뿐, 더 이상은 얻어낼 수도 없었음이 서글프다.
책으로 다시 돌아와서 정호승 시인, 그는 「작가의 말」에서 사랑은 결국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은 사랑 이외에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입니다. 라고 이야기하며 이 책은 동화의 방법으로 사랑을 이해하기 위하여 쓴 책입니다. 라고 독자들에게 조곤조곤 일러주고 있음에 동화를 읽고 있으면서도 사랑과 연관짓겠다며 가진 애를 쓰며 읽던 나였다. 하지만 두번 째, 세번 째······. 억지로 짜맞추지 않아도 읽으면 읽을 수록 언저리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머물고 있음이 느껴진다. 샘물을 앞에 놓고 이것은 환상이라며 눈을 비비고 귀를 막아 현실을 부인하고자 하여 목이 말라 죽어있는 「현대인」의 자화상이 타자가 아닌 바로 내가 아닌지, 짤막한 동화 한편에 많은 생각이 교차되는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한번에 후루룩 다 마시듯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지만, 기울이면 바닥이 보이는 커피처럼, 그렇게 아껴서 읽고 싶어지고, 또 그래야 하는 맑은 영혼의 소유자, 정호승의 어른들이 읽는 동화, 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