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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도시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12월
평점 :
미세한 먼지라도 묻으면 어쩌나, 반들반들하게 닦아주는 판도라의 상자 속 또 다른 상자에는 당신이 그려놓은 유토피아가 떡하니 당신을 보며 그 어떤 것보다 반짝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덜 삶아진 달걀처럼 반숙 상태라 해도,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그것은 형태를 잡아가고 있다. 또, 사고가 어느 곳까지 미치느냐,에 따라 언제 바뀔지도 모르고. 어찌됐든 누구나 품고 살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것이 소망하고 갈망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도 함부로 내보일 수는 없다. 왜?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아니, 오로지 당신만의 세계니까. 그 속에 오쿠다 히데오에게 굽고 삶아진 이들이 있다,라고 생각햇다. 하지만 완전히 속았다. 내가 앞서 한 이야기들은 모두 보잘 것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저 책 제목인 「꿈의 도시」는 유메노(ゆめの : 꿈의)라는 도시를 직역(이랄 것도 없지만)하여 나온 책이었던 것이다. 왠지 모르게 속은 기분이다. 혼자 착각해놓고 속았다고 말하고 있으니, 어리석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 다섯 -이지만 그 다섯이라고만 말하기엔 다른 이들이 가엾진 않을까- 명에겐 제각각의 꿈이 있다,는 것이 내가 처음 이 책에 대해 생각한 것들이 보잘 것 없다, 생각하지 않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을 만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내용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 ‘꿈의 도시’라는 말이 민망해질 정도로 유메노 시에 살고 있는 그들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투영한 또 하나의 도시 - 유메노(ゆめの). 그곳의 배경은 시골과도 다름없다. 시골,하면 정겨움을 상상하는가? 아니, 그곳은 우리의 삶을 투영한 만큼이나 악질적이고 위험하다. 납치, 살인 등 오감이 움츠러드는 갖가지 사건·사고들이 벌어지고 있고, 혈연으로 자신의 아들을 출마시키려는 구의원이 있고, 생계형 원조교제를 하는 유부녀들이 가득한 려인서클이 있으며, 젊은이들의 대도시 거주 이동으로 인해 황량하게 노인들만이 그 자리를 떡 버티고 있다. 게다가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이민 온 브라질인들 -디뉴- 과 대립 중에 있다.
시점은 5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주자로 생활보호비 수급자를 줄여야 하는 공무원 도모노리 -. 그는 기초생활비를 지원받는 부정 수급자를 적발하기 위해 파친코 주변을 얼쩡거리다가 우연하게 ‘주부 원조교제’라는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그러는 사이, 누군가가 그를 노리고 죽음으로 몰아넣으려 한다. 두 번째 주자로는 도쿄에서의 대학 생활을 꿈꾸는 여고생 후미에 -. 작년 여름에 도쿄 여행을 다녀온 뒤부터 이 도시의 ‘최고’라는 게 모두 다 시들하게 보였다. 드림타운의 관람차는 그저 창피할 뿐이다. 야경도 없는 주제에. p91 라며 유메노를 떠나 도쿄로 진학하려고 무던히 애를 쓴다. 그러던 그녀가 어떤 이에게 납치를 당한다. 그렇게 그녀의 시점은 중간에 급작스레 사라져버린다. 그녀는 무사할 수 있을까? 세 번째 주자로 노인들을 대상으로 사기 세일즈를 하는 전직 폭주족 유야 -. 싸구려 누전차단기를 집의 형편에 따라 가격을 조정하며 사기 기질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의리 하나는 끝내준다. 시바타가 어이없는 일을 저질렀을 때, 그를 책망하기는커녕 회유의 길로 인도하려 한다. 네 번째 주자로 마트 식품 매장의 좀도둑을 적발하는 보안요원 다에코 -. 그녀는 누가 봐도 사이비 종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슈카이에 몸을 담그고 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이 사슈카이와 갈등 중인 만신쿄에 의해 회사에서 잘리게 되고, 사슈카이 지도원이 되려고 우에무라의 제의를 받아들인다. 수입은 고작 7만 엔이지만 그정도면 먹고 사는 데 충분하다는 생각때문에. 마지막으로 출세 가도의 야망을 안고 사는 재력가 시의원 준이치 -. 그는 돌아가신 부친에 의해 게이타·고지 형제와 결탁을 맺는데, 그 형제가 시키지도 않은 말썽을 일으키고, 결국은 그를 곤란에 빠뜨리게 된다.
“결국 우리처럼 학교에서 낙오한 인간들은 말이다, 돈 왕창 벌어서 자신을 증명하는 수밖에 없어. 일류 기업에 들어갈 수도 없고, 이제 새삼스럽게 연예인이나 레이서가 될 수도 없잖아. 어떤 집에서 사느냐, 어떤 차를 타느냐, 자식새끼에게 어떤 옷을 입히느냐. 그런걸로 치고 올라가지 않으면 아무도 우릴 상대해주지 않아. 무조건 빅이 되어야 해. B,I,G, 빅.” p176
“(…)이 여자도 그렇고 그 남편도 그렇고, 20대 한창 나이에 정사원으로 받아주는 데가 없어요. (…) 번듯한 대학 나오고, 일할 의사가 있는데도 졸업하자마자 빈익빈부익부 사회에 떨어지는 거예요. 진짜 요즘 젊은 사람들,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멀쩡한 성인이 시급 천 엔 미만으로 일하는 세상이잖아요, 그러니 이 젊은 부부를 좀 도와주세요. 인생, 서로 도와주고 도움 받으면서 사는 거 아닙니까?” p457
또 다르게 - 그들에게서 뻗어나온 다른 이들이 있었다. 모두 다 나열할 순 없지만, 우울증·불면증·섭식장애를 두루 갖추고 있는 니시다, 은둔형 외톨이 노부히코, 승진을 위해 혹은 사장 가메야마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주말에도 쉬지 않고 자처해서 일하는 시바타, 려인서클 매니저 야마다 등을 통해서 우리는 그야말로 아득할 만큼 불안한 현재에 태동하고 있음을 등장인물을 통해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의 삶에 노출된 게다. 모든 것은 ‘돈’으로부터 시작하여 ‘돈’으로 끝나고, 그것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없는 자는 권력을 쥐고 있는 자에게 굽실거리고 권력을 쥐고 있는 자는 없는 자를 가지고 놀아난다. 그리하여 극한 상황까지 치닫는다. 또한, 개인 각자의 이익을 창출하고자 할 때, 사회 기반의 흔들림이라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은 생활보호비 수급자를 줄여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되는데, 그들은 여전히 한 푼이라도 아쉬운 상황. 그들은 고집을 꺾지 않고, 새로운 수급자가 되려는 이들을 향한 공무원들의 강한 거부가 이어진다. 결국 그것은 덤프 트럭의 핸들을 잡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현시대엔 가상과 현실을 분간하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매서운 눈길과 더불어 삿대질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을 뿐더러, 우둔하다고까지 생각한다. 나는 그들을 향해 따뜻한 눈길 한 번, 미소 한 번 던져줄 수 없고, 그럴 마음조차 없다. 하지만 나같은 이들이 많을수록 그들은 더욱더 움츠러들고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자신을 숨기고자 한다. 현실에선 그런 그들을 반가이 여기지 않는 까닭에 그들이 자신을 내보이는 장소는 오직, 가상뿐이다. 그래서 그 속에서 메일린이라는 공주를 만들고 살아있는 메일린을 만들어 공주를 지켜주는 임무를 띠게 된 것, 그것이 그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일 게다. 이렇게 저자는 사회의 문제를 하나만 콕 집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속엔 나와 너의 자화상이 유영하고, 우리는 그런 나와 너를 쯧쯧, 혀를 차며 비웃는다.
책의 내용은 한 나무에서 서로 다른 나뭇가지가 각자 다른 방향을 뻗어나가듯, 그렇게 제각각인 듯 하다. 하지만 그 나뭇가지에서 뻗어나온 또 다른 나뭇가지들은 한데 엉켜있다. 번잡스러워 정신이 없어 가지를 잘라내쳐야할 정도가 아니라 그것들은 사이사이 엮여있다. 그것은 인물들의 만남은 무척 자연스럽다는 말이 된다. 예를 들면 후미에와 하루키의 만남이 그랬고, 유야와 도모요의 만남이 그랬으며, 유야와 노부히코의 만남이 그랬다. 책을 읽으며 전에 읽었던 온다 리쿠의 「도미노」와도 비교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월등한 점수를 줄 수 있는 요인 첫 번째는 캐릭터의 완성이다. 그는 캐릭터마다마다에 또렷한 색채를 칠해주고 다른 색과 뒤섞일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그러니 우리는 혼동할 여지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도미노」를 읽을 당시 28명이나 되는 등장인물은 제각각 빛을 내지 못하여 그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들은 28명이라는 어마어마한 등장인물이 필요하긴 했을까? 라는 등의 물음표로 남기기에 충분했다 생각한다. 하지만 「꿈의 도시」인 이 작품은 주인공 다섯에 또 다른 등장인물이 더해지는 격이다. -그것은 다섯 명이라는 적은 등장인물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책을 이끌어나가는 캐릭터의 명확함이라 함은 작가의 역량과도 비례하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두 번째는 시점의 명확한 선긋기이다. 중간 후미에가 납치당해서 행방불명된 것을 제외하고 그의 시점은 바뀌는 것 없이 한결같다. 또한 시점이 바뀔 때마다 번호가 매겨지게 되는데, 그 매겨진 번호에 5를 더하여 그 시점만 따라가면 도 다른 흥미로움을 맛볼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다.
하지만 《폭발하는 스토리, 스피디한 전개, 충격적인 라스트신》에 대해서 동의표를 던질 수는 없다. 까닭이라함은 스토리는 ‘도모노리 ― 니시다’라던가, ‘유야 ― 시바타’, ‘준이치 ― 게이타·고지형제’ 에 있어 생각보다 너무 길게 끌고 가는 듯하여 호흡이 좀 빨라질 시기,라고 생각했는데도 내 호흡은 여전히 정갈했다는 점은 스피디한 전개라고 생각하기엔 좀 무리가 있지 않은가. 그저 라스트신으로 몰고 가는 때, 그쯤이 되어서야 호흡이 가빠짐을 느낀다. 충격적인 라스트신? 오우, NO. 나는 사실 이런 라스트신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만큼 실망도 컸고, 그 실망만큼 알 수 없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앞서 말했던 엉킨 나뭇가지들을 정갈하게 정리하고자 한 곳에 가지런히 모아둔 꼴이랄까. 저자가 짜놓은 프레임 안에 그들은 갇혔다. 그리고서는 이제 난 해놓았으니 모르겠다, 나 몰라라 도망친 저자가 상상이 되더라, 그 말이다. 어떻게든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이 헛헛한 마음이 조금은 달래졌을까. 여전히 지금까지도 책을 읽고나서도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단언하건대, 나는 이런 어제 운동하고 땀나는 트레이닝복을 입는 것 만큼이나 찝찝함을 풍기는 결말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캐릭터들을 한 공간에 멀뚱히 서있게 만들기만 하는 - 이런 결말은. 그래도, 오쿠다 월드. 난 그곳에 풍-덩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내 자신이 아이러니다.
앞 유리에 비치는 풍경은 하늘도 길도 가로수도 온통 회색빛이었다 p21
하늘은 회색이었다. 하늘만이 아니라 길도 논밭도 집도 어슴푸레하게 가라앉아 마치 수묵화의 세계에 내던져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p190
평소에는 울긋불긋 요란하던 간판들도 춥고 흐린 날씨 때문인지 모두 다 회색으로 보였다. 그건 마치 이 도시의 색깔인 것만 같았다. p630
유메노의 회색 빛깔은 언제쯤 꿈의 빛깔로 제 빛을 낼 수 있을까. 아니,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유메노가 낼 수 있는 꿈의 빛깔은 어떤 색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