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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궁전 안개 3부작 3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수진 옮김 / 살림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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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를 좋아하지 않았다. 또, 여전히 달가워 하지는 않는다. 세상과는 동떨어진 미스터리하고 괴기한 이야기가 그저 유치하다,고만 생각했던 이유로 재미를 느끼지 못한 것이 그 까닭이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에, 이른바 모든 아이들의 ‘제 2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해리포터」 시리즈에 눈길 한번 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에게서 편지를 한 통 받았는데, 자세한 내용까지는 생각이 안나지만, 그때 당시, 지금도 물론 밸라, 혹은 벨라 라는 별명을 가진 나에게 ‘안녕, 벨라요정. 난 헤르미온느야.’ 라고 시작되던 그 편지를 첫 문장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손발이 오글거릴 만큼의 강력한 거부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생각한다. 분명 그때의 나라면, 그 편지를 찢어버렸겠지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편지함 상자에 자신의 자리 한켠을 마련하고 있다. 난 아마 그것을 읽으며 욕설을 내뱉으며 상자에 던졌겠지. 그런데 그런 내가, 「해리포터」 그것을 읽었다. 그것도 3일이라는 최 단시간 내에 마지막 편을 제외한 모든 시리즈를 말이다. 때는 대학 일학년인 스무 살. 모델 구상을 해야하는데, 딱히 마땅한 도안이 떠오르지 않아 눈만 빙빙 돌리고 있었을 것이다과오빠가 중학생인 자신의 동생에게 읽힌다며 대출받아놓았던 책이 바로 그것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손에 들고 우리 중학교 때도 참 많이 읽었었는데,라며 운을 떼고 몇 장 읽기 시작했는데, 어라, 재미있네 -.

 

 

 

그 이후로도 평생 읽을 것 같지 않던 판타지 소설이라 불리는 책을 (내 나름대로) 꽤 많이 접했다. 생각할 거리가 가득했던 「위저드 베이커리」 , 그저 로맨스 소설이라는 것에 국한될 줄만 알았지만, 그 역시도 로맨스에 판타지라는 밑바탕이 깔려있었던 「시간 여행자의 아내」 와 「트와일라잇」 , 그리고 이번에 읽은 청소년 판타지인 「한밤의 궁전」 - 이 책을 겨우 몇 장 넘겼을 때만 해도, 추리 소설인 줄로만 알았다. 이렇게 미치도록 화창한 봄날에 추리 소설을 읽는 것은 실례인데, 라며 책을 펴들었으니까. 책에 대한 어떠한 정보가 없는 상태였기에, 음산하게 그려진 표지만을 보고 판단한 것이리라. 아니, 실은 책을 읽고 난 후부터도 역시 100페이지가 넘어가기 전까지도 난 그런 장르의 것이라 생각했던 것. 중간마다 그가 비를 멈추게 한다던가, 백지 상태의 편지가 몇 시간 후에 채 마르지도 않은 빨간 잉크로 써있었다는 점을 미루어 본다면, 충분한 복선이었음에도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절대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그 당시에 일곱명 중 (어쩌면 여덟명) 한 아이, 이언. 그의 독백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의 마음을 에워싼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이야기의 시작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누군가의 독백을 듣게 된다는 것은 김이 빠지는 일이기에, 또,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읽는 것은 순서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이야기를 읽고 다시 읽어보기로 하고, 과감히 건너뛰기로 한다. 독자들이 직접 작품과 맞닥뜨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이야기하던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그의 말처럼. 그래서 나에게 이 이야기는 1916년 후글리 강으로부터 시작된다. 한 남자가 갓난쟁이 두 아이를 품에 안고 무작정 달리고, 누군가 그의 뒤를 밟으며 희미하게 옅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 남자는 아이들을 ‘아르야미 보세’에게 무사히 양도하지만, 그녀는 아이 둘 모두를 살리기 위해 한 아이만을 캘커타의 한 보육원에 맡기게 된다. 아이는 그곳에서 자라면서 ‘차우바 소사이어티’라는 이름으로 일곱 명의 아이들과 비밀 결사단을 만들고, 보육원에서 내보내야 할 나이인 16세가 되어 이제 2주 후가 되면 그 보육원에서 나가 홀로 설 준비를 해야한다. 그때, 한 남자가 그를 찾아왔다. 아이를 찾던 그 사람. 자와할. 그는 무엇때문에, 아이를 쫓고, 무려 16년동안이나 기다려왔는가.

 

 

 

이 책은 분명, 가독성은 있다. 아니,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점점 길어질수록 늘어지며 헐거워지는 것을 보기가 힘겨웠고, 끝내는 작가에 따라 나 역시도 슬렁슬렁한 마음으로 책을 보았던 것을 고백하다. 그 까닭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를 집어내자면 - 혹여, 이 이야기가 영웅 스토리를 살리고자 했다면, 인물 묘사가 아쉬웠음을 얘기한다. 독자는, 아니 나의 경우는 대개 이런 식의 소설을 마주할 때면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위해 저자가 저당 잡아놓은 인물이 아닌, 이야기를 끌어갈 만한 또 다른 인물을 구축해놓는다. 그리고 홀로 저자와는 약간 다른 생각을 해가며, 이럴 땐 이 사람이 나와줘야 하는데, 라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벤’은 이미 저자가 저당 잡아놓은 단 한명의 인물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사건들이 적어도 비밀 결사단에 의해 풀린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 까닭이다. 아니, 구지 그렇게 따지자면 ‘벤’ 역시 스스로 한 일은 하나 없다. 그저 남들 하는 만큼만 했을 뿐. 어찌됐건 난 ‘벤’을 제외한 ‘마이클’을 잡아놓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 어떤 인물도 자신의 역할을 수행했다 볼 수 있는 이는 없다. 아, 단 한 사람. ‘피크 중위’ - 내가 ‘차우바 소사이어티’의 인물들에 대해 약간이나마 알 수 있었던 것은 이언의 독백을 통해서였는데, 고작 세 장만을 통해 인물을 알아가기엔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닌가. 그 세 장에는 ‘누구는 어떻고~’ 식이었는데, 그것이 아닌, 그들끼리의 대화를 통해 독자 스스로가 ‘아, 이 아이는 그런 성향을 가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해야 하고, 부족한 때에 작가가 끼어들어 다른 인물을 통해 부연설명할 수 있는 발언권을 갖는 것이다, 라고 적어도 나는 생각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독자 개개인의 까다로운 입맛을 다 맞추진 못하지만, 인물 묘사가 뛰어나야 한다는 점은 추리 혹은 판타지 소설에서 간과되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아니, 설령 그런 장르의 책이 아니라 하더라도, 배경이 이야기의 소재가 되지 않는 이상 결코 뒷전으로 미룰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두번 째는 시시각각 변하는 시점이었다. 특유의 개성도 없는 아이들을 떼어놓고 이리저리 굴린다 한들, 내 머릿 속에는 제대로 각인되어 있는 아이들이 없다. 그저 인도 박물관 도서관에서 자와할에 관련된 서류를 찾는 아이들이 있었고, 역사 상단에 둘러쳐진 돌출대에 있었던 아이들이 있었고, 지터스 게이트 역사 제일 상단부에 있었던 아이들이 있었으며, 터널에 있었던 벤이 있었다. 라는 것밖에는 남아있는 기억이 없다. 그 시점들 사이에서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었다. 이 역시 첫번 째의 까닭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문제가 아닐까. 세번 째는 ‘권선징악’ -. 과연 이 책이 청소년 판타지라서 그럴까, 글쎄. 이야기의 마무리가 결국 이렇게 밖에 될 수 없었구나, 라고 체념하는 데에는 작가에 대한 희망마저 실린 것이다. 작가의 책을 난 이 책으로 이제 겨우 한 권을 읽은 셈이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게 만든 것이. 사실 처음 자와할에게 쫓기던 피크 중위를 볼 때는 이 책이 흥미진진하겠구나, 생각했다. 하루만에 다 읽어버릴 수도 있는 책이겠구나, 생각했다는 말이다. 이야기란 도입부보다 클라이맥스에서 독자를 안달복달하는 것이 아니던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때 손을 놓았다. 또한, 처음에 궁금증을 자아내던 것들은 노부인의 한 번의 거짓말로 인해 한꺼번에 틀어지고, 진실을 이야기할 때 즈음에 설레야 할 이야기들이 설레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앞서 말했듯, 헐거워진 이야기는 결국 그렇게 끝이 나고, 책장을 다 덮은 후에도 뭔가 모를 찜찜함이 남아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작가가 책을 통해 하려는 말을 이 책을 통해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아비의 사랑일까, 그들의 우정인가, 그도 아니면 정말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권선징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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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 쓸개>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간과 쓸개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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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어느 날, 공부 할당량을 누구에게 쫓기듯이 가까스로 채워넣고 더 이상은 무리,라며 무료하게 퇴근 시간만을 바라보다가, 다소 시니컬해보이는 표지를  신경질적으로 툭, 떼어내고 이 책의 첫 문장을 시작했다. 어쩌면,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모든 장기들을 두 손에 꼬옥 거머쥐고 몇 번이고 확인하며 읽어내려야 한다는 것을. 김 숨은 나의 그것들을 억압해왔다. 특히, 무엇보다 우리네의 삶을 철저하게 판박이처럼 닮은 그 이야기들에 그곳들은 아파했고, 쓰라려 하며 아우성을 치는 꼴이 되었다. 헌데, 그것을 감히 발악,이라고 표현해도 될까. 그래도 될까. 그 단어가 이 책에 어울리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내 비루하기 이를 데 없는 머릿 속에 유영하는 단어는 단연코 그 뿐이다. 그러니,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그래서 내가, 주말 자정이 훨씬 더 넘도록 김 숨과 함께 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고, 또 그래야만 했다. 그들의 소리없는 발악의 끝이 내 손 안에 고스란히 쥐어지길 바랬다. 그런데-. 나는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끝끝내 자유로이 내뱉을 수 없었던, 길었던 숨을 내쉰다. 마치 해방감,이라고 표현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의 숨-. 그것 말이다.

 

 

 

첫번째 단편, 간과 쓸개에서 67세 간암 환자인 ‘나’는 밥을 먹으러 간 식당에서 거울 속의 늙은 남자와 조우한다. 죽은 남자라도 바라보듯 아무런 감흥도 없이 ‘나’를 빤히 응시하던 이는 두렵게도, 자신이었다. ‘죽음’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유년 시절에 큰누님과 함께 갔던 ‘저수지’를 연상케 한다. 그것은 시시때때로 ‘나’를 억압한다. 어느 날, 저수지의 축소판, 수도기 계량기통에서 죽은 귀뚜라미 떼들을 보는데, 유독 한마리만 살아남아 버둥대고 있더란 것. ‘살아 있다는 것이, 더할 수 없이 구차스럽고 징글징글 하다.’고 그는 생각하지만, 알고보면 그 역시도 그와 다를 바 없다. 친구가 억지로 떠안긴 골목을 받아 뒷마당에 내팽개치듯 버려두었는데, 일주일 뒤 표고버섯이 자그마치 여섯 개나 열려있는 것을 보고 ‘나’는 새삼스럽다. 죽은 것도, 그렇다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 골목이 말이다. 거기서 그는 골목에 자신의 삶을 얹어놓는다. 그는 그동안 미루고 미뤘던 담낭관을 담석이 틀어막아 쓸개즙이 고여 있다가 다른 장기들로 스며드는 병을 가진 누님과 대면한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듣는다. 저수지에 ‘나’와 함께 간 사람은 마흔 살도 안 되어 죽은 셋째누님 을숙. ‘나’는 결국 ‘죽음’에 져버린 누님을 생각하고, 이젠 그것이 ‘나’의 간을 뜯어먹고 있다, 생각한 것일까. 노인이 울기 시작했다. 나는 노인이 우는 것을 본 적이 없고, 울음소리 또한 들은 적 없다. 그런데 그것이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내게 다가온다. 이 단편 말고도 모든 단편이 그러하다. 책을 덮은 지금에도 난, 노인의 흔들리는 어깨가 보이는 듯 하고, 처연한 울음이 들리는 듯 하다.

 

 

 

그들은 그렇게 죽었다, 혹은 살았다, 아니 - 둘의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죽어 가고 있다앞서 말한 간과 쓸개>의 ‘나’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숨통을 틀어막는 가래때문에 거동도 불편하여 <북쪽 방(房)>에서 유배되듯 살아가는 노인이 있고, 뒤를 이어, 흑문조>에는 간암으로 두 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긴 노인이 있으며, 내 비밀스런 이웃들> 중에는 네번째 뇌수술을 받아야 하는 사내가 있다. 그들 모두는 육체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늙고 추레하다. 그렇기에 있는대로 위악을 부려도 용서받을 수 있는 자들이었다. 헌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혹은, 못했다. 그 대신, 진물이 터져나온 그곳에 바람을 쏘이고자 작가는 그들에게 외출을 선사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모일, 저녁>소주를 사러간 아버지도,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사막여우 우리 앞에서 만나기로 한 동생들도, <북쪽 방(房)>우족을 사러간 아내도, 흑문조>집에 구멍을 뚫어놓은 배관공도, 룸미러>상황을 보고 온다며 차에서 내린 남편도, 육(肉)의 시간>불온한 욕망의 대상이었던 여자의 육체를 안았던 남편도, 내 비밀스런 이웃들>그들과 함께 떠난 남편도, 럭키슈퍼>물건을 사러왔던 사람들도, (혹은, 유통기한이 다 된 아버지.) 외출을 감행했다. 그런데, 왜 당신네들인가. 외출의 대상은, 당신들이 아니지 않은가. 정작 외출을 허락받아야 할 그들은 허락받지 못했다. 혹은, 스스로가 나가지 않았을 수도. 구태여 그것을 묻는다면, 그들에게는 질서가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살아 가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더할 수 없이 구차스럽고 징글징글하지만, 귀뚜라미처럼, 표고버섯처럼, 붉은얼굴원숭이처럼, 새처럼, 흑문조처럼, 자라처럼, 생태를 에워싼 구더기처럼 오늘도, 살아가고 있을 터다. 그러니까, 이들 모두는 죽은 것도 그렇다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 골목이다.

 

 

 

김 숨의 아롱진 눈물방울의 까닭은 ‘죽음’이었으나, 그 끝에는 그럼에도 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그래서, 떨어지려는 그것을 붙잡기 위해 눈에 핏발이 서도록 지켜내려는 게다. 그것이 얼룩조차 아름다운 까닭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에 ‘만만찮다’고 표현했고, 이 책이 어떻느냐 묻는 질문에도 그리 답할 수밖에 없다. 쉽게 읽히는 단어들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문장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느꼈고, 숨 쉬기를 느리게 할 때의 그 갑갑함을 오롯하게 안아야했다. 탁한 공기의 마찰들에 숨이 막혔다. 그런 상태에서 책을 읽었다. 아니, 책을 읽었다고 해야하나, 책이 읽혔다고 해야하나. 그것조차도 모르겠다,는 것이 나에게서 자조적인 웃음을 띠게 한다. 그럼에도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하나는, 작가가 그려낸 그들은 모두 살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산다는 것, 아간다는 것,에 집요하리만큼 파고 들어갔다. 그래서, 그것은 내게 회의적으로 다가왔고, 그에 대한 회의는 마침내 ‘우리는, 살아야 한다’,로 굳혀졌다. 따라서 우리는 질서정연하게 살아가려는 그들을 따라 낮은 곳에서 숨을 끌어모으는 숨쉬기를 배워야 한다. 어느샌가 그들은 우리가 되고, 우리는 그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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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플 재테크 - 결혼 준비부터 결혼 5년 차까지 돈 모으는 쏠쏠한 재미
류재운.허영미 지음 / 넥서스BIZ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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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대학생활 할 때에 만났는데,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그가 돈을 다 지불했었다.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내가 밥이라도 살라치면 그는 두 손을 휘휘 내저으며 ‘아니야, 넌 용돈받는 학생이잖아. 나중에 맛있는거 사줘요.’ 라며 자신의 지갑을 찾았었다. 그는 그 때를 생각하며 ‘그땐 정말 등골이 빠지는 줄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곤 한다. 물론, 지금에야 나도 직장인이 되었으니 필요할 때엔 내가 내지만, 여전히 아직도 그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돈이 더 많아 미안해질 때가 많다. 그래서 전에 어디에선가 ‘커플 통장’이라는 것을 보고 제의했었는데, 그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지 않았는지 그는 생각해보자,라는 말만 되풀이했었고, 지금도 역시 그러한 상태다. 그래서 우리 데이트에 녹색 신호등을 켜 줄 것만 같던 이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것은 연애가 아닌, 청혼을 받는, 결혼하기 직전의 순간부터의 재테크를 그리고 있다. 애매하다. 나는 이 책이 커플(연인)들의 재테크에 대해 중점적으로 파헤치면서 조언도 해가며, 결혼으로 서서히 폭을 넓혀가는 책인 줄만 알았던 것. 그러고보니, 하긴, 함께인 부부가 아닌 각자인 연인 사이에 깊이 있는 재테크랄 것이 뭐가 있겠느냐, 싶다.

 

 

 

이틀 만에 뚝딱 읽어버린 「커플 재테크」라는 이 책은 다른 재테크 책들과는 좀 달랐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존에 내가 읽은 재테크 책들은 주제가 있고, 그에 맞는 예들을 찾아내어 설명했었다면, 이 책에는 ‘최당찬, 현명희 부부’의 이야기가 하나의 예시가 되는 셈이었는데, 아무래도 재테크라고 한다면, 수학적인 계산식을 들어가며 해가는 그런 류의 복잡다단한 재테크에서 탈피를 감행한 것이다. 그래서 무척 쉽게 쓰여져 있고, 재테크를 어렵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책으로 나온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재테크는 결혼식 준비를 하며 시작된다. 결혼식이라는 자체가 남들에게 보이는 것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커서 호화롭게 치뤄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며, 웨딩 플래너를 끼고 하는 결혼이 아닌 둘이 함께 발품을 팔며 의미있는 결혼을 준비하는 편을 택한다. 그러면서 발품 팔러 다닐 때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어떤 것들을 눈 여겨 보아야 하는지까지도 자세히 나와있어 결혼할 부부에게 읽히기엔 알짜배기임엔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직 결혼에 대해선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지만, 자신들이 챙길 수 없던 부분까지 웨딩 플래너가 챙겨주기 때문에 신경쓸 것이 별로 없었다고 말하는 지인들을 떠올리며 가지 모두 장·단점이 있겠다,싶었다. 그들은 200만원을 여섯 개의 주머니로 나눠서 재테크를 하는데, 개인의 재테크에서 추가가 된 것이 있다면, 미래의 아이를 위한 주머니와 내집마련의 비중이 커졌다는 것 말고는 개인의 재테크와 비슷하게 진행이 된다. ‘내집마련, 노후대비, 안심예비(보험), 자녀장래, 투자, 긴급예비’가 책에서 말하는 여섯 개의 돈 주머니이다. 그것을 읽으며, 먼 훗날의 기약없는 그 날의 재테크에 대해서 잠시 고민해 볼 수 있었고, 내 재테크와 비교해가며, 내 재테크는 효율적으로 잘 되고 있는 것인지 점검하게 했던 책이었다.

 

 

 

난 이 책을 읽고 그에게 말하기를, ‘나는 돈보다 내가 우선이야.’ 라고 하였는데,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집에서 패딩을 입고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둥, TV 시청을 가급적 자제해야 한다는 둥, 채널을 10번 사용해도 30W가 소비된다는 둥의 행동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범위였기 때문. 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돈을 아끼는 사람의 방법이 방송된 적이 있었다. 그는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밤이 되면 집 안으로 들어오는 가로수 등을 벗삼아 책을 읽고, 미용때문이 아니라 수도세를 아끼기 위해 쌀뜨물로 세수하는 등의 방법이 소개되었다. 자신의 집에서는 TV 자체를 보질 않으면서 아무도 없는 지인의 집에선 전등과 TV 모두를 켜고 보는 그의 행동은 경악케했다. 그런 그는 적금을 용도에 따라 조금씩 여러개 들고 있어서 은행에 VIP였는데, 그게 제대로 된 재테크인가, 생각해보게 되었었는데, 이 부부의 그런 행동은 그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자신의 돈을 자신이 아끼겠다는데 있어서 제3자인 내가 할말은 없지만, 그거야 말로 꼴불견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책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쓰여있다는 점과, 부부들에게 알짜배기의 내용을 전달해주는 점 등은 충분히 점수를 줄 만 하지만, 가끔 위와 같은 내용들에는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당신은 결혼하고 어떤 재테크를 꾸리며 나가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미혼 남녀에게 했을 때, 제대로 확신이 선 답변을 얻을 수 있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라고 (쓸데없이) 장담한다. 물론 나 역시도, 결혼은 내게 아직까지 먼 나라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기 때문에 결혼하고 나서의 재테크에 대한 어떠한 확립은 자리잡히지 않은 상태이지만, 주위에 결혼하는 지인들이 하나,둘 생기며 자연스레 그 가정의 경제적인 상황을 듣게 될 때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인을 예로 들자면, 그녀는 배우자와 사내 커플로 만나 결혼까지 골인한 전형적인 케이스다. 그녀는 결혼하기 전, ‘결혼하면 돈 관리는 내가 할거야.’라고 종종 말해왔는데, 정작 결혼한 지금에 그녀는 배우자에게 용돈을 타서 쓰고 있는 상황이다. 글쎄. 이게 맞는 것인가, 곰곰히 생각해본다. 물론, 여자가 무조건 경제권을 잡으라는 법은 어디에도 정해진 것이 없건만,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혼자 살 때와 함께 살 때의 재테크는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적어도 나는 생각한다. 그녀는 현재 배우자가 어떤 펀드를, 적금을, 예금을 들었는지, 어떤 보험을 들고 있는지, 그게 설령 중복되지는 않는지, 비과세 혜택이 쏠쏠한 연금보험은 들었는지, 청약주택은 가입이 되어있는지, 그녀는 관심이 없다. 그녀말대로 잘, 모르니까. 그렇기에 배우자가 자신이 관리를 하고 있는 거라고 살짝 생각해본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내가 무슨 조언을 하겠냐만은, 모르면 배워서라도 우선은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레 이야기하곤 한다. 하지만 부부들의 속사정이야 그들만의 세계니,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거기까지다. 나는 ‘나중에 결혼하면~’이라는 생각이 늘 재테크로 끝맺었던 적이 있었다. 그것의 결론은 가계부를 휘어잡을 것이고 재테크도 오롯이 내 몫으로만 생각해왔었다. 하지만 나는 지인들의 생활을 보고 들으면서 생각을 한다. 나는, 미래의 배우자와 재테크를 함께 해야겠다고. 아는 정보를 서로 교환하고, 절충해나가며 돈을 모으는 것이 1순위가 아닌 웃으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운 재테크를 해야겠다고. 아직 나에겐 먼나라 이야기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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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소년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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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가 죽었대

 

난 이 문장만을 서너번은 족히 반복해서 본 것 같다. 한번에,가 아니라 한번씩 여러번을. 읽으려 하다가도 아직, 아직, 하며 미뤄둔 탓이었다. 누군지 알 수 없던 연희라는 여자는 내 기억 속에서 그렇게 여러번 죽었고, 그렇게 언제까지 죽은 채로 기억될 줄만 알았다. 이 책에 대한 각기 다른 평은 지인들의 블로그를 통해 이미 여러번 읽혔고, 그래서 읽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던 것이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이다. 그래서 책의 활자들이 손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데도 언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태 그대로 책장 속에 넣어뒀는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펼치게 된 결정적인 계기랄 것도 없었다. 읽고 있던 책을 사무실에 던져놓고 온 것이 화근이었다. 날이 전보다 따뜻해졌다고, 밖에서는 기지개를 켠 봄 벌레가 울고 있는데, 그런 불협화음 속에서 그대로 잠을 청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책장에는 뒤집어져 있는 책들이 수두룩했지만, 유난히 이 책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실은 피곤한 마음이 어느 때보다 높다랗게 차있어, 연희가 죽었다는 앞의 한 문장만 읽고 말 줄 알았던 것이리라.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었는지도 모르지.

 

 

 

열 여덟 살의 ‘압구정 소년들’ 대웅, 우주, 원석, 윤우와 ‘반포 소녀들’ 연희, 미진, 소원의 만남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노래’라는 (그들에게 있어 가장) 정신적인 것을 주(主) 원료로 각자의 개성이 섞인 불협화음을 이내 협화음으로 만들었고, 그것이 멜로디를 이루어 그들의 학창 시절을 물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그들이 만났던 열 여덟 살에서 또 다시 열 여덟 해를 살아 서른 여섯 살이 되었다. ‘함께’라는 무리에서 ‘혼자’로 떨어져 나와 그들은 성장했다. 기획사의 대표 대웅, 잡지사 기자 우주, 마케팅 회사의 젊은 임원 원석, 10년차 회계사 윤우, 유명 여배우이자 대웅의 아내가 된 연희, 재벌가 며느리 미진, 성형외과 전문의 소원 -.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연희의 죽음을 전화를 통해 듣게 된다. 그로 인해 다시 한 데 뭉쳐진 그들. 하지만 기자만의 직감이 있다고 하던가. 고소공포증이 있던 연희가 한강 다리에서 자살한 것, 미국에 있어야 할 대웅이 CCTV에 찍힌 것, 연희의 고등학교 시절 남자친구였다고 뒤늦게 알려진 지상민…. 우리가 모르는 뭔가를, 진실을 움켜 쥐기 위하여 ‘나’의 발걸음에 내 발걸음을 얹어 함께 동행한다.

 

 

 

연예인의 생활은 나체로 사는 것하고 비슷해. 나도 모르고 있던 내 몸의 흉터를 사람들이 알고 있다니까.

 

작년 즈음에 이와 비슷한 소재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하재영 작가의 「스캔들」- 그 이야기는 루머를 믿는 누리꾼들의 악성 댓글로 인해 목숨을 끊는 내용을 주(主)로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이재익 작가의 압구정 소년들」은 연예계 자체 내에서의 루머를 독자에게 스스럼없이 내 보이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생각만 하고 있는 것과,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을 듣는 것에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 막연하게 그렇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확실하게 그렇다,고 믿을 수밖에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저자는 현직 PD -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조금 더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가볍게 손을 놀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분명 책을 시작하기 전, ‘이 소설은 실존하는 특정 인물, 단체, 사건들과 연관이 없음을 밝힙니다.’라고 나와 있긴 하지만, B2B의 태범을 보고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과연 누구를 생각했을까. 그것은 떠올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 과연 진실성이 얼마나 내포되었는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더란 것이다. 이런 내용의 책을 쓰고자 애초에 마음을 먹었었다면, 또 연관이 없음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적어도 특정한 인물을 연상케 하는 식의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고초는 겪게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린 더 이상 소년이 아니야. 끝내야 할 때 못 끝내면 인생이라는 기차가 멈춰버리는 거야.

 

‘성장+로맨스+추리’ 이런 것을 두고 우리는 흔히 ‘엔터테인먼트 소설’ 이라고 부른다. 간혹, 그것이 불분명하게 믹스된 덩어리를 보고 ‘이것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도 물론 있다. 이 책과 마찬가지로 ‘성장+로맨스+추리’ 모두 섞여있었던 권지예 작가의 「4월의 물고기」가 그러했다. 그 책을 읽고 한숨에 또 다른 한숨이 포옥 새어져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적당히,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잘 버무려진 하나의 비빔밥이었던 셈이다. 개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던 것은 ‘성장’부분이었다. 반자전적인 이 소설은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예를 들면, 시골에 사는, 가난한, 문제가 있는, 미성숙의 상태에서 성숙의 상태로 도달하는 기존의 성장소설에서 벗어나 부유층의 아이들이라는 점이었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자란 아이들은 성장통이 없었을 것 같느냐,(작가의 말)는 저자의 반항심이 살짝 엿보이기도 한다. 가장 큰 차이가 부유층의 아이들이었다면 그 두번째는 미성숙이다. 어떤 계기를 통해 성숙하게 되는 것이 성장소설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서른 여섯,이라는 나이를 가졌지만, 그들 중 누구도 성숙이라는 마침표에 점을 찍은 적이 없다. 그래서 좋았다. 내가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의도를 파악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내게는 내가 읽고 느낀 것이 전부인 까닭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에서 회상하는 장면들을 활자로 읽어내리며, 나의 학창 시절을 생각했고, 그 파노라마를 오랜만에 꺼내어 추억할 수 있는 진귀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작가가 버무려놓은 비빔밥을 나는, 우걱우걱 잘도 먹었으니, 이제 소화시킬 일만 남았다.

 

 

 

별 많은 밤하늘에 신비로운 초승달이 머물고 열여덟 살 소년이 사랑의 감정과 질투의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 순간, 깊은 어둠과 희뿌연 빛 속에서 소년의 인생은 분명하게 방향을 틀었다. 항로가 바뀐 배는 변경된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도 항해 중이다. 목적지가 어딘지는 먼 훗날에 알게 되겠지.

 

2004년, 고등학교를 입학했다. 중학교 친구들과 떨어져 간 고등학교가 여간 못 미더웠다. 설상가상으로 그리 친하지는 않았지만, 중학교를 같이 다녔기에 다른 아이들보다 친밀감을 지녔던 친구는 아버지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났다며, 2주일도 채우지 못하고 전학을 가버리기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 다른 친구들이 생기긴 했지만, 그 전까진 몸서리가 쳐지도록 외로운 나날이었다. 그 때, 동아리를 찾았었다. 우리는 압구정 소년들과 반포 소녀들과 같이 꼭 네명에 셋, 합이 일곱이었다. 하지만 우린 그들과 같이 ‘음악’이 아닌, ‘책’으로 만났고, 모든 것은 ‘책’과 통했다. 내가 지금까지도 이렇게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것도 그 때의 동아리라는 것이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고3을 제외한 1,2학년 때에 문학제, 시화전 준비를 하며 간혹 선배들에게 꾸지람을 들으며,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고 믿었다. 행사가 끝난 뒤, 윗 선배들이 수고 했다며 따라주는 소주잔을 아득하게 바라보다 꼴깍꼴깍 넘겼던 그 때, 남은 소주를 챙겨 도서관 보이지 않는 곳에 놓고, 우리끼리 깔깔 거리며 건배를 했던 그 때, 나야 학교에서 기껏해야 5분 내지 10분 걸리는 근처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그 때 다른 애들은 버스로 1시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곳이었음에도, 고3때도 한 달에 한번은 모두 모여 도서관에 와서 함께 머리를 맞대 공부했던 그 때의 우리는, 이제 스물 네 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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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미치오 슈스케 :  여기, 학대 받는 아이의 소원이 있습니다. 500엔의 돈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점점 커져  같은 반 아이의 사고를 바라고, 급기야는 엄마의 애인이 죽어버렸으면 하는 바람까지 가지고 있네요. 어린 아이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기에, 그런 무서운 소원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아이들의 성장담이자, 어른들의 성장소설이라고 불리우는 이 책이  아이도, 어른도 아닌 중간에 끼어있는 (혹은, 그렇게 생각하는) 저에겐 어떻게 읽히게 될까요. 

 

저녁의 구애 - 편혜영 : 편혜영 작가의 문장이 견고하다는 문장을 언뜻 본 적이 있습니다. 과연 어떻길래 그렇게 표현을 하나, 싶었습니다. 단편 소설이라는 것이 이야기가 끊기는 느낌을 받는다는 이유로 싫어했었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 단편 소설이 주는  매력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책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녀의 견고한 문장을 이 단편에서 느낄 수 있다면, 개의치 않고 읽어보고 싶네요.

 

7년의 밤 - 정유정 : 정유정의 작품을 처음 만난건 재작년즈음 ‘내 심장을 쏴라’를 통해 먼저 만나보았습니다. 그때는 초반부에 어지간히 나가지 못해서 중도에 포기할까 했었는데, 150쪽을 넘는 순간부터 흡입력이 붙기 시작하여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소문에 의하면 초반부터 잘 나간다는 소리가 있네요. 북트레일러를 본 적이 있는데 ‘딸의 복수를 꿈꾸는 아버지와 아들을 지키려는 아버지’ 그 간극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서려있겠지요. 이번에 정유정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줄까요-.

 

생강  - 천운영 : 사실 저는 이 작가에 대한 어떠한 소식도 접한 적이 없어요.  포스팅을 하기 위해 처음 접해본 작가네요. 저의 편협한 독서습관이 여기서 보입니다. 책을 알기 전, 작가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 검색을 통해 찾아보았는데, 이 작가에 대한 호평 또한 만만치 않네요. 생강을 씹어 혀 끝이 알알할 정도의 깊은 맛이, 이 책에서 우러나올까요. 항상 좋은 작가를 알게 되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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