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소년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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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가 죽었대

 

난 이 문장만을 서너번은 족히 반복해서 본 것 같다. 한번에,가 아니라 한번씩 여러번을. 읽으려 하다가도 아직, 아직, 하며 미뤄둔 탓이었다. 누군지 알 수 없던 연희라는 여자는 내 기억 속에서 그렇게 여러번 죽었고, 그렇게 언제까지 죽은 채로 기억될 줄만 알았다. 이 책에 대한 각기 다른 평은 지인들의 블로그를 통해 이미 여러번 읽혔고, 그래서 읽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던 것이 멍청하기 이를 데 없는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이다. 그래서 책의 활자들이 손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데도 언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태 그대로 책장 속에 넣어뒀는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펼치게 된 결정적인 계기랄 것도 없었다. 읽고 있던 책을 사무실에 던져놓고 온 것이 화근이었다. 날이 전보다 따뜻해졌다고, 밖에서는 기지개를 켠 봄 벌레가 울고 있는데, 그런 불협화음 속에서 그대로 잠을 청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책장에는 뒤집어져 있는 책들이 수두룩했지만, 유난히 이 책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실은 피곤한 마음이 어느 때보다 높다랗게 차있어, 연희가 죽었다는 앞의 한 문장만 읽고 말 줄 알았던 것이리라.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었는지도 모르지.

 

 

 

열 여덟 살의 ‘압구정 소년들’ 대웅, 우주, 원석, 윤우와 ‘반포 소녀들’ 연희, 미진, 소원의 만남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노래’라는 (그들에게 있어 가장) 정신적인 것을 주(主) 원료로 각자의 개성이 섞인 불협화음을 이내 협화음으로 만들었고, 그것이 멜로디를 이루어 그들의 학창 시절을 물들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그들이 만났던 열 여덟 살에서 또 다시 열 여덟 해를 살아 서른 여섯 살이 되었다. ‘함께’라는 무리에서 ‘혼자’로 떨어져 나와 그들은 성장했다. 기획사의 대표 대웅, 잡지사 기자 우주, 마케팅 회사의 젊은 임원 원석, 10년차 회계사 윤우, 유명 여배우이자 대웅의 아내가 된 연희, 재벌가 며느리 미진, 성형외과 전문의 소원 -.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레 연희의 죽음을 전화를 통해 듣게 된다. 그로 인해 다시 한 데 뭉쳐진 그들. 하지만 기자만의 직감이 있다고 하던가. 고소공포증이 있던 연희가 한강 다리에서 자살한 것, 미국에 있어야 할 대웅이 CCTV에 찍힌 것, 연희의 고등학교 시절 남자친구였다고 뒤늦게 알려진 지상민…. 우리가 모르는 뭔가를, 진실을 움켜 쥐기 위하여 ‘나’의 발걸음에 내 발걸음을 얹어 함께 동행한다.

 

 

 

연예인의 생활은 나체로 사는 것하고 비슷해. 나도 모르고 있던 내 몸의 흉터를 사람들이 알고 있다니까.

 

작년 즈음에 이와 비슷한 소재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하재영 작가의 「스캔들」- 그 이야기는 루머를 믿는 누리꾼들의 악성 댓글로 인해 목숨을 끊는 내용을 주(主)로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이재익 작가의 압구정 소년들」은 연예계 자체 내에서의 루머를 독자에게 스스럼없이 내 보이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생각만 하고 있는 것과, 이미 짐작하고 있는 것을 듣는 것에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다. 막연하게 그렇겠지,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확실하게 그렇다,고 믿을 수밖에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저자는 현직 PD -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조금 더 정확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은 가볍게 손을 놀린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분명 책을 시작하기 전, ‘이 소설은 실존하는 특정 인물, 단체, 사건들과 연관이 없음을 밝힙니다.’라고 나와 있긴 하지만, B2B의 태범을 보고 책을 읽는 독자들은 과연 누구를 생각했을까. 그것은 떠올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 과연 진실성이 얼마나 내포되었는지,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더란 것이다. 이런 내용의 책을 쓰고자 애초에 마음을 먹었었다면, 또 연관이 없음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적어도 특정한 인물을 연상케 하는 식의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고초는 겪게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린 더 이상 소년이 아니야. 끝내야 할 때 못 끝내면 인생이라는 기차가 멈춰버리는 거야.

 

‘성장+로맨스+추리’ 이런 것을 두고 우리는 흔히 ‘엔터테인먼트 소설’ 이라고 부른다. 간혹, 그것이 불분명하게 믹스된 덩어리를 보고 ‘이것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도 물론 있다. 이 책과 마찬가지로 ‘성장+로맨스+추리’ 모두 섞여있었던 권지예 작가의 「4월의 물고기」가 그러했다. 그 책을 읽고 한숨에 또 다른 한숨이 포옥 새어져나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적당히,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잘 버무려진 하나의 비빔밥이었던 셈이다. 개 중에서도 단연 돋보였던 것은 ‘성장’부분이었다. 반자전적인 이 소설은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예를 들면, 시골에 사는, 가난한, 문제가 있는, 미성숙의 상태에서 성숙의 상태로 도달하는 기존의 성장소설에서 벗어나 부유층의 아이들이라는 점이었다. 그것은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자란 아이들은 성장통이 없었을 것 같느냐,(작가의 말)는 저자의 반항심이 살짝 엿보이기도 한다. 가장 큰 차이가 부유층의 아이들이었다면 그 두번째는 미성숙이다. 어떤 계기를 통해 성숙하게 되는 것이 성장소설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서른 여섯,이라는 나이를 가졌지만, 그들 중 누구도 성숙이라는 마침표에 점을 찍은 적이 없다. 그래서 좋았다. 내가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의도를 파악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은 내게는 내가 읽고 느낀 것이 전부인 까닭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 책에서 회상하는 장면들을 활자로 읽어내리며, 나의 학창 시절을 생각했고, 그 파노라마를 오랜만에 꺼내어 추억할 수 있는 진귀한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작가가 버무려놓은 비빔밥을 나는, 우걱우걱 잘도 먹었으니, 이제 소화시킬 일만 남았다.

 

 

 

별 많은 밤하늘에 신비로운 초승달이 머물고 열여덟 살 소년이 사랑의 감정과 질투의 고통에 몸부림치던 그 순간, 깊은 어둠과 희뿌연 빛 속에서 소년의 인생은 분명하게 방향을 틀었다. 항로가 바뀐 배는 변경된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직도 항해 중이다. 목적지가 어딘지는 먼 훗날에 알게 되겠지.

 

2004년, 고등학교를 입학했다. 중학교 친구들과 떨어져 간 고등학교가 여간 못 미더웠다. 설상가상으로 그리 친하지는 않았지만, 중학교를 같이 다녔기에 다른 아이들보다 친밀감을 지녔던 친구는 아버지가 다른 지역으로 발령이 났다며, 2주일도 채우지 못하고 전학을 가버리기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 다른 친구들이 생기긴 했지만, 그 전까진 몸서리가 쳐지도록 외로운 나날이었다. 그 때, 동아리를 찾았었다. 우리는 압구정 소년들과 반포 소녀들과 같이 꼭 네명에 셋, 합이 일곱이었다. 하지만 우린 그들과 같이 ‘음악’이 아닌, ‘책’으로 만났고, 모든 것은 ‘책’과 통했다. 내가 지금까지도 이렇게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읽을 수 있는 것도 그 때의 동아리라는 것이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고3을 제외한 1,2학년 때에 문학제, 시화전 준비를 하며 간혹 선배들에게 꾸지람을 들으며,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우리는 하나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하나가 되었다,고 믿었다. 행사가 끝난 뒤, 윗 선배들이 수고 했다며 따라주는 소주잔을 아득하게 바라보다 꼴깍꼴깍 넘겼던 그 때, 남은 소주를 챙겨 도서관 보이지 않는 곳에 놓고, 우리끼리 깔깔 거리며 건배를 했던 그 때, 나야 학교에서 기껏해야 5분 내지 10분 걸리는 근처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그 때 다른 애들은 버스로 1시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곳이었음에도, 고3때도 한 달에 한번은 모두 모여 도서관에 와서 함께 머리를 맞대 공부했던 그 때의 우리는, 이제 스물 네 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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