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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최인호 지음 / 여백(여백미디어)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최인호 작가, 오랜만이다. 작년(2010)즈음에 「최인호의 인연」으로 만나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작가와 독자’라는 끈으로 나는 저자의 보이지 않는 그의 또 다른 ‘인연’이 되었다. (그가 수긍할런지는 모르겠지만. 큭큭.) 물론 그의 작품 「인연」은, 「최인호의 인연」으로 한정되어 있어 약간의 지루함이 동반되기도 했지만, 저자는 자신의 인연들을 향한 애정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그가 써내려가는 글에 무게를 실었고, (여기서 무게는 결코 책의 내용이 무겁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나는, 오롯하게 받아내는 동시에 회의감을 느끼며 ‘나는?’하고 되물음을 했었다. 그렇게 그의 인연들을 소개받는 도중에 잠시 자리를 빠져나와, 나의 인연들을 하나 둘 떠올렸고 당연하다 생각했던 내 곁에 있는 그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꼈고, 책을 덮고 나서는 오랜만에 몇몇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었던 것을 기억해낸다. 나에게 ‘에세이’는 언제나 ‘가벼움’이란 생각이 강했었는데, (물론, 이것 역시 무겁지 않았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감성에세이가 아닌 경우에) 내 이야기를 펼쳐놓기는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이번 작품을 읽기 전에, 그를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작품을, 잠시 들었고, 내가 그의 책에서 가장 인상깊다 생각했던 부분에 붙여놓은 포스트잇 플래그부터, 다시 읽는 것이다.  그 부분은 아내,에 대한 그의 조용하지만 넘쳐 흐르는 애정,에 대한 부분이었고 역시나, 다시 읽어도 그것은 내게 미소를 띠게 만든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의 작품에 대한 기대의 이유.

 

 

 

K의 이야기. 왜 이름이 아닌 K가 되는가. 사실 난 이렇게 이름이 붙여있지 않은, 이를테면 이 작품과 같이 K라던지, 김씨라던지, 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저자가 인물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어쨌든, 그의 이야기는 토요일 아침 일곱시에, 느닷없는 자명종 소리에 깨어버린 K로부터 시작된다. -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토요일인가. 그렇지. 어제는 아내와 전야제(前夜祭)를 벌였고, 그것은 휴일 전날 밤에만 가능한 것이었으니. 그렇다면 자명종은 왜 울렸을까. 전날 술을 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왔어도 정신이 없거나 기억을 잃을 만큼 과음한 것도 아닌데. 그런데, 내 잠옷. 어디 가고 난 이렇게 발가벗고 있지. 왜 스킨 브랜드가 V가 아니라 Y인거야. 저기에서 채소를 썰고 있는 여자는 분명 내 아내고, 나에게 와락 안기는 이 아이는 내 딸이 맞는데. 아얏, 저 개도 분명 내 개가 맞는데, 이제 주인도 못 알아보고 물어뜯다니. 낯익은데, 왜 낯설기만 하지. 왜. - K의 낯익은 혹은 낯선 타인들의 도시.

 

 

 


우리는 흔히, 어디서 본 사람인데, 어디서 맡은 향인데, 어디서 먹어본 음식인데, 어디서 들은 음악인데,와 같은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는다. 여기서 ‘어디서 ~한’이라는 것은 ‘낯설지 않음’과 직결되고, 그것은 ‘낯익음’으로 점철되어 진다. 그런데, 저자의 이번 작품을 읽다보니 낯익다,는 단어 만큼 낯선 단어가 또 어디 있으랴, 싶다. 도대체 무엇이 낯익고 무엇이 낯선가. 말 그대로 해석한다면, K는 자신의 방이 낯익고, 아내가 낯익고, 자신의 딸아이가 낯익고, 키우는 강아지가 낯익다고 했다. 반대로, 그가 쓰던 스킨이 V사의 브랜드가 아니라 Y사, X사, D사의 브랜드가 낯설다고 했고. 그렇다면 K, 자신은 낯익은가, 낯선가. 그곳에 물음을 제기하려다가 책 전체에 물음표 기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 또한 건조한 바람을 폐로 들이마신 후, 건조하게 묻는다. 나는, 나인가. - (여담이지만) 요즘 들어 나는, 내면과의 만남이 잦아졌다. (사실 이런 것은 너무나도 사소해서 내면과의 만남이라고 칭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내 감각 기관 모두를 동원하여 공유한다. 가끔 답답할 때에는 걸으면서 생각들을 정리하곤 하는데, 며칠 전엔 생각이 너무 깊은 곳에 뿌리를 심은듯 박혀있어서 그것을 들여다보느라 걷고 있는 게 내가 아니라,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내 몸을 얹어놓은 것만 같다는 착각마저 일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정말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건 아닌가,하는 괴상한 생각이 든다. - 하지만 K는,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주변환경에 그가 나동그라진 것. 때문에 그는 자신을 에워싸던 관계의 고리에서 약간 벗어나 철저하게 벗어나 자신을 관찰한다. 그리고, 합일점을 찾는다. 혹은 찾아진다. 혹은 찾아온다.

 

 

 



작품의 K에게 애처로움을 느낀 것이 비단 ‘암 투병’을 하고 있는 작가였기 때문은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런 마음이 혹 K에서 비롯된 걸까. K가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 글쎄. 사실, 내가 「작가의 말」을 읽지 않았다면, 이 작품을 이렇게 아릿하게 읽을 수 있었을까. 남성 작가 특유의 단 한 번의 흔들거림도 없었을 동공으로 썼을 법한 딱딱한 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릿함. 아,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하지. 일종의 섬찍함, 같은 거랄까. 손톱과 발톱이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손톱에 골무를 끼워서 썼을 이책에 대한 표현을 무척이나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는 ‘섬찍함’으로 종결짓다니. 국어사전을 찾아본 후에, 이 단어가 이런 의미밖에 없던가. 하, 머리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말고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는데. 내가 그것을 느끼는 것은 저자와 K를 동일시한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서, 이니셜로 칭하기에 애정을 느낄 수 없다 하였는가, 아니었다. 멋대로 단정지은 내가 오만했다. 저자의 인물을 보는 시선은 나무라도 부러질 것만 같은 무뚝뚝함이었지만, 그 속에 애정이 서려있다. 아니, 방울방울 서려있는 것 뿐만이 아니라, 차고 넘치는 포화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금 빗겨난 이야기지만) 자신의 정신과 육체가 함께일 때엔, 질타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지만, 정신과 육체가 따로인 상태에서 자신을 앞에 세워두고 관찰한다,라... 너 왜 그렇게 사냐, 정말 못났다,며 질타할 수 있을까. 아니, 그대로 두 팔을 뻗어 자신을 끌어안는 게다. 이번 작품에서 그걸 느꼈다. 어쩌면, ‘선생일지도 모르겠군요.’ 하는 그런 거 말이다. 따라서 K를 바라보는 독자라는 이름을 가진 내 시선 역시, 그윽하다. - 케이, 그의 이야기 끝은, 소멸일까, 시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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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칠 수 있겠니
김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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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소현
」을 접했었다. 얄팍한 지식만을 가지고 있었기에 약간 버겁게 읽었고, 또 그렇게 읽혔지만 (그래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 또한 몇 페이지 건너 몇 페이지식으로 있었지만) 꽤 좋은 작품이었기에 다음에 소현세자에 대한 지식이 배부른 배를 둥둥 두들기는 것처럼 부풀어 오를 때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며 다시 한번 그 자리에서 번복하여 읽는 것을 잠시 미뤘었다. 여기서 꽤 좋은 작품이라는 것이, 비단 누구나 한번쯤 의구심을 품어보았을 법한 사건의 역사물인 까닭은 아니었다. 내가 그곳에서 만난 것은 ‘고독’이었다. 아비 인조의 고독과 자식 소현의 고독. 저자의 응어리졌을 펜촉을 따라 읽어내려가며 그들이 느꼈을 고독이 얼마만큼의 깊이를 가늠해보려다 그것은 내가 상상할 수 없겠구나, 싶더란 것. 그래서 그것은 내게 ‘고독’이라는 한 단어로만 각인되어 있다. 습한 곳에 묵혀둔 그 책을 지금에 와서야 들먹이는 까닭은, 그것에는 내가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에 대한 key point가 있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그것을 자신만의 문체로 다듬었다. 역사하면 단번에 뇌리를 스치는 여성작가,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김별아가 있었으나, 그와는 또 다른 문체에 감탄했더랬다. 그래서, 그렇기에, 그 까닭에, 이번 작품을 읽기 전부터 애정이 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진과 진, 유진과 유진. 이름이 같은 사람끼리 사랑에 빠질 확률은 얼마나 될까,하며 혼자 가늠해보다가 모르긴 몰라도 확률이라는 것에 덜미를 잡히진 않을까, 생각한다. 남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 기꺼이 이름을 내어준다. 그래서 그들은 유진과 진이 된다. 둘은 함께 여행을 갔던 섬을 잊지 못하고, 쉬러 간다던 유진은 그대로 섬에 장착하고, 진은 그를 찾아간다. 진은 유진이 자신에게 반지를 주며 ”우리 같이 살까?”라고 말한 것을 두고 아내 행세를 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집에, 그의 침대에, 한 여자아이가 잠들어있다. 그의 서번트. 그리고 그가 서번트에게 남겨놓은 봉곳한 배. 진은 저 꽃같은 아이를 죽일 수 있을까, 생각했고, 곧,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대답한다.

 

 

 


지금, 이렇게 살고 싶잖아요. 무슨 짓을 해서든, 움켜쥘 것이 여자의 손밖에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이 어둠과 물속을 벗어나고 싶은 거잖아요. 살고 싶은 거잖아요, 나…… 미치게, 미치게 살고 싶은 거잖아요……. 아, 어찌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 참 마음에 안 든다. 장르는 스릴러인지, 재난인지, 로맨스인지 도통 그 어떤 것에도 놓을 수 없게 만들고, 진과 이야나, 그 누구에게도 내 부풀어 오른 감정을 이입할 수 없다. 하물며, 난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접하는 작가의 글을 읽는 것만 같아 저자의 이름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했는데, 「소현」을 읽었을 그때의 기억에 지진을 낳아, 그것이 흔들거리게 만들며, 결국 희미해버리게 만들어 버렸다. 저자의 문장들이 바람에 휘날리듯 허공을 유영했고, 나는 손을 뻗어 그것들을 잡았으나, 끝내 조합할 수 없었다. 어쩌면, 장르를 오가는 장편 소설에 지쳐 조합하던 것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아무렇게나 꿰맞췄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작품을 읽고 후 끄적거리는 내 서평에는 신빙성이 전혀 없다.

 

 

 

저자는 <>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살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사는>을 이야기하며, 결국은 <살아야 하는 것>을 이야기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그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까지 가미되었다면, 그 부분만은 약간, 아니 실은 아주 많이 이해할 수 없다. 책에서 상처를 치유함에 있어서 가장 첫번 째로 우선시 되어야 할 것 중 하나가 인물(혹은 대상)에 대한 나의 감정이입인데 책에서 어느 대상에게도 내 마음이 전달되지 못한 까닭이다. 혹여, 그들이 (사랑의) 상처를 치유했다고 가정한다면, 그저 사랑에 실패한 인물끼리 다독여 안아주는 것을 이해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나, 싶다.) 사는 것은 어떤 것에 미치는 것과 직결되어 있어서, 그것은 생에 대한 오기를 야기시키지만 동시에 좌절도 동반하기도 한다. 당신은 당신의 삶에 미칠 수 있습니까. (여기서 당신이 읽은 미치다의 의미는 ‘crazy’입니까, ‘reach’입니까.) - 진과 이야나는, 미쳐야 할, 그래도 됐을 타이밍에 미치지 않았지만, (혹은 못했지만) 이제 그들은 미치려고 한다. 그들의 삶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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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박범신 작가님의 새 작품이 나왔네요. 박범신이라는 메이커 아래 많은 독서가들의 시선이 주목되는 책인 것 같아요. 저도 아직 박범신 작가의 책은 입문하기도 전인데, 작가의 작품은 좋다는 지인 분들이 많아서 신간이 나오면 한번 기웃거려 보게 되요. 며칠 전, 작가의 「은교」라는 책을 구입했는데, 옆에 두고도 아직 손에 들어보지 못했네요. 그 책은 ‘사랑’에 대해 썼다고 했다는 것을 다른 이의 서평을 통해 대강 알고 있는데, 이번 작품은 이야기를 보아하니, ‘살인’이라는 틀 안에서 추적하는 이야기인가 봅니다.

 

이사카 고타로 , 마리아비틀

전에 작가의 첫 번째 작품으로 「골든슬럼버」를 접한 적이 있었어요. 작품이 참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었지만, 손이 가지 않던 책 중 한 권이었는데, 읽고 나서 결말에 대한 안도감에 미소를 지을 수 있었던 작품이었지요. 그런데 「마리아비틀」- 이 작품의 줄거리를 보던 중 「골든슬럼버」이후의 화제작이라는 평을 보게 되었네요. 신칸센 열차에 오르게 된 사람들, 그들이 벌이는 싸움. 이유는? 어째서. 왜....…

 

넬레 노이하우스 , 너무 친한 친구들

저랑 독서 취향이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지인(물론, 저만일 수도.. ^^;) 중 한명이 극찬하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라는 작품을 쓴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떴네요. 사실 그 지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입방아에서 칭찬으로 달궈져 쏟아져 나오던데, 무엇때문인지 아직 끌리지 않는 이유만으로 잠시 미뤄두고 있는 책 중 한 권입니다. 독일이라는 약간 생소한 나라라는 이유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독일 작품은 늘 어렵게만 느껴지니까요.) 2006년 독일월드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이번 작품에서는, 다른 작품에서의 무뚝뚝한 형사들과는 달리 인간적인 형사의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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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3-08-0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범신작가는 제가 꼬꼬마때..아버지책을 훔쳐읽은..기억^^;
추리물은..시드니셀던..아가사크리스티..등..(아..이건 심야 라디오..것두..아버지청취하시던것)
정건섭..등 어릴때 기억밖에..ㅎㅎ
일본작가들은 이제 막 입문 과정이랄 수 있어서..언급 못하겟고..ㅡㅡ;
저역시..빙켈만쪽에 기억이 남아서
넬레 노이하우스 어쩐지 다작이라 손이 머뭇..하고있는...^^;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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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말이지 이 책은, 「압구정 소년들」을 읽고 난 직후부터 눈에 띄던 것이어서 책이 오자마자 읽어야겠다,고 다짐(까지) 했었던 책이었는데, 책의 도착이 지연됨으로 인해, 먼저 도착한카시오페아 공주」를 맛배기만 본다는 것이 그대로 주욱 읽어버렸었다. 읽을 때는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건만, 뒤죽박죽인 장르에 마음을 둘 데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어느 곳에 마음을 두지 못해 방황했으니. 그러다가 마지막 단편에 마음을 아주 잠시 놓았었더랬지. 그리고 후에 오는 허무감에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며 결국 이 책, 그대로 책장 속으로 밀어두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뿐이었을까. 어쩌면 ‘야구’라는 스포츠에 대한 거리감도 한 몫 했을지도 모르지, 싶다. 축구, 배구, 농구, 테니스, 탁구, 유도, 검도 등 왠만한 스포츠 경기는 재미있게 보는 편인데, 야구는 보려고 시도 한 적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야구를 보고 있는 아빠와 삼촌 사이에 있노라면 그것이 끝날 때까지 방에 틀어 박혀 나오질 않았던 나였으니.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멀어지게 된 스포츠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책, 야구를 이야기한다. 아니, 서울대 야구부를 이야기한다. 아니,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을 이야기한다.

 

 

 

‘실직’과 ‘이혼’ _ 서른 다섯의 남자가 (아니, 실은 그 어떤 나이라 할지라도_) 겪기엔 무척이나 쓰라린 아픔이지, 싶다. 그 아픔에 그(지웅)가 현재 쓰고 있는 ‘시나리오’라는 연고를 듬뿍 바르는데, 그것의 근원지는 그가 대학생 시절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야구부. - “잘했어. 다음엔 꼭 잡자.” , “진짜 아까웠어. 이길 뻔한 경기였는데.”의 말이 나온 경기 스코어는 ‘8대 1’. 그야말로 참패라는 말이 어울리는 스코어에서 나올 말은 아니지만,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그렇게 이야기하고 다음 경기에서의 1승을 다짐한다. (사실 여기서 나는, 그들이 애초에 경기에 대해 자포자기하고 있는가, 의심했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누구랄 것 없이, 같다. ‘1승’ _ 그리고 공식기록, ‘1승 1무 265패’ 그들이 바라던 것이, 또 그것을 위해 흘린 땀들이, 동화 ‘잭과 콩나무’처럼 쑥쑥 자라, 하늘에 닿았다. 그래서 그들의 265패도 결코 ‘실패’라고만 간주할 수는 없는 것이리라. - 이야기는 이렇듯 액자식 구성을 띠며 두 개가 된다. 야구부원일 때와 아닐 때. - 지웅이 쓰는 시나리오의 롤 모델은, 포수 장태성. 그를 찾기 위해 당시의 야구부원들을 만난다. 그런데 하나같이 그의 행방을 아는 이가 없다. 그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지금 니 상황에서는 직장도 잃고 가정도 깨지고, 앞이 깜깜할지도 모르겠지마는 내가 보기에 니는 절망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야구는 9회 말 투 아웃부터 아이가? 인생도 마찬가지다.야구와 인생을 직결시키는 것에 공감의 손가락을 꾸,욱 찍어누르기에 나는 야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야구에 대해 잠시 흥미를 가진 계기가 한번 있었는데, 올해 초에 본 영화 「글러브」 - 하지만 그것도 금세 그친지 오래. 이 책, 서울대 야구부를 이야기하며, 야구라는 스포츠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야구에 애정을 품고, 야구가 애정을 쏟은 (실존하는)‘그들’을 이야기한다. 물론 나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한 채로 그저 읽어내린다. 그저 막힘없이 술술. 물음표가 생기지 않으니, 당연히 느낌표도 없다. 그러다 중간에 흥미를 잠시 잃는다. ‘나, 이 책, 왜, 읽지.’ 하는 무감각의 절정의 그 순간에 ‘응, 사람을, 읽으려고.’ - 앞서 야구를, 서울대 야구부를,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을 이야기하려 했다 했었지. 아니, 정정해야겠다. 사람이었다. 작가 이재익이 쓰는 것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결국은 사람 이야기니까. 싫든 좋든 주목을 받는 그들에게, 지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는 감독과는 달리,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그들에게 감독은 “꼭 이기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 그들은 그 무엇보다 값진 1승,을 쟁취한다. -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을,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혹은 살아 가는 인생을 그리고, 그들의 땀을 ‘나’의 마음에 얹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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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을 샀어요
벤저민 미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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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스무 살 여름에 그곳에서 소개팅을 했었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든간에 살아있는 모든 것은 나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내가 10년을 키운 개에게도 정을 주지 못한 까닭도 그것일 게다.) (살아있는 것 중, 내가 유일하게 정을 줄 수 있는 것은 물고기, 그것도 키울 수 있는 종류 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장소가 그곳이었을까, 생각하다가 아마 장소가 그곳이 아니었다면 그 남자와의 관계가 지속되었을까 생각한다. 동물 중에서 조류를 지독하게 (정말, 까무러칠 정도로) 싫어하는 나에 비해 그 남자는 조류를 너무 좋아했다. (특히 공작새를) (아,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리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며 보낸 시간의 20분은 내게 지옥과도 같았고, 그 날 이후로 그 남자는 나와 만났던 적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책 제목에 쓰여 있는 ‘동물원’이라는 세 글자에 그때의 일이 생각났다. (동물원에 관한 다른 추억을 하루바삐 만들어야 할텐데.. 큭큭.) 물론,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 책 제목 ‘동물원을 샀어요’ ... 어째 제목에서 풍겨오는 느낌은 ‘과자를 샀어요.’와 같은 살랑거리는 가벼움이 느껴져 당황했다. 내 기억에 담겨있는 동물원은 한 바퀴를 도는 데에도 몇 시간이나 소비되는 (물론, 구경하는 시간이 더 많긴 하지만) 어머어마한 평을 자랑하고 있는 곳인데! 그곳을 평범한 개인이 샀다니, 의아할 수밖에. 

 

 

 

쉿, 조용히 해. 아빠가 지금 동물원을 사려고 한단 말이야.주인공 벤저민 미 부부의 집에 소책자 한 부가 집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런던의 아파트를 팔고 남부 프랑스 중심부에 있는 아름다운 헛간 두 채를 사들여 그곳에서 칼럼을 쓰고, 아이들과 야생 생물 탐험을 하는 것 _ 이것이 그가 말하는 완벽한 환경이고, 그것이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었기에 별 관심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그들의 ‘꿈의 시나리오’를 완성시킬 문장이 그곳에 있었던 것! 그것은 다름아닌 ‘다트무어 야생공원을 판다’는 광고. 결국, 가족의 전재산을 쏟아 부어 동물원을 샀다. 3만평의 동물원을, 정말로! 그런데 동물원을 샀다고 해서 바로 개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개장을 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야 했는데, 맨 마지막 절차로 심사일이 있었다. 개장을 준비하기에 앞서 도와줄 새로운 스물네 명의 직원을 뽑고, 그들(벤저민 미)의 재정상태도 확인해야 했으며, 탈출할 위험이 큰 규격에 맞지 않는 축사들도 새로 수리를 하거나, (그것이 불가할 경우에는) 동물을 다른 동물원으로 보내야 했다. 그리고 나서야 본격적인 동물원 개장 준비가 시작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도중에 아내 캐서린이 쓰러진다. 문제는 전에 뇌에 종양을 수술한 것이 재발한 것. - 그들은 이 난관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나는 (일찍 일어날 때에는) 일요일에 하는 ‘TV 동물농장’을 챙겨본다. 그곳에서 간접적으로 동물들을 만나지만, 그곳에서 방영되는 것들의 주제는 동물들의 고충이 대부분을 차지하지, 사람들(이를테면 사육사들이나 관리인들)이 겪는 고충은 사실 뒷전이다. 그래서 뒷이야기는 볼 수 없는 아쉬움들이 많았었는데, 이 책에서는, 물론 전체적인 흐름은 동물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정관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실에 눕힌 늑대 ‘잭’의 고환에서 암이 발견되어 그것을 자르고 써는 과정에서 지어졌을 남자 직원들의 표정들이 상상되며 낄낄 웃어댔고, 사자 ‘솔로몬’을 마취시켰을 때 입술이 밀려올라가며 단검 같은 이빨들이 훤히 보이는 순간에 줄행랑을 치고 싶었다는 그들에게서 나 역시 오금 저림을 느끼기도 했으며, 호랑이를 마취하는 과정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하여 ‘블래드’의 마취에서도 혹시나,하는 마음을 안기도 했었다. 또, 곰 ‘퍼지’와 퓨마, 재규어 ‘소버린’의 이빨 치료에서는 으~ 거리며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 동물원 직원이 아닌 이상에야 경험하기가 쉽지 않은 일들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그렇게 나도, 책을 읽을 때 동안 만큼은 ‘다트무어 동물공원’의 직원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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