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을 샀어요
벤저민 미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동물원, 스무 살 여름에 그곳에서 소개팅을 했었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든간에 살아있는 모든 것은 나에게 두려움을 주는 존재라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내가 10년을 키운 개에게도 정을 주지 못한 까닭도 그것일 게다.) (살아있는 것 중, 내가 유일하게 정을 줄 수 있는 것은 물고기, 그것도 키울 수 있는 종류 뿐이다.) 그런데 왜 하필 장소가 그곳이었을까, 생각하다가 아마 장소가 그곳이 아니었다면 그 남자와의 관계가 지속되었을까 생각한다. 동물 중에서 조류를 지독하게 (정말, 까무러칠 정도로) 싫어하는 나에 비해 그 남자는 조류를 너무 좋아했다. (특히 공작새를) (아,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리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며 보낸 시간의 20분은 내게 지옥과도 같았고, 그 날 이후로 그 남자는 나와 만났던 적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책 제목에 쓰여 있는 ‘동물원’이라는 세 글자에 그때의 일이 생각났다. (동물원에 관한 다른 추억을 하루바삐 만들어야 할텐데.. 큭큭.) 물론,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 책 제목 ‘동물원을 샀어요’ ... 어째 제목에서 풍겨오는 느낌은 ‘과자를 샀어요.’와 같은 살랑거리는 가벼움이 느껴져 당황했다. 내 기억에 담겨있는 동물원은 한 바퀴를 도는 데에도 몇 시간이나 소비되는 (물론, 구경하는 시간이 더 많긴 하지만) 어머어마한 평을 자랑하고 있는 곳인데! 그곳을 평범한 개인이 샀다니, 의아할 수밖에. 

 

 

 

쉿, 조용히 해. 아빠가 지금 동물원을 사려고 한단 말이야.주인공 벤저민 미 부부의 집에 소책자 한 부가 집으로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런던의 아파트를 팔고 남부 프랑스 중심부에 있는 아름다운 헛간 두 채를 사들여 그곳에서 칼럼을 쓰고, 아이들과 야생 생물 탐험을 하는 것 _ 이것이 그가 말하는 완벽한 환경이고, 그것이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었기에 별 관심이 없는 것도 당연했다. 그런데, 그들의 ‘꿈의 시나리오’를 완성시킬 문장이 그곳에 있었던 것! 그것은 다름아닌 ‘다트무어 야생공원을 판다’는 광고. 결국, 가족의 전재산을 쏟아 부어 동물원을 샀다. 3만평의 동물원을, 정말로! 그런데 동물원을 샀다고 해서 바로 개장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개장을 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야 했는데, 맨 마지막 절차로 심사일이 있었다. 개장을 준비하기에 앞서 도와줄 새로운 스물네 명의 직원을 뽑고, 그들(벤저민 미)의 재정상태도 확인해야 했으며, 탈출할 위험이 큰 규격에 맞지 않는 축사들도 새로 수리를 하거나, (그것이 불가할 경우에는) 동물을 다른 동물원으로 보내야 했다. 그리고 나서야 본격적인 동물원 개장 준비가 시작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도중에 아내 캐서린이 쓰러진다. 문제는 전에 뇌에 종양을 수술한 것이 재발한 것. - 그들은 이 난관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나는 (일찍 일어날 때에는) 일요일에 하는 ‘TV 동물농장’을 챙겨본다. 그곳에서 간접적으로 동물들을 만나지만, 그곳에서 방영되는 것들의 주제는 동물들의 고충이 대부분을 차지하지, 사람들(이를테면 사육사들이나 관리인들)이 겪는 고충은 사실 뒷전이다. 그래서 뒷이야기는 볼 수 없는 아쉬움들이 많았었는데, 이 책에서는, 물론 전체적인 흐름은 동물 이야기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정관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실에 눕힌 늑대 ‘잭’의 고환에서 암이 발견되어 그것을 자르고 써는 과정에서 지어졌을 남자 직원들의 표정들이 상상되며 낄낄 웃어댔고, 사자 ‘솔로몬’을 마취시켰을 때 입술이 밀려올라가며 단검 같은 이빨들이 훤히 보이는 순간에 줄행랑을 치고 싶었다는 그들에게서 나 역시 오금 저림을 느끼기도 했으며, 호랑이를 마취하는 과정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심심찮게 일어난다,고 하여 ‘블래드’의 마취에서도 혹시나,하는 마음을 안기도 했었다. 또, 곰 ‘퍼지’와 퓨마, 재규어 ‘소버린’의 이빨 치료에서는 으~ 거리며 미간을 찌푸리기도 했다. 동물원 직원이 아닌 이상에야 경험하기가 쉽지 않은 일들을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그렇게 나도, 책을 읽을 때 동안 만큼은 ‘다트무어 동물공원’의 직원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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