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바다와 섬의 작가'로 대표되는 한창훈의 장편소설. 전작 <섬, 나는 세상 끝을 산다> 이후 팔 년 만에 상재한 장편소설이다. 바다와 섬을 뒤로 하고, 고등학생 시절 직접 겪은 국가폭력(광주항쟁)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과 함께 폭력 앞에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 실존의 모습을 꿈 많고 우정 짙은 고교생 소년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한 편의 우수 어린 성장소설처럼 그려내고 있다.
 

 

 

 

 

 

 

 

 

  

'20세기 미국문학의 아버지' 존 업다이크의 장편소설. 업다이크는 전미 도서상, 퓰리처상을 여러 차례 받은 영미권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이다. <달려라, 토끼>는 업다이크를 동시대 최고 작가의 자리에 올려놓은 출세작이자 대표작으로, 고등학교 시절 유명한 농구선수였지만 졸업 후 평범한 세일즈맨이 된 해리 앵스트롬(래빗)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탈하는 과정을 그린다.
 

 

 

-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국내 작가들을 선호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네요. 그래서 항상, 국내 작가들을 위주로만 추천목록에 올려놨었는데, 영미 문학이 이번에 포함된 것은, 퓰리처상,이라는 까닭이에요. 상을 받은  모든 문학을 극찬하거나 혹은 폄하할 수는 없지만,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문학 중 「바보들의 결탁」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어서, 그와 비슷한 류가 아닐까, 사실 그런 기대때문에 더욱 읽고 싶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 인생에서 두근거린 순간이 언제인지 떠올려보다, 문득 그랬던 적이 많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오 마이 갓. 스물 네살을 사는 동안에 두근거린 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니, 이거 문제다. 그러다가 그 기회는 지인에게서 책을 받은 그 후에 찾아오는 듯 했다. 일년 육 개월 동안 다녔던 회사를 퇴사하고, 새로운 곳에 이직이 확정되던 때. 그곳에 첫 출근을 하는 날에 이 책을 읽어주리라, 했었지만_ 그것은, 그 기회는 금세 사그라졌다. 그래서 예기치 않게 보름쯤 되는 기간을 쉬게 되면서, 첫 번째로 읽은 책이 두근두근 내 인생,이었고 읽기 전,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게도 내 인생 역시, 두근거림이 함께 하는 삶이었으면 참 좋겠다, 했던 그 때에 이 책은 그 여느 책보다 소중했음을. 그러다 앞서 내가, 두근거리는 순간은 많지 않았다고 했던 것은, 매우 사소해서 그렇지 않았다고, 잊었을 뿐이었다는 것을, 작품이 질책한다. 차게, 혹은 뜨겁게.

 

 

 

작품을 온라인 상에서 처음 맞닥뜨렸을 때, 알 수 없는 확신에 에세이로 치부해버렸고, 그렇기에 지인들의 이어지는 호평의 행렬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이미 작품을 접한 지인의 서평을 통해 어린 부모와 늙은 아들,이라 하는 부제와 만나게 된다. 그것은 설핏, 「벤자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막스 티볼리의 고백」을 연상시켰고, 얼른 읽어보고 싶다,는 욕구로 차오름을 느낀다. 그리고, 드디어 만났고, 함께 했다. 열 일곱의 부모가 열 일곱의 아들을 가진 서른 넷의 부모로 자리메김하고 있던 그 순간을. 그리고 그들의 슬픔이 눈물 끝에 아롱지며 피어나는 그 순간들을, 말이다. ㅡ 어떠한 일에 실패를 했을 때, 울음을 터뜨리며 부모 품에 안기던 아이들이 가장 부러웠다고 말하는 노인이, 아니 아이가 있다. 한 아름. 한번도 어른이 되본 적도 없고, 되지도 못하고, 될 수도 없는 가여운 아이. 130센티미터의 키에, 눈썹이 없고, 하얗게 세버린 속눈썹, 그리고 노화 퇴적물로 인해 시세포가 파괴될 수밖에 없는 망막은, 아이에게 ‘넌, 다른 아이들과 달라.’라며 말하고 있고, 아이도 그 사실을 가엾게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마음보다 몸이 빨리 자라서, 그 속도를 따라가려면 마음도 빨리빨리 키워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너무 사랑스러운 아이. 그 아이가 한 아름이다.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까, 어찌 품고 싶지 않을까. 어쩌면 말이지, 그가 욕심을 부렸더라도, 나는 그를 포근하게 안아줄 수도 있었을 터다.

 

 

 

작품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눈에 그렁그렁한 물방울을 머금은 채, 연방 방글방글거리며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대수가 그러했고, 미라가 그러했으며, 그들의 아이_ 아름이 그러하게 만들었다. 가족은, 속에서는 곪아 피고름이 있는 자리에서 진물이 뚝뚝 떨어질지라도 슬픔을 마주하고 웃을 수 있는, 또 그런, 웃을 거리를 계속해서 넓혀 나갔다. 그래서,였다. 바로 그것이 그들의 삶을 가냘픈 어린아이를 품에 안듯 감싸주고 싶게끔 만드는, 비단 단 하나의 까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들 가족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어린 부모는, 자신들이 아는 한 가장 멋진 노인, 한 아름_이라 불렸던 별이 그들의 항해에 있어 등대가 되어줄런지도, 모르지. ps. 어쩌면, 작품을 읽고 바로 서평을 썼다면, 아마 조금 더 다른 서평이 될 수도 있었을 듯 하다. 두어 달이라는 시간은 그 때에 느낀 감정들을 적어 내려가기에는, 애잔함이 끓은 뒤 약간 식은 미지근함이 남아있을 뿐이라는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어의 노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어의 노래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8-1 프로파일러 토니 힐 시리즈 1
발 맥더미드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인어의 노래, 이는 나의 네이버 블로그의 menu name으로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인어의 노래..., 파스텔 색의 부드럽고, 따뜻한 -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고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음도 잠시,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압도적인 표지의 분위기에 질겁했다. 너, 추리소설이었구나! ㅡ 포기했다. 겨우 30페이지가 넘어가는 그곳에서. 등장 인물 이름을 써내려 가는 것울.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 못되어서, 아니 굳이 ‘좋다, 나쁘다’와 같은 둘 만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하더라도, 나쁘다,에 8,90%는 속하는 매우 저질스러운 기억력의 소유자임을 여지껏 책을 읽으며 알아차렸기 때문에 나는, 특히 추리 소설을 읽을 때에는 등장 인물의 이름, 성격, 두드러지는 특징 등을 나열하며 써놓아 가며 책을 읽는다. 그것이 내가 추리라 하는 장르를 읽는 방법이다.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그렇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약간은 귀찮은 일이기도 하지만, 책의 내용을, 또 등장 인물에 대한 애정에 조금 더 가까이 가는 방법이라는 것은, 나의 저질스러운 기억력을 감추려는 비겁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을, 포기했다는 거다. 책의 흐름에 나를 맡기기로 했다. 등장 인물의 이름을 쓰는 시간조차도 아까울 정도로 흥미진진했기 때문에,라는 이유만으로 모험을 감행한 게다.

 

 

 

영국의 브래드필드의 게이 커뮤니티의 술집 뒷마당 쓰레기더미에 잔혹한 고문의 흔적이 역력한 시체가 발견된다. 경찰은 연쇄 살인일 가능성을 부인하지만, 네번 째 피해자가 발견되면서 연쇄 살인일 가능성을 인정하고 (처음부터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만은_), 내무부 소속의 국가 범죄 프로파일링 태스크포스 가능성 연구를 맡고 있는 토니 힐 박사의 도움을 요청한다. 네번 째 시체를 본 토니 힐은, 이렇게 망가진 시체는 블러디 메리 잔 안에 뜬 얼음덩어리처럼 피의 호수 속에 뜬 섬을 연상시키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시체 주변에 피가 없다? _ 대신, 줄이 끊어지고 팔 다리가 느슨하게 꺾여 널브러져 있는 꼭두각시 인형 같다,는 것 토니 힐이 작성한 ‘피해자에 대한 분석’에서 자연스레 눈길이 가는 부분. 사인(목의 자상), 묶인 자국(손목, 발목. 접착제로 제갈), 이빨자국 위치(목, 가슴, 복부, 사타구니), 특이사항(사후 성기 절단) - 범인은 변태싸이코 기질을 가진 게이인가? 아니라면, 당신은 무엇을 상상할 수 있는가.

 

 

 

실은 나, 책의 중반도 읽기 전에 범인을 확신했다. 남들보다 추리소설을 많이 읽어서 내공이 쌓인 것도 아닐텐데, 괜히 민망함에 머쓱해진다. ‘피해자에 대한 분석’이 가장 큰 역할을 해주었는데, 유심히 살펴보면 확신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서 난 왜 이 사람일까, 무엇때문에? 와 같은 생각을 간직한 채로 읽어야 했는데, 중반 부분에 경찰의 추측이 얽혀지며 ‘아, 아닌가봐’라는 탄식이 나오기도 할 만큼 책은 그 자가 범인이 아닌 척,을 너무 잘했다. 그래서 확신하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로 그들(토니 힐 박사, 캐롤 조던 경감)의 뒤를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졸졸 쫓아다녔다. ㅡ 작품은 범인을 잡으려는 사람들과 범인의 일기로 시점이 두 갈래로 분할된다. 그것은 윌리엄 베비어의 「새의 살인」을 연상시켰는데, 나는 그 작품을 무척이나 흥미롭게 읽었었고, 여타 추리소설들과 좀 더 다른 스릴감을 맛보았었다. (물론, 범인의 심리가 잘 표현되서 그럴지도 모르겠으나.) 추리 소설에서 말하는 공포를 동반한 잔혹함은, 추리하는 자의 시선이 아닌 범인의 시선이었음을, 범인의 시선이 배재된 책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부분이다. 「인어의 노래작품 역시도 그러하다. 때마침 그간 읽어온 독점적인(경찰,탐정)의 시각이 지겨워졌달까. 두 시선은 이미 다른 시점에서 알게 된 내용을 반복함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지루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할 수도 있는데, 작품은 경찰이 밝혀낸 사실 (혹은 가설)을 범인이 확대해 놓은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토니 힐의 ‘피해자에 대한 분석’에서 손과 발을 결박하고 제갈을 물렸다,는 점이 범인의 일기에서는 사건의 전후 과정이 적나라하게 밝힌 점,등을 들 수 있겠다. 다만, 전개가 내가 생각한 그대로 가서 약간 (개인적으로) 식상함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과 (그 점은 박진감으로 인해 읽을 당시에는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지만) 「인어의 노래」_ 라 하는 제목의 뜻을 유추해 낼 수가 없었다는 것. 차라리 표지에 나온 나비 ㅡ 라면 모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품을 기대 이상으로 읽었기 때문에 토니 힐 시리즈의 첫 번째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추후 저자의 토니 힐 시리즈 출간에 귀가 쫑긋해지는 것도 당연하지, 싶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3-08-0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하겠습니다.^^
 
[스틸라이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스틸 라이프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덥다,는 말로 형용되지 않을 만큼 푹푹 찌는 한 여름의 늦은 저녁부터 새벽까지의 시간을 이른바 ‘추리소설’을 읽는 시간으로 정해놓으며 그 시간에만 추리소설을 읽었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멀티로 책을 읽었던 때였기에 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르나,) 아마, 으스스한 시간에 읽는 것으로, 책의 묘미를 더 느껴보고자,는 것이 더 컸던 까닭이었음은 아니었을까. 나에게 있어 추리,라 불리는 장르는, 그 어떤 장르와는 확연하게 다른, 블랙홀과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책을 편 그 자리에서 읽는 게 대부분이어서 읽고 난 후면 어질함이 남아있기도 했었다. 그것이 바로 (적어도 나에게는) 추리라는 것이었다. 그 생각에 변함이 없는 지금와서, 그동안 추리소설에 관해 ‘고정관념’이라 불릴 만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내가 읽어오던 추리소설과는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는 작품, 스틸 라이프.

 

 

 

캐나다 퀘백주의 작은 마을 스리 파인스,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평화로운 그곳에서 ‘제인 닐’이라 불리는 노부인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평소 온화하고 선량하기로 소문난 그녀의 죽음에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누구랄 것 없이 모두 꽂힌다. 그녀의 죽음은 때마침 사슴 사냥이 빈번한 시기였기에 사슴 사냥꾼의 오발로 인한 실수라고 판단되어지는 듯 하지만,  “(…)무기는 화살로 보입니다. (…) 제가 그렇게 ‘보인다’고 말씀드린 것은 어떤 무기도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입니다. 과실이었다는 추정에 반하는 사실이니까요. 자수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우리는 살인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하는 가마슈 경감 에 의해 사건은 어느새 마을 사람들과 함께 풀어나가는 방식의 추리가 된다. 과녁 쏘는 화살로 무얼 죽이려면 엄청나게 운이 좋아야 할 겁니다. 아니면, 운이 나쁘든지. (…) 과녁 쏘는 화살은 실촉이 아주 작아요. 총알 끝과는 다르죠. 하지만 사냥용 화살은 전혀 다릅니다. 라고 말하는 활쏘기 클럽의 사람들. 이는 의도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포커스를 맞추고 쏘았다는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인 닐이 죽음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자는 누구인가.

 

 

 

사람들과 함께 추리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가마슈 경감은 잔잔한 강의 밑바닥을 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의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자녀와의 갈등이라던지, 부부의 불화라던지, 경제적 어려움_ 그것과 사람들은 무리 속에 얽혀 있었다. 이에 따라 저자는 냉철하고 합리적이며 이성적 사고를 가진 인물 대신, 마음이 따뜻하고 세심하여 감성적 사고가 먼저 작용할 것만 같은 가마슈 경감을 내세움으로서 독자로 하여금 인간 본연의 모습과 마주세우는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게 된다. 추리 소설이라 하는 장르에서 그들의 상처를 보고 또 위로해준다,라는 거. 언뜻 전에 읽었던 미나토 가나에의 「야행관람차」도 떠올리게끔 만든다.

 

 

 

여느 추리 소설이 그렇듯, 사건이 있은 뒤에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이도 마찬가지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와는 약간 다르다는 점도 명시해둬야겠다. 이는 사건보다 사람을 중심에 놓았고, 그로 인해 사건이 풀리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은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서두름이 없다. 따라서 나로 하여금 관찰자로서 범인을 좇는 가마슈 경감의 자취를 따라 발걸음을 내딛던 내 두 발이 민망함을 느끼며 멈칫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그것만,이라는 이유만으로 작품을 깎아내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적어도 내게는 에러였다. 너무도 세밀한 묘사들에 따분함마저 드는 것을 숨길 수가 없었으니까. 그것은,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 아름다운 경치 구경 좀 하고 가세요,라며 친절한 관광버스 아저씨의 호의가 결국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그 아름다운 경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였을까,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서) 작품에는 클라이막스라고 불릴 만한 것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범인이 밝혀졌을 때의 희열과 같은 것도 느낄 수 없었음이, 그렇게 아쉬울 수 없었다. 되려 허탈한 기분이었달까. 그 친절함이 싫지는 않았지만, 추리라 하는 장르에서는 불편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것. 고전 추리는 나랑은 조금 맞지 않는가, 싶은 생각과 함께 가마슈 경감의 시리즈가 나온다면 다시 손을 뻗을 것인가,하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글쎄…라며 약간의 주저하는 듯한 거부 반응을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오탈자 :) p 329 ː 앙드레는 어깨 들썩했다 → 어깨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체를 알 수 없는 답답함이 언저리에 내려 앉은 채 들러붙은 것을 느낀 어느 오후에, 며칠 전에 두어 장 읽다가 덮어두었던 김이설의 「환영」을 꺼내들었다. 사실 난, 이 책의 내용을 몇 개의 서평을 통해 대충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많이 알고 있는 상태였고, 그래서 읽으려던 찰나 바로 손에서 놓아버렸다. 그것은 이 책의 내용이 썩 유쾌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처음 책을 덮었던 것이 ‘답답함’이라고 칭한다면, 아이니컬하게도 책을 펼쳐든 것 또한 ‘답답함’이다. 전에 말한 적 있듯이, 내가 절망적인 상황(물론, 그때의 내 상황이 절망적인 상태까지는 아니었지만)에서는, 나보다 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주인공의 생을 읽어내려감으로써 처연하게 바라보며 나의 안식을 찾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이 책,인 것이다. 나에게 예기치못할 위안을 줄 수도 있겠다, 싶은 책.

 

 

 

서윤영, 그녀는 누구인가 - 책상 위에 펼쳐진 채 넘어가지 않는 책,이기에 매년 낙방하는 남자의 아내이자, 성장이 제대로 되지 못해 돌이 되어서도 엉덩이로 기어다니는 아이의 엄마. 그것뿐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만 장녀라는 이유로 포기해야했던 반짝였던 청춘의 그림자는 그녀의 삶에 있어 질질 끌리는 짐으로 변질되고 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아버지 병원비 마련이 끝난 뒤에도) 계속되는 돈의 악순환 고리가 그녀의 목을 옥죄는 것과 동시에 손과 발을 꽁꽁 묶어 그녀의 생이 프레임을 따라 젖어들어 끝내는 얼룩진다. _ 집을 일으켜 세워줄 것만 같았던 둘째 민영이, 작퉁을 만들어 파는 사업을 시작한다는 이후, 연락이 끊기고 돈이 필요할 때마다 연락을 했었던 그녀가 다시 연락을 해왔다. 민영과 마지막 통화를 한 오년 전, 그들을 구원해줄 사람은 민영, 그녀뿐이었으니 남은 가족은 집을 파는 것에 쉽게 동의하고 기꺼이 고시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연락은 끊겼다. 그런데 이제와 연락해 또 돈타령이라니. 그녀와의 통화를 들은 왕사장이 슬몃 이야기를 꺼낸다. “아까 듣다 보니, 돈이 좀 급한 모양인데, 내가 좀 도울까?” - 윤영에게는 1부터 40까지 쓰여진 것이 생기게 된다. 숫자 1 옆에 날짜와 왕사장의 사인이 있다. 나머지 서른 아홉에도 날짜와 사인이 있어야 하리라.

 

 

언제나 처음만 힘들었다. 처음만 견디면 그다음은 참을 만하고 견딜 만해지다가, 종국에는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처음 받은 만 원짜리가, 처음 따른 소주 한 잔이, 그리고 처음 별채에 들어가, 처음 손님 옆에 앉기까지가 힘들 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것이 그랬다. 버티다 보면 버티지 못할 것은 없었다. (…) 이제 나도 내 마음대로 반찬을 싸가게 되었다. 그게 하나도 반갑지 않았다. (p58~59) 버틴다고? 어떤 걸, 어떻게? 그녀가 버텨야만 했던 것이 비단 그녀 가랑이 사이로 들어오는 욕구에 눈이 먼 자들의 성기, 그 뿐이겠는가 말이다. 그녀가 정말 버틸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버텨야만 했고, 또 버티는 것 외엔 손 쓸 도리가 없는 것. 그것은 ‘가족’이라 불리는 이름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그들이, 윤영_ 그녀에게 있어 비애의 전부일지도 모르겠다,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은 흡사, 어미새가 물어다 주는 벌레를 먼저 받아 먹겠다고 부리를 힘껏 벌리고 있는 그것과 닮아보인다. 그것들을 둥지 아래로 떠밀면 분노로 멈춰버린 혈액이 다시금 순환될 것도 같은데, 윤영은, 자신을 남은 생에 맡긴 채로 다시 시작하려는 모양이다.

 

 

 

끝이, 있기는 할까. (p188) 그녀에게 ‘희망’은 사치이고, 호사이며, 코웃음 칠 만큼 우스운 것과 다름 없음이다. 하긴, 그녀에게는 그 이름을 붙여 부를 만한 것이 없다. 도대체 무엇에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인가, 말이다. 아니,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주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조차 체념해야했다. 대상은, 그녀의 가족의 굴레에서 그녀를 구원해줄 것만 같았던, 그녀의 남편. 내가 바라는 건 신분 상승이 아니라, 꼬박꼬박 받아오는 월급, 생활비를 주는 남편이었다. 번듯한 벌이가 있는 가장이 필요했다. (p41) 마땅히 가져도 될, 가져야 할 희망이 결여된 여자의 모습은 것은 씁쓸하다 못해 마음이 쓰라려 오기까지 한다. 희망은, 그녀가 모든 것을 놓은 뒤에야 품을 만한 여유가 생길런지도 모르겠다, 생각한다. 그래서, - 실은 나, 이도 저도 안 될 것이라면, 차라리 윤영이 가장 비극적인 선택을 하길 바랐다. 그 비극에 얼룩덜룩한 눈물이 더해져 차라리, 그걸 해피엔딩이라고, 내 멋대로 부르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녀는 살아간다.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그녀는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내는 사람이었다. 지독하다. 정말 끝이 있기는 할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3-08-03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는것, 삶을 버리는것,
그것이 더 쉽기에 버티는 사람도 있어요.
언제든..얼마든지..이제라도..놔 버릴 수있는..
그런 목숨따위니까..
까짓...하면서...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