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자 재인 가가 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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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다 비슷비슷한 레파토리들에 질려버렸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그의 작품에 다가가기에는 약간의 부담이 없잖아 있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난 히가시노 게이고를 좋아해,라며 그동안 그의 작품들을 끈질기게 읽어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말이다. 가장 최근 그의 책을 읽은 게 어떤 것인가 불현듯 궁금해져 서평을 뒤적여보니, 마지막이었던 그의 작품은 단편 「탐정클럽」으로 2010년이다. [그때도 역시, 질린다-는 표현을 썼었다. 하지만 버릴 수 없다,로 잠정결론 지었었다.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러고서 참 오랜만에 만나는 히가시노 게이고. 이번에 신작인 「신참자」가 출시되었다고 하여, 처음엔 머뭇머뭇거리다가 줄거리나 살펴보자 하여 찾아보니, [그때의 해석으로는] 하나의 단편들이 결국 하나의 이야기였다,는 이야기에 [아마도 전혀 다른 장르겠지만] 오쿠다 히데오의 「꿈의 도시」가 생각나, 읽어보고 싶다 - 며, 결국 손에 덥썩 집은 채로 게걸스럽게 읽어내렸다.

 

 

 

 

 

 

 

고덴마초 살인 사건_ 이혼 후, 친구의 번역 일을 도우며 도쿄 니혼바시의 아파트에 살고 있는 중년 여성이 교살당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니혼바시 경찰서로 새로 부임한 신참자 가가 교이치로[일명 가가형사]가 나서게 된다. 하지만 그녀가 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니혼바시로 왔는가,부터 시작해서 한 번에 샤샤삭 풀어버리기엔 꽤 골치가 아픈 사건이다. 그녀와 접촉했던 보험 설계사가 사건 당일 들른 ‘센베이 가게’, 그녀의 아파트에서 발견된 닌교야키 용기와 소화가 덜 된 닌교야키. 그것을 사건 당일 사간 ‘마쓰야’요릿집의 수련생, 그녀가 벚꽃이 그려진 젓가락 세트를 주문했다던 ‘야나기사와’라는 사기그릇 가게, 그녀가 수제품 주방가위를 샀던 ‘기사미야’, 그녀가 자주가던 하마토 공원에서 만난 ‘데마라 시계포’주인과 그의 개 돈키치, 그리고 그녀가 자주 쓰다듬어주던 ‘고다카라 이누’라 불리는 모자견 동상, 그녀가 케이크를 사려고 들렀던 ‘케이크 가게’ 등등 - 그녀의 발길이 닿았던 모든 곳을 가가형사, 그가 관찰하고 있다.

 

 

 

 

 

 

 

 

(…)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잡니다. 그런 피해자들을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 가가형사, 그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각자 따로 비밀에 붙이기로 했던 것들때문에 조금 더 지체되긴 했지만]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주어 결국은 그들을‘가족애’로 귀결시키기에 이른다. 삼각기둥 시계의 구조는 스승님네 가족과도 같다. 각각 다른 방향을 향해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의 축으로 연결되어 있다,라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족 소설은 「붉은 손가락」,「편지」,「비밀」 세 권 정도로, 많이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첫 작품으로 읽었던,「붉은 손가락」을 접했었을 그 당시에 느꼈던 따뜻한 [물론 사건 자체에서는 그런 분위기가 날 수 없지만] 느낌을 받아 오랜만에 호기롭게 읽을 수 있었던 듯 하다. 이 얼마만인가, 따뜻한 추리 소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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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버리기 연습 2 - 복잡한 생각을 잠재우는 행복한 마음 다스리기 생각 버리기 연습 2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양영철 옮김, 스즈키 도모코 그림 / 21세기북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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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데카르트가 남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언에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멍하니 있는 때에는 한없이 밑으로 추락하는 느낌을 맛본다.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이런걸까. 아무 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으면 육체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무기력해짐을 느끼는 까닭에, 생각을 함으로써 노트에 펜을 굴리려 무진 애를 쓸 때도 많다. 그래서 당장의 일이 아닌 멀지 않은 미래인 내일부터 아직 계획이 잡히지 않은 몇 달 후, 몇 년 후의 일까지 대충 어림짐작하여 계획을 잡아놓는 일도 꽤 많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나는 왜 생각을 해야한다,고 무엇도 아닌 내 자신으로부터 강요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드는걸까.

 

 

 

 

 

 

 

생각과 말, 행동은 아무렇게나 내버려두면 마음을 괴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생각하다 ㅡ 혀에서 굴려지는 어감은 낯설지 않은데, 그 단어를 계속 입 안에 품은 채로 웅얼거리다가 생각하다,라고 써놓고 꽤 낯설다, 생각한다. 요즘은, 머릿 속이 복잡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그 순간부터 나의 뇌신경에서는 두통을 유발시키는 어떤 물질이 생성되는 것만 같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분명 난 이것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에 가지를 친 전혀 다른 성질의 또 다른 생각이 이미 머릿 속에 들어앉아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생각이 항상, 부정적이라는 것. 그래서인지 내게 있어 생각이란, 어느순간부터 ‘고민·걱정·근심’을 뜻하는 단어로 불리게 된다. 여담으로, 가끔 그와 통화 중에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그가 묻는다. ‘왜 말이 없어요?’ 그러면 나는 답한다. ‘응, 생각 중이야.’ - 요즘은 버리고 싶은 생각들이 너무나도 많다. 사실은, ‘고민·걱정·근심’을 버리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말이지만, 그것은 모두 나를 부정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생각’에서 출발할 때가 많으니까, 생각을 버리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마음에 '싫어. 짜증나'라는 것이 메아리치면, 자신도 모르게 싫다는 감정을 느끼고 싶거나, 싫은 것을 접할 수 있는 곳을 찾게 된다. 그러고는 자신도 모르게 싫은 소리가 들리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가장 강렬한 것은 기분 나쁘게 만드는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끌리게 된다. 또는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 장소를 찾게 된다. 그런 다음 실제로 기분 나쁜 상황을 접하고는 '제기랄, 저 녀석이 기분을 잡쳤군!'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은 그런 상황에 처하고 싶어서 스스로 움직였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며 자업자득이다. 정답이다. 내 상황을 예로 한 가지 들자면, 예전의 나는 내 기분이 아주아주 뭉개져버려 형태조차 알 수 없을 때, 나보다 더 지독한 사람의 이야기를 찾아 읽곤 했었다. 그 사람의 지독한 괴로움과 아픔과 슬픔을 바탕으로 ‘난 당신보다 우월해! 그런 당신보다는 내가 더 행복하지, 암만.’ 라는 것을 느끼고 싶었으나, 책의 부분부분 분노를 표출하게끔 만드는 장면마다 ‘어떻개 이런 그지같은 상황이 다 있어! 뭐가 이래?’라며 온갖 짜증을 늘어놓는 내가 있었다. 그 책을 집었던 목적은 흔적조차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는 채로. 그래서, 앞서 구절을 읽으면서 ‘아, 내가 짜증을 만들어서 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며 뭔가에 들켜서는 안 되는 것을 들킨 사람처럼 흠칫흠칫거렸더랬다.

 

 

 

 

 

 

 

우리는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단정 짓고 비판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신은 '옳다'라는 인상을 형성하려 한다. '당신은 틀렸다. 하지만 나는 옳다.'는 독불장군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오만과 자만에 빠져 허덕이게 될 것이다. 머릿속으로 '나는 옳다. 그러므로 완벽하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의 뇌 안에서는 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왕은커녕 비천한 난민일 뿐이다. 『경집』 나는 고집이 참 세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모두 옳고, 내가 하는 행동 역시 옳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고집이 세다,는 말로 표현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누군가와 의견을 조율하려고 할 때에 난,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기보다는 내 의견을 먼저 앞세우기에 바쁜 편이다. 그런 나에게 그는 넌지시 얘기한다. ‘또 다섯 살처럼 자기 말만 하네.’라고.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상대방이 내 의견을 반박하고 나서면,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어떻게 해야하는가.- 생각하니 한숨이 폭,하니 절로 나온다.

 

 

 

 

 

 

 

만일 당신이 상대의 발언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의견을 제시하고 논쟁을 벌이는 것을 좋아한다면 누구와 함께 있든 평온한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을 머릿 속에서 이리저리 굴리는 것이 습관화된 탓에 당신의 마음은 뒤틀어진 망상에 휩쓸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미 당신은 타인의 조언을 이해할 수 없고 나아가 내(부처)가 강조하는 마음의 인과법칙도 이해할 수 없다. 『경집』내가 항상 언쟁을 벌이는 때는 어쨌든 내가 유리한 입장에 있을 때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그 권리를 주장해오기도 했고, 그렇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분노를 표출하며, 언어로서 그들을 깔아뭉개기도 했다.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책의 〈의견에서 벗어나다〉 부분을 연달아 두세 차례 읽으며, ‘응, 맞아. 내 의견이 옳다고 생각은 하지만, 자신감이 없어서 더 그랬을지도 몰라. 자신감이 없으니까, 상대방에게 찬성을 얻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어.’라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처음에 그 부분을 접했을 때에는, 가장 부정하고 싶었던 부분이기도 했으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장소불문하고 몇 십 번, 아니 몇 백 번, 몇 천 번 〈(내) 의견(만) 내세우기〉라는 악마가 찾아왔었다. 그래서 내가 책을 한 번 더 읽어야겠다,며 다시 한 번 들춰보는 기회가 되었던 것. 그러다가 이 부분을 보고서는 마음에 진정제를 놓은 듯, 차분해짐을 느꼈다. 아무래도 이 부분은 필사해놓고 마음 속에 새겨두어야겠다, 생각한다.

 

 

 

 

 

 

 

화를 내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자기 마음의 분노를 이겨내라. 긍정의 마음으로 부정의 마음을 이겨내라. 기분 좋게 다른 사람에게 양보함으로써 인색해지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라. 진실을 말함으로써 거짓을 말하고 싶은 마음을 이겨내라. 『법구경』 나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 결국은 내 치부를 들춰보는 것이라는 걸. 마음에 불을 끼얹은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아!’하는 탄식이 터져나올 때마다,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졌다. 책을 읽으며 고개를 숙이고, 어깨가 축 쳐진 - 그런 내 자신을 마주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을 그때만 흠칫거리며 놀랄 뿐, 내일도 모레도 나는 변화하진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알고, 그것을 고쳐야겠다,고 느낀 그 순간부터 반복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생각하며, 아마 이 책은 당분간 옆에 꼭 끼고서 몇 번이고 들춰봐야겠다,며 베개 옆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자기 전 나를 되돌아보고,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며,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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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모와 이혼했다 다독다독 청소년문고
라헬 하우스파터 지음, 이선한 옮김 / 큰북작은북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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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 즈음에 우리집은 아주 큰 위기가 닥쳤었다. 그것은 구성원 모두가 가족이라는 대지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거릴 만큼 무서운 파동으로 다가왔고, 지금도 그 여파가 남아있다. ‘내 일이 아니야’라며 눈을 딱 감고 상황을 외면해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아니, 말은 이렇게 해도 쉽게 내뱉어도 다시 그 상황이 온다면 난 또 그러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는 사람들인, 우리 모두의 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어찌됐든, 그 일을 해결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은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일은 그 후부터 시작된다. 정말이지, 악몽 - 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점점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고, 그 즈음에 ‘장녀’라는 타이틀이 치가 떨리도록 날 짓눌렀다. ‘장녀’라는 타이틀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내 마음 속에 꼼틀꼼틀거리며 나를 압박해왔던 것 중 하나인데, 그것이 한 해, 한 해를 거듭할 수록 날 더 짓눌러옴이 결국 숨을 옥죄게 만들었다. 분명,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빠, 엄마, 동생이었는데 어느 순간 세상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으로 내 블랙리스트에 담겼다. 그 후, 나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랑하고 싶지 않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족’이란 이름이 난 가장 힘들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그때였다. ‘하아,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할 시점에, 「나는 부모와 이혼했다」와 마주했다. 부모와 이혼이라니 - 발상자체에서 호기가 느껴지는 것도 잠시, ‘그럴 수 있으면 정말 그러고 싶다.’라는 생각에 ‘내가 어쩌다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나.’싶기도 하며 씁쓸함의 최고조를 맛보았더랬다.

 

 

 

 

드라마 전개상 하나씩 껴있기 마련인 이혼, 유명 연예인의 이혼…. ‘이혼’은 이미 요즘 기성세대들에게는 대중화가 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가볍게 치부되고 있다. 개체로서 존재하던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었지만 종래는 다시 개체로 존재하길 원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이혼’이라 부른다. 그들은 각자의 삶을 찾고 싶어서,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라는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만일 둘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떻게 되는거지? 아이를 둘로 찢어 가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고 아이에게, ‘아빠와 살고 싶니, 엄마와 살고 싶니?’라고 묻는 것도 상당히 웃기는 일이다. 그것은 엄연히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와는 다른 까닭이다. 그들은 각자의 삶을 다시 꾸려나가길 원하기 때문에 이혼을 결정하지만, 아이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그저 엄마와 아빠가 하는 대로 따르는 것. 「나는 부모와 이혼했다」의 ‘나’ 역시도 그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 찾아왔다. 그렇지만 나에게 아침은 뒤틀린 생활의 시작일 뿐이다. 엄마와 아빠, 그 둘 사이에서 사는 건 위태롭고 불안하기만 했다. ‘나 ’는 부모님이 싸우는 과정을 지켜보며 공포에 떨어야만 했던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중 - 최악,이지만 최선의 선택인 이혼을 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살면서 아빠와는 격주로 주말에 만난다. 그때마다 나는 부모의 입이 되는 우편집배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전해달라는 말 속에는 날카로움이 깃들기 시작하고, 나는 그것을 말하지 않거나 부드러운 말로 고쳐서 전해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더 심해져 결국 나는 지쳐버리는 상황에 이르고, 더이상은 부모의 말을 전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입을 닫는다. 그 와중에 아빠는 재혼을 하기 위해 파리를 떠나 남부지방으로 간다는 소식을 전하고, 나는 그것을 계기로 부모와 이혼하기로 결심한다. 나는 결심했다! 부모와 이혼하기로. 내가 엄마 아빠의 아들이라는 것과, 우리 셋이 한 가족이었다는 사실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엄마와 아빠도 이혼했는데, 나라고 못할 것 없다. 부모와의 이혼이란, 격주로 주말에 한 번. 할아버지가 대학생이 된 ‘나’에게 주려고 남겨둔 옥탑방에서 보내기로 한다. 오늘 아침부터 내일 저녁까지, 나는 누구의 아들이 아니라 단지 ‘나 ’일 뿐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엄마 아빠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만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엄마 아빠를 떼어 놓고 생각하면, 나는 누구일까? 부모가 없어도 나는 정말 똑같은 나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금부터 나 스스로 그 답을 찾아 내야 한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작품에서 ‘나’가 초반에는 [대략 대여섯 살 즈음 되는] 상당히 어린 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책을 주욱 읽어보니 초등학생과 중학생 그 지점 즈음에 있는 아이같았다. 부모의 이혼은, 사춘기를 맞이하는 아이가 견뎌내기엔 무겁고 힘들기만 한, 과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그것에 얽매여 슬퍼하고만 있기보다는 자신이 부모와 이혼함으로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떠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를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매만져주는 것이다. ㅡ 애초에 어떤 자문을 얻고자 읽으려 했던 책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책 내용만 보아서라도 나와 다른 상황이었으니까. 단지, 책의 제목이 그때의 내 심경을 대변하고 있었다,는 까닭 그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상황을 오롯하게 털어놓은 적 없지만, 혹여나 그런 내게 ‘응. 나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충분히 이해해.’라고 한다면, ‘도대체 뭘 이해한다는거야?’라며 부정적인 마음이 먼저 튀어나가 상대방의 마음을 짓눌렀을지도 모를테니. 그래서, 그 누구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면, [사실은 내 상황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시피 않다면,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책을 읽고 내 상황이라면 책 속의 ‘나’는 어떻게 했을까, 유추하며 내 상황을 풀어나가는 것. 요즘은 그런 걸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 한참 동안이나 멍한 상태가 지속됐다. 책의 두께가 얇은 탓에 전개도 빨랐고, 금방 읽히기도 했으며, 또 금방 해결이 되기도 했다. 난 이렇게 금방금방 생각할 수 없는데. - 나는 현재 내가 처한 이 상황을 가장 대수롭지 않게, 덤덤하게 극복하자,라고 생각하며 해결책을 모색 중에 있고, 그리고 지금 생각하는 그것이 결코 최선의 답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 역시 그것밖에 없다,며 못된 마음들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나 역시, 나와 내 부모와의 재결합에 행운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 그거면 된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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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연애학개론 - 연애부터 결혼까지 남녀관계 리셋 솔루션
팀 레이 지음, 전해자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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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월, 미니홈피에 이런 다이어리를 쓴 적이 있다. [나는 세상에서 연애가 가장 어렵다. 누군가와 함께 조율을 맞춰 하모니를 이뤄내는 건, 언제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나이를 먹어도 내 사랑은 성숙해지질 않는다.] ㅡ 현재의 그와 만난지 햇수로 4년. 2009년 8월에 만났으니 계절로 치자면, 벌써 함께 12번의 계절을 함께 보내고 13번의 계절로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때때로 그가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의 행동이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고, 어떤 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을 만큼 새롭게 보일 때도 있다. [여기서 새롭다는 것은, 부정적 의미로 쓰일 때가 더 많다.] 결국 그것은 - 나는 아직도 그를 잘 모르겠다,고 판단하게 되는 구실이자, 이유이고, 핑계이자, 변명이 된다. [핑계와 변명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그의 그런 면에 내 눈에 어떻게 보였건, 혹은 보였건 보이지 않았건 간에 그는 애초에 그런 것을 나에게 숨긴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와 그런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감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오래 되어서 친구가 말하는 갱년기 커플[의 기간은 잘 모르겠지만]이라 판단되는 연인 사이에서 으레 있을 수 있는 소홀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는 것이 큰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커플의 경우, 가장 많이 싸우는 것 중 하나가 난 분명 그의 어떤 행동, 말투 때문에 토라져있지만, 그것을 그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혼자 꽁해있다는 것에 있다. 그는 그것을 말하라고 하지만, 나 너의 이러이러한 면이 너무 짜증나!’라고 말하기엔 그 이유가 너무 창피하다고 해야하나. 그가 ‘그게 짜증낼 일이야?’라고 되려 나에게 반문해온다면 난 뭐라고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면서 이야기하기가 꺼려질 때도 있다. 그래서 나는, 뭉뚱그려서 서운하다,는 한 마디로 애둘러 말할 때가 있다. 그러다가 그가 한 번은 ‘당신은 나에게 항상 서운하다고 말하지 않냐.’고 말해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던 적도 있었기도 했어서, 요즘은 서운하다,는 말 대신에 ‘당신의 어떤 면이 조금 신경쓰인다.’고 말하려고 노력하지만, 여전히 그것은 아직도 어렵다.


그러던 중 만난 책, 「이상한 나라의 연애학개론」 ― 연애학개론이라니. 연애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고 있는 요즘이라 그런지 그래, 한 번 읽어봐야겠다,며 낼름 손에 쥐어잡기에 성공했다. 책은 연애부터 결혼까지 남녀관계 리셋 솔루션이라는 부제목으로 지금 연애가 혹은 결혼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으면 한 번 나를 읽어보아라, 라고 권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던 까닭이다. ― 내가 공감했던 부분, 사랑한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한다.는 것은 내가 그에게 요구해왔던 방식 중 하나였다. 조금 다른 게 있다면, ‘나는 -이 하고 싶은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혹은 ‘나는 이 날에 -이 하고 싶을 것 같아. 또는 하고 싶어.’라는 식으로 요구한다. 그러면 그 당시에 그와 내 시간이 맞는 경우, 일정을 짜고 행복함에 킥킥거리며 웃어제끼는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말한 것은 분명 오버(over)가 섞여 있다. 내가 그러지 않아서 그런진 모르겠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원고를 써야해서[자신이 겪은 사례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니, 책을 쓰는 것은 그의 직업이자, 그가 해야만하는 일이다.] 소풍을 가지 못한다고 하는 상황에서 작가의 여자친구는‘당신은 일을 하면 내 생각은 하지 않잖아. 당신은 날 사랑하지 않아?’라고 묻는 상황이다. 사실 그 부분은 같은 여자인 나도 이해못하는 상황이다. 나 역시도 그가 일에 있어서 시험을 봐야해서 몇 일 동안이나 공부에 빠져있을 때, 연락이 뜸해져서 [우리는 하루에 통화를 열댓번도 더 넘게 하는 사람들이라서 더 심했는지도 모르겠다.] 적응을 할 수 없었던 적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그가 공부를 어느정도 끝내놓고 쉬는 시간에 연락을 해서 ‘미안해요. 시험 볼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라고 말하며 ‘우리 시험 끝나면 꼭 -도 하고 -도 하자.’ 먼저 얘기해주기도 했었다. 사실 그가 그렇게 말하기 전까지는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가 일을 때려치고 백수로 나와 함께 하는 게 좋은 게 아닌 이상에야, 그리고 나도 그런 일[시험을 본다거나, 일 때문에 야근을 한다거나 하느]이 비일비재할텐데, 이해를 못할 것도 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더랬다.‘우리가 마지막으로 같이 주말을 보낸 게 언제인지 기억이나 해?’라는 말을 보고서 그가 좀 잘못했네. 라고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작가가 원고를 쓰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과 직결된다,는 그 생각자체에 헛웃음이 나더란 말이다. 그리고 이 외에도 작가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 있어 편파적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 역시 너무 거슬린다.

뿐만 아니라, 팀 레이 주최 짝 오디션 가상 인터뷰(p122-125)를 보면서는 결국 책을 덮고 싶기에 이르렀다. 그가 상대방에게 물어보는, 예를 들면, 당신이 제 여친이 된다면 제 인생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요? 왜 제 여친이 되려고 하시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주시겠어요?”“누군가를 사귀는데 있어서, 당신이 지닌 강점과 약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당신의 전 남친 마틴이 써준 추천서는 정말 굉장하네요. 제가 나중에 그 분에게 전화를 해서 당신에 대해 몇 가지를 물어봐도 될까요?”“헌데 일단 수습 기간을 거쳤으면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 기간 동안 당신도 이 자리에 대해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테고, 실제로 이 자리가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체크해볼 기회도 될 거고요…… 수습기간은 3개월입니다.”따위의 것들이다. 작가는 이것을 행복하고 달콤한 관계가 목표라면, 결과적으로 이러한 방법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꿈과 목표들을 계획하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교육이나 취업을 위해 우리가 들이는 노력과 시간을 떠올려보라. 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글쎄? 바로 전, 작가는 타협과 거래를 헷갈리지 말라고 했는데, 그가 헷갈려하는 것 같다. 교육이나 취업은 거래일 뿐, 결단코 타협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는 거래가 아닌 타협으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말이다. 교육이나 취업은 내 능력을 내 이상으로 치닫게 하는 필수불가결이 것이라면, 연애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뜻하는데, 그것 만큼이나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을 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들을 동일시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에 참 황당할 수밖에 없다.

연애에 있어서 내 생각은 그렇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여자 역시도 남자하기 나름이라고. 남자/여자 할 것 없이 똑같이 주체가 있는 동물일진대, 어찌 어느 한 쪽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가 말이다. 그 사람의 성향을 이해하느냐, 이해하지 않느냐. 둘 중 하나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해한다면 거기서 그만이겠지만, 이해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 사람과 그것이 문제가 될 때마다 혼자 꽁하고 있으며 서로에게 답답함을 선물할 것인가, 아니면 싸울 것인가, 그 사람에게 그것이 싫다고 이야기하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며 해결방안을 모색할 것인가. 책의 첫 부분에 쓰여있던 ‘당신의 관계는,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로 나뉠 것입니다!’라고 말하던 거창한 광고를 믿고 책을 시작하기 전에 현재 당신의 옆에 있는 그와의 대화가 더 현실적일 수도 있다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예를 들면, 게임 디아블로에 빠진 그에게 ‘난 당신이 그것을 할 때, 응응,이라며 건성건성 대답하는 게 정말 싫어! 그것때문에 당신이 정말 밉고, 그래서 당신에게 너그러워지지 않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계속 이런 게 반복되면 당신이 싫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어. ’라는 말에 ‘미안해요. 내가 자제할게요.’라며 게임을 하다가도 전화할 때 만큼은 일시정지를 해놓고, 나와의 대화에 집중해주는 그를 만드는 것은 자신의 몫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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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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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011] 내 생일에,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로서의 가치를 지녔었던 이것, 이 책을 먼저 접한 지인들의 평을 보면서 덩달아 높은 기대치를 지녔었던 기억이 난다. 급기야 모든 위시들을 뒤로 제껴두고, 장바구니에서 이것이 나에게 주는 내 생일선물,이라며 주문하기 클릭. 가장 먼저 읽어주리라, 깔깔거리며 책을 안은 기억이 이토록 생생한데, 꼭 일 년 만에 은교를 품었다. 아마 영화화되지 않았다면 조금 더 미뤄졌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참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어디에 있나, 하고 생각하지만 지금이라도 좋은 작품을 만났으니 다행이지, 싶다. 사실, 책을 초반에 읽을 때에 읽기 거북함이 먼저 들었던 감이 먼저 들었다. 그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생각하다가, 영화를 보며 내용 전개에 있어 그가 한 말이 생각났다. 역겹다는 것. 맞다. 딱 그 느낌이었다. 특히나 시인 이적요가 은교를 「나의 처녀, 은교에게」라며 첫 편지를 쓰는 장면을 보며 극에 달했었다. 주책,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끔찍했고, 은교가 마치 나인 것처럼 불쾌했으며, 역겨웠다. 급기야 나는 그를 ‘노망난 노인’으로 치부해버리고 있었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내가 이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까닭은, 생각의 전환이다. 만일 그것조차 없었더라면, 책을 읽은 후에도 그들 세사람 모두는, 나의 마음 속에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었음을.

 

 

 

 

 

자신이 죽으면 1년 후에 공개해달라고 했던 시인의 노트가 Q변호사의 손에 쥐어졌다. 그곳에 놀라운 고백 두 가지가 정갈하게 쓰여있을 것이다. ‘나는 한은교를 사랑했다.’와 ‘내가 서지우를 죽였다. ’ - 노트에는 세 사람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시인 이 적요, 제자 서 지우, 그리고 한 은교. - 1. 노인은 오랫동안 가지고 있어 자신의 살붙이같은 데크의 의자에 놓여있던 소녀를 보게 되고, 고이연…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소녀의 숨소리가 들리고 맞은편 의자로 걸어가 쌔근쌔근,하는 소녀의 숨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소녀의 쇄골에서 가슴께쪽으로 내려가는 창[槍]을 본다. 그것이 이 적요와 한 은교의 첫, 만남이다. 은교는 나에게 슬픔과 함께, 생애를 통해 경험해보지 못한, 청춘의 광채와 위로를 주었다. 사실이다. 2. 오십대에 모 대학교 석좌교수로 임명된 그가 강의를 하고 있던 도중 한 학생이 질문을 해온다. 그것으로 안면을 익힌 그가 연구실로 들어와 “앞으로 교수님 수업, 청강을 허락받으러 왔습니다.”라며 당차게 이야기해온다. 그것이 이 적요과 서 지우의 첫, 만남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고, 그 만남이라고 해봤자 몇 달의 인연뿐. 그리고 십여 년쯤 후, 그가 노인을 다시 찾아왔다. 거의 유일하게 그를 믿을 수 있었고, 살붙이 같은 정을 느꼈다. 단 하나의 가족이었고, 모든 희노애락과 오욕칠정을 내보여도 되는 유일한 친구였다. 다만 그가 제자로서 문학판에서 쑥쑥 뻗어나가지 못하는 게 늘 마음 아팠다. 멍청하다고 욕을 하고, 온갖 구박을 하며 위악적으로 굴어봐도 밭이 근본적으로 부실하니 소출이 없었다. 그래도 마음속에서 그는 여전히 ‘내 새끼’였다.

 

 

 

 

 

 

 

개인적으로 작품에서 마음이 가장 많이 갔던 서지우. 그는 헤어진 아내를 거론하며, 둘의 관계는 미적지근했다,고 말했었다. 만나면 따뜻하고 안 보면 조금 쓸쓸한, 그것이 나의 사랑이다. (…) 내가 꿈꾸는 사랑은 오래 앉아본 듯한, 편안한 의자 같은 것이다. 라고 말하던 그가, 사랑은 본래 미친 불꽃, 불가사의한 질주의 감정이라고 말하던 이적요의 말에 동의하지 않던 그가, 은교를 향한 자신의 사랑은 뜨겁고 무겁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나도 모르게 마음이 짠 -해져 그 부분에서 다음 장을 휘리릭 넘길 수가 없었다. 서지우가, 은교를 사랑하는 것에 있어서 좀 더 뻔뻔했더라면, 혹은 은교만,을 사랑했더라면 작품에서 내가 서지우를 품을 이유는 없었을 게다. 그는, 은교를 사랑하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설마, 하고 손 놓고 있어야 할까. 어떻게 살아온, 어떤 선생님인지 나는 알고 있다. 보호해야 할 분은 은교가 아니라 선생님이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나의 선생님. (…) 그러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선생님을 잃고 싶지 않고, 은교도 잃고 싶지 않다. 나는 여전히 선생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다. 때로 선생님이 나의 장애물이며 짐이라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 선생님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백 배 낫다. 어떤 의미에서 선생님은 여전히 은교 이상이다. (…) 그래봤자, 당신은 아무것도 갖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은교를 당신의 노망난, 미친 욕망으로부터 지킬 것이므로. 아니, 은교만이 아니라, 선생님, 당신도 나는 지켜야 한다. 은교를 ‘늙은이’로부터 지키는 것이 ‘늙은이’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니, 길이 전혀 없을 땐 아, 당신을 죽여서라도, 당신의 명예를 지키고 싶은 게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 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선생님. 진실로 말하건대, 나는 여전히 아직도 선생님을 사랑하고 있다.

 

 

 

 

 

 

앞서 말했던 생각의 전환,이라는 것은 다름아닌 ‘사랑’이라는 것에 기초하는데, 이적요가 한은교를 사랑했는가? 답은 그렇다. 아주, 많이. 하지만 여기서 사랑,이라는 것이 남녀 관계에 있어서의 사랑이라고 했다면, 글쎄, 난 소름돋음에 책을 집어던졌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내가 바로 그 부분을 두고 이적요를 ‘노망난 노인’으로 치부했던 까닭이다. 늙는 것, 이야말로 용서받을 수 없는, 참혹한 범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늙은이의 욕망은 더럽고 끔찍한 범죄이므로, 제거해 마땅한 것, 이라고 모든 세상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하고 있었다. 이적요는 한은교가 지닌 젊음을 사랑했던 듯 보였다. 젊음을 가지고 싶고, 젊음을 끌어안고 싶고, 젊음을 사랑하고 싶은, 그보다 젊지 않은 혹은 늙은 남자의 갈망 같은 것. 그렇기에 은교에 대한 맹목적 사랑,은 젊음에 대한 맹목적 사랑이었다,고 그렇게 이해했다. 물론 그게 답은 아닐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바와 전혀 다른 의미로 내가 이해했다 하더라도, 난 내 뜻을 굽힐 마음이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 정말, 싫다. 이적요 시인이 본 경일운 아름다움이란 은교로부터 나오는 특별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단지 젊음이 내쏘는 광채였던 것이다. 소녀는 ‘빛’이고, 시인은 늙었으니 ‘그림자’였다. 단지 그게 전부였다.

 

 

 

-

 

 

 

어둠 속에 앉아 있었지만 내 온몸은 풍뎅이처럼 부풀어 있었다. 마음을 내려놓으려 할수록 분노가 내 속에서 놀라운 폭발력으로 빅뱅을 거듭하고 있었다.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라고, 소리 없이 소리쳐, 나는 말했다. 아름답게 만개한 꽃들이 청춘을 표상하고, 그것이 시들어 이윽고 꽃씨를 맺으면 ㅡ 굳은 씨앗이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노인이라는 씨앗은 수많은 기억을 고통스럽게 견디다가, 죽음을 통해 해체되어 마침내 땅이 되고, 수액이 되고, 수액으로서 어리고 젊은 나무들의 잎 끝으로 가, 햇빛과 만나, 그 잎들을 살찌운다. 모든 것은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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