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부모와 이혼했다 ㅣ 다독다독 청소년문고
라헬 하우스파터 지음, 이선한 옮김 / 큰북작은북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일 년 전 즈음에 우리집은 아주 큰 위기가 닥쳤었다.
그것은 구성원 모두가 가족이라는 대지 위에서 위태롭게 흔들거릴 만큼 무서운 파동으로 다가왔고, 지금도 그 여파가 남아있다. ‘내 일이 아니야’라며 눈을
딱 감고 상황을 외면해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아니, 말은 이렇게 해도 쉽게 내뱉어도 다시 그 상황이 온다면 난 또 그러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는 사람들인, 우리
모두의 일,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어찌됐든, 그 일을 해결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은 해결된 것이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일은 그 후부터 시작된다.
정말이지, 악몽 - 이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점점 관계가 소원해지기 시작했고, 그 즈음에 ‘장녀’라는 타이틀이 치가 떨리도록 날
짓눌렀다. ‘장녀’라는 타이틀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내 마음 속에 꼼틀꼼틀거리며 나를 압박해왔던 것 중 하나인데, 그것이 한 해, 한 해를 거듭할
수록 날 더 짓눌러옴이 결국 숨을 옥죄게 만들었다. 분명,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빠, 엄마, 동생이었는데 어느 순간 세상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으로 내 블랙리스트에 담겼다. 그 후, 나에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할 수
없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랑하고
싶지 않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족’이란 이름이 난 가장 힘들다,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그때였다. ‘하아, 집에서, 벗어나고, 싶다.’라는 생각이
간절할 시점에, 「나는 부모와
이혼했다」와 마주했다. 부모와 이혼이라니 - 발상자체에서 호기가 느껴지는 것도 잠시, ‘그럴 수 있으면 정말 그러고 싶다.’라는 생각에 ‘내가
어쩌다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나.’싶기도 하며 씁쓸함의 최고조를 맛보았더랬다.
드라마 전개상 하나씩 껴있기 마련인
이혼, 유명 연예인의 이혼….
‘이혼’은 이미 요즘 기성세대들에게는 대중화가 된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가볍게 치부되고 있다. 개체로서 존재하던 남자와 여자가 부부가 되었지만
종래는 다시 개체로 존재하길 원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이혼’이라 부른다. 그들은 각자의 삶을 찾고 싶어서,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라는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만일 둘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어떻게 되는거지? 아이를 둘로 찢어 가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고
아이에게, ‘아빠와 살고 싶니, 엄마와 살고 싶니?’라고 묻는 것도 상당히 웃기는 일이다. 그것은 엄연히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와는
다른 까닭이다. 그들은 각자의 삶을 다시 꾸려나가길 원하기 때문에 이혼을 결정하지만, 아이는 아무런 결정권이 없다. 그저 엄마와 아빠가 하는
대로 따르는 것. 「나는 부모와 이혼했다」의 ‘나’ 역시도 그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이
찾아왔다. 그렇지만 나에게 아침은 뒤틀린 생활의 시작일 뿐이다. 엄마와 아빠, 그 둘 사이에서 사는 건 위태롭고 불안하기만 했다.
‘나 ’는 부모님이 싸우는 과정을 지켜보며 공포에
떨어야만 했던 나날들을 보내고 있던 중 - 최악,이지만 최선의 선택인 이혼을 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살면서 아빠와는 격주로
주말에 만난다. 그때마다 나는
부모의 입이 되는 우편집배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전해달라는 말 속에는 날카로움이 깃들기 시작하고, 나는 그것을 말하지 않거나 부드러운 말로
고쳐서 전해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더 심해져 결국 나는 지쳐버리는 상황에
이르고, 더이상은 부모의 말을 전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입을 닫는다. 그 와중에 아빠는 재혼을 하기 위해 파리를 떠나 남부지방으로 간다는 소식을
전하고, 나는 그것을 계기로 부모와 이혼하기로 결심한다. 나는 결심했다! 부모와 이혼하기로. 내가
엄마 아빠의 아들이라는 것과, 우리 셋이 한 가족이었다는 사실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엄마와 아빠도 이혼했는데, 나라고 못할 것 없다. 부모와의
이혼이란, 격주로 주말에 한 번. 할아버지가 대학생이 된 ‘나’에게 주려고 남겨둔
옥탑방에서 보내기로 한다. 오늘 아침부터 내일 저녁까지, 나는 누구의
아들이 아니라 단지 ‘나 ’일 뿐이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엄마
아빠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만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엄마 아빠를 떼어 놓고 생각하면, 나는 누구일까? 부모가 없어도 나는 정말 똑같은
나일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지금부터 나 스스로 그 답을 찾아 내야 한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작품에서 ‘나’가 초반에는 [대략 대여섯 살 즈음 되는] 상당히 어린 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책을 주욱
읽어보니 초등학생과 중학생 그
지점 즈음에 있는 아이같았다. 부모의 이혼은, 사춘기를 맞이하는 아이가 견뎌내기엔 무겁고 힘들기만 한, 과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것에 얽매여 슬퍼하고만 있기보다는 자신이 부모와
이혼함으로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떠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를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 매만져주는 것이다. ㅡ
애초에 어떤 자문을 얻고자 읽으려 했던 책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책 내용만 보아서라도 나와 다른 상황이었으니까. 단지, 책의 제목이 그때의 내 심경을 대변하고
있었다,는 까닭 그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상황을 오롯하게 털어놓은 적 없지만,
혹여나 그런 내게 ‘응. 나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충분히 이해해.’라고 한다면, ‘도대체 뭘 이해한다는거야?’라며
부정적인 마음이 먼저 튀어나가 상대방의 마음을 짓눌렀을지도 모를테니. 그래서, 그 누구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면,
[사실은 내 상황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시피 않다면,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책을 읽고 내 상황이라면 책 속의 ‘나’는 어떻게
했을까, 유추하며 내 상황을 풀어나가는 것. 요즘은 그런 걸 배우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 한참 동안이나 멍한 상태가
지속됐다. 책의 두께가 얇은 탓에 전개도 빨랐고, 금방 읽히기도 했으며, 또 금방
해결이 되기도 했다. 난 이렇게 금방금방 생각할 수 없는데. - 나는 현재 내가 처한 이 상황을 가장 대수롭지 않게,
덤덤하게 극복하자,라고 생각하며 해결책을 모색 중에 있고, 그리고 지금 생각하는 그것이 결코 최선의 답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 역시 그것밖에 없다,며 못된 마음들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나 역시, 나와 내 부모와의 재결합에 행운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 그거면 된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