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맥주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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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과 맥주의 조합은. 아! J군과 내가 항상 바라 마지 않는 낮술! 낮술의 매력은, 그만큼 여유롭다는 것. 그렇기에 무척이나 부유한 삶을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들게 한다. 낮술은 언제나 옳다는 게 우리의 지론. 그런데 모리사와 아키오, 이 작가. 부럽게 자꾸 새로운 장소에서 매 시간,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킨다. 따사로운 햇빛, 시원한 맥주, 캬- 그저 부럽다. 

 

 

자그마치[?] 1m 폭포에서 떨어져 죽을 뻔 하기도 하고, 화장실에 갇히기도 하고, 등에(노천탕에서 만난)에 물려 열탕과 강을 몇 번이나 뛰어들고, 하룻밤 사이에 덤프트럭과 불때문에 두 번이나 죽을 뻔 하기도 하고, 괴물인형 갸오의 존재, 마킹을 한다는 것, 수중출산, 기적의 구멍, 개인 노천탕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기도 하고, 103세 요옷할머니, 휴웅철썩, 아이를 구하려다가 무모한 청년으로 오해를 사기도 하고, 다카하지 아저씨 (낚시), 생략이 많았던 유스호스텔, 교포3세, 휘파람새가 자주 우는 이유, 최고를 좋아하는 위장복 아저씨, 라스톤입방 해파리의 독, 이해할 수 없는 남자의 세계 정글파이어, 라쿠다의 매력, 까마귀가 물고간 엄청나게 소중한 것, 삐끗허리, 기타렐레와 짤그랑짤그랑 요한금속소리

 

 

그 당시, 서평을 쓰려고 적어뒀던 것들. 어떤건 고작 한 문장만으로도 낄낄거릴 정도로 생각이 나는데, 어떤건 전혀 생각이 안 난다. 사람의 기억력이란, 이토록 옹졸하고 치사한 것인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내 기억력을 탓할 수밖에] 서평쓰며 새삼 느끼게 되는 이 쌉싸름한 기분. 책을 읽으며 낄낄거리며 읽었지만, 그 중에서도 계속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정말 더러워.” 비위가 [무척이나] 약한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물 한 컵도 먹을 수 없었지만, 낄낄거리면서 맥주 한 캔에 부러워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매우 더럽다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그의, 그들의 청춘을 읽었다. 나도 조만간 푸른 하늘에 맥주, 짠! 할 계획을 세워야겠다! [하지만 나는 깨끗하게 다녀올 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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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하루 - 소소하게 사랑하기 좋은 하루
김영주 글.그림 / 42미디어콘텐츠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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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 연애 시작

2013년 11월 , 결혼


“진급여부와 관련해서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할 수도 있어.”라고 말했던 그.

사랑한다면, 끝까지 함께 하지 않아? 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그는 불확실한 미래에 나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다고 말했었다.

불확실한 미래는 2012년에 확실한 미래가 되어있었고, 우리는 만 4년하고도 몇 개월의 연애를 마치고 결혼을 했다.


“결혼은 현실이야.”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설레임보다 두려움과 불안함이 엄습하기도 했다.

쇼파와 한 몸이 될거라는 말은 진짜 최악이었다. 그이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그 이유로 우리집엔 그 흔한 쇼파가 없다.

다행히 그이는 쇼파는 집을 더 좁게 만드는 짐,라고 말하며 쇼파가 필요없다는 내 의견에 동의해주었다.


어린아이같은 나때문에 그이는 아이가 없어도 아이를 키우는 기분이라고 종종 [아니 자주] 말을 한다.

요즘 우리는 서로에게 책을 읽어주는 [주로 그이가] 날이 많아졌다는 것이 올해의 특별한 일 중 하나가 되었는데,

이 책은 연애일기라는 점에서, 결혼이 아닌 우리의 4년 연애를 회상하며 함께 읽었으면, 했다.

 

 

 

 

 


 


아침에 부비적거리며 일어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면, 와있던 문자.

가끔은 전화로 날 깨워주던 그이.

그때 생각이 나서 싱긋.싱긋싱긋.

지금은 눈뜨면 바로 있어서, 눈 앞에 대고 굿모닝! 하니 더 좋지만 :)

 

 


사랑하는 사람이 더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

그 느낌이 뭔지 알 것 같고, 그 순간까지 기억이 나는걸 보니. 그 생각마저도 참 귀하다 싶다.

 

 

 




 

같은 공간에서 각자 다른 뭔가를 한다는 것.

결혼을 하기 전에는 그가 내 옆에 있고, 내 손을 잡고 있고, 뭔가 함께 한다는 게 소중했는데.

결혼을 하고 나니 그에게 가장 서운했던 점은, 나는 같은 공간 = 같은 방 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는 같은 공간 = 집 이라고 생각했다는 것.

“옆에 있는데. 멀리 있는 것 같아.”라는 말을 처음 하게 된 계기였었다.


이후로는 다른 방에 있을 때,

여보- 부르면 “왜?”하고 되묻는 게 아니라, “응~”하며 내 앞으로 와주는 그이가 참 고맙다.


 

 



책을 읽으며, 지난 날들을 회상하며 지금과 비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때도 그때만큼 좋지만, 왜 지금도 이토록 좋은건지. [아직 신혼이라서 그런가보다.라며]


이따금 조금 유치하기도 하고, 말이 안 되는 것 같기도 한 느낌. [내가 안 그래서 그런가.]

사실 요즘은 남자가 무조건적으로 순종[이라는 단어가 조심스럽기는 하다만]하지 않아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더러 있었는데. 그런 부분은 그냥 패스하며 읽으면 그만이니까.

놀라웠던 건, 이 책의 저자가 남자라는 것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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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철학하다 -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에드윈 헤스코트 지음, 박근재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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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

 

누구에게나 ‘집’은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 이외에도 특별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이런 단편적인 사실에 입각한 것들이 아니고서라도, 그곳에서 얼마를 살았든, 그동안의 나의 삶이 그 집에 모두 녹아 있는 까닭이리라. [산다는 건 집에 흔적을 남기는 일이라고 본문에도 발췌되어 있다.] 나 같은 경우, 항상 집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고, 플러스 알파,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전문직 [나이 들어서도 가능한]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에, 현재는 설계를 하고 있다. [못하겠다, 하면서 결국은 설계다.] 학교에서 머리를 쥐어짜가며 졸업 작품을 완성해내었을 때, 나도 언젠가 이런 작품을 만들어 보이겠어.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나는 순진하게도 세상의 모든 집은 설계자가 상상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줄로만 알았던 거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모든 건물은 설계자의 의도만으로는 지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일을 하면서 알게 된다. 건축주의 의견이 대부분 (85%정도, 나머지는 주변 환경에 의해 변경) 반영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설계자는 그저 처음 계획만 잡아주고, 이후로는 건축주가 원하는 대로 그려주고 수정해주기만 하면 90%는 완성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극명한 차이가 나눠지는 것은, 본인이 살 집을 그리는 사람과 집을 지어 팔 사람 [다가구, 연립, 아파트]은 참 다르다는 거다. 나는 1:9의 비율로 후자의 일을 더 많이 했는데, 처음에 느꼈던 그 회의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후자의 경우[특히 다가구/다중주택의 경우],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을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방은 최대한 작게 해서, 한 가구라도 더 많이!를 요구하는 까닭.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흡사 장사꾼 느낌.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에드윈 헤스코트는 전체적인 틀에서 벗어나, 집을 이루는 스물일곱개의 작게는 집의 부속품, 크게는 공간을 하나하나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동안 집의 어떤 공간도, 어떤 사물도 쉽사리 지나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둘러볼 수도 있고, 혹은 일전에 살았던 집을 회상하며 천천히 둘러볼 수도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엔 나도 모르게 결혼 전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을 둘러보게 되더라는. 아무래도 그곳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읽다보니 에드윈 헤스코트가 말하는 전체적인 집 분위기가 단독주택을 상기시키는 것 같기도 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통유리 벽은 창문과는 다른 제품이다. 창문의 액자성이 제거되자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다시 바깥세계와 하나가 되었으나 바깥에서 그를 쳐다볼 가능성 또한 그만큼 커졌다. 결국 우리가 창문이 제공하는 감춰진 구석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 밝혀졌고, 우리의 현대식 창문이 5세기 전의 창문과 같기를 바란다는 것 또한 드러났다. (…) 어떤 경우에도 창문은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벽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대화할 때 우리가 상대방의 눈을 통해 마음을 읽듯 리빌, 창턱, 창유리의 섬세한 분할, 창에 달린 철물, 덧창, 창틀, 창의 장식, 창유리의 반사광 등의 요소를 통해 우리는 집을 읽는다. 창문의 가장 큰 특징은 바깥쪽에서든 안쪽에서든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이다. p31

 

요즘은 어떤 건물을 가도 죄다 커튼월로 된 형식이 참 많다. 첫 번째로, 햇빛이 잘 드니까. 두 번째로, 바깥 풍경을 잘 볼 수 있으니까. 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데, 그 두 가지 이유로 요즘 상가들은 모두 커튼월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집이 커튼월이라면, 글쎄. 세상은 많이 바뀌면서 사생활, 안전, 보안, 감시가 낯설지 않은 것이 현주소다. 집 앞에 CCTV를 두는 단독주택도 꽤 많고.

 

 

 

“가구를 노래하는 시인들은 낡은 옷장의 내부 공간이 지닌 심오함을 알고 있다. 옷장 내부는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 ‘은밀한’ 공간이다.” p87

 

옷장은 이제 옷(아니면 정부)을 숨겨놓는 상자가 아니라 침실이라는 꿈의 공간이 지닌 은밀한과 관련해 무언가를 표현하는 하나의 조형물이 되었다. 옷장의 귀향을 환영한다. p91

 

옷장 부분을 보며 큭큭 웃었다. 결혼하고 그와 한 집에 살며 옷장을 함께 써야한다고 생각했을 때,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터져 나와서 그도 그랬지만, 나도 무척 당황했던 그 날. 다른 건 백 번 양보해도 옷장만큼은 안 되었다. 옷장에 걸맞게 옷부터 시작해서, 가방, 모자, 과거에 받았던 편지, 등등. 옷장은 내가 원하는 것이 모두 다 있는, 신비로운 보물 창고 같은 느낌이었다. 내 발가벗은 몸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나에게 옷장을 함께 써야한다는 것은, 공유할 수 없는 것을 공유해야하는 것이었다. 옷장으로 시작된 ‘내꺼타령’[도대체 이 집에는 내 물건이 하나도 없다!]은 나만의 옷장을 가지게 되서야 막을 내렸었다. 책의 이 부분을 읽으며 그때가 생각나서 웃을 수밖에. [지금은 재밌지만, 당시엔 참 서러웠던 그 날.]

 

 

 

 

 

독서가들은 책을 질서에 맞춰 배열하면서 건축가가 될 기회, 다시 말해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할 기회를 얻는다. 책 백열과 관련된 질서를 이해하는 열쇠이자 문자 세계를 여행하는 열쇠는 오로지 책장 주인만 소유할 수 있다. p37

 

부엌은 우리가 취사선택할 수 있는 디자인 주제를 가장 폭넓게 갖춘 곳이자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부엌이야말로 우리의 실제 취향 및 동경 대상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지표다. 우리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줄 방법이 없는 한, 부엌은 우리의 실제 생활양식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변인이나 마찬가지다. p59

 

“옛날 집에서 계단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러나 현대의 아파트에서는 계단보다 볼품없고 차갑고 적대적이고 하찮은 것이 없다. 우리는 계단과 더 많이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p61

 

서재는 지혜와 학문의 공간이다. 그런 공간을 잃는다는 것은 지식을 포기하는 일이자 의미와 상진이 서진 현실 공간을 무형의 사이버 공간에 양보하는 일이다. 나아가 집 전체를 일만 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p111

 

문짝은 그 자체로 건축의 한 요소이며 그 집의 거주자를 상징한다. 인체 비례를 반영하는 문짝의 전면은 어렴풋이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 문의 전면에 덧댄 벽 널은 사람의 다리, 몸통, 머리의 비율에 맞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중앙의 손잡이는 배꼽과 같은 위치에 있다. p123

 

 

 

 

 

 

 

 

 

 

사실 이 책에서 조금 멀찍이 구경꾼 노릇을 했던 것은, 다이닝룸, 벽난로, 오두막, 수영장이었다. 그 부분에서 끝끝내 동양과 서양이라는[?] 문화적 거리는 좁힐 수 없었다. [아! 다이닝룸은 문화적 거리가 아니라 시대상 현재는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하지만 그뿐이랴. 지하실과 다락의 경우, 단독주택에서밖에[다락은 요즘 다가구/다중주택에서도 많이 짓지만] 경험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인데, 그것도 주택마다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공간이다. 나는 일전에 살던 곳에 다락이 있었고, 지금은[친정집] 지하실이 있는데, 다락은 언제나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었고, 지하실은 지금도 내려가고 싶지 않은 곳 중 베스트다. 그런데 한 가지, 옥상이 없었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은 어떤 모습인가?

 

나는 집에서 얼마를 살든, 살고 있는 동안에는 나에게, 또 우리에게 최고의 공간이었으면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어떤 집에 이사를 가도 원하는 대로 바꾸면 되니, 오히려 애착이 생긴다. 다만, 그 집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때, 나는 그게 그렇게 슬픈 일인지 몰랐다는 건 처음 안 사실. 특별하게 나만 그런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다들 그렇잖은가. 누구에게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최고의 안식처일테니. 일을 시작한 뒤로는 매번 재미없이 똑같은 집들을 설계하는 [혹은 원하는 대로 그려주는] 일이 반복이어서 방 크기는 이정도면 되겠고, 욕실은 최소 얼마면 되고, 주방 커봤자 뭐. 식이다. 하지만 내 집을 설계한다면, 엄청난 심사숙고가 예견된다. 우리 부부는 “노후에는 우리집을 설계해서 그곳에서 노년을 보내자.”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앞에 옥상을 이야기했는데, 나의 그이는 집에 다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고, 나는 옥상이 있어야한다고 말한다. 그 절충안은 옥상과 다락이 모두 공존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 욕심으로는 정원도 있었으면 좋겠고, 옆에는 차고도 있었으면 좋겠고. 하하. 벌써부터 머리가 조금씩 아파온다. 분명 나와는 달라서 멀찍이서 구경꾼이 되었을지언정, 그 외에는 집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불행하게도, 일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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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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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살 때 열병으로 소리를 잃어버린 구작가.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고, 들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린 자신의 분신인 토끼 베니는 다른 어떤 토끼들보다 귀가 유달리 크다. 어쩌면 알은 척을 하는 사람도 있겠다. 맞다, 이 토끼는 한창 싸이월드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던 그 베니였던 것. 청각을 잃었어도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행복했을텐데.. 하지만 그녀에게 닥친 불행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현재 망망색소변증이라는 병명으로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그녀. 그녀는 지금을 ‘카르페 디엠’을 몸소 실천 중이다. 그녀의 버킷리스트는 끝이 없고, 끝이 있을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는, 버킷리스트에 적힌 하나하나를 달성할 때마다 또 다른 버킷리스트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모두 다 달성해버려서 더이상 해야할 것이 없을 때의 느낌을 어찌 말로 설명하랴. 그녀는 지금의 행복을 일생 느낄 수 있는 마지막의 행복인양, 열심히 보듬고 느끼고 있을 터다.

 

 

서평을 쓰다보니, 며칠 전 보았던‘앵그리스트맨’이 떠오르며, “내게 주어진 시간이 단 90분이라면.”이 오버랩된다. 내게 남겨진 기간이 혹은 시간에 기한이 있다면.하고 생각하다가, 결국 찾아내고야 만다.

 

 

 

 

 

나의 20대 버킷리스트. 부제, 후회없는 20대 보내기 - 성숙한 30대 맞이하기 기간이 2012년 12월 23일부터 2016년 12월 31일까지인걸 보니, 2012년에 작성했는가보다. 2016년. 와. 벌써 내년이구나. 들춰보니 아직도 그어놓지 못한 것이 허다하던데.

 

 

 

 

 

살짝 공개해보는 내 버킷리스트. 결혼은 언제 해도 상관없어.라는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서른 전에는 하고 싶다 생각했었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주제가 빠지지 않았네. 이 중에는 그때는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인 것도 있고, 조금 욕심내었던 그런 부분도 있고. 지금보니 체크하지 않은 것도 있기도 하고. 하지 않은 것 중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우리집 봉이 [오리저금통] 배불리 꽉꽉 채워보기. 맨날 채워보지 못하고 뜯어내서 미안. 그리고, 국내여행 지도를 사서 그동안 다닌 곳을 콩콩 동글동글 예쁜 색의 색연필로 체크하는 것도 해야지. 사실 이건 20대뿐만이 아니라 평생동안 하고 싶은 일인데. 이제는 나 혼자만의 버킷리스트 외에 J군과 저의 버킷리스트도 한 번 만들어볼까. 하고 있다. 구작가 덕분에 오랜만에 내 버킷리스트도 한 번 점검해 볼 수 있었던 시간. 내 하루들이 참 소중하기만 한데, 늘 잊고 산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 따분하고 재미없고 나태하다고 생각될 때 이 책은, 아니 이 이야기는, 당신의 머리를 강하게 후려칠거다. 생각났다. 김미월의 「여덟 번째 방」, 영대 친구가 말했다. [읽은지 얼마나 됐다고 이름을 또 까먹었다. 이놈의 기억력.] “행복이 뭐 별거냐. 너 아직 살아있잖아.” _ 하찮아보이는 돌멩이같은 하루들이, 실제로는 당신의 반짝거리는 다이아몬드같은 삶의 한 조각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을 만끽해 볼 수 있는, 구작가의 그래도 괜찮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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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방
김미월 지음 / 민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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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 혹시 아름다운 달일까,하는 오지랖도 떨어가며 이름이 참 예쁘다 생각했던 작가. 책장의 어딘가에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일전에 읽어봐야지, 해놓고 단편 한편도 채 읽지 못하고 잠시 덮어두었던 책 속에 작가의 단편도 함께 있을 터인데, 읽고 있는 책을 책 속에 파묻혀 읽고 오고자 간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마주하는 순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책을 추천해주었던 걸 생각해내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출해왔더랬다. 읽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에 대한 답을 자꾸만 도출해내려는 그것, 때문에.

 

 

 

 

 

그런데 있지, 넌 꿈이 뭐니?”

꿈이 없다는 이유로 여자 친구에게 걷어차인 스물다섯의 오영대. 그것은 CK청바지를 사려던 20만원으로 월세 10만원짜리 방을 구하는 것의 계기가 되었다. 그는, 독립을 한 것이다. 십팔,마리의 모기들이 짓눌려 죽은 채로 붙어있는 벽, 똥이 얼어서 물이 내려가지도 않는 화장실. 그곳이 이제 그가 지내야하는 방인 것이다. ‘잠만 자는 방그리고 그곳에는 마지막 장까지 손으로 쓴 글씨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노트 상자가 발견된다. 아마 그 방에 살았던 여자의 것이리라. 여덟 번째 방

 

 

 

 

 

스무 살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 시기를 채 겪지 않은 이들에게도, 그 시기를 지나 버린 이들에게도 어쩔 수 없는 환상을 갖게 하는 이름이다. p49

노트 여덟 번째 방에는 여자(김지영)가 거처했던 방들과 그 방에서 살 때의 (추억이라면 추억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삶이 적혀있었다. 노트 속의 지영이나 노트 밖의 영대나 그리고 그들을 몰래 관찰하며 안쓰러운 청춘이네,라고 읊조리는 나도, 허공을 유영하는 실체 없는 대상을 매만져보겠다고 버둥거리지만, 실상은 그 손을 뻗는 것조차도 쉽지만은 않다. 무턱대고 뻗은 내 손에 잡힐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까닭이리라. 어찌하여 1980년이나, 1990년이나, 2000년이나, 2010년이나 모두 같을 수가 있지. 생각하며 숨이 턱 막혀온다.

 

 

 

 

 

아니, 그냥 말없이 먼저 안아 주기부터 해야겠다. 너는 참 평범하고 보잘것없지만 세상에 오로지 하나뿐인 존재라고. 그러므로 결코 평범하지도 않고 보잘것없지도 않다고. 너는 내 소설의 주인공이며 내 세계의 주인공이라고. p227

실은 지금 다니던 회사를 퇴직 후에 약간의 회의감을 안고 살고 있는 한 달이었는데, 타이밍 좋게도 참 좋은 책을 만났다. (물론 이것이 얼마 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지만) 내 꿈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재정비하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부터 서평을 쓰는 지금까지의 생각이 한결같다는 것에 놀랍다. 나는, 재미있게 살고 싶다. 세상의 모든 재미있는 일들을 내 옆에 있는 당신과 함께. 맛있는 반찬들을 골고루 먹었다. 잘 먹었습니다.

 

 

 

 

 

 

내게 나이라는 건 항상 너무 많거나 너무 적었다. 예전에는 내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는 것이 나이가 적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없는 것이 나이가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나이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삶이 해마다 잊지도 않고 내게 갈아입혀 주는 옷이 매번 팔이 짧거나 목이 좁아 입기 불편했던 것은 옷이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내 신체 비례가 불균형하기 때문이었다. p47

 

 

 

 

그 많은 방들에 나는 내 20대를 골고루 부려 놓았다. 나에게 방은 집에 부속된 공간이 아니라 온전한 집 자체였다. 부등식 <이 아니라 등식 =이 성립되는 곳이었다. 그 많은 방들을 거치며 이제 나는 서른이 되었다. 요즘도 가끔 지나온 길 위에 두고 온 나만의 방들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곤 한다. 방들 속에 고여 있는 기쁨과 슬픔과 꿈과 절망과 환희와 분노는 하나같이 모서리가 닳아있었다. 말랑말랑해진 그 모서리들을 만져 보는 것이 나는 좋았다. p49-50

 

 

 

절대 바뀔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것, 결코 변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것, 그런 것이 또 하나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결국 모든 것은 변하게 되어 있는 걸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결국에는 모두 변하고 지나가고 잊히고 사라져 가게 마련인 것일까. p76p

 

 

 

바람이 불었다. 책으로 쌓아 올린 내 일상이, 아직 제대로 읽어내지도 못한 내 청춘의 페이지가 한 장씩 한 장씩 넘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손을 써 볼 겨를도 없이 빠르게. 그것이 아쉽고 억울해서 나는 장판에 짓눌린 뺨에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방바닥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p129

 

 

 

가끔은 그가 했던 말이 믿기지 않아서 종이 위에 그대로 옮겨 써 보기도 했다. 그러면 그것이 가진 실체가 조금 더 분명해졌다. 발화되는 순간 휘발되고 마는 음성 언어의 찰나를 박제화하는 것이 문자 언어라는 것을, 나는 그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과정을 통해 체감했다. p164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하는 거야.” p218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특별해. 글을 통해 스스로의 삶을 정리할 줄 알거든.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고나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을 때나 되어서야 자신의 삶을 정리하지.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인지 아닌지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죽음을 맞이한단 말이야.”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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