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철학하다 -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에드윈 헤스코트 지음, 박근재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

 

누구에게나 ‘집’은 먹고 자고 생활하는 공간, 이외에도 특별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이런 단편적인 사실에 입각한 것들이 아니고서라도, 그곳에서 얼마를 살았든, 그동안의 나의 삶이 그 집에 모두 녹아 있는 까닭이리라. [산다는 건 집에 흔적을 남기는 일이라고 본문에도 발췌되어 있다.] 나 같은 경우, 항상 집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고, 플러스 알파,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전문직 [나이 들어서도 가능한]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에, 현재는 설계를 하고 있다. [못하겠다, 하면서 결국은 설계다.] 학교에서 머리를 쥐어짜가며 졸업 작품을 완성해내었을 때, 나도 언젠가 이런 작품을 만들어 보이겠어.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나는 순진하게도 세상의 모든 집은 설계자가 상상하는 대로 만들어지는 줄로만 알았던 거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모든 건물은 설계자의 의도만으로는 지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일을 하면서 알게 된다. 건축주의 의견이 대부분 (85%정도, 나머지는 주변 환경에 의해 변경) 반영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설계자는 그저 처음 계획만 잡아주고, 이후로는 건축주가 원하는 대로 그려주고 수정해주기만 하면 90%는 완성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극명한 차이가 나눠지는 것은, 본인이 살 집을 그리는 사람과 집을 지어 팔 사람 [다가구, 연립, 아파트]은 참 다르다는 거다. 나는 1:9의 비율로 후자의 일을 더 많이 했는데, 처음에 느꼈던 그 회의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후자의 경우[특히 다가구/다중주택의 경우],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을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방은 최대한 작게 해서, 한 가구라도 더 많이!를 요구하는 까닭.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흡사 장사꾼 느낌.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에드윈 헤스코트는 전체적인 틀에서 벗어나, 집을 이루는 스물일곱개의 작게는 집의 부속품, 크게는 공간을 하나하나 이야기한다. 책을 읽는 동안 집의 어떤 공간도, 어떤 사물도 쉽사리 지나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둘러볼 수도 있고, 혹은 일전에 살았던 집을 회상하며 천천히 둘러볼 수도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엔 나도 모르게 결혼 전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을 둘러보게 되더라는. 아무래도 그곳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읽다보니 에드윈 헤스코트가 말하는 전체적인 집 분위기가 단독주택을 상기시키는 것 같기도 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통유리 벽은 창문과는 다른 제품이다. 창문의 액자성이 제거되자 풍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다시 바깥세계와 하나가 되었으나 바깥에서 그를 쳐다볼 가능성 또한 그만큼 커졌다. 결국 우리가 창문이 제공하는 감춰진 구석을 더 좋아한다는 것이 밝혀졌고, 우리의 현대식 창문이 5세기 전의 창문과 같기를 바란다는 것 또한 드러났다. (…) 어떤 경우에도 창문은 고립되어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벽에 자리를 잡아야 한다. 대화할 때 우리가 상대방의 눈을 통해 마음을 읽듯 리빌, 창턱, 창유리의 섬세한 분할, 창에 달린 철물, 덧창, 창틀, 창의 장식, 창유리의 반사광 등의 요소를 통해 우리는 집을 읽는다. 창문의 가장 큰 특징은 바깥쪽에서든 안쪽에서든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이다. p31

 

요즘은 어떤 건물을 가도 죄다 커튼월로 된 형식이 참 많다. 첫 번째로, 햇빛이 잘 드니까. 두 번째로, 바깥 풍경을 잘 볼 수 있으니까. 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아무런 메리트가 없는데, 그 두 가지 이유로 요즘 상가들은 모두 커튼월이다. 하지만 내가 사는 집이 커튼월이라면, 글쎄. 세상은 많이 바뀌면서 사생활, 안전, 보안, 감시가 낯설지 않은 것이 현주소다. 집 앞에 CCTV를 두는 단독주택도 꽤 많고.

 

 

 

“가구를 노래하는 시인들은 낡은 옷장의 내부 공간이 지닌 심오함을 알고 있다. 옷장 내부는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 ‘은밀한’ 공간이다.” p87

 

옷장은 이제 옷(아니면 정부)을 숨겨놓는 상자가 아니라 침실이라는 꿈의 공간이 지닌 은밀한과 관련해 무언가를 표현하는 하나의 조형물이 되었다. 옷장의 귀향을 환영한다. p91

 

옷장 부분을 보며 큭큭 웃었다. 결혼하고 그와 한 집에 살며 옷장을 함께 써야한다고 생각했을 때, 나도 모르게 그만 눈물이 터져 나와서 그도 그랬지만, 나도 무척 당황했던 그 날. 다른 건 백 번 양보해도 옷장만큼은 안 되었다. 옷장에 걸맞게 옷부터 시작해서, 가방, 모자, 과거에 받았던 편지, 등등. 옷장은 내가 원하는 것이 모두 다 있는, 신비로운 보물 창고 같은 느낌이었다. 내 발가벗은 몸을 보여주는 느낌이랄까. 나에게 옷장을 함께 써야한다는 것은, 공유할 수 없는 것을 공유해야하는 것이었다. 옷장으로 시작된 ‘내꺼타령’[도대체 이 집에는 내 물건이 하나도 없다!]은 나만의 옷장을 가지게 되서야 막을 내렸었다. 책의 이 부분을 읽으며 그때가 생각나서 웃을 수밖에. [지금은 재밌지만, 당시엔 참 서러웠던 그 날.]

 

 

 

 

 

독서가들은 책을 질서에 맞춰 배열하면서 건축가가 될 기회, 다시 말해 자신만의 세계를 건설할 기회를 얻는다. 책 백열과 관련된 질서를 이해하는 열쇠이자 문자 세계를 여행하는 열쇠는 오로지 책장 주인만 소유할 수 있다. p37

 

부엌은 우리가 취사선택할 수 있는 디자인 주제를 가장 폭넓게 갖춘 곳이자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다시 말해 부엌이야말로 우리의 실제 취향 및 동경 대상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지표다. 우리가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줄 방법이 없는 한, 부엌은 우리의 실제 생활양식을 가장 잘 드러내는 대변인이나 마찬가지다. p59

 

“옛날 집에서 계단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그러나 현대의 아파트에서는 계단보다 볼품없고 차갑고 적대적이고 하찮은 것이 없다. 우리는 계단과 더 많이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것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p61

 

서재는 지혜와 학문의 공간이다. 그런 공간을 잃는다는 것은 지식을 포기하는 일이자 의미와 상진이 서진 현실 공간을 무형의 사이버 공간에 양보하는 일이다. 나아가 집 전체를 일만 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p111

 

문짝은 그 자체로 건축의 한 요소이며 그 집의 거주자를 상징한다. 인체 비례를 반영하는 문짝의 전면은 어렴풋이 사람의 모습을 닮았다. 문의 전면에 덧댄 벽 널은 사람의 다리, 몸통, 머리의 비율에 맞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중앙의 손잡이는 배꼽과 같은 위치에 있다. p123

 

 

 

 

 

 

 

 

 

 

사실 이 책에서 조금 멀찍이 구경꾼 노릇을 했던 것은, 다이닝룸, 벽난로, 오두막, 수영장이었다. 그 부분에서 끝끝내 동양과 서양이라는[?] 문화적 거리는 좁힐 수 없었다. [아! 다이닝룸은 문화적 거리가 아니라 시대상 현재는 없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하지만 그뿐이랴. 지하실과 다락의 경우, 단독주택에서밖에[다락은 요즘 다가구/다중주택에서도 많이 짓지만] 경험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인데, 그것도 주택마다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공간이다. 나는 일전에 살던 곳에 다락이 있었고, 지금은[친정집] 지하실이 있는데, 다락은 언제나 꿈을 꿀 수 있는 공간이었고, 지하실은 지금도 내려가고 싶지 않은 곳 중 베스트다. 그런데 한 가지, 옥상이 없었던 것이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운 부분.

 

 

 

당신이 살고 싶은 ‘집’은 어떤 모습인가?

 

나는 집에서 얼마를 살든, 살고 있는 동안에는 나에게, 또 우리에게 최고의 공간이었으면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래서 어떤 집에 이사를 가도 원하는 대로 바꾸면 되니, 오히려 애착이 생긴다. 다만, 그 집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때, 나는 그게 그렇게 슬픈 일인지 몰랐다는 건 처음 안 사실. 특별하게 나만 그런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다들 그렇잖은가. 누구에게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최고의 안식처일테니. 일을 시작한 뒤로는 매번 재미없이 똑같은 집들을 설계하는 [혹은 원하는 대로 그려주는] 일이 반복이어서 방 크기는 이정도면 되겠고, 욕실은 최소 얼마면 되고, 주방 커봤자 뭐. 식이다. 하지만 내 집을 설계한다면, 엄청난 심사숙고가 예견된다. 우리 부부는 “노후에는 우리집을 설계해서 그곳에서 노년을 보내자.”라고 이야기한다. 바로 앞에 옥상을 이야기했는데, 나의 그이는 집에 다락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고, 나는 옥상이 있어야한다고 말한다. 그 절충안은 옥상과 다락이 모두 공존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 욕심으로는 정원도 있었으면 좋겠고, 옆에는 차고도 있었으면 좋겠고. 하하. 벌써부터 머리가 조금씩 아파온다. 분명 나와는 달라서 멀찍이서 구경꾼이 되었을지언정, 그 외에는 집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불행하게도, 일에 대해서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겠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