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로 산다는 것 - 사랑에 서툰 엄마를 위한 어머니다움 공부
이옥경 지음 / 좋은날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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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날의 어느 날이다.

땀이 정수리에서 시작되는지, 몇 천억 개(나 도리까 싶지만)의 머리카락에서 시작되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것들은 이마로, 콧잔등으로, 인중으로까지 퍼진다.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심드렁하게 닦아내고 한 권의 책을 다 읽어냈다. 이 서평을 쓰기 전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털어 놓아야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자판을 두드리고 지우고, 두드리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여전히 쓰는 동안, 그리고 서평을 완료하는 그 순간까지 고민하고 걱정하며 저어할 것이다.

 

 

 

 

우리부부는 현재를 살면서도, 꽤 자주 미래를 상상한다. 살고 싶은 모습이 비슷하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은, 그가 살고 싶어 하는 미래에는 아이가 없었고, 내가 살고 싶어 하는 미래에는 아이가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아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가 아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흔히 생각하는 가족 구성원이라고 하면 부모, 자식이 아닌가. 그 프레임을 깰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나다. 그런데, 결혼 후 임신일까? 하던 일이 두 번 있었다. 나는 마치, 젖은 운동화 속에 그보다 더 흥건하게 젖은 양말을 끼워 넣어 질척거리는 것만큼의 극심한 우울함을 느꼈고, 심지어 엉엉 울기까지 했다. 기뻐서가 아니라 불안함에 설잠을 잤고, 아님을 알았을 때의 그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그게 임신이었다. 미래에 아이가 있다고 생각했으면서 왜? 남편과 아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때라야, 아빠와 엄마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래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중 올해 여름, 아이가 찾아왔다. 아니, 착상을 하지 못했으니 정확히는 찾아올 뻔 했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테스트기의 두 줄을 보고도, 피검사 결과가 맞다고 하는데도, “아무것도 정확하지 않아.”라는 말만 뇌까렸다. 정말 그러길 바랐다. 계획되지 않았고, 기다리지 않았기에 기뻐하지 못했다. 사실 그래서 다시 되돌아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아이를 낳기 싫은 이유는 참 여러 가지였다. 철이 없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생김으로 인해 우리가 억압받는 자유와 생활을 생각했고, 사교육비로 인해 실버 푸어가 되어가고 있는 현 주소와, 지금 막 태어나는 아이들이 청년이 되었을 때에 그들이 감당해야만 하는 미래를 생각했다. 이를테면, 초고령화 사회로 변한 나라에서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세금을 더 부과하지만, 청년들은 없는,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그런 모습들. 태어나는 아이에게도 미안했고,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우리 부부의 모습도 안쓰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겁이 났던 건, 동물을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너무 오냐오냐 키우면 버르장머리 없이 자랄까봐, 너무 엄하게 키우면 언젠가 삐뚤게 나갈까봐. 그 중간을 잘 조율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나는 아직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한 동물에 불과한데, 그런 내가 누군가를 양육해야 한다는 것에 겁이 났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연습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큼은 연습이 없다는 사실이 더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기에 타인의 어떤 말에도, 어떤 행동에도, 그저 사고방식이 다른 거라며 웃을 뿐, 아이를 품어야겠다는 온화한 생각을 가져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품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런 마음이었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조금은 기뻐할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가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나에게는 조금 낯선 좋은 엄마로 산다는 것이 그 첫 책이다.

 

 

 

책 제목에 쓰여 있는 좋은 엄마에 눈이 간다. ‘좋은 엄마’ - 그 기준은 누가 정해주는지 모르겠다. 좋은 엄마는 자연분만도 해야 하고, 모유수유도 해야 하고, 몇 살 이하까지는 엄마가 품에 끼고 살아야 하고. 뭐 이런 것들. 그 굴레에서 벗어나면 소위 말하는 자녀를 위하지 않는 나쁜 엄마가 되어버리는 현실. 사실 엄마가 행복하면 자녀도 행복하지 않을까. 물론, 엄마인 내가 행복하니까 너도 당연히 행복하다고 느껴야 해. 이런 논리는 아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엄마의 행복이 자녀의 행복의 발판이 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책의 표지에도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집니다. 라고 쓰여 있는데, 엄마가 행복하다는 것은, 그만큼 엄마의 기준이 명확하여 아이를 양육하는 데 여유가 있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타인의 기준에서 좋은 엄마가 아니라, 내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는 것.

 

 

 

책에는 여러 가지가 담겨있다.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아이와 소통하는 방법, 아이에게 아빠의 자리를 찾아주는 것, 아이의 거짓말의 이유를 파악하는 방법, 아이를 꾸짖는 방법, 아이에게 좋은 칭찬을 하는 방법, 아이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방법 등등. 일전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봤었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모두 달랐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행동의 뒤에는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처음이니까, 못하겠다고 속된 말로 내뺄 수가 없으니까. 그 중 가장 깊게 봤던 것이 아이에게 아빠의 자리를 찾아주는 것. 그 날 그것을 읽고 그이에게 물었다. “아빠, 엄마가 싸우면 왜 애들이 엄마 편을 들고, 나중에 아빠를 미워하는 줄 알아?” “엄마랑 오래 있어서? 엄마랑 더 친해서?” “엄마랑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 엄마가 아이에게 만들어준 아빠 이미지야.” - 나는 개인적으로는 아이의 훈육은 전적으로 한 사람이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꼭 엄마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엄마한테 혼나도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라고 생각하는 반면, 아빠는 엄마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지내지 않는데 훈육까지 해버리면 그만큼 거리가 더 멀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더 이 부분이 깊게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머지는 아이를 키우면서 약이 될 이야기들이 참 많은데, 언젠가 다시 한 번 들춰볼 날이 있....... 아이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면....!

 

 

 

사실 나는 그랬다. 내가 엄마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엄마의 입장에서 봐야하는데, 엄마가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보게 되더라는. 어쩌면 유년시절을 만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초등2년생일 때는 IMF가 왔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던 맞벌이,로 항상 바쁘던 아빠와 엄마, 장녀라는 이유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했던 지독한 외로움, 초등1년생이던 남동생에게 열쇠목걸이를 걸어주던 초등6년생의 나, 동생에게 좋은 누나의 본보기가 되어야한다는 강박관념. 그렇다고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 키워주신 것에 대한 미움도, 원망도, 서러움도 없다. 다만 그때의 내가 조금 안쓰러워서 유년시절의 나를 조금 더 다독거리게 되던 책이었다. 사실 그래서 더 용기가 안 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 추후에 좋은 엄마가 되려고 책을 읽었더니, 난 이렇게 커야한다며 그이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고집이 생기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온다면, 권유하고 싶은 책.

 

 

 

 

 

오탈자 100p 첫 째줄 : 엄마는 역할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 일까요? ▶▶▶ 엄마의

158p , 162p : 외동이 상아 ▶▶▶ 외둥이(가 맞는 표현이라고 알고 있지만, 오탈자가 아니라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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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배치의 방정식 - 안락한 집과 공간을 만드는 건축의 기본정석 25
이즈카 유타카 지음, 황선종 옮김 / 더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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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두 번째 신혼집은, 연식이 내 나이만큼의 15평 남짓인 작고 오래되고 낡은 아파트이다. 사실 우리는 기존에 25평의 아파트에서 살다가 10평이 더 적은 이곳에서 살 수 없을 것만 같았기에, 다른 아파트를 알아보았지만, 주말부부 2주를 넘기지 못하고 결국 이곳으로 이사를 결정해야만 했다. 지금이야, 아늑한 우리만의 공간이지만, 입주청소를 할 때까지만 해도 상태가 심각했기에, [그래도 도배, 장판도 다 한 상태였는데..] 입주 청소하는 분에게 실례지만, 여기에서 사람이 살았었다구요?”라는 물음을 받았었고, 나는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월세도 아니고, 전세도 아니고, 그렇다고 자가도 아닌 사택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 당장은 좋은 집에 살고자 하는 욕구가 적다. 하지만 1년 넘게 산다는 전제 하에 적어도 집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으려는 편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오는,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자는 것이 첫 번째 까닭이다. 그렇다고 뭔가를 새로 사들이지는 않지만, 공간 효율을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에 여념이 없다. 처음부터 이사할 때 짐이 될 만 한 소파, 식탁은 구매하지 않아서 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장롱, 침대, 책장, 책상 등 큼직한 물건이 있기에 공간배치를 잘 해야 하는 것은 물론, 가구배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한, 앞서 우리는 집에 대한 욕구가 적은 편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남편 J군이 퇴직을 하면, 그때에는 집을 직접 지어 살겠다며 열심히 지금을 살고 있는 까닭이다. 그 언젠가 누구도 아닌 우리만의 공간을 직접 만든다는 것. 생각만 해도 참 매력적이지 않은가. 주택에서 살고자 하는 까닭은 사실, 내가 스물여섯 해를 온전히 주택에서만 자라왔는데, 그것은 최고의 행복이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집구석에서도 망나니처럼 뛰어다니던 나는, 대전에 있는 친정집만 가면 발날을 위로 꼿꼿하게 기울이고, 발바닥을 평평하게 만들며 부러 발바닥을 짝짝짝짝-거리며 뛰어다닌다. 그리고 난, 마당과 다락과 발코니가 함께 있는 작은 집을 가지고 싶은데, 아파트는 그럴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고. 16개월을 살아도 여전히 엘리베이터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있는 까닭이기도 하고. 말하자면 이유는 참 많겠지.

 

 

 

 

 

 

 

아직 책을 이야기하기 전인데, 사족이 길었다. 책은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집에 공간배치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와 있는 게 아니라, 그 언젠가의 우리 집을 위해 도움이 될 만 한 이야기들이 쏙쏙 담겨져 있었다. , 내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그에 무척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 참 많아서 책을 읽는다기보다 꽤 유용한, 무척 실질적인 공부를 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 몇 가지만 써야겠다.

 

 

 

1. 모방은 오리지널 작품의 어머니

 

나 역시도 원룸 하나의 공간 배치를 한다하더라도, 자료들을 모두 끌어 모아 몇 가지 계획안을 제시하는 편이다. 언젠가 노하우가 생긴다면 굳이 책을 보지 않더라도 가능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좀 더 효율적이면서, 좀 더 특이하게 해보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건축주들은 획일적인 것을 요구하더라는 괴기한 현상이 대부분이다.. 그것이 우리 인체 설계에 맞는다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어쩌면 그게 지금 주거방식과 비슷해서 거부감이 없는 까닭이겠지.

 

 

 

 

 

2. 기본 토대인 두부부터 만든다.

 

모든 건물은 두부에서 나온다. 대지가 어떻게 생겼든, 건물은 두부모양인 정사각형이 가장 보기가 좋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요즘 내가 용을 쓰며 계획하고 있는 대지를 가져다주며, 이런 경우는 어떻게 나올는지, 한 번 봐달라고 얘기하고 싶었다. 내 한계를 맛보게 하는 그 대지. 생각하니 또 울고 싶다.

 

 

 

 

 

3. 현관은 코너에 있어도 좋다.

 

나는 설계를 할 때에 웬만하면 현관은 중앙에 배치하는 편이다. 그게 집에 들어왔을 때, 집의 정중앙으로 가는 쓸데없는 복도가 생기지 않고, 또 길어지지 않으며, 집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하지만 저자는 현관이 코너에 있다면 주차장과의 위치관계가 좋아진다고 얘기한다. [주차공간은 저자가 집을 설계하는 데 있어 1순위라고 생각한다.] 또한, 현관이 코너에 있음으로써 현관 포치가 생기고, 마당과 단차가 생기는 현관 앞 바닥도 배치하기가 쉬워진다고 얘기한다.

 

 

 

 

 

4. 창문은 중앙을 피하라.

 

일을 할 때 가장 중앙에 혹은 양쪽 사이드로 창문을 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야 방안에 빛이 골고루 들어온다고 생각하는 까닭이고, 건물의 외관에서 보았을 때도 중간은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저자는 창문은 중앙이 아니라 상하좌우의 구석에 붙여서 배치한다. 라고 말하며 이렇게 하면 옆의 벽이나 천장에도 빛이 들어가고 방 전체가 밝아지며, 창문을 둘러싸는 벽면이 줄어들기 때문에 시선이 뻗어나가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상상을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 그런 집을 가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5. 2층 건물을 2.5층 건물로.

 

이건 나도 미래의 우리 집을 생각하며 계획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 화장실과 침실은 좀 낮게, 거실과 부엌은 높게, [부엌은 냄새 빼려고;] 그러면서 필요 없는 냉·난방비를 줄이며, 집이 획일적인 천장에서 벗어나 재미있는 놀이터가 된다. 그러면서 책에서는 플러스로 천장에 보드를 시공하지 않는 선택도 함께 기재를 해 놓았는데, 이게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한 건지, 실 시공사례가 있는지 찾아봐야할 일이다.

 

 

 

 

 

 

 

책을 읽으며 몰랐던 부분들에 대해 눈을 반짝이기도 했고, 알고 있던 것에 대해 한 번 더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여전히 풀리지 않는 궁금증도 있다. 책은 전체적으로 그림과 도면으로 되어있기에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지만, 훗날 자신만의 집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거나, 건축을 공부하는 혹은 관심 있는 사람이거나, 실제 설계를 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롭게 읽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밑줄을 쫙쫙 그어가며, 남편 J군과 나중에 우리 집을 함께 상상해보기도 하면서, 행복한 웃음을 입에 걸고 참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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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다시 사랑하다 - 사랑의 거품이 빠진 사람들을 위한 관계 테라피
린다 캐럴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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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결혼을 한 지 벌써 16개월이 되었다. “결혼하면 뭐가 가장 좋아?”라는 물음에, “매일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발그레 웃으며 대답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하지만 그 다음 물음은 아무도 물어보지 않더라. 결혼하면 뭐가 가장 싫은지. 그 대답도 = 이코르, 같다. 매일 얼굴을 보는 것.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했던 까닭에, 약속시간을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갈등이 생겼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했는데, 만나면 금세 풀릴 일이 태반이라 갈등이 오래 지속되는 것을 장거리 연애 탓으로 돌렸는데, 그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풀릴 만큼의 시간이 지났으니 풀릴 수 있었던 일이 아닐까, 지레짐작한다.

 

 

 

 

좋은 관계에는 반드시 분노와 의견 차이의 폭발이 있어야 한다. p242

 

함께 같은 공간에 있으면 갈등이 생겼을 때 더 수월하게 풀릴 수 있다고들 하던데, 결혼 1년 동안은 그게 썩 와 닿지 못했다. 지금이야, 그때보다는 조금 더 능구렁이가 되어 갈등이 생겨도 조금 더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지만, 갈등이 생기고 화해하는 과정, 그 간극의 냉랭함이 싫어서 둘 중 한 명이 자리를 피해야만 했던 상황들도 있었다. 그것은 잘 싸우지 못했던 까닭이다. 4년의 연애 중에도 제대로? 싸운 적이 손가락을 꼽을 만큼이었는데 (아니, 그보다는 좀 더 많은가?), 결혼 후에 투닥투닥거리는 우리를 보며, 나는 우리가 부부가 아니라 꼭 연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투닥거림이 매번 싸움으로 번지지 않았던 까닭은 남편 J군의 역할이 컸다. 그는 문제점의 핀을 잘 맞출 줄 알았고, 그것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공감을 해주지 않는다며 얼마나 투덜댔던가. 감성팔이 아내를 둔 j군의 숙명이지 뭐.

 

 

 

 

그때 내가 생각했던 건, “어떻게 해야 잘 싸울 수 있을까.”였고, 열심히 싸우면서, “열심히, 서로에게 꼭 맞는 부부가 되어야겠다.”였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하면 법적으로 자연스레 되는 것이지만, 좋은 부부는 서로의 노력이 부단히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2세 계획을 미뤘던 것도, 서로의 남편과 아내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었을 때에야 비로소 부모가 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러려면 한 가지 명심해야하는 것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기. 부터 시작되어야했고, 그 노력의 시작은 내게 있어서 언제나 이었다. 이제야 말하지만, 책만큼 나를 질책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다. 그동안 책을 읽으며 J군에게 미안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책으로 한 걸음 들어가서, 린다 캐럴은 결합 의심과 부정 환멸 결단 진심을 다하는 사랑다섯 가지의 단계로 나누어 사랑의 속성을 파헤친다. 사랑의 로맨스가 시작되는 단계인 결합’, 사랑의 미약이 주는 효과가 점점 약해지고 파트너와의 일상이 뻔해지는 상태에 접어드는 순간 찾아오는 의심과 부정’, 서로의 차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애를 먹는 환멸’, 일명 이라고 지칭할 만한 위기에 이르는 (미래에 대해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결단’,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며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게 되는 진심을 다하는 사랑이 그것이다.

 

 

 

 

환멸의 단계에 이르면 상대방에 대해 따분함, 우울증, 배신, 울퉁불퉁 카펫 신드롬, 유대감 상실, 정당화된 분노, 짜증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을 일명 우리는 권태기라고 지칭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것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1. 문제점에서 자신의 책임 이해하기 2. 마음을 열고 들어 주기 3.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협력 방법 터득하기 4. 새로운 행동 취하기 5. 관계에 양분주기 (특히 그럴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 6. 자기 자신의 연료 탱크 채워 놓기이론으로 보아선 이게 정말 진부하게만 느껴져서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심술이 날 때마다 (갈등이 생긴다는 것은 내가 서운함을 느껴서 생기는 일이 대부분이었으니) 내가 가장 인정하며 그래그래, 고개를 끄덕끄덕 할 수 있었던 것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걸 혹자들은 포기라고도 지칭하던데, 포기라는 것은 그 사람의 원래의 모습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그냥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그 결과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환멸의 상태가 악화되면,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하는 단계까지 와버린다. ‘1. 결혼 생활 그만두기 2. 계속 같이 살되 불행한 결혼 생활 이어 가기 3. 평행선 같은 생활 이어 가기 4. 관계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기저자는 여기서 4. 관계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기에 중점을 두고, 진심을 다하는 사랑의 단계로 이끌어준다. 진심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상대를 고치거나 바꾸려는 마음, 또는 대단하고 멋진 사람으로 꾸미려는 마음을 버린 채 그 상대를 아끼고 배려해 주는 것이다. 나의 가장 훌륭하고 가장 성숙한 자아를 끄집어 상대에게 반응해 주는 것에 온 마음을 쏟는 것이다. p198

 

 

 

 

 

바람직한 결혼 생활은 누가 더 관대한지 겨루는 것이다.” p70

책은, 꼭 결혼한 부부뿐만 아니라, 연인관계의 커플에게도 통용되는 책이다. 린다 캐럴이 말하고 있는 이 다섯 가지 러브 사이클은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것이 그 까닭이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에 수록되어있는 러브 사이클에서 지금 당신의 단계는?’를 체크해보니 다행스럽게도, 결합과 진심을 다하는 사랑의 중간이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인 것 같다. 사실 결합의 단계에 좀 더 가깝기도 하다. 진심을 다하는 사랑에 가깝지 못하기도 하고, 그럴 깜냥도 안 된다. 결합에 가깝다고 하니 너무 이상을 바라보며 사는가. 싶은 생각에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우리는 계속 함께 살면서도 생각지도 못한 갈등이 생길 수 있을 테고, 그럴 때마다 열심히 싸울 것이며, 또 열심히 타협하고, 또 열심히 사랑하며, 그렇게 매일을 살 거다.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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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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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책의 서평을 쓰기에 앞서, 일전에 읽었던 가시고백의 서평을 찾아봤다. 난 그때 김려령 작가에 대해 신기한 작가. 라고 썼었네. 전과 다르게 책의 서평을 쓰기 전 작가의 다른 책에 대한 서평을 찾아본 까닭은, 그동안 보아왔던 작가의 글들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었다. 누가 보면 작가의 모든 책들을 섭렵한줄 알겠는데, 딱히 그런 건 아니었고,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가시고백,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그리고 이번 트렁크- 이 정도면 작가의 그동안의 문장과 조금 다르다는 이야기를 좀 해도 될 법하다고 생각해서 감히 얘기하건대, 김려령 작가 책이 맞는지, 책을 읽는 중에 두어 번 정도 작가의 책이 맞는지 확인했다. 정말, 신기한 작가. 내가 왜 그토록 소설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물음도 이 책을 통해 제대로 답할 수 있겠다.

 

 

 

 

결혼 괜찮았어?”

생각보다. 당신은?”

나도.”

서로 괜찮았다는데 무슨 할 말이 더 있나. 여하튼 굿바이. 행복하길.

 

책의 뒷면에 쓰인 서른살, 다섯개의 결혼반지 이라는 문구에 J군은 말했다. “뭐 쌍가락지를 꼈나? 그래도 다섯 개가 안 되겠는데?”라고. - 노인지는 한 남자의 아내다. 남편의 직업은 작가이기도 했고, 작곡가이기도 했다. 남편의 직업은 시시때때로 바뀌었다. 아니, 남편이 바뀌었다는 말이 정확할 거다. 그녀는 다섯 번의 결혼을 했고, 그 결혼 끝에는 다섯 개의 결혼반지가 남았다. 그만두지 않는 이상, 몇 번의 결혼을 더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 결혼은, 계약으로 맺어진 계약결혼인 셈이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결혼정보업체 웨딩라이프의 비밀 자회사 NM에서 근무하는 노인지 차장의 업무는 VIP 회원의 기간제 부인(FW)이다.

 

 

 

 

결혼 이후에는 모든 삶이 관여당해. 심지어 국가가 헤어지는 것까지 관여하잖아. 둘이 합의했는데 왜 법원을 가야 하지? 혼인신고처럼 파혼신고 하면 안되나? 그러면 앞다퉈 이혼할 줄 아나봐. 나라가 나서서 이혼하라 해도 하지 않을 사람들은 절대로 안해. 이혼대책으로 같이 살 배우자를 마련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p58 

 

나는 이 말에 공감을 잘 못했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법원에서 니들 왜 이혼해? 하지 마!”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유예기간을 두는 것뿐인데. 그것도 이혼하길 잘 했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아닌 사람도 있기에 그 유예기간을 둠으로써 개인이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기다려주는 시간이라고 할까. 또 이혼하는 사람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오케이, 오케이 체크해가면서 이혼하는 경우보다 싸움이 일어나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이를 테면, 재산분할, 위자료, 친권자, 양육권자, 양육비 등등.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국가가 개입을 해주는 편이 아니, 달리 생각하면 국가의 도움을 받는 편이 더 낫지 않나 하는데. 그리고 국가의 도움을 조금 더 유리하게 받고 싶으니까, 변호사를 쓰는 거겠지. (중간 굵게 표시한 것들은 오탈자)

 

 

 

 

서평을 쓰면 쓸수록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자꾸 새버려서 써놓고 지우길 몇 차례 반복했다. 내가 왜 그토록 소설을 좋아하는지, 이 책을 통해 답을 할 수 있겠다고 앞서 말했다.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J군은 나에게 벨라씨는 소설만 읽어. 재미있는 것만 읽으려고 해. 인문 좀 읽어야하는데.”라고 말했기 때문. 내가 소설을 좋아하는 것은, 타인의 상상력을 단 돈 만 원(도서정가제로 인해 지금은 단 돈 만 원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으로 마음껏 누려볼 수 있는 까닭이다. 내가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것을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난 소설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기간제 부인(FW)’이라는 직업에 대해 상상하기가 지금처럼 쉬웠을까. 이 일이 이미 우리 삶에 도입이 되어있는 건 아닐는지.

 

 

    

밑줄긋기

 

 

여자든 남자든 나이 들어서 혼자면 안돼. 너 지금 혼자 있으면 안된다고. 어릴 때는 어려서 하는 사랑이 있고, 나이 들면 나이 들어 하는 사랑이 있다. 애들은 똥밭에서 굴러도 예쁘니까 많이 사랑해라.” p86

 

 

돈하고 사랑은 똑같애. 없어도 지랄 많아도 지랄이야. 한 백명 만나면 든든할 것 같지? 하나 깊이 만난 것보다 더 헛헛해. 적당히 만나고 길게 사랑해라. 자꾸 갈아치운다고 더 좋은 놈 안 나타나. 총천연색이 한가지 색보다 선명하지 못한 법이다. 알아듣냐? 나는 왜 너만 보면 불안불안한지 모르겠다.” “근데, 한가지 색이 지랄맞으면 후딱 버려라. 알겠지?” p87


 

그렇게 예뻐?” “당신 예쁘지” p121

 

우리는 한바구니에 담은 달걀과 오리알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 비슷한 듯 다른, 나는 이 간극을 억지로 메우고 싶지 않다. 불가능한 것에 미련을 두면 상대를 부정하게 된다. p122

   


성장통의 기억을 공유하지 않은 사람에게 맨 모습을 보여주기란 쉽지 않았다. 남들이 모두 예스 하는데 왜 나만 노를 해야하는지 이해시키기 어려웠다. p152

   

 

볕 아래 맘껏 내놓을 수 없는 사랑이었다. 내놓으면 내놓은 대로 힘든 사랑이었다. 기어이 구석에 처박으려는 사람들 때문이다. 이런 사랑, 모두 꺼내어 볕에 널고 싶다. 누구라도 보송보송 잘 마른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사랑 때문에 우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p171

 

 

여보, 나는 왜 저 남자만 보면 화가 날까?”

당연하지. 먼저 일어나서 죄송합니다. 시간이 안되네요, 미안합니다. 죄송한데 나가주세요. 자꾸 사과하게 만들었잖아. 자기가 툭쳐놓고 사과받는 사람이야. 사과와 거절이 얼마나 무거운 건데. 생큐오케이, 하고는 질이 달라. 사람을 푹 꺼지게 해. 진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상대가 구질구질하게 사과할 상황을 만들면 안돼.” p177

 

   

 

  오탈자

 

오탈자 p115 마지막 줄 : 자신을 위해 메탈리카를 틀내게 내린 보상인가. (틀내게? ‘틀어내게인가? 뭐지?)

 

 

오탈자 : 책에는 안된다. 안돼.’라는 단어가 꽤 나오는데 보기 불편하다.

부사어 ''과 서술어 '되다'는 띄어 써야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걸까? 그게 한두 군데가 아니라 모두 그렇다

.(이를 테면, 58,86,177 그 외에도 전부 그렇다.)

   

 

오탈자 p87 : 한 백명 만나면 든든할 것 같지? ▶▶▶ 한 백 명

   


오탈자 p87 : 한가지 색보다 선명하지 못한 법이다. 알아듣냐? 나는 왜 너만 보면 불안불안한지 모르겠다. 근데, 한가지 색이 지랄맞으면 후딱 버려라.

                   ▶▶▶ 한 가지

 

 

오탈자 p122 : 우리는 한바구니에 담은 달걀과 오리알 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 ▶▶▶ 한 바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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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행복을 부탁해
서진원 지음 / 무한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박범신 작가의 소금을 읽고, 몇 날 며칠을 서성거렸다. 휘청거리는 생각들의 중심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여 고꾸라지는 나날이 이어졌었다. 그저 아빠한테 운전 조심하시라고, 건강 조심하시라고 전화 한 번 드리는 것이 내가 아빠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내가 더 이상 뭘 할 수 있겠는가. 내 스무 살의 어느 날을 생각했다. 스무 살이니 그동안 누리지 못한 것들을 죄다 누리겠다는 내 심보는 나를 망나니로 만들었다. 망나니가 된 나는 그 어느 날, 술을 먹고 집에 들어와서 아빠한테 나도 이제 어른이야!”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아빠는, “자기 앞가림 할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이야. 너 어른이라니까 내 집에서 나가.”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 추운 겨울, 쫓겨나서 한 시간이 넘도록 덜덜 떨다가, 술이 다 깨서 기어들어와 잤던 기억. 비단 스무 살만 그러겠는가, 서른 살에도, 마흔 살에도, , 예순, 일흔, 여든, 아흔 살에도 부모에게 자식은 그저 연약한 어린아이로만 보일 텐데.

 

 

 

 

 

 

 

요 근래 미미하게 세상은 바뀌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아빠가 육아 전선에 뛰어드는 채널이 생겨나고 있고,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남편들의 육아휴직도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가장의 역할뿐만 아니라 아빠의 역할도 중시되고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의 노고를 인정하며 엄마가 문학의 중심에 섰던 때처럼, 개인적으로는 아빠들의 노고를 인정하며 문학의 중심에 서는 날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 책 역시 읽기로 마음먹은 것 중 하나가, “외로움이 아빠의 직업이더라.”라는 부분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집은 것은 최대의 실수였다.

 

 

 

 

책을 읽다가 문득, 저자의 나이가 궁금했다. 더 나아가 직업도 궁금했고, 그동안의 이력이 궁금했다. 이건 절대 직장을 가지고 있는, 30대의 남자가 쓴 것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감히 충고를 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글들은 허세와 건방이 잔뜩 묻은, 흡사 거위 간을 인공적으로 부풀린 푸아그라 같았다. 더 이상 책을 읽고 싶지 않아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었으나, 이건 꼭 서평을 써야겠다. 했다. 서평을 써야한다면, 책을 무조건 다 읽고 쓰는 게 맞았다. 그런 까닭으로 책을 폈다. 책을 끝까지 읽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또 짜증이 났다.

   

 

 

 

 

   

   

아주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어른들의 고집은 본인의 경험에 의해 켜켜이 쌓인 까닭에 우리가 감히 함부로 범접하여 당신의 행동은 틀렸습니다. 이렇게 고치십시오. 라고 말할 수가 없다. 설사 그렇게 말한다고 하여 여태껏 살아온 그들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올 리 없다. 한 마디로 우이독경이라고나 할까. 지금 저자가 쓴 글 모두가 그 격이다.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라 물음표가 가득찰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돌려 말했나.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볼까.

 

 

 

저자는 실제로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못하면서, 그리고 당장은 못할 거면서, 아버지를 이미 이해하는 척을 했다. 그러니까, 이미 아버지를 이해했다는, 거짓부렁인 책을 쓴 거다. 아버지를 이해했다면,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가 아니라 본인이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야한다. 아버지의 외로움을 안다면서, 아버지의 뒷모습이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면서, 어떤 아들이 되겠다는 것보다, 본인의 아버지가 본인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어주길 원하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어필한다.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에 박장대소하고 무엇에 눈물짓는지 아버지가 알아주길 원하는 나이는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 때 이미 끝냈어야 했다. 소년감성에 젖어 이야기한다고 얘기한다기보다, 그저 본인의 감정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떼쓰는 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급기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또한 본인은 아버지에게 나를 이해하지 말고 믿어달라고 얘기했다면서 정작 본인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든다. 종래는, 아버지가 아니라 가장으로 이해해본다고 이야기하며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를 이해하기는 쉽지만, 아버지로서의 아버지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아버지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격이다. 책에는 실제로 아빠를 닮았다고 얼굴이 창백해졌다는 그 친구 이야기를 눈으로 읽으며 유유상종이구나, 싶었다. 나는 지인들에게 나 엄마 닮았대! 정말 싫지 않니?”라는 말을 함부로 지껄인단 말인가. 그게 바로 앙천이타가 아니던가.

 

 

 

 

, 읽으면서 책을 던져버리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아빠를 원망해.

()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는 20대에게 세상은 왜 이리 차가운지,

이런 사회가 되어갈 때 아빠는 무슨 목소리를 내었는지,

원망이 들어. _p185

 

 

 

 

책에서 아빠는, 가장 노릇뿐만 아니라, 엄마를 이해해야 하고, 심지어 내가 낳은 자식새끼도 이해해야한다. 심지어 자식과 말을 섞기 위해 노력까지 해야 하는 노력파도 되어야하고, 믿음을 주지 않는 자식일 지라 하더라도 무조건 믿어줘야 한단다. 아버지는 절대 슈퍼맨이 아니다. 아버지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아버지도 응당 말할 권리가 있어 말을 하면 그것은 잔소리가 되고, 간섭이 되며, 참견이 되는 세상인 거다. 지금이야 아버지의 지위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나, 아버지는 아버지다. 저자는 아버지 이상향을 그려내었다. 당신이 타고난 성품이 있듯, 아버지라고 하더라도, 타고난 성품이 있는데, “난 그런 아버지 싫으니까 바꿔줘!” 하는 것은 아. 정말 큰 욕을 하고 싶은데.

 

 

 

 

아버지와 아들이 흔히 그러한 관계를 지니듯, 남편 J군 역시 아버지와 데면데면한 사이였고, 내가 결혼하고 가장 먼저 한 것도 J군과 시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이었다. 당신이 가장이 되면 아버지의 역할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자리이고, 아버지는 존재자체만으로도 대접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누누이 일렀다. 그렇다고 내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드렸나,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 마디 할 뿐. “아버님은 어떠시대? 아버님께 여쭤봤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대화다. 그 물꼬를 트면 연못으로, 호수로, 강으로 서로의 공감대가 점차 넓혀지는 현상을 느끼게 된다. 짤막한 대화가 지속되면 그것은 오래도록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척도가 되는 셈이다. 그러면 그 이후에 말이 없어도 어색한 기류가 흘러서 , 어색해.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가 아니라, 그냥 그 상황자체가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 가족들로부터 아버지가 존경받는 집과 그렇지 못한 집의 차이점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 또한 오지랖이지만,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이것저것 요구하는 저자를 보며 그의 아버지께 묻고 싶었다. “당신의 아들은 몇 점입니까.하고. 또한, 단 한 번이라도 진솔한 대화를 나눈 적 있는지 묻고 싶다. 그런 적이 있다면, 약주를 먹고 들어와 이야기하는 아버지가 그저 잔소리한다고만 생각하진 않았겠지. 그게 아버지가 대화의 물꼬를 트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보진 않았던가. 저자의 아버지가 이 책을 보지 않기를 바랐다. 얼마나 자격지심이 들까 싶어서였다. 책을 읽으며 괜히 내 얼굴이 화끈거리더라. 그리고 한 마디 더. 그런 아버지를 바라기 전에, 아버지를 변화시키는 몫이 본인의 행동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가. 그리고도 아버지가 변하지 않는다면, 추후에 본인이 그런 아버지가 되면 된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난 독자로서 이 평점 외에 다른 평점은 줄래야 줄 수가 없다.

 

 

 

 

다음번에 친정에 가면 혹시라도 아빠 옷의 어깻죽지가 주룩 내려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와야지. 그 옷을 올려줄 수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내가 될 수 있으니까. 갑자기 내 아빠가 마음 가득히 보고 싶은 새벽이다. 내일 아침에 눈뜨면 전화드려야지. 너무 늦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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