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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다시 사랑하다 - 사랑의 거품이 빠진 사람들을 위한 관계 테라피
린다 캐럴 지음, 정미나 옮김 / 을유문화사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우리가 결혼을 한 지 벌써 1년 6개월이 되었다. “결혼하면 뭐가 가장 좋아?”라는 물음에, “매일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발그레 웃으며 대답했던 기억이 선연하다. 하지만 그 다음 물음은 아무도 물어보지 않더라. 결혼하면 뭐가 가장 싫은지. 그 대답도 = 이코르, 같다. 매일 얼굴을 보는 것. 우리는 장거리 연애를 했던 까닭에, 약속시간을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었다. 그것은 갈등이 생겼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작용했는데, 만나면 금세 풀릴 일이 태반이라 갈등이 오래 지속되는 것을 장거리 연애 탓으로 돌렸는데, 그것도 지금 생각해보면 풀릴 만큼의 시간이 지났으니 풀릴 수 있었던 일이 아닐까, 지레짐작한다.
좋은 관계에는 반드시 분노와 의견 차이의 폭발이 있어야 한다. p242
함께 같은 공간에 있으면 갈등이 생겼을 때 더 수월하게 풀릴 수 있다고들 하던데, 결혼 1년 동안은 그게 썩 와 닿지 못했다. 지금이야, 그때보다는 조금 더 능구렁이가 되어 갈등이 생겨도 조금 더 현명하게 해결할 수 있지만, 갈등이 생기고 화해하는 과정, 그 간극의 냉랭함이 싫어서 둘 중 한 명이 자리를 피해야만 했던 상황들도 있었다. 그것은 잘 싸우지 못했던 까닭이다. 4년의 연애 중에도 제대로? 싸운 적이 손가락을 꼽을 만큼이었는데 (아니, 그보다는 좀 더 많은가?), 결혼 후에 투닥투닥거리는 우리를 보며, 나는 우리가 부부가 아니라 꼭 연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투닥거림이 매번 싸움으로 번지지 않았던 까닭은 남편 J군의 역할이 컸다. 그는 문제점의 핀을 잘 맞출 줄 알았고, 그것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공감을 해주지 않는다며 얼마나 투덜댔던가. 감성팔이 아내를 둔 j군의 숙명이지 뭐.
그때 내가 생각했던 건, “어떻게 해야 잘 싸울 수 있을까.”였고, 열심히 싸우면서, “열심히, 서로에게 꼭 맞는 부부가 되어야겠다.”였다. 부부가 된다는 것은,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하면 법적으로 자연스레 되는 것이지만, 좋은 부부는 서로의 노력이 부단히 필요하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2세 계획을 미뤘던 것도, 서로의 남편과 아내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었을 때에야 비로소 부모가 되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그러려면 한 가지 명심해야하는 것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기. 부터 시작되어야했고, 그 노력의 시작은 내게 있어서 언제나 ‘책’이었다. 이제야 말하지만, 책만큼 나를 질책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다. 그동안 책을 읽으며 J군에게 미안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책으로 한 걸음 들어가서, 린다 캐럴은 ‘결합 ▶ 의심과 부정 ▶ 환멸 ▶ 결단 ▶ 진심을 다하는 사랑’ 다섯 가지의 단계로 나누어 사랑의 속성을 파헤친다. 사랑의 로맨스가 시작되는 단계인 ‘결합’, 사랑의 미약이 주는 효과가 점점 약해지고 파트너와의 일상이 뻔해지는 상태에 접어드는 순간 찾아오는 ‘의심과 부정’, 서로의 차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해 애를 먹는 ‘환멸’, 일명 ‘벽’이라고 지칭할 만한 위기에 이르는 (미래에 대해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결단’,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해주며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하게 되는 ‘진심을 다하는 사랑’이 그것이다.
환멸의 단계에 이르면 상대방에 대해 ‘따분함, 우울증, 배신, 울퉁불퉁 카펫 신드롬, 유대감 상실, 정당화된 분노, 짜증스러운 기분’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을 일명 우리는 권태기라고 지칭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것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1. 문제점에서 자신의 책임 이해하기 2. 마음을 열고 들어 주기 3.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협력 방법 터득하기 4. 새로운 행동 취하기 5. 관계에 양분주기 (특히 그럴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 6. 자기 자신의 연료 탱크 채워 놓기’ 이론으로 보아선 이게 정말 진부하게만 느껴져서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개인적으로 심술이 날 때마다 (갈등이 생긴다는 것은 내가 서운함을 느껴서 생기는 일이 대부분이었으니) 내가 가장 인정하며 그래그래, 고개를 끄덕끄덕 할 수 있었던 것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걸 혹자들은 ‘포기’라고도 지칭하던데, 포기라는 것은 그 사람의 원래의 모습을 인정하는 게 아니라, 그냥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그 결과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환멸의 상태가 악화되면,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하는 단계까지 와버린다. ‘1. 결혼 생활 그만두기 2. 계속 같이 살되 불행한 결혼 생활 이어 가기 3. 평행선 같은 생활 이어 가기 4. 관계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기’ 저자는 여기서 4. 관계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기에 중점을 두고, 진심을 다하는 사랑의 단계로 이끌어준다. 진심을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상대를 고치거나 바꾸려는 마음, 또는 대단하고 멋진 사람으로 꾸미려는 마음을 버린 채 그 상대를 아끼고 배려해 주는 것이다. 나의 가장 훌륭하고 가장 성숙한 자아를 끄집어 상대에게 반응해 주는 것에 온 마음을 쏟는 것이다. p198
“바람직한 결혼 생활은 누가 더 관대한지 겨루는 것이다.” p70
책은, 꼭 결혼한 부부뿐만 아니라, 연인관계의 커플에게도 통용되는 책이다. 린다 캐럴이 말하고 있는 이 다섯 가지 러브 사이클은 누구에게나 해당될 수 있는 것이 그 까닭이다. 나는 이 책의 마지막에 수록되어있는 ‘러브 사이클에서 지금 당신의 단계는?’를 체크해보니 다행스럽게도, 결합과 진심을 다하는 사랑의 중간이라고 볼 수 있는 지점인 것 같다. 사실 결합의 단계에 좀 더 가깝기도 하다. 진심을 다하는 사랑에 가깝지 못하기도 하고, 그럴 깜냥도 안 된다. 결합에 가깝다고 하니 너무 이상을 바라보며 사는가. 싶은 생각에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우리는 계속 함께 살면서도 생각지도 못한 갈등이 생길 수 있을 테고, 그럴 때마다 열심히 싸울 것이며, 또 열심히 타협하고, 또 열심히 사랑하며, 그렇게 매일을 살 거다. 그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