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행복을 부탁해
서진원 지음 / 무한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박범신 작가의 소금을 읽고, 몇 날 며칠을 서성거렸다. 휘청거리는 생각들의 중심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여 고꾸라지는 나날이 이어졌었다. 그저 아빠한테 운전 조심하시라고, 건강 조심하시라고 전화 한 번 드리는 것이 내가 아빠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내가 더 이상 뭘 할 수 있겠는가. 내 스무 살의 어느 날을 생각했다. 스무 살이니 그동안 누리지 못한 것들을 죄다 누리겠다는 내 심보는 나를 망나니로 만들었다. 망나니가 된 나는 그 어느 날, 술을 먹고 집에 들어와서 아빠한테 나도 이제 어른이야!”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아빠는, “자기 앞가림 할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이야. 너 어른이라니까 내 집에서 나가.”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그 추운 겨울, 쫓겨나서 한 시간이 넘도록 덜덜 떨다가, 술이 다 깨서 기어들어와 잤던 기억. 비단 스무 살만 그러겠는가, 서른 살에도, 마흔 살에도, , 예순, 일흔, 여든, 아흔 살에도 부모에게 자식은 그저 연약한 어린아이로만 보일 텐데.

 

 

 

 

 

 

 

요 근래 미미하게 세상은 바뀌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아빠가 육아 전선에 뛰어드는 채널이 생겨나고 있고,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지만, 남편들의 육아휴직도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가장의 역할뿐만 아니라 아빠의 역할도 중시되고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의 노고를 인정하며 엄마가 문학의 중심에 섰던 때처럼, 개인적으로는 아빠들의 노고를 인정하며 문학의 중심에 서는 날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하고 있고, 이 책 역시 읽기로 마음먹은 것 중 하나가, “외로움이 아빠의 직업이더라.”라는 부분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집은 것은 최대의 실수였다.

 

 

 

 

책을 읽다가 문득, 저자의 나이가 궁금했다. 더 나아가 직업도 궁금했고, 그동안의 이력이 궁금했다. 이건 절대 직장을 가지고 있는, 30대의 남자가 쓴 것은 아닐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감히 충고를 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글들은 허세와 건방이 잔뜩 묻은, 흡사 거위 간을 인공적으로 부풀린 푸아그라 같았다. 더 이상 책을 읽고 싶지 않아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었으나, 이건 꼭 서평을 써야겠다. 했다. 서평을 써야한다면, 책을 무조건 다 읽고 쓰는 게 맞았다. 그런 까닭으로 책을 폈다. 책을 끝까지 읽어야만 한다는 사실에 또 짜증이 났다.

   

 

 

 

 

   

   

아주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어른들의 고집은 본인의 경험에 의해 켜켜이 쌓인 까닭에 우리가 감히 함부로 범접하여 당신의 행동은 틀렸습니다. 이렇게 고치십시오. 라고 말할 수가 없다. 설사 그렇게 말한다고 하여 여태껏 살아온 그들의 귀에 그런 말이 들어올 리 없다. 한 마디로 우이독경이라고나 할까. 지금 저자가 쓴 글 모두가 그 격이다.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갑자기 뚱딴지같은 소리라 물음표가 가득찰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돌려 말했나.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볼까.

 

 

 

저자는 실제로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못하면서, 그리고 당장은 못할 거면서, 아버지를 이미 이해하는 척을 했다. 그러니까, 이미 아버지를 이해했다는, 거짓부렁인 책을 쓴 거다. 아버지를 이해했다면,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가 아니라 본인이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야한다. 아버지의 외로움을 안다면서, 아버지의 뒷모습이 이제 보이기 시작했다면서, 어떤 아들이 되겠다는 것보다, 본인의 아버지가 본인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어주길 원하고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어필한다.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무엇에 박장대소하고 무엇에 눈물짓는지 아버지가 알아주길 원하는 나이는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 때 이미 끝냈어야 했다. 소년감성에 젖어 이야기한다고 얘기한다기보다, 그저 본인의 감정을 알아주지 않는다며 떼쓰는 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고, 급기야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또한 본인은 아버지에게 나를 이해하지 말고 믿어달라고 얘기했다면서 정작 본인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든다. 종래는, 아버지가 아니라 가장으로 이해해본다고 이야기하며 가장으로서의 아버지를 이해하기는 쉽지만, 아버지로서의 아버지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결론으로 아버지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격이다. 책에는 실제로 아빠를 닮았다고 얼굴이 창백해졌다는 그 친구 이야기를 눈으로 읽으며 유유상종이구나, 싶었다. 나는 지인들에게 나 엄마 닮았대! 정말 싫지 않니?”라는 말을 함부로 지껄인단 말인가. 그게 바로 앙천이타가 아니던가.

 

 

 

 

, 읽으면서 책을 던져버리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다.

 

 

아빠를 원망해.

()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는 20대에게 세상은 왜 이리 차가운지,

이런 사회가 되어갈 때 아빠는 무슨 목소리를 내었는지,

원망이 들어. _p185

 

 

 

 

책에서 아빠는, 가장 노릇뿐만 아니라, 엄마를 이해해야 하고, 심지어 내가 낳은 자식새끼도 이해해야한다. 심지어 자식과 말을 섞기 위해 노력까지 해야 하는 노력파도 되어야하고, 믿음을 주지 않는 자식일 지라 하더라도 무조건 믿어줘야 한단다. 아버지는 절대 슈퍼맨이 아니다. 아버지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이다. 아버지도 응당 말할 권리가 있어 말을 하면 그것은 잔소리가 되고, 간섭이 되며, 참견이 되는 세상인 거다. 지금이야 아버지의 지위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나, 아버지는 아버지다. 저자는 아버지 이상향을 그려내었다. 당신이 타고난 성품이 있듯, 아버지라고 하더라도, 타고난 성품이 있는데, “난 그런 아버지 싫으니까 바꿔줘!” 하는 것은 아. 정말 큰 욕을 하고 싶은데.

 

 

 

 

아버지와 아들이 흔히 그러한 관계를 지니듯, 남편 J군 역시 아버지와 데면데면한 사이였고, 내가 결혼하고 가장 먼저 한 것도 J군과 시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일이었다. 당신이 가장이 되면 아버지의 역할은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자리이고, 아버지는 존재자체만으로도 대접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누누이 일렀다. 그렇다고 내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드렸나, 그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 마디 할 뿐. “아버님은 어떠시대? 아버님께 여쭤봤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대화다. 그 물꼬를 트면 연못으로, 호수로, 강으로 서로의 공감대가 점차 넓혀지는 현상을 느끼게 된다. 짤막한 대화가 지속되면 그것은 오래도록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척도가 되는 셈이다. 그러면 그 이후에 말이 없어도 어색한 기류가 흘러서 , 어색해.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가 아니라, 그냥 그 상황자체가 아무렇지도 않게 된다. 가족들로부터 아버지가 존경받는 집과 그렇지 못한 집의 차이점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 또한 오지랖이지만,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이것저것 요구하는 저자를 보며 그의 아버지께 묻고 싶었다. “당신의 아들은 몇 점입니까.하고. 또한, 단 한 번이라도 진솔한 대화를 나눈 적 있는지 묻고 싶다. 그런 적이 있다면, 약주를 먹고 들어와 이야기하는 아버지가 그저 잔소리한다고만 생각하진 않았겠지. 그게 아버지가 대화의 물꼬를 트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보진 않았던가. 저자의 아버지가 이 책을 보지 않기를 바랐다. 얼마나 자격지심이 들까 싶어서였다. 책을 읽으며 괜히 내 얼굴이 화끈거리더라. 그리고 한 마디 더. 그런 아버지를 바라기 전에, 아버지를 변화시키는 몫이 본인의 행동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가. 그리고도 아버지가 변하지 않는다면, 추후에 본인이 그런 아버지가 되면 된다.

 

 

 

 

 

그리고 미안하지만, 난 독자로서 이 평점 외에 다른 평점은 줄래야 줄 수가 없다.

 

 

 

 

다음번에 친정에 가면 혹시라도 아빠 옷의 어깻죽지가 주룩 내려가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고 와야지. 그 옷을 올려줄 수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내가 될 수 있으니까. 갑자기 내 아빠가 마음 가득히 보고 싶은 새벽이다. 내일 아침에 눈뜨면 전화드려야지. 너무 늦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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