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로 산다는 것 - 사랑에 서툰 엄마를 위한 어머니다움 공부
이옥경 지음 / 좋은날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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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여름날의 어느 날이다.

땀이 정수리에서 시작되는지, 몇 천억 개(나 도리까 싶지만)의 머리카락에서 시작되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것들은 이마로, 콧잔등으로, 인중으로까지 퍼진다. 송골송골 맺힌 땀을 심드렁하게 닦아내고 한 권의 책을 다 읽어냈다. 이 서평을 쓰기 전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털어 놓아야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자판을 두드리고 지우고, 두드리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여전히 쓰는 동안, 그리고 서평을 완료하는 그 순간까지 고민하고 걱정하며 저어할 것이다.

 

 

 

 

우리부부는 현재를 살면서도, 꽤 자주 미래를 상상한다. 살고 싶은 모습이 비슷하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한 가지 다른 점은, 그가 살고 싶어 하는 미래에는 아이가 없었고, 내가 살고 싶어 하는 미래에는 아이가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아이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가 아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흔히 생각하는 가족 구성원이라고 하면 부모, 자식이 아닌가. 그 프레임을 깰 수 있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나다. 그런데, 결혼 후 임신일까? 하던 일이 두 번 있었다. 나는 마치, 젖은 운동화 속에 그보다 더 흥건하게 젖은 양말을 끼워 넣어 질척거리는 것만큼의 극심한 우울함을 느꼈고, 심지어 엉엉 울기까지 했다. 기뻐서가 아니라 불안함에 설잠을 잤고, 아님을 알았을 때의 그 안도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그게 임신이었다. 미래에 아이가 있다고 생각했으면서 왜? 남편과 아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때라야, 아빠와 엄마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그래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던 중 올해 여름, 아이가 찾아왔다. 아니, 착상을 하지 못했으니 정확히는 찾아올 뻔 했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테스트기의 두 줄을 보고도, 피검사 결과가 맞다고 하는데도, “아무것도 정확하지 않아.”라는 말만 뇌까렸다. 정말 그러길 바랐다. 계획되지 않았고, 기다리지 않았기에 기뻐하지 못했다. 사실 그래서 다시 되돌아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아이를 낳기 싫은 이유는 참 여러 가지였다. 철이 없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이가 생김으로 인해 우리가 억압받는 자유와 생활을 생각했고, 사교육비로 인해 실버 푸어가 되어가고 있는 현 주소와, 지금 막 태어나는 아이들이 청년이 되었을 때에 그들이 감당해야만 하는 미래를 생각했다. 이를테면, 초고령화 사회로 변한 나라에서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세금을 더 부과하지만, 청년들은 없는,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그런 모습들. 태어나는 아이에게도 미안했고,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우리 부부의 모습도 안쓰러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겁이 났던 건, 동물을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너무 오냐오냐 키우면 버르장머리 없이 자랄까봐, 너무 엄하게 키우면 언젠가 삐뚤게 나갈까봐. 그 중간을 잘 조율할 수 있을지에 대한. 나는 아직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한 동물에 불과한데, 그런 내가 누군가를 양육해야 한다는 것에 겁이 났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연습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큼은 연습이 없다는 사실이 더 끔찍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기에 타인의 어떤 말에도, 어떤 행동에도, 그저 사고방식이 다른 거라며 웃을 뿐, 아이를 품어야겠다는 온화한 생각을 가져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아이를 품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줄곧 그런 마음이었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 때, 조금은 기뻐할 수 있도록 마음의 여유가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기에 나에게는 조금 낯선 좋은 엄마로 산다는 것이 그 첫 책이다.

 

 

 

책 제목에 쓰여 있는 좋은 엄마에 눈이 간다. ‘좋은 엄마’ - 그 기준은 누가 정해주는지 모르겠다. 좋은 엄마는 자연분만도 해야 하고, 모유수유도 해야 하고, 몇 살 이하까지는 엄마가 품에 끼고 살아야 하고. 뭐 이런 것들. 그 굴레에서 벗어나면 소위 말하는 자녀를 위하지 않는 나쁜 엄마가 되어버리는 현실. 사실 엄마가 행복하면 자녀도 행복하지 않을까. 물론, 엄마인 내가 행복하니까 너도 당연히 행복하다고 느껴야 해. 이런 논리는 아니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엄마의 행복이 자녀의 행복의 발판이 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책의 표지에도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집니다. 라고 쓰여 있는데, 엄마가 행복하다는 것은, 그만큼 엄마의 기준이 명확하여 아이를 양육하는 데 여유가 있기 때문일까. 어쨌거나, 타인의 기준에서 좋은 엄마가 아니라, 내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는 것.

 

 

 

책에는 여러 가지가 담겨있다. 아이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아이와 소통하는 방법, 아이에게 아빠의 자리를 찾아주는 것, 아이의 거짓말의 이유를 파악하는 방법, 아이를 꾸짖는 방법, 아이에게 좋은 칭찬을 하는 방법, 아이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방법 등등. 일전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봤었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은 모두 달랐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 행동의 뒤에는 부모의 잘못된 양육방식이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처음이니까, 못하겠다고 속된 말로 내뺄 수가 없으니까. 그 중 가장 깊게 봤던 것이 아이에게 아빠의 자리를 찾아주는 것. 그 날 그것을 읽고 그이에게 물었다. “아빠, 엄마가 싸우면 왜 애들이 엄마 편을 들고, 나중에 아빠를 미워하는 줄 알아?” “엄마랑 오래 있어서? 엄마랑 더 친해서?” “엄마랑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 엄마가 아이에게 만들어준 아빠 이미지야.” - 나는 개인적으로는 아이의 훈육은 전적으로 한 사람이 책임져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꼭 엄마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엄마한테 혼나도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라고 생각하는 반면, 아빠는 엄마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지내지 않는데 훈육까지 해버리면 그만큼 거리가 더 멀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더 이 부분이 깊게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나머지는 아이를 키우면서 약이 될 이야기들이 참 많은데, 언젠가 다시 한 번 들춰볼 날이 있....... 아이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면....!

 

 

 

사실 나는 그랬다. 내가 엄마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엄마의 입장에서 봐야하는데, 엄마가 아니라 아이의 입장에서 보게 되더라는. 어쩌면 유년시절을 만나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초등2년생일 때는 IMF가 왔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던 맞벌이,로 항상 바쁘던 아빠와 엄마, 장녀라는 이유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했던 지독한 외로움, 초등1년생이던 남동생에게 열쇠목걸이를 걸어주던 초등6년생의 나, 동생에게 좋은 누나의 본보기가 되어야한다는 강박관념. 그렇다고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 키워주신 것에 대한 미움도, 원망도, 서러움도 없다. 다만 그때의 내가 조금 안쓰러워서 유년시절의 나를 조금 더 다독거리게 되던 책이었다. 사실 그래서 더 용기가 안 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 추후에 좋은 엄마가 되려고 책을 읽었더니, 난 이렇게 커야한다며 그이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아이가 어느 정도 고집이 생기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온다면, 권유하고 싶은 책.

 

 

 

 

 

오탈자 100p 첫 째줄 : 엄마는 역할 범위는 과연 어디까지 일까요? ▶▶▶ 엄마의

158p , 162p : 외동이 상아 ▶▶▶ 외둥이(가 맞는 표현이라고 알고 있지만, 오탈자가 아니라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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